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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숲

레이첼 카슨 지음 | 에코리브르
잃어버린 숲



린다 리어 엮음, 레이첼 카슨 지음

에코리브르 / 2018년 4월 / 336쪽 / 17,000원





해저



〈해저〉는 본시 제목이 ‘바다 세계(The World of Waters)’였으며, 애초에 카슨이 1935년 미국 어업국의 간행물에 서문으로 싣고자 작성한 글이었다. 그녀의 상사는 그 글이 정부간행물로 쓰고 말기에는 더없이 서정적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애틀랜틱 먼슬리〉에 내보라고 권유했고, 결국 그 잡지 편집자 에드워드 윅스는 그 글을 실어주었다. 〈해저〉는 나중에 카슨의 첫 작품이자 그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저작으로 꼽은 『바닷바람을 맞으며』(1941)의 토대가 되었다.

이 글을 통해 카슨은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하거나 신비로운 바다 생명체들을 바로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그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끔 안내한다. 〈해저〉에는 카슨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주제, 즉 예부터 지금까지 바다 생명체를 지배해온 생태 그리고 가장 미미한 유기체까지 아우르는 물질적 영속성이 소개되어 있다.

과연 누가 바다를 아는가? 당신도 나도 지상에 매여 사는 빈곤한 상상력만으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갑자기 밀려드는 제 삶터인 조수 웅덩이의 해조 아래 몸을 숨긴 게들을 놀라게 만들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조석을, 배회하는 물고기 떼가 서로 먹고 먹히는 곳이자 돌고래가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파도를 가르고 위로 솟구치는 곳인 망망대해에서 길게 느릿느릿 물결치는 바다 너울의 리듬을….

또한 우리는 알 턱이 없다. 30미터의 바닷물을 투과한 햇빛이 푸르스름한 미명처럼 희미하게 일렁이는 곳, 해면ㆍ연체동물ㆍ불가사리ㆍ산호가 살아가는 곳, 작은 물고기 떼가 은빛 유성 소나기처럼 어스름 속을 반짝거리며 떠돌고 뱀장어들이 그들을 노리며 바위 속에 웅크린 곳, 바로 그 바다 바닥에서 생명체들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지를…. 하물며 완벽한 적막, 한결 같은 추위, 영원한 밤이 지배하는 10킬로미터 아래 바다의 우묵한 심연이야말로 말해 무엇하랴.

바다 생명체들만이 아는 바다 세계를 느끼려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 길이와 너비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벗어던지고 그들의 눈으로 광막한 물의 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바다의 자식들에게는 제 사는 세계의 유동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들의 숨 쉬는 곳과 먹이를 얻는 곳도 물이다. 그들이 처음에 붉은빛, 이어 초록빛, 끝으로 자줏빛으로 바뀌는 태양광선 속에서 세상을 꿰뚫어보는 것도 바로 물을 통해서다. 그들이 자신에게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진동을 느끼는 것 역시 물을 통해서다. 온갖 바다 동물이 해안 지대나 대륙사면의 깊이 파인 틈새 등에 국한해 살아가도록 이끄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진 것 역시 바닷물이 층위에 따라 온도와 염도와 수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아우르는 변화무쌍한 생활 패턴을 지닌 생명체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한 흔치 않은 예가 바로 바위틈에 고인 조수 웅덩이에서, 모래언덕이나 해안가 풀밭에서부터 바다 가장자리까지 드리워진 갯벌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이다. 조간대에서는 육지와 바다가 서로 제 땅이라고 우기며 밀고 당기는 싸움을 이어간다.육지에서는 밤이 되면 들판과 숲의 외양이 달라진다. 어떤 야생동물은 안전한 은거지인 굴로 물러나는가 하면 어떤 야생동물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썰물 때는 바다 생명체들이 주로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그 대신 육지 약탈자들이 조수 웅덩이를 뒤적거리거나 물이 도로 차오르길 숨죽이며 기다리는 해안 동물을 찾아 모래 속을 헤집고 다닌다. 하루에 두 차례, 바닷물이 유혹의 손짓을 하는 달의 추격을 따돌리고 서서히 빠져나가면 총알고둥, 불가사리, 게들이 자비로운 모래밭으로 슬슬 기어 올라온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해조류 더미, 물러가는 바다가 모래밭이나 바위틈에 남겨놓은 조수 웅덩이는 따가운 모래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구실을 한다.

바다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그곳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인 30미터 길이의 흰긴수염고래, 몸무게가 9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바다의 살인자 대백상어의 보금자리다. 또한 두 손으로 바닷물을 퍼 올리면 그 안에 은하수에 박힌 별만큼이나 무수한 존재가 담길 정도로 그렇게나 미세한 생명체들이 삶을 일구는 거처이기도 하다. 바다의 표층수가 실제로 끝없는 목초지나 마찬가지인 것은 거기에 규조류라고 알려진 이 미세 식물이 천문학적인 규모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존재에서부터 상어나 고래에 이르는 모든 바다 동물은 궁극적으로 먹이를 구할 때면 바다에서 살아가는 이 미세 식물에 의존한다. 바다는 이 미세 식물의 섬세한 내벽 안에서 바닷물에 녹아 있는 무익한 화학원소를 햇빛과 결합해 결국 생명이 있는 물질로 바꾸는 요술을 부린다. 무수한 식물 ‘생산자’들이 우리로서는 거의 알 길 없는 단백질ㆍ지방ㆍ탄수화물의 합성 과정을 거쳐주어야만 바닷물 속을 떠돌며 먹이를 탐색하는 동물 ‘소비자’들이 바다의 무기질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 위쪽 ‘공기의 바다(대기)’와 아래쪽 심연의 중간 지역에서 끊임없이 떠도는 이 신기한 생명체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바다 꽃들을 우리는 ‘방랑자’라는 의미의 ‘플랑크톤’이라 부른다.

나아가 대륙붕에는 바다 바닥에, 물에 잠긴 강의 골짜기랄 수 있는 깊은 협곡들이 패였는가 하면 여기저기 해저 고원이 들어서 있다. 굼뜨거나 고착생활 하는 동물이 지천으로 깔린 이 해저 섬들 위로 물고기 떼가 몰려와 먹이를 사냥한다. 바다 바닥을 주 무대로 활약하는 이들 물고기에는 해덕, 대구, 넙치 그리고 광어가 있다. 대륙붕 지역과 그보다 얕은 연안해에서는 포식자인 인간이 해마다 약 1350만 톤의 물고기를 공물로 내놓으라고 손을 벌린다.

바닷속을 여행하는 이들은 해저를 계속 탐험하는 동안 수킬로미터에 걸친 평평한 초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할 것이고, 경사진 언덕 허리를 오르기도 할 것이고, 발아래에서 갑자기 아가리를 크게 벌린 깊고 들쭉날쭉한 틈새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어두운 지역을 통과해 마침내 대륙붕단에 닿을 것이다. 서서히 깊어지다 약 5,400미터의 깊이에 달하면 수압이 1제곱인치당 3톤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에 이른다. 고요한 심해에는 빙하기 같은 추위가 보편적이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결코 달라지지 않는 황량한 추위가 수년, 수세기, 억겁의 지질시대 동안 변함없이 이어진다. 또한 그곳은 깜깜한 어둠이 지배하는 장소다. 바다가 출현한 때인 태곳적 밤의 어둠이 잿빛 여명에 방해받지 않은 채 영겁의 시간을 이어온 것이다.

심해에 사는 ‘괴물’들은 몸집이 작지만, 이가 총총 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먹이를 찾아 나서는 걸신들린 물고기들이다. 어떤 녀석은 눈에 비견되는 역할을 하는 민감한 더듬이가 있고, 어떤 녀석은 살아 있는 먹이를 유인하거나 찾아 나서는 데 요긴한 발광 횃불 또는 미끼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이 포식자들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불빛을 껌벅이며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바닥에 착생하는 거주민은 대부분 온몸이 기이한 빛으로 반짝이며, 헤엄칠 수 있는 동물은 줄 같은 패턴의 명멸하는 작은 빛을 몸에 가지고 있다. 심해에 사는 새우와 갑오징어는 발광 구름을 분사하고 그 불기둥에 힘입어 적에게서 내빼기도 한다.

이곳 바다에서는 길고도 놀라운 세월 동안, 어리둥절할 정도로 다양한 생명체들에게 생명과 힘과 아름다움을 부여한 요소들이 분해되어 한데 뒤섞인다. 지금 물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칼슘 이온은 연체동물이 수년 전 보호용 갑옷을 만들려고 바다에서 잠시 빌려갔다가 죽으면서 다시 돌려준 것으로, 어쩌면 장차 산호초를 이루는 섬세한 구조물의 일부로 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체 구도 속에서 여러 부분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바다는 지상과 대기에서 단순한 물질을 받아들여 쟁여놓았다가 에너지를 얻은 봄 햇살이 잠자는 식물을 폭발적으로 깨어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그것들을 제공한다. 굶주린 동물 플랑크톤은 무수하게 증가한 식물을 먹고 성장ㆍ번식하며, 다른 한편 더 몸집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바다의 냉엄한 법칙이 요구할 때면 예외 없이 자신을 구성했던 물질들로 다시 분해된다. 더 이상 개별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물질의 영속성 안에서 외형을 달리하며 재출현할 따름이다.



잃어버린 숲: 커티스 복과 넬리 리 복에서 띄운 편지



카슨은 1956년 여름 자연보호협회(Nature Conservancy) 메인 지부를 조직하는 문제에 깊이 발을 들여놓으면서 보존이라는 주제에 한층 더 마음을 쓰게 되었다.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 판사 커티스 복과 우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개인 차원의 박애주의가 아름다운 장소를 구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몸소 확인했다. 복구 재단은 플로리다주 마운틴호에 설립해 이끌었던 것이다. 카슨은 같은 해 가을 어느 바람 부는 날 아침, 그녀 소유지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해안과 인근의 숲을 살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도로시 프리먼은 그곳을 ‘잃어버린 숲’이라 불렀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국 박물학자 H. M. 톰린슨의 수필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카슨은 적어도 정신적 목적에서만큼은 ‘잃어버린 숲’을 보호구역으로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모델이 생겼다고 느꼈다. 앞으로 책을 써서 그 땅을 사들일 충분한 돈을 버는 일만 남았다. 이 생각에 한껏 고무된 카슨은 복 부부에게 편지를 띄워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결국 구입 비용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마침내 이뤄졌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던 그 해안의 상당 부분이 이제 부스베이지방토지신탁의 노력으로 보호받기에 이르렀으니까.

커티스와 넬리 리께



(…) 저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훼손되지 않은 오아시스가 도처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장소는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지금의 ‘문명’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평화롭고 영적인 휴식을 안겨줄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그런 곳을 기어이 보호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두 분께서는 저를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몇 년 전 『우리를 둘러싼 바다』 덕에 난생처음 실제로 필요한 액수를 다소 상회하는 돈을 만지게 되었을 때, 저는 무엇보다 제가 오래도록 꿈꿔온 숙원 사업을 소박하게나마 성사시키는 데 그 일부가 쓰였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

‘잃어버린 숲’의 매력은 가파른 절벽에서 뻗어나간 기암괴석 해안과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해일파가 장엄하게 빚어낸 깊은 바위틈들의 어우러짐에 있습니다. 평화로운 만조조차 이곳에 사는 록위드, 따개비, 총알고둥 따위에 제가 다녀간 물의 흔적을 슬그머니 남겨놓지요. 해안선이 급격하게 꺾이는 곳이자 유독 도드라진 바위 턱이 있는 곳에서 뜻하지 않은 아담한 해변과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해안의 각도와 일련의 해류가 가세해 만으로 떠밀려온 나무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놓은 곳도 있어, 통나무와 나무 몸통과 환상적인 모양의 나무둥치들이 한데 뒤엉킨 흥미로운 광경도 보게 됩니다. 해안선은 1.5킬로미터쯤 펼쳐져 있습니다. 그 뒤로 무척이나 멋진 깊고 울창한 숲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대성당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

저는 이 숲에서 천금 같은 순간과 수없이 마주쳤습니다. 지난가을 이곳을 거니는 동안 무슨 일인가 해야 한다는 저항하기 힘든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연보호협회 메인 지부를 꾸리는 데 저는 그저 사소한 기여를 했을 따름입니다. 지난가을에만 해도 제 계획은 메인 지부에 도움을 요청해보자는 지극히 막연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자 자연보호협회도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제가 직접 나서서 제대로 된 일을 확실히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침묵의 봄』의 새로운 장



카슨은 『침묵의 봄』을 출간하고 나서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독자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통해 살충제의 피해와 손실 사례를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 새로운 정보를 곁들였다. 그녀는 생애 마지막 해에 한 연설들에서 “생명체를 상대로 무자비한 전쟁을 치르는 문명은 하나같이 자멸할 것이며, 문명이라 불릴 자격마저 잃게 될 것”이라는 도덕적 신념을 오롯이 드러냈다.

그녀는 1963년 1월, 미국가든클럽의 여성들에게 들려준 연설을 계기로 살충제 투쟁을 대단히 정치적인 국면으로 새로이 몰아갔다. 카슨은 이 자리에서 살충제 정책의 변화를 가로막는 경제적ㆍ정치적 세력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었으며, 제도 개선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장려하면서 개인에게 저마다 자신이 몸담은 지역사회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라고 촉구했다.

그녀는 살충제 업계 단체들이 일련의 선전을 펼쳐온 사실이며, 사업의 연구 기관이나 교육 기관과 ‘별다른 사심 없이’ 손잡은 것처럼 그릇된 정보를 흘리면서 과학과 산업의 진정한 관계를 호도한 사실도 상세히 다루었다. 카슨은 이 연설에서 정치적 근접전에 강한 강단 있고 신랄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대파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한 그녀는 현명하게도 미국가든클럽의 여성 활동가 같은 의식 있는 개인들을 겨냥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여러분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을 특별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여러분과는 성격이 판이한 세력, 즉 생명 따위는 도시 아랑곳하지 않거나 생명과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맺은 소중한 관계망을 일부러 파괴하려는 세력이 빈번하게 활개 치는 시대입니다. 독성 화학물질은 살충제(殺蟲劑)가 아니라 살생제(殺生劑)라 불려야 마땅할 정도로 지나치게 무차별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가장 열렬한 독성물질의 지지자조차 그 효과가 곤충ㆍ설치류ㆍ잡초 따위의 표적 동물에게만 제한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하긴 어려울 겁니다.

원치 않는 종을 방제하기 위한 합리적 정책을 마련하려면 지난하고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가야 할 겁니다. 『침묵의 봄』의 출간은 그 싸움의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싸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러분과 함께 그동안 거둔 소기의 성과를 평가하고, 우리 앞에 놓인 싸움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반대하는가? 또 무엇을 지지하는가? 만약 여러분이 제 책에 대한 친기업적 비평 글을 읽어본다면 제가 곤충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을 제어하는 모든 노력에 결사반대한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물론 저는 단언컨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가든클럽의 입장도 그럴 것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살생제 지지자들과 다른 것은 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지지하느냐 입니다.

만약 곤충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사적으로 살포용 비행기를 부르거나 분무식 살충제를 뿌려댄다면, 제가 보기에는 꽤나 저급하고 상스러운 과학적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종 무기를 제공해줄 연구를 단호히 밀고 나가지 못한다면 그 역시 매우 비과학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신종 무기가 이미 몇 가지 나와 있긴 합니다. 미래의 해충 방제법이 될 것으로 보이는 빼어나고 창의적인 예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신종 무기를 개발하는 한편, 지금 가진 무기들을 더욱 올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몇 가지 근거에 입각해서 살생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근거는 살생제의 비효율성입니다. DDT가 사용되기 전과 후에 작물이 입은 피해를 비교했더니, 작물 손실률이 무려 1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화학물질을 사용한다면 곤충들이 내성을 키우게 된다는 점에서도 화학 방제법이 비효율적입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살충제군에 내성을 지니게 된 곤충 종의 수는 DDT 이전 시대에 12종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근 150종으로 불어났습니다. 화학 방제는 위협적일뿐더러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능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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