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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색깔

김병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감정의 색깔



김병수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8년 6월 / 320쪽 / 15,000원





chapter 1 일상이 그림이 된다면



텔레비전 없이 주말 보내기



금요일 아침, 텔레비전을 켰는데 정지된 화면만 나왔다. 주말에는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고장이라니 낭패다. 서비스 기사에게 제품명과 상태를 설명했더니 “오래된 텔레비전이라 부품을 못 구해요. 곧바로 수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마음을 바꾸어먹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참에 텔레비전을 완전히 끊어보자.’

금요일 늦은 오후, 헌책방에 갔다. 주말에 편하게 읽을 책을 사고 싶었다. 묵직한 고전은 사양한다. 짜릿한 장르 소설도 좋지만, 느긋하게 읽히는 에세이가 낫겠다. 에세이 코너를 살피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밀의 숲』을 발견했다. 하루키의 웬만한 에세이는 다 읽었다고 여겼는데, 이것은 읽지 않았다. 책날개에 박힌 하루키의 사진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그의 나이 69세인데, 이건 뭐야. 폴로셔츠를 입고 어깨에 스웨터를 걸친 채 고양이를 안고 있는 푸릇한 얼굴이라니. 바로 구매를 결정. 작가 사진만으로도 즐거움을 주었으니, 중고 책값은 충분히 건졌다.

일요일 아침,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그런 뒤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커피콩을 꺼내 핸드 밀로 간다. 프렌치 프레스로 커피를 만들려면 조금 굵게 갈아야 한다.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막대로 휘휘 젓고 5분 기다리면 완성. 인터넷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신 뒤,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하고 돌아오니 벌써 오후다. 클래식 FM <명연주 명음반>을 틀어놓고 지난 금요일에 산 에세이를 읽는다. 술술 넘어간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졸음이 밀려온다.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 나는 밥을 하고, 아내는 반찬을 만든다. 설거지까지 마치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텔레비전으로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몽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다. 참아보려 했지만 텔레비전 금단증상이 슬금슬금 일어난다. 버텨보려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된다. ‘지난주에 그 프로그램이 어떻게 끝났더라?’ 딴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면 그렇지, 텔레비전을 완전히 끊고 어떻게 사냐!’ 인내는 여기까지.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제주살이를 보며 실실 웃고 있다. 텔레비전 보지 않고 주말 보내기는 사흘을 못 버티고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작심삼일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사람 여행, ‘메이커’를 만나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여행지에서 내 눈을 잡아채는 장면이 조금씩 달라졌다. 부끄럽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밀라노 두오모보다 그 옆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갤러리아에 진열된 명품에 감동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그의 그림이 여럿 전시된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여행의 귀한 시간을 다 써버리기도 했다. 중년이 되어서는 인간 존재를 초라하게 만드는 자연 풍경이 마음을 홀렸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의 프레케스톨렌에 올랐을 때는 겁 많고 소심한 내가 350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짙은 하늘 파란색 스카프처럼 피오르를 감아 흐르는 물길을 수직으로 내려다보고 싶어서 절벽 끝까지 걸어갔다.

요즘은 사람이 좋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감동받는다. 최신 유행의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끌린다는 말도 아니다. 길가에서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놓은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집중해서 만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넋 잃고 바라본다.

누군가는 기타를 만들고, 누군가는 목걸이를 만들고, 누군가는 바느질하고, 누군가는 고기를 다듬는다. 실례를 무릅쓰고 사진을 찍고, 인사말도 건넨다. 무슨 주책이냐고 하겠지만 ‘메이커’라고 불릴 수 있는 이런 사람에게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예전에는 유행하는 브랜드의 상품을 메이커라고 불렀고, 메이커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호감의 대상이 이렇게 바뀐 것은 세상이 변해버린 것도 한몫했다. 화려한 말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웅변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지 않아도 뭐든 다 될 것처럼 흥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진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정성과 시간을 쏟아붓지 않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광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다.

말과 생각만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질 수는 없다. 우리가 이만큼 살만해진 것도 묵묵히 손과 발을 움직여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메이커들 덕택이다. 그럴듯한 말로 자기를 치장하는 사람을 보면 “그래서 당신이 몸을 써서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제게 보여주세요.” 라고 묻고 싶어진다.



chapter 2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색깔들



행복은 은밀하게 추구하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조언을 구하는 친구에게 “네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해.”라고 한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낙담한 가족에게 “무엇을 하든,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말로 응원을 대신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할 거다. 우리는 행복을 삶의 최고 가치로 친다.

오랫동안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본질적 물음에 천착했다. 행복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인생을 세심하게 관찰해 왔다. 행복의 실체를 캐내려고 책과 논문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하면 다들 황당하게 여기겠지만, 솔직히 그렇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행복을 믿지 않는다. 행복이란 실체가 없는 관념이라고 여긴다. 행복을 추구하라고 웅변하는 사람을 보면 다른 무엇을 얻으려는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그래서 “행복은 없다.”고 김빠지는 말을 툭툭 내뱉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에 대해 다르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올해는 드디어 승진해서 행복하다는 직장인도 있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최고로 행복할 것 같다는 어머니도 있다.

퇴근해서 아내와 함께 산책할 때가 제일 좋다는 아버지, 돈 걱정 없이 하루만 살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가장도 있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공황장애가 완치되어야 행복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나는 행복해요!”라고 한다.

“모두 행복해지자.”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행복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5,0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는 5,000만 가지의 서로 다른 행복이 있다. 누가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를 끌어 담을 단 하나의 행복은 없다. 내가 행복에 대해 잘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이유다.

감정은 맥락에 따라 선택된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이가 많다.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다거나, 참고 싶은데도 억누를 수 없었다고 한다.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짜증 나는 일이 자꾸 생긴다며 세상 탓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감정을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만들어낸다. 감정 선택이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화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참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화를 내는 것이 도움 이 되니까 여러 감정 중에서 분노를 선택한 것이다.

표를 사려고 긴 줄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누군가 새치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 뇌는 순식간에 어떤 감정이 자신에게 득이 될지 평가한다.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화를 내는 게 이득이 되리라 예상하면 분노를 관장하는 신경 회로가 활성화된다. 정당한 분노든 아니든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돼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정말 그럴까? 이 경우도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스스로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불안에 취약한 신경증적 기질의 사람에게 힘든 과제를 앞두고 걱정과 불안을 느끼게 했을 때가 행복한 감정을 선택하게 했을 때보다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힘든 과제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염려에 휩싸이는 사람은 위험에 대비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불안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눈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외로움에 젖는 이도 있다. “하얀 눈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이 떠올랐어요.”라고 하지만 이 둘의 차이도 내가 어떤 감정을 선택하고 싶은지에 따른 것이다.

첫눈이 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사람은 즐거운 감정을 만들어내고, 고독을 즐기고 싶으면 외로움을 선택한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내 선택의 결과물이고 오롯이 내 책임이다.



chapter 3 그림의 위로



칭찬하기의 어려움



우리는 문제를 찾고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인간의 뇌는 비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인류가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게 뭐야? 다른 사람은 잘하던데 너는 그게 문제야.”라는 부정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이런 말은 별다른 노력 없이 쉽게 나오지만 긍정적 표현은 부단히 노력해야 자연스럽게 나온다.

작은 일에도 칭찬하라고 조언하면 많은 사람이 어색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같이 산 지 20년 된 아내에게 새삼스럽게 감사라니요.” “오래 같이 살아서 그런 말 굳이 안 해도 다 알아요.” “칭찬해주면 버릇 나빠져요.” 가족이 가구가 되면, 칭찬도 사라지고 만다.

애써 칭찬해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하던데, 수고했어.”라고 하면 부하 직원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또 일을 시키려고 저런 말을 하나’라며 경계한다. 칭찬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드러내면 쉽게 보일까 봐 애써 표정을 숨길 때도 있다. 칭찬을 덥석 받아들이면 겸손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봐 “과찬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칭찬은 타인의 장점을 치켜세우는 게 아니다. 외모, 옷차림, 심지어 재능도 칭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고유한 본성,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자기는 타인이 칭찬한다고 쉽게 부풀어오르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칭찬받지 못했다고 존재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그로 인해 내가 받은 감동을 표현하는 것이다. “당신 덕택에 내가 행복해, 고마워.”처럼 말이다. “우리 아들, 이번 시험 100점이구나. 잘했어.”라는 표현에는 수직적 평가가 녹아 있다. 100점이 아니면 안 된다는 판단도 숨겨져 있다. 이런 말을 반복하면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고 만다. “잘했다.”보다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가 제대로 된 칭찬이다. “우리 딸 똑똑한 걸.”이라며 재능을 치켜세우기보다는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구나.”라고 내가 받은 느낌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상대에 대한 비교, 판단,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에서 받은 감동을 표현하는 게 진짜 칭찬이다.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더위는 음식뿐 아니라 기분도 상하게 만든다. 그나마 짜증만 는 거라면 다행이다. 열기는 공격성도 부추긴다. 우리나라의 폭력 사건은 여름철(6월~8월)에 가장 빈번하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시카고의 일일 기온을 조사했더니, 섭씨 32도까지는 날씨가 더워질수록 범죄율도 높아졌다. 공격성이 꺾이는 온도는 연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패턴은 다른 연구들로도 확인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1도 오를 때마다 폭행 사건의 수는 약 1.5퍼센트씩 증가한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찜통더위에는 ‘버럭’ 하고 폭발할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는 것이다. 더울 때는 조금만 더 참자고 마음을 다잡는 게 신상에 이롭다.

더위는 인간을 인색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를 위한 설문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쾌적한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94퍼센트가 수락했지만 덥고 습한 교실에서는 64퍼센트만 조사에 응했다. 불쾌감이 느껴지는 더운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은 자발적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의견을 제시하는 행동이 급격히 줄어든다. 요즘 들어 직원이 퉁퉁거리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면박부터 줄 게 아니라 일터의 온도부터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더위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니 혹시 내가 날카로워진 것은 아닌지 수시로 자기 컨디션도 체크해야 한다. 평소보다 예민해졌다면 자극을 줄이고 쉬어야 한다. 덥다고 “짜증 나.”를 입에 달고 살면 더 예민해진다. 뇌는 언어적 현실과 실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입으로 짜증을 연발하면 그 소리를 들은 뇌가 ‘이 사람은 짜증이 났구나.’라고 인식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더 방출한다. 예민해지기 쉬운 날씨에 말투까지 고약해지면 뇌가 지각하는 불쾌지수는 높아진다.

습식 사우나 같은 날씨에는 짜증도 늘고 불친절해지기 십상이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뜨거운 열기와 눅눅한 습기가 인간의 본성을 변질시킨 탓이 크다. 옆 사람이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날씨 탓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chapter 4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외향적인 너, 내향적인 나



“외향적으로 바뀌면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향적인 제 자신이 너무 싫어요. 심리 치료를 받아서 성격을 바꾸고 싶어요.”라며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격을 바꾼다는 것이, 늘어난 뱃살을 빼는 것처럼 힘은 들어도 노력하면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콧대를 자기 의지로 더 높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일까?

외향성과 내향성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다.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대화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내적인 사람은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빼앗긴다. 그래서 재충전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외향적인 사람은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데는 서툴다. 결단이 빠르고 행동적이지만, 사려가 깊지는 못하다. 외향적인 사람의 주된 관심은 현실의 세상이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긴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무척 힘들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쓰면 행복하다. 내가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오는 것을 두고, 평소 내 모습을 잘 아는 지인들은 신기하게 여긴다.

예전에는 내향성을 나쁘게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향적인 내 성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름 장점이 많다. 혼자 일하는 것도 잘하고, 외로움도 덜 탄다. 굳이 옆에 사람을 두지 않아도, 혼자서 즐길 거리가 많다. 깊은 사색을 편안하게 느끼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향적인 사람은 원래 이런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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