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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과학

한근우 지음 | 사과나무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과학



한근우 지음

사과나무 / 2018년 10월 / 312쪽 / 15,000원





1부 땅 위를 걷는 사람들



바퀴_ 움직이는 도구의 탄생



사람들은 왜 바퀴에 열광할까?: ‘인류를 바꾼 최고의 발명품들’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항상 바퀴가 1위를 차지한다. 아마도 바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발달한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바퀴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이동 수단이 생겨났고, 이로써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바퀴가 사용된 이동 수단의 발달로 도로가 생겨나고,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고 나아가 국가 간 무역도 가능하게 되었다. 도로의 발달로 새로운 물건과 소식이 온 세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인류 문명의 발달을 증폭시켰다.

바퀴의 탄생: 고대의 이름 모를 한 발명가는 무거운 짐을 손쉽게 운반할 도구를 궁리한 끝에 굴림대를 발명해낸다. 바퀴가 등장하기 전에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은 모조리 인간 근육의 몫이었다. 이 발명품은 둥글고 기다란 나무막대(굴림대)를 흡사 썰매와 같은 판자 아래에 나란히 놓고 밀거나 당겨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썰매와 땅 사이의 마찰력이 줄어들어 무거운 짐을 쉽게 옮길 수 있다. 굴림대와 썰매가 조합된 이동 수단도 초창기에는 인간의 근육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곧 말, 소, 개, 코끼리 등의 가축을 키워 무거운 썰매를 끌도록 조련한다. 굴림대나 썰매를 이용해 인류는 대형 건축물도 완성해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헨지’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고인돌’의 건설은 이러한 이동 수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유적들이다.

고대의 이 이동 수단은 맨몸으로 짐을 옮기는 것보다 탁월한 효율을 보였다. 하지만 먼 거리 지역으로 큰 짐을 옮기기 위해선 쉴 새 없이 굴림대를 옮기고 또 옮겨야만 했다. 이런 운송 수단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바퀴’이다. 바퀴는 기원전 약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다. 비슷한 시기에 고대문명의 발상지였던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바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바퀴는 유럽과 지구촌 곳곳으로 그 기술이 전파된다.

향상된 바퀴의 등장 - 바퀴살: 최초의 바퀴는 지름이 넓은 통나무의 단면을 잘라낸 거친 형태였다. 그런데 바퀴로 사용된 나무 결이 제각각이어서 쉽게 부러지거나 쪼개지기 일쑤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퀴살 형태의 바퀴다. 바퀴살 바퀴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사용되었다. ‘바퀴살 달린 바퀴’의 발명은 가볍고 빠른 이동 수단의 대중화에 크게 일조하게 된다. 특히, 절대 권력의 왕국 통치자들은 바퀴 발명가들에게 빠르고 가벼운 전차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이후 전차는 전장을 누비며 위협적인 존재임을 과시했고, 동시에 절대 권력 통치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도구가 되었다.

마차 혁명: 시장에 출시된 승용차의 제원을 살펴보면 ‘270마력급 엔진 사용’ 등의 문구가 눈에 띤다. 마력은 증기기관의 대중화에 기여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성능을 일관되게 측정하기 위해 만든 단위로, 1마력을 ‘1765년 영국산 말 한 마리의 힘’이라고 정의했다. 당시만 해도 말이 주 동력원이었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과 함께 진화한 과학은 전쟁과 깊은 연결고리를 갖는다. ‘바퀴’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동차의 조상 격인 마차의 역사도 전쟁과 함께 했다. 그리고 군대와 특권층이 주로 사용하던 마차는 점차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된다. 일반인들에게 확산된 마차는 승용이나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이동 수단으로 바뀌었다. 곧이어 실용성 측면에서 바퀴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났고, 바퀴의 개수가 늘어나자 마차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짐과 승객을 태울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많은 마차에 사용된 주 동력원인 말도 1마리에서 6마리까지 늘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차의 크기와 동력의 규모가 곧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철도_ 시간을 달린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증기기관의 발달은 기존의 이동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계식 동력장치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기 무거운 짐이나, 먼 거리를 여행할 때는 대부분 마차를 사용했다. 마차의 주 동력은 당연히 말이었다. 말이 달리는 속도는 보통 시속 60~70킬로미터였지만, 이는 말이 단독으로 초원을 거침없이 달릴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말이 마차를 끄는 데 사용될 경우에는 시속 18킬로미터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다. 또한 지친 말을 도중에 쉬게 하거나 먹이를 줘야 했다. 따라서 정확한 시간을 계획하고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증기기관차는 시속 50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중간에 먹이를 주거나 쉬게 할 필요도 없었다. 간혹 예상치 못한 고장이나 사고로 지체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정확하게 목적지를 도착할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가 활성화되면서 ‘점심때쯤…’이나 ‘해질 무렵…’ 같은 막연한 시간 개념에서 ‘몇 시 몇 분’ 단위로 비교적 정확한 시간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된 영국에서 초창기에는 ‘철마’라고 불렀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l 오지의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먼 도시까지 운반하려면 운송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철마였는데 바퀴와 차축이 함께 굴러가는 윤축 바퀴가 달린 수레를 말이 끌어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윤축 바퀴는 모두 금속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직선 형태의 철로로 이동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철마’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후 철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증기기관차로 이동 수단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말이 철로를 이동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증기기관차를 ‘철마’라고 부르곤 했다.

철도의 아버지 조지 스티븐슨: 퀴뇨와 트레비식이 발명한 초기의 증기기관차는 기계적인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으로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모두 혁신이었지만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기기관차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은 영국의 발명가 조지 스티븐슨이다.

스티븐슨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탄광에서 일해야 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증기기관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스티븐슨은 증기기관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기술력을 축적해갔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붙자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킬링워스라는 광산 운영자가 석탄 운반이 가능한 증기기관차 제작을 의뢰했고 스티븐슨은 그 동안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갔다. 이렇게 탄생한 스티븐슨의 1호 증기기관차가 1814년 선보인 블뤼허 호다.

블뤼허 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속 6.4킬로미터로 당시로서는 아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8량의 화물열차에는 30톤가량의 석탄이 실려 있었지만 블뤼허 호는 깃털을 실은 것처럼 가볍게 부두까지 운행했다. 시범 운행을 지켜본 광산 자본가들이 스티븐스에게 블뤼허 호를 여러 대 제작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16대가 제작되어 블뤼허 호는 철마를 대신해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을 운송하는 데 본격적으로 투입되었다. 이로써 블뤼허 호는 상업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증기기관차로 기록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블뤼허 호 시범운행 이후 철도 운송 산업에 대한 잠재력을 확신하게 된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차 전용 철도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1825년 9월 27일 첫 번째 철도 ‘스톡턴-달링턴 철도’가 개설되었다. 개설된 철도와 함께 새롭게 개발된 로코모션이라는 이름의 증기기관차를 선보였다. 로코모션은 이전에 개발된 모델에 비해 6배나 빠른 시속 39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다. 또한 80톤가량의 화물을 싣고 달릴 수 있었다. 스티븐슨이 두 번째로 계획된 곳은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였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마차나 운하를 이용해 화물 운송을 하던 운송업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그들이 내놓은 반대 의견은 다양했다. “인간은 기차의 빠른 속도를 견뎌낼 수 없고, 장시간 탑승 시에는 미쳐버릴 것이다”, “암탉도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 의회가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건설을 승인하자 이러한 반발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영국에서 스티븐슨의 상업용 증기기관차가 활성화되면서 184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철도 건설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이런 철도 붐의 여파로 1914년까지 주요 선진국이 건설한 철도망은 54만 2,247킬로미터에 달했다. 이후 철도는 마차와 운하를 대체하는 독보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부 물 위를 걷는 사람들







고대의 선박: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물의 정복은 큰 원동력이 되었다. ‘물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졌다.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수레바퀴를 이용한 이동 수단에 비해 배는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이는 물의 부력을 이용하기 때문인데, 동일한 속력으로 이동하는 육상 이동 수단(더 나아가 비행기와 비교해도)에 비해 운송 효율이 좋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싣고 있는 짐의 무게에 비례해 주행저항이 증가한다. 하지만 배의 경우 싣고 있는 무게의 (⅔) 에 비례하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저항이 작다. 따라서 보다 효율적으로 운행이 가능하다. 물론 초기에는 이런 과학적인 원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단지 물을 이용하게 되면 무거운 짐(또는 사람)을 육로에 비해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했을 것이다. 그래서 물 위를 이동할 수 있는 도구인 배를 발명해낸다.

초기에는 통나무 위에 올라타 단순히 물 위를 표류하듯 이동하였고, 이후에는 통나무를 여러 개 연결해 뗏목을 만들어 이용했다. 또, 가공하기 쉬운 대나무나 버드나무 등을 바구니처럼 엮어서 둥글게 뼈대를 만들고, 그 표면에 짐승의 가죽을 씌워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투박한 형태의 배 모양에서 좀 더 우아한 모양의 카누 형태의 배가 등장했고, 이후 우리가 보았던 배의 형태로 서서히 진화했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선박: 미노스 문명(기원전 3650년경~기원전 1170년경)은 지중해 한가운데 있어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 강 유역에서 농경사회를 형성해 발전했던 다른 문명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해 갔다.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크레타 섬 사람들에게는 다른 문명에는 없는 기술이 있었다. 이 기술로 그들만의 독특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바다를 지배하는 기술’이었다. 즉,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것이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지중해를 무대로 약탈을 일삼는 해석들을 소탕하기 위해 큰 배를 만들어 해적들을 제거해 나간다. 이후 인근 지역 상인들은 크레타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지중해 일대에서 안전하게 무역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크레타인들은 자연스럽게 지중해의 맹주에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미노스 문명은 이웃나라 그리스 군대에게 수도 크노소스를 점령당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역사학자들은 당시 크레타의 무적 해군이 원정을 떠나 있어서 수도를 방어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스인들은 찬란했던 크레타 문명이 탄생시킨 크노소스의 기술들을 모두 흡수했고, 그 중에 선박 제조 기술도 있었다. 이후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은 점차 그리스에게 넘어갔다. 내륙의 강이나 호수를 건너는 데 적합했던 여타 문명들의 배와 달리 그리스의 배는 파도가 거친 바다를 넘나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편 고대 이집트의 경우 파피루스라는 풀을 엮어 갈대배를 만들었다. 이후 배의 추진력을 보강하기 위해 천으로 돛을 만들어 배 한가운데에 설치한다. 설치된 돛으로 인해 배의 수송 효율성이 높아졌고, 인접 국가들과의 교역도 활발해진다(배에 돛을 사용한 최초의 기원은 이집트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집트의 선박 기술은 점차 발달해 파피루스보다 강도 높은 나무를 이용해 만든 배가 등장한다. 목재를 이용한 배이다 보니 이전의 갈대배보다 더 많은 사람과 짐을 운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스는 탁월한 선박 기술을 앞세워 국가 경제에서 해상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졌다. 해상무역이 활성화됨에 따라 연간 400여 척의 선박이 건조되었는데, 노가 3단으로 배열된 갤리선부터 4~5단의 대형 선박까지 건조하는 등 관련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특히 뱃머리에 배치된 ‘충각’은 선박의 역사에 있어서 일대 혁신이었다. 충각은 숫양을 뜻하는 말로 뱃머리에 설치된 날카로운 뿔 모양의 설치물이다. 대포와 같은 화약무기가 없었던 당시에는 충각이 달린 배를 전속력으로 몰아 충돌하게 되면 적군의 배에 커다란 구멍 뚫리게 되고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말하자면 충각은 당대의 해전에서 혁신적인 무기였던 것이다.

당시 선박에서의 특징 중 하나가 노이다. 노는 물 위를 해쳐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로 고대 선박들은 대부분 돛과 노를 이용해 운항을 했는데 돛은 그날의 날씨와 바람에 따라 성능이 들쑥날쑥했다. 그래서 기동력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해전에서는 돛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돛은 보조 동력으로만 사용되고 노가 주 동력의 역할을 했다.

로마제국, 지중해를 평정하다: 지중해와 에게해를 중심으로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와 반대로 인근 도시국가 로마는 급속도로 국력이 팽창했다. 로마는 강력한 전투력의 보병들을 앞세워 인근 도시국가를 하나씩 정복해갔고, 계속해서 주변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그들에게는 늘 새롭게 정복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중해 바다였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타고난 육상 민족이었다. 바다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는 넘쳤지만, 그들에게는 배가 없었다. 그러자 로마인들은 선박 기술이 뛰어난 그리스의 배를 참고해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편 당시 그리스와 함께 뛰어난 선박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페니키아는 로마와 포에니 전쟁(기원전 64~기원전 241)을 치렀지만 로마에 패배하고 만다. 로마는 전리품으로 페니키아의 항만시설, 지중해 인근 해상 장악권, 그리고 페니키아의 선박기술 등을 모조리 접수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페니키아와 그리스 배의 장점을 기반으로 로마 스타일의 배를 만들어냈다. 우선 로마의 배는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함의 크기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초기 로마인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크고 빠른 배를 만들기를 원했던 것. 그래서 오로지 노의 개수와 노잡이를 늘리거나 그에 따라 선체의 크기를 늘리는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순히 물리(재료)적 증가만으로 선박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선박의 기본 추진력은 노잡이들의 근육에서 발생된 동물적인 동력과 바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다. 당시 선박의 추진력 향상을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방법은 노의 개수를 늘리고 노잡이를 더 많이 배치하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선박의 추진력을 담당하는 또 다른 요소인 돛에 주목했다. 로마인들은 선박의 기동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돛의 개수를 늘려 3개 이상 설치하기도 했다. 거대한 상선이나 전함의 경우 돛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추진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선박들은 기본 구조에서 선구적이었던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배들에 비해 크게 진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선박 제조 기술을 개선하여 내구성을 높이고, 노의 개수를 늘리고, 돛을 추가하고 바람을 통제하는 등 기술적인 면에서 이전 문명의 배들에 비해 진일보했다. 로마제국의 배는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평균 4노트, 최대 속도 6노트로 넓은 바다를 항해했다.



3부 하늘을 걷는 사람들



비행기_ 무동력ㆍ동력ㆍ항공의 역사



이카루스의 꿈: 자연계에서 하늘을 나는 생물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바로 ‘날개’가 있다는 것이다. ‘날개’는 곧 하늘을 나는 비행의 핵심이다. 인간도 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의 가능성을 점치게 된 것도 새의 날개 때문이었다. “인간! 날개만 있다면 얼마든지 하늘을 날 수 있다!”라는 외침 속에서 비행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중세시대에 접어들자, 이 같은 생각을 직접 실현하려는 이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직접 발명한 인공날개를 어깻죽지에 달고 높은 곳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뛰어내렸다. 이러한 인력 비행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이 같은 무모한 도전이 계속되자 몇몇 과학자는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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