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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위로할 때

김나위 지음 | 다연
내가 나를 위로할 때



김나위 지음

다연 / 2018년 4월 / 312쪽 / 13,000원





그렇게 혼자 울지 마



나만 제자리야, 여전히 그 자리일 뿐이라고!



늘 시간에 쫓기듯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뭐 하나 대단하게 이루어놓은 것 없고, 딱히 제대로 잘해낸 것도 없으며, 그렇다고 생활이 충분하게 풍족해진 것도 아니다. 문득 이렇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허둥지둥 쫓기며 살아야 하는 걸까?”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은 늘 그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허둥거릴수록, 꿈틀거릴수록 한 발짝 나아가기는커녕 진흙 속으로 더 깊이 빨려드는 것 같다. 이렇듯 나만 늘 제자리라는 생각이 들면 좀처럼 기분을 추스르기가 어렵다. 남들은 쉽게 성공하는 것 같은데, 남들은 승진도 잘하는 것 같은데, 남들은 돈도 잘 버는 것 같은데 말이다. 제자리를 벗어나본 적 없는 나만 문제가 많을 걸까.

단번에 얻는 것은 뒤탈이 생기니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원망,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바꿀 수 없다는 팔자, 돈도 권력도 없는 자기 현실에 대한 좌절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법이 아니지 싶다. 또한 자포자기하는 것도, 작은 일에 실망하는 것도, 타인과의 비교도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도, 절망스런 자신의 현실을 앞세워 아무런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도 지혜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

살아가는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감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많다. 그 위기가 너무 숨막혀서 고민하고 절망하며 팔자타령을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기는 결국 지나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스쳐간 많은 일이 있고,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지난날의 추억과 아픔이 만들어진다. 누구나 그렇다.

혹독하고 고된 시간을 견뎌냈기에 그 이후의 시간은 그때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진다. 아무 일도 겪지 못했더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치기만 했다면 여유를 느낀다는 건 꿈조차 꿀 수 없을 터이다. 누구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아무런 상처 없이 나이를 먹을 수 없다.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이러한 원리들은 살아가는 데 지극히 당연하지만, 막상 자기 삶 속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번에 얻어지는 것은 뒤탈이 함께 온다. 쉽게 얻은 명예와 성공, 단숨에 맺어진 사랑, 급작스레 친해진 인간관계, 준비 없는 스포트라이트 등은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멀리 내다볼 때 좋지 않은 점이 더 많다. 아이가 태어나면 걷는 것부터 연습시키는 게 아니라 더디더라도 앉는 법, 서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게 한 뒤에야 걷는 법, 뛰는 법을 가르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좌절감을 느끼고,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내 인생만 꼬이는 것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멀리 보면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과정이겠다. 나약한 마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뿐더러 어떤 상황이나 사건, 결과가 눈앞에 펼쳐질지 모르므로 시련을 극복할 강화 근육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쯤 내가 잘될지, 몇 살쯤 꼬인 인생이 풀리고 잘나갈지 모르니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라 믿고 살아야 하루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다.

물론 쉽게 얻었다고 해서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쉽게 이루었다 하여 무조건 허접한 것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단지 너무 쉽게 얻은 것에 대하는 마음의 태도는, 간절하게 원해서 얻은 것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와 다를 뿐이니까.

인생이 아름다운 까닭은 자신만의 꽃피는 시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인생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인생을 담아내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게 좋다.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잘되는 때’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속 편히 살 수 있다. 내가 남이 될 수 없고 남이 내가 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저마다 주어진 인생 항로에 스스로 만족하고 멋지게 항해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 아닐까.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젊은 시절 영화를 한 편 만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차기작을 만들지 못하다가 63세가 되어서야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영화들에 대한 세계적 찬사를 받으며 그는 전업감독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73세였다.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통념을 벗어버리고 자신한테 집중하여 멋진 항해를 과감히 펼친 그에게 존경심과 선망을 담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만 제자리라고 느낄 수 있고, 실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참 다행인 점도 있다. 여전히 내가 제자리인 것은 내 인생 절정의 꽃피는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므로 제자리에 있는 것이고, 최소한 뒤처지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꽃이 피고 많은 열매를 얻는 순간이 오면 쉽게 얻은 것이 아니라서 뒤탈이 날 일도, 걱정할 거리도 없다는 사실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기에 당당한 모습으로 웃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늘 다니던 길도 헤맬 수 있거든



계획대로만 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람과 달리 감정이 없고 변수도 없는 컴퓨터로 일을 진행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이가 ‘기계의 완벽함’으로 ‘사람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기계도 사람도 결코 완벽할 수 없으며, 100퍼센트 계획대로 일을 수행할 수 없다.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이 자랑하는 내비게이션도 100퍼센트 완벽하지는 않다. 아직 목적지를 찾지도 못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안내를 종료하거나 프로그램이 다운되기도 한다. 인간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한다고 해도, 뛰어난 기술이 발명된다고 해도, 잘 가던 길을 잃어버리는 사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길을 헤매는 원인이 나 때문이든 타인 때문이든 상관없이, 길을 헤맨다고 해서 인생의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단번이라는 것이 살아보니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길 저 길 헤매면 좀 어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오히려 남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방향을 제시해도 사람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곁눈질하지 않고 가는 것도 우리의 일상이요, 어느 순간 가던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우리의 일상이다. 길을 잃는 것도,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순간순간의 경험이 삶의 값진 지혜로 남는 것이고, 그렇게 얻은 지혜야말로 나를 제대로 이끌어 줄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된다.

완벽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완벽하다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며, 사람의 인생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완벽이라는 틀을 짜고, 그 틀 속에 밀어 넣으며 살아가려고 할까. 자신이 왜 사는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뻔질나게 다니던 길도 어느 순간 헷갈릴 수 있다. 좀 헷갈린다고 뭐 잘못된 것은 없다. 약간의 시간만 지체될 뿐 마음만 허둥대지 않으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가던 길을 다시 가면 된다. 혹시라도 찾는 길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짝 물어봐도 될 일이다. 매사에 완벽할 필요는 없다.

완벽한 것은 없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해지려고 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와 상대방을 완벽함이라는 헛된 틀 속에 가두면 무리가 생긴다. 이것은 병이다. 모두가 불편해지는 ‘억지병’이다.

당신, 왜 그렇게 변해가는 거야?: 그런데 우리 삶에서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 기차를 타면 된다. 하지만 인생 내비게이션을 잃어버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생 내비게이션을 잃어버리면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길이 최적의 길인지, 가는 동안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제대로 된 원칙이나 규칙도, 주의해야 할 위험한 것들도,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할 일들도 짐작할 수 없다.

인생 내비게이션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길을 가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고 이를 의식하며 산다. 그러나 목적의식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면,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다. 능동적인 변화가 아닌 수동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왜 그렇게 변하는 것이냐며 물어도 딱히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그래, 나 변했어. 이제 됐어?”라며 소리칠 뿐이다.

사람은 변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믿었던 사람이 변했음을 인정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연애를 할 때 “오빠는 안 변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안심시키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면 대부분의 남편이 변해간다. 물론 아내도 변한다. 연애를 할 때 “난 잔소리 같은 거 안 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고 잔소리를 쏟아낸다. 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변해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구 사이에서, 자신이 처한 입장과 역할이 변하니 자연히 그 입장과 역할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

문제는 그 변화가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 자기 인생의 목적에 맞는 변화인지 아닌지에 있다. 자신의 인생 목적에 맞고 능동적인 변화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문제가 된다. 자신이 처한 입장과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변화, 현실에 적합하지 못한 변화는 인간관계상 갈등을 야기하고 불만족을 키운다.

미국의 코미디언 에디 캔터는 말했다. “천천히 삶을 즐겨라. 너무 빨리 달리면 경치만 놓치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놓치게 된다.” 빨리 가는 게 뭐 대수일까. 길가에 늘어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다면 무슨 재미일까. 놓쳐서는 안 될 것조차 놓쳐가며 빨리 달리는 것은 무엇을 위한 걸까. 중요한 건 내가 그 길 위에 서 있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는 이들과 도란거림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넌 위로받을 자격이 충분해



천천히 가도 괜찮다, 계속 갈 수만 있다면



끝은 없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내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은 에디슨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에디슨은 어릴 때 언어 발달이 늦었고, 산만한 행동 때문에 집중력 또한 낮았다. 결석조차 지나치게 많은 그야말로 문제아였다. 바보로 낙인 찍혀 학교까지 그만두었다.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별 볼일 없는 아이였다. 그런 그가 평생토록 이루어낸 업적은 대단하다. 특허만 1,093개이고, 전등과 전축 등 획기적인 발명품도 만들었다. 전기를 발명하기까지 2만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끈질긴 노력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는 평생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공에 이르렀다. 많은 이가 에디슨을 칭송하면서도 실패의 쓴맛으로 점철되었던 기나긴 여정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고난의 결과물인 수많은 특허와 발명품, 업적에만 초점을 둔다. 물론 내 아이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다면 부모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만, 그러자면 숱한 실패로 좌절하는 아이의 모습도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천재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며, 천재를 만드는 것은 바로 고난이다. 고난의 과정을 겪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무조건 빠른 속도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속도를 강요하는 것은 과정의 소중함을, 역경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다. 노력하면 빨리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노력하는 그 자체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실패 없이 성공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 고난과 실패 역시 성공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다시 노력할 수 있다.

도착지가 똑같다면 천천히 가도 문제될 것 없다. 빠르지 않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천천히 가다 보면 좋을 때가 많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보면 오르던 길에서도 내리막길을 미리 알아놓을 수도 있고, 사건 사고를 적절히 예방할 수도 있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이나 느끼지 못했던 것을 많이 발견할 수도 있다. 의도한 것도, 계산된 것도 아니었지만 여유로운 마음은 어느덧 풍족한 행복도 느끼게 해준다. 이 세상에 끝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하면 끝은 언제든지 끝이 아니라 과정이 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에 달렸으니, 언제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끝은 홀연히 사라지고 다시 시작점이 생긴다. 시작도 끝도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당신은 비상구가 있나요?



피곤할 땐 쉬는 게 답이다: 나도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내 이름으로 사장 명함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환경도 열악했고 일하는 방법도 잘 몰랐지만, 무작정 작은 회사 하나 달랑 차리고 시작했다.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경험도 전략도 없었고, 일손 부족으로 1인 5역을 거뜬히 해내야 했고, 그러니 밤샘 작업을 밥먹듯 해야 했다. 주말과 휴일,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부지런히 소처럼 계속 일만 했다. 십수 년간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한번 가본 적 없었다.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나의 가슴은 속 빈 대나무보다 더 텅 비어버렸다. 스스로 충분한 휴식과 여유를 가져야 빨리 지치지 않고, 더 재미있게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바쁜 가운데 짬을 내어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다도 떨었다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은 많이 무디어졌을 것이다. 한참을 겪어보고 나서야,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곤할 땐 쉬는 게 답이었다. 끝나지 않을 일을 앞에 두고 끝 타령을 한다 하여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밤을 새울수록 계속 새워야 하는 일들 앞에 맥없이 휘둘리게 된다는 것, 밤 샌다고 탁월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얼굴은 잿빛이 되어서 다니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잠시 쉬었다 간다고 공든 탑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한 시간 더 오래한다고 업무 성과가 탁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피곤할 때 조금 쉰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피곤한 몸과 마음,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티면 업무 능력이 저하될뿐더러 일하는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가장 최악인 것은 나이보다 너무 빠르게 삶의 고단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또래보다 폭삭 늙어 보이는 것은 물론, 한 방 제대로 터뜨리기 전에 내가 먼저 훅 갈 수도 있다.

나를 위해 꼭 필요해, 하나쯤은: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특별한 출입구다. 일상적인 날에는 별 쓸모가 없지만, 사고 시에는 유일한 탈출구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비상구는 그 어떤 문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발휘한다. 비상구는 긴급 상황을 벗어나는 안전의 문이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평화의 문이다. 아무리 멋진 건물이라도 비상구가 없다면 화재와 재난의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건축 허가도 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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