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림
이소영 지음 | 소울메이트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림
이소영 지음
소울메이트 / 2018년 1월 / 296쪽 / 16,000원
명화로 나를 찾다 - 나를 찾는 미술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그 남자의 자화상: 화가들은 무수히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그들의 자화상은 곧 그 시대의 ‘셀카’였다. 서양미술사 내에서 최초의 독립적인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다. 그 전의 화가들은 여러 명의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지만 뒤러는 달랐다. 아무도 없는 배경 속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을 그렸다. 심지어 1484년 13살에 처음으로 그린 연필 드로잉 자화상은 소년의 실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기까지 하다.
뒤러는 〈자화상〉을 27살 때인 1498년에 완성한다. 탐스럽고 구불구불한 머릿결을 가진 자화상 속 뒤러는 중세시대 기사의 복장과 비슷한 옷을 입고 지식인의 상징인 흰 장갑을 착용한 채 우리를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림 속에서 그는 성공한 예술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뒤러는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 최초의 북유럽 화가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을 북유럽에 전파한 최초의 화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1512년 신성 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언 1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는 변방이라고 불리던 독일의 화가였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창문 밖 풍경에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 넣었다. 이는 마치 이탈리아 피렌체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의 배경이 연상된다. 뒤러는 이 작품에서 작은 실내에 소소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아니라, 대지가 훤히 내다보이는 장소에 당당하게 서 있는 화가 자신을 표현했다.
1500년에 그린 〈자화상〉은 서양회화사에서 화가의 자화상 중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다. 그림 속에서 뒤러는 마치 예수처럼 보인다. 실제로 뒤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인간상을 표현하겠다는 의지로 자신을 예수의 이미지와 중첩되게 표현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뒤러의 눈동자는 너무 청명해 똑바로 바라보기가 머쓱해질 정도다. 이외에도 뒤러는 화가 최초로 전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현대가 아닌 500년도 전에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뒤러는 미술가로서는 처음으로 1498년 『묵시록』이라는 책으로 출판에도 도전했다.
뒤러의 나라 독일은 화가를 예술가로 인정하기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자인 ‘화공’으로 대했는데, 뒤러는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화가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그는 매번 그림을 그리고 이름과 제작년도를 적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1497년부터는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A라는 이니셜과 D라는 이니셜을 유니크하게 배합해 ‘A.D’라는 싸인을 만들어 사용했다. 뒤러는 자기애가 확실한 화가였던 것이다.
자기애는 자아 존중감을 바탕으로 형성되므로 자신감의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인지 뒤러의 자화상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화가로서 자신감이 많았는지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부러워진다. 그 누구보다 자신 스스로를 사랑했다는 것이 그림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만인에게 자신의 얼굴을 힘 있게 공개했던 그의 씩씩함을 자주 훔쳐오고 싶다.
보통 사람들의 축복, 셀카: 미술 치료에서는 자신감 회복인 자아감 향상을 위해 ‘자화상 그리기’ 활동을 한다. 자화상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내면을 그 어떤 그림보다 올곧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화상 대신 셀카를 통해 자신이 어떤 모습의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표정일 때 본인이 가장 평온해 보이는지 등을 들여다보는 치료도 진행한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수단의 속도가 빨라진 이 시대에 단순히 속도의 차이로 셀카보다 자화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내가 편협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셀카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연구결과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심리학 교수인 파멜라 러틀리지는 “셀카는 보통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UCLA의 심리학자인 안드레아 레타멘디는 “셀카는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분 상태를 표현하고 중요한 경험을 공유하도록 한다.”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셀카를 통해 자신감이 증대되고 중요한 경험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점도 셀카의 긍정적인 면 중 하나다.
우리는 셀카를 통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느낀다. 또한 스스로를 평가하고, 실제의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를 생각해보면 셀카를 찍는 행위는 분명 충분히 자신을 긍정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화가 뒤러에게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응원하기 위한 존재론적 증명이 자화상 아니었을까? 그에게 자화상은 곧 셀카였던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나를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뒤러처럼 공들여 자화상을 그리기 어렵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얼굴을 스스로 찍어볼 필요가 있다. 셀카를 여러 장 찍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골라보자. 셀카는 나를 바라볼 시간이 별로 없는 현실 속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내 마음이 보이나요?
추상의 뜻은 무엇일까?: 20세기 초 화가들은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여기며, 새로운 표현양식인 ‘추상’을 탄생시켰다. ‘추상(Abstract)’이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어떤 대상에서 근원적인 것을 추출한다는 어원에서 비롯된 단어다. 20세기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은 미술이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사실적인 묘사에서 나아가 새로운 미의식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에 어떠한 대상이 아닌 미술의 기본이 되는 점, 선, 면과 색의 조합으로 자신의 심상을 표현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추상화가 탄생했다.
알아볼 수 있는 무엇인가를 그리지 않더라도 조형요소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추상화를 보며 느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추상화를 보며 화가의 마음을 추측해 보는 것은 어떨까? 첫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미국의 화가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넘버 30〉이다. 폴록은 늘 캔버스 천을 나무틀에 매지 않고 넓은 바닥에 깔아놓은 다음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뜨리고, 뿌리고, 그림 위를 걸어 다니며 작업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캔버스를 눕혀놓고 그리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림 속을 이리저리 거닐며 여러 방향으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만든 기법인 움직이며 물감 칠하기를 ‘액션 페인팅’이라고 부른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면 그저 물감을 마구 뿌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시간과 움직임 그리고 리듬감이 들어 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보자. 제목은 ‘가을의 리듬’이다. 가을은 어떤 리듬을 가지고 있을까? 폴록은 이 그림을 그리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도 불안하고 복잡한 마음을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이며 해소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하…’ 하고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이 복잡다단함을 들켜버린 기분이 들어서가 아닐까?
이번에는 화가의 ‘들뜬 마음’을 그림으로 만나보자. 추상미술의 대가인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색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음악적으로 화폭에 구현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칸딘스키의 〈구성Ⅶ〉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어떤 악기소리를 듣고 그린 것일까? 음악이 빠른 부분과 느린 부분을 한번 찾아볼까?’
그의 그림은 그가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흥분한 마음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그가 쓴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차가운 빨강은 정열적인 요소를 지닌 첼로의 중간음과 낮은음의 음색을 떠올리게 하고, 진홍빛 빨강은 세게 두들기는 북에 비유할 수 있다. 밝은 청색은 플루트, 어두운 청색은 첼로, 더 짙은 청색은 콘트라베이스의 음향과 비슷하다.”
색채는 건반이고,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며,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칸딘스키의 작품들은 음악과 미술을 칼로 자르듯 나누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칸딘스키는 아놀드 쇤베르크와 같은 음악가와의 교류에도 열정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그린 후 그림의 제목을 곡의 제목처럼 ‘구성’, ‘즉흥’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음악앨범을 구성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고 시, 회화, 음악이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지휘자가 다양한 악기를 활용해 조화로운 화음을 구성하는 느낌이 든다.
명화로 사회를 본다 - 사회와 만나는 미술관
피노키오 증후군에 당당할 수 있는 그림
참된 눈을 가진 화가: 미술사 내에서도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참된 눈으로 묘사한 화가들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사회 현상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인식했던 프랑스 화가로 ‘사실주의’의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가 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파리라는 도시가 산업화되는 모습을 소상히 목격했다. 평생 동안 화가로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말년에는 뇌졸중과 실명으로 인해 빈곤하게 살다 떠난 화가였지만, 그는 일평생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등열차〉는 우리가 흔히 오노레 도미에의 대표작품으로 알고 있는 작품이다. 열차 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지나간 오늘과 다가올 내일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아이는 피곤한지 할머니 곁에 기대 스르르 잠이 든 모습이다. 갓난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에게도 오늘 하루는 치열하고 고단한 하루였을 것이다.
열차가 생기고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져도 개인의 고단한 삶은 급속하게 바뀌지 않았다. 좁고 꽉 찬 열차 안이지만 하루하루를 주어진 상황 안에서 열심히 살아갔던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붓과 물감을 만나 시대를 담아낸 액자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 예다. 웃으며 대화하는 삶의 충만한 기쁨이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한숨을 내쉬며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은 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동료애가 느껴진다.
〈일등열차〉는 앞서 살펴본 삼등열차와는 반대로 일등열차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도미에는 약한 서민들만 그린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층도 그렸다. 일등열차에 탄 4명의 사람은 모두 장갑을 끼고 있다. 마치 서로 간의 접촉을 피하려는 듯 보인다. 삼등열차 속의 사람들이 비록 좁고 열악한 상황이지만 서로 부대끼며 고단함을 함께 붙잡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등열차 속의 사람들은 냉소적이고 개인적으로 비춰진다.
도미에가 그린 두 공간 모두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는 민중화가로서, 민중들을 이상화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약하고 억울해하고 나아가 비겁한 인간의 모습까지 담았다. 그의 그림 안에서는 권력도 민중도 전혀 미화되지 않았다.
나도 초록 엄지를 가지고 싶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 요즘 TV나 SNS를 보면 ‘혼밥’, ‘혼술’이 대세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싱글족들 중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한다. 더불어 요즘은 ‘반려식물’도 인기다. 한 번 보고 마는 장미꽃 한 송이가 아니라, 곁에 두고 새싹이 돋고 줄기가 자라나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식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식물뿐만 아니라 자연과 가까워지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 같다. 혼자 자연을 산책한다거나, 식물을 가꾸고 유기농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간편하게 가꾸고 키울 수 있는 미니화분이나 텃밭 재배 세트 역시 인기다. 식물에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제는 식물에게도 반려동물 같이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흔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화가의 반려 식물: 어느 순간 내가 식물과 가까이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건 순전히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때문이다. 이미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모네는 죽기 전 30년 동안 지베르니에 개인 정원을 만들어 아이리스, 수선화, 양귀비, 장미, 모란, 수련 등 다양한 꽃을 키우고 가드닝하며 정원사로 살았다. 모네가 자신이 꾸민 연못에 있는 꽃들을 그린 ‘수련’ 시리즈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모네는 자연 속에 있는 꽃보다 사람들이 키우고 가꾼 정원 속의 꽃을 늘 더 좋아했다. 심지어 그는 미학서적보다 가드닝 책이나 원예 카탈로그를 훨씬 많이 볼 정도였다. 1895년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 마을에 있는 강의 물길을 끌어와 물이 흐르고 빠지게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물과 꽃을 사랑한다. 그래서 연못에 물을 채워 식물을 꾸미고 싶었다.”
모네는 특히 파랑색과 보라색 계통의 꽃을 좋아했다. 〈지베르니의 아이리스 가든〉은 아이리스를 풍성하게 심어놓은 집 앞의 화단을 그린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모네는 이미 이 그림을 그릴 때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1919년에는 시력을 거의 잃을 정도가 되었는데, 1920년에 모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주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자연광에만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923년에 3번째 수술을 하지만 사물이 모두 청색으로 보이는 청시증과, 누렇게 보이는 황시증을 번갈아 가며 갖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 어떤 말보다 자기가 가꾼 정원을 보는 것이 낫다고 말하며, 자신이 화가가 된 것은 순전히 꽃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모네. 모네는 네덜란드에 머무는 2주라는 짧은 기간에도 원예기술을 배울 만큼 식물 가꾸기에 애정을 가졌다. 꽃의 종류별로 화단을 만들고 색별로 분류해 꽃으로 집을 둘러쌌다. 모네는 평생을 ‘반려 식물’들과 함께한 것이다.
초록 엄지를 가지고 싶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패션 치료, 미술 치료, 웃음 치료, 음악 치료 등 다양한 분야들이 우리 마음의 구김이 없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원예 치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환자가 정원에서 산책을 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식물을 활용한 치료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고, 심신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모네는 식물이 주는 이런 이점들을 잘 이해했기에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쏟았는지도 모른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회색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일부인 식물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자연을 닮아가는 일 중 가장 쉬운 일이다. 우리의 언어로는 식물과 대화할 수 없지만,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고 흙을 걸러주면서 대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잎이 죽어가다가도 사람이 돌봐주고 소통을 하면 이겨내고 다시 살아난다.
화분 몇 개를 다시 샀다. 다시 식물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식물이 주는 녹색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맥박을 느리게 해 안정감을 준다. 모네가 자신의 정원의 식물들을 애정으로 평생 키워낸 것만큼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식물들을 키우며 그들이 꽃 피우길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식물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은 타인과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고흐와 나의 산책 찬가
예술가의 산책: 예술가들도 산책을 좋아했다. 오스트리아의 국민화가 구스타프 클림프(Gustav Klimt)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쉰부른 궁전 근처에서 티볼리까지 산책을 하는 것을 30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의식처럼 진행했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역시 아침마다 먼 길을 돌아 걸어오는 산책을 즐겼다. 로댕의 전기를 쓴 릴케는 산책이 로댕의 ‘관조의 힘’을 길러주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