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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법구경

송원 지음 | 함께북스
에세이 법구경



송원 지음

함께북스 / 2018년 2월 / 292쪽 / 15,000원





제1장 고제(苦諦)



사고팔고(四苦八苦)의 ‘팔고(八苦)’가 고제(苦諦)의 모든 것



生死非常空 能觀見爲慧 欲難一切苦 但當勤行道 (생사비상공 능관견위혜 욕난일체고 단당근행도)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니 / 지혜로서 잘 보고 행하도록 하라 /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거든 / 마땅히 힘써서 도를 행하라 - 法句 277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느 사전에는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정의 이외에 ‘사람이 사는 장소, 세상’이라는 공간적인 의미의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은 범어의 ‘마누샤’입니다. 마누샤는 생명체가 한 번의 윤회를 하는 사이를 나타내는 말로 사람과 사람의 사이라는 뜻입니다. ‘마누샤’도 한자로 번역하면 인간이라는 말과 함께 복수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살며, 다른 사람을 살려주기 위해서 존재할 때’라는 인간관(人間觀)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합니다.

필자는, 인간을 ‘인간(人間)과 세간(世間)’의 약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시간적인 면과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모여 있는 우주공간, 즉 ‘세간’이라는 공간적인 장소에 양발을 걸쳐 놓아야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은 모두 추이와 변화의 무상(無常)입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항상 고뇌가 뒤따르게 됩니다. ‘사는 것은 고통’인 것입니다. 즉, 사람은 시간적으로 볼 때 태어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는다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에서 이탈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생로병사의 시간적인 ‘사고’ 이외에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대외적인 관계, 즉 공간적인 접촉이 원인이 되어 고통을 맛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에서 얻게 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증오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헤어질 수 없다는 초조감에서 얻게 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의 삼고(三苦)가 그것입니다. 이것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포함하여 인간이라면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칠고(七苦)가 됩니다.

거기에 오취음고(五取陰苦)라고도 표현하는 오성온고(五盛蘊苦)를 8번째의 ‘고(苦)’로 들 수 있습니다. 오성온고란, 모든 존재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요소의 집성이라고 하는 오온(五蘊)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모든 것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말합니다. 경전에도 “논이 있으면 논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한다.”고 표현했듯이 풍부한 자는 건강이나 재산에 집착을 하기 때문에 ‘고(苦)’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필자는 오온성고를 물욕이 넘치고 풍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물질을 주제로 한 표현이 우리 현대인으로서는 가장 쉽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생(張生)도 수행(修行)



“늙는 것은 고통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생활고(生活苦)나 대인관계(對人關係) 또한 노고(老苦)의 원인이 됩니다. 병고(病苦)와 사고(死苦)와 함께 고독감이 중첩되는 노고는 노인을 심지어 자살로 몰아갑니다. 고려시대에 노인을 산이나 들에 내다 버리는 고려장이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인 효용과 능력만이 삶을 지배하고 정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대적 고려장의 경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학자가 경로(敬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공동사회에서 공리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무엇보다 가장 먼저 노인의 위치가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노인은 항상 자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유의 역할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지시설의 증설이나 경로사상을 배양하는 것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 깨닫는 노인인 ‘각로(覺老)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의 나이에 맞는 인생의 의미를 자각하는 각로의 노력이 노인문제 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왜냐하면 늙는 것의 의미를 아는 능력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이만큼의 밀도(密度)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115번 법구(法句)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若人壽百歲 不知大道義 不如生一日 學推佛法要 (약인수백세 부지대도의 불여생일일 학추불법요)

설사 사람이 백세를 산다 해도 / 대도(大道)의 참뜻을 모른다면 / 단 하루를 산다 해도 / 불법(佛法)을 바로 깨우치는 것이 낫다 - 法句 115

‘무상(無常)의 법과 만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즉 끝없는 진리의 탐구를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불법(佛法)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노력이 없다면, 백 년의 장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진리를 깨닫고 하루를 살다 가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뜻깊은 말입니까. 나는 인생은 정성(精誠)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꽃병이나 찻잔은 새것보다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깨지지 않도록, 녹이 슬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서 간직하여 기품이 배어 나오는 것이 되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몸에 밴 배움에 대한 정성과 수행의 노력이 늙은 육신을 지탱해 주는 생명력입니다.

탐내지 말라



莫貪莫好諍 亦莫嗜欲樂 思心不放逸 可以獲大安 (막탐막호쟁 역막기욕락 사심부방일 가이획대안)

탐내지 말고 다투기를 좋아하지 말라 / 또한 욕심을 내지 말고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 / 마음을 가다듬어 생각하고 방일(放逸)하지 않는다면 / 반드시 큰 평안을 얻을 수 있다 - 法句 27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어야 하는 반면에,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하고 증오와 원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증회고(怨憎會苦)’입니다. 이 법구(法句)는 우선 “탐내지 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사랑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그 사랑이 증오로 바뀌기 쉽고 원한을 부르기 쉽습니다. 사랑이라는 순조로운 물결이 원한과 증오의 역류로 바뀌는 순간에 “사랑이 깊으면 증오도 깊어진다.”는 역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실존적인 허무



天降七寶雨 人欲不知端 樂少苦多矣 賢者知覺理 (천강칠보우 인욕부지단 낙소고다의 현자지각리)

하늘이 설사 칠부의 비를 내려준다 해도 /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을 모른다 /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다 / 현자는 그 이치를 깨달아 알고 있다 - 法句 186

물(物)ㆍ심(心) 양면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고뇌와 초조에서 발생하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뜻의 ‘구부득고(求不得苦)’입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종착역이 없기 때문에 “하늘이 설사 칠보의 비를 내려준다고 해도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을 모른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5가지 욕망(慾望)입니다. 색욕(色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欲), 재물욕(財物慾)이 인간의 5욕(慾)입니다. 이 5욕으로 인하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짓밟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어서 재물이 하늘에서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해도 인간의 욕망의 창고는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욕망의 특성은 순간적인 쾌락 뒤에는 반드시 끝없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욕망의 만족감은 그것이 충족되었을 때뿐입니다. 다음 순간에는 새로운 욕망에 이끌려서 다시 불만의 페달을 밟게 되고 끝을 모르는 그 길을 계속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이웃이 자동차를 샀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손에 넣고 만족감에 잠겨 시운전을 하는 순간 자기를 추월해가는 외제차를 보고 다시 부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계문명은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발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욕망은 바닥이 없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발달하는 기계문명의 진보도 무서운 속도로 내달립니다. 여기에서 현대인을 고민하게 만드는 ‘구부득고(求不得苦)’가 발생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을 이용하기 위해서 발달된 기계문명은 무서운 질주로 인해 그 자체의 혼란도 낳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의 악착스러움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아귀상(餓鬼像)’입니다. 아귀상은 뼈와 가죽만인 메마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배는 임산부에 못지않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모습이고 더구나 물 한 방울도 저장되어 있지 않은 기아 상태를 나타냅니다. 목이 바늘구멍처럼 가는 것은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는 고통을 보여 줍니다. 손톱은 길게 자라서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는데 한 번 붙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는 악착스러움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손에 넣을 것 같으면서도 넣을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감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아귀의 생활방식은 이기적이고 다른 것들과의 연관성을 무시합니다. 허겁지겁 급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마치 아귀 같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주위의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탐에 정신없는 모습을 나타내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분명히 이성을 갖추었을 나이에 해당하는 성인들이 이런 아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만족할 줄 아는 지혜, 즉 지족(知足)을 갖추고 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런 병적인 현상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프랑클은 ‘실존적 허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경제ㆍ사회적으로 크게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람은 더욱 깊은 부분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만족할 줄 모르는 그런 마음은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이 허무감을 숨기기 위해 그들은 성적(性的) 해방이나 히피족과 같은 극단적 경향으로 치닫는다.”



제2장 집제(集諦)



‘집(集)’은 고통이 일어나는 모든 원인



火寞熱於? 捷莫疾於怒 網莫密於癡 愛流?乎河 (화막열어음 첩막질어노 망막밀어치 애류사호하)

음욕보다 뜨거운 불길이 없고 / 성내는 것보다 빠른 것은 없으며 / 어리석음보다 빽빽한 그물은 없고 / 애욕보다 빠른 물결은 없다 - 法句 251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사태나 양상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병이 들었으면 병상(病床)을 잘 조사하고 병의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생은 고통이다.’ 그 고통은 감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 즉 ‘고제(苦諦)’입니다.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의 진리를 ‘집제(集諦)’라고 합니다. ‘집(集)’은 사물이 모여 어떤 현상이 발생하기 위한 원인입니다.

이 원인은 크게 갈애(渴愛)와 무상(無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애(渴愛)란 우리들이 끊임없이 즐거움의 욕구를 나타내는 마음의 목마름을 표현한 현상입니다. 위의 법구(法句) 251번, 음욕(淫慾)으로 설정되어 있는 탐욕(貪慾)입니다. 이 법구에서는 “탐욕보다 강한 불길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메말라 있기 때문에 불길은 더욱 거세어질 뿐인 것입니다. 그 불길은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리게 됩니다.

갈애(渴愛)는 충족되지 않으면 증오로 변합니다. 증오는 다시 분노로 변해 폭발합니다. 법구에서는 “성내는 것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을 낸다는 것을 무엇을 움켜쥐려고 하는 악력(握力)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악력은 사물에 집착해서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 하는 집착력입니다. 분노에 의해 발생한 악력은 엄청납니다. 갈애는 또한 어리석음, 즉 망상으로도 변합니다. ‘망상’이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오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오해로 감싸버리게 됩니다. 그것을 그물로 비유해 “어리석음보다 빽빽한 그물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바짝 메마른 계곡에 갑자기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물결이 밀어닥치면 거친 강물이 되어 지성도 교양도 모두 휩쓸려 버리게 될 것입니다. 즉, “애욕보다 빠른 물결은 없다.”는 것입니다. 목마름은 불길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거친 물결도 부르는 것입니다.

악행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凡人爲惡 不能自覺 愚痴快意 令後鬱毒 (범인위악 불능자각 우치쾌의 영후울독)

사람이 악을 행하면 /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도 마음이 유쾌하다면 / 나중에 독이 쌓인다 - 法句 117

우리의 잘못된 생각 중의 하나는 악행으로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희생을 대가로 하여 얻은 행복은 이미 불행을 예고하고 얻은 행복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악행으로 얻은 순간적인 만족이나 탐욕의 결과물은 피해를 당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충격으로 인한 상처로 복수를 계획하는 계기가 되고 악행을 행한 가해자 또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악행은 또 다른 악행을 낳게 되고 따라서 상대를 짓밟기 위해 온갖 악행이 동원되게 되고 그 결과 서로의 평판과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며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부족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들의 욕심은 야만인과 같아서 가난한 사람의 것을 약탈하고 그들의 작은 행복마저도 짓밟고 자기 앞에 진수성찬을 두고서도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 사람들의 한 줌 빵에 눈독을 들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부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베풀 수 있는 진정한 부자인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선행을 베풀었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선을 베푼 것이 됩니다. 당신이 베푼 선행은 온전히 당신 것이 되어 아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하는 진정한 행복이 됩니다.

행복한 사람



어리석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들추면서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고 인정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냉철해질 것이며 날카로운 공격의 칼날을 들이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추궁하는 것은 어찌 보면 통쾌한 일이라고 생각될7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스스로 추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더욱 큰 만족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마음이 텅 비어있다면, 빈 창고를 지키는 것처럼 불필요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이 풍요롭고 여유가 있다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



어리석은 사람들은 세상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려 합니다. 현명한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자세로 자신이 행하여야 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실천하면서 삶을 이어갑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끊임없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사라질 때까지의 여러 가지 일과, 달이 동쪽으로 떠올라 다시 서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밤낮 없이 여러 가지 일들로 이어지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물의 힘에 의지하여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새로운 일들이 몰려옵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방향으로 세월을 흘려보내듯 사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평탄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무언가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행위의 연속인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일을 적절히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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