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김정호 지음 | 생각의길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김정호 지음
생각의길 / 2017년 5월 / 396쪽 / 17,000원
1부 고향故鄕 - 실사구시 여민동락實事求是 與民同樂
청소하는 대통령
대통령은 매일 봉화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과 봉하 들판을 둘러보았다. 후미진 곳에 버려진 생활쓰레기며 농로주변에 농사용 쓰레기가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자전거를 세웠다. 방문객들에게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하다며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는 방안에 골몰했다. 대통령에게는 소박하면서도 참 절실한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꿀까? 봉화산 숲 가꾸기는 어떻게 하지? 화포천은 또 어떻게 되살릴까? 대통령은 직접 장화를 신고 청소부로 나섰다. 나도 귀향 초기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하는 일로 보냈다. 방문객들이 늘어나자 마을에 있는 몇 안 되는 쓰레기통은 금방 차고 넘쳤다. 떨어진 담배꽁초는 왜 그리 많은지 주영훈 본부장의 일과는 아침 일찍 주차장 주변의 청소부터 시작했다.
대통령이 자전거 산책하며 발견하는 쓰레기더미들은 영락없이 내 차지였다. 마을 주변에서 시작된 대통령의 동선은 날이 갈수록 봉화산, 화포천으로 점점 넓고 길어졌다. 쓰레기 규모가 달라졌고 할 일도 나날이 늘어갔다. 대통령이 워낙 열심이다 보니 김해시장을 비롯해서 김해시 자원봉사자들도 화포천 대청소에 나서게 되었다. 공무원들의 속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통령과 함께하는 청소행진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국민들은 소탈하게 시민과 함께하는 청소하는 대통령. 장화 신은 대통령에 환호했다.
“화포천도 지금은 좀 많이 오염됐어요. 그래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오염원을 차단하는 운동도 하려고 합니다. 뭐 기왕에 들어선 공장을 들어낼 수야 있겠습니까? 구정물 독성이 있는 물질, 폐기물들을 무단방류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동참하게 해야지요. 앞으로 아마 10년을 해도 다 감당하기 어려운 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만, 한번 그렇게 해서 이 화포천, 마을, 앞산을 복원시켜 나가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2008년 8월 대통령 봉하 방문객 인사 중에서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쓰레기가 많아지자 대통령께 말씀드려 1톤 트럭을 한 대 샀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물론이고 마땅한 교통수단 없이 먼 길을 걸어 다녀야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요긴한 작업 차량이 되었다. 지금은 세월도 제법 흘렀고, 워낙 많은 작업을 감당해 온 탓에 많이 낡았지만 아직도 영농법인의 귀한 일꾼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에게는 대통령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유품이다.
대통령은 평소에도 청소와 정리정돈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썼다. 비서들에게도 매월 정기적으로 마을 청소를 지시했다. 마을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마을 청소에 앞장을 서니 게으름이 통할 리 없었다. 봉하 들판과 마을은 서서히 아름다운 농촌풍경을 되찾아갔다. 지금이야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수질오염이 아주 심각했다. 비가 많이 오면 본산공단 쪽에서 봉하 들판으로 빗물이 흘러들곤 하는데, 누군가 공장폐수를 몰래 버리는지 기름띠가 번지고 거품이 일었다. 날씨가 풀리고 기온이 올라가자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친환경 농사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이 문제를 개선해야 했다.
대통령의 요청으로 공단입주업체 대표들과 김해시 공무원,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공장 오ㆍ폐수 방지대책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은 나에게 그동안 증거로 찍어둔 공장폐수 무단방류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라고 했다. 대통령은 공단폐수가 마을환경과 수질오염의 주범임을 강조하고 수질개선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역설했다. 이날 김해시 환경보호과 과장은 수질오염의 주범이 비점오염원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두둔하다가 대통령의 돌직구에 혼이 났다. “고의로 몰래 방류하는 공장폐수와 비가 왔을 때 공장바닥이나 도로에 떨어진 기름찌꺼기 등 비점오염원을 구분도 못할 줄 압니까?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할 공무원이 되레 공장폐수를 무단방류하는 악덕 기업을 감싸주어서야 되겠습니까?”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입주업체 대표들에게 자율적인 협조를 부탁하고, 김해시 환경보호과로부터도 철저한 감시와 단속을 약속받았다. 대통령은 급한 대로 농어촌공사에 요청해 수로에 쌓인 썩은 슬러지를 퍼내도록 요청했다. 이때 퍼낸 슬러지가 15톤 트럭으로 무려 100대분이 넘었다 최종 해결사는 피해 당사자인 지역주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나에게 인근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화포천 환경지킴이를 만들자고 했다. 대통령은 스스로 환경파수꾼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고 일부러 마을 들판과 수로를 둘러보았다. 문제가 발견되면 경호실 수행과장을 통해 어김없이 나를 호출했다. 대개 새벽 6시 10분 전후였다. 나는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감시단을 불러 모았다. 승구봉 감시단장, 진영지기, 반디 등은 약방의 감초였다. 이들과 함께 오염원을 끝까지 추적해서 폐수를 흘려보낸 업체를 찾아냈다.
처음에 겉으로 드러난 우수관만 보아서는 폐수가 어디서 흘러드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도로 아래 지하 3미터에 설치되어 있는 하수관로의 맨홀 뚜껑을 쇠지렛대로 하나씩 열고 내려갔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물신을 신고 어두컴컴한 하수관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랜턴 불빛으로 폐수를 방류하는 오염원을 추적했다. 마침내 지상의 우수관로를 따라 무단방류업체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 적발을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단속권한이 없었다. 김해시 환경보호과에 신고를 하고 단속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동안 방류현장을 감추려는 공장 측과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런 일이 되풀이되었다. 일시적인 감시활동은 한계가 뻔했다.
나는 김해시 하수과에 정식으로 공단 내 모든 빗물배수관로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사 람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지하 하수관에는 카메라를 부착한 로봇을 넣어 샅샅이 살폈다. 봉하마을 쪽으로 빗물이 흘러드는 130여 업체 중에서 무려 27개 업체가 적발되었다. 이들은 모두 시설개선 명령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공단입주업체들 사이에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화포천 쓰레기를 치우고, 불법어로와 밀렵을 감시하는 환경 지킴이 활동을 한다더라.” “폐수 방류하다 봉하 사람들한테 걸리믄 뼈도 못 추린다 카더라.” 그동안 무심코 버렸던 생활쓰레기며 농사용 쓰레기도 줄었다. 처리 비용을 조금 아끼려고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던 공장들도 거의 없어졌다. 물을 오염시키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더러워진 물을 다시 맑게 하는 데는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대통령의 청소는 사소한 실천이었지만 그 파급 효과는 컸다. 그동안 내가 맡은 악역과 내게 쏟아진 비난은 감수해야 할 영광스러운 상처였다. 반면에 마을과 화포천이 몰라보게 깨끗해지고 주변도 아름다워졌다. 생명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부 농부農夫 - 노공이산 호시우행盧公移山 虎視愚行
오리방, “그래, 오리농법이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을 숲을 가꾸고 농촌공동체를 복원해 살기 좋은 농촌,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열세 명의 봉하마을 주민들이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생태농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농민들에게 친환경 농업을 강권하다시피 한 이유는 친환경 고품질 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수입쌀이 완전 개방되는 2014년 이후엔 벼농사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나아가 친환경 농업으로 자연 생태계가 살아나고 아름다운 화포천 습지와 봉화산 숲까지 가꾸게 되면 그 자체로 생태체험의 장이자 관광자원이 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마을공동체도 복원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 농민에게 차별적 농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쌀 시장이 개방되는 2014년 이후가 되면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미국 쌀에 맞서 한국 쌀은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이냐, 지금 방식으론 대책이 없습니다. 쌀값을 더 받느냐, 덜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더 이상 우리 쌀을 팔 데가 없어집니다. 우리 쌀을 살 이유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2008년 10월 대통령 방문객 인사말 중에서
봉하에 친환경 농사를 도입하는 단계에선 어떤 농법으로 할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누구도 친환경 벼농사를 해본 적이 없었고, 친환경 벼농사의 원리와 방법, 기술이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재배방법에 따라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쌀겨농법, 참게농법 등이 있었다. 액비나 영양분 등 투입하는 농자재에 따라 자연농업, BM농법, EM미생물농법, 키토산농법, 목초액농법이 있었다. 심지어 아무것도 투입하지 않는 무경운 ‘태평농법’도 있었다. 대통령은 오리농법을 하자고 했다. 예전부터 봉하 들판은 야생오리들이 많이 날아들던 곳이고 그래서 지명을 오리방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지역적 특성에 맞고 방문객들에게 친환경 농사를 상징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오리농법이라는 주장이었다.
비서들 일부는 오리농법이 품이 많이 들고 관리도 어렵다며 우렁이농법을 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우렁이는 논에 넣고 난 뒤 물꼬만 신경 쓰면 되었다. 이미 6년간 오리농법을 해온 진영읍 방동마을에서도 오리농법이 너무 힘들어서 올해부터 우렁이농법으로 바꾸려 한다는 사례를 들며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며 오리농법의 재고를 요청했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론은 “힘이 들고 비용이 더 들어도 오리농법!”이었다.
오리나 우렁이농법이 제초 효과는 비슷하지만 병충해 방제, 시비 효과 면에서는 오리농법이 좀 더 장점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친환경 벼농사를 알리는 데도 오리농법이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성이 크고, 어린이들 체험학습을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보았다. 대통령은 오랫동안 친환경 오리농법을 추진해온 충남 홍성군 주형로 선생을 초청해서 유기농업과 오리농법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들었다. 그 후 나는 주민들과 함께 홍성군 문당리 오리농법 현장견학도 하고 친환경 벼농사의 원리와 방법도 공부를 했다. 2008년 3월 말이었다.
친환경 생태농사 준비 한 달여, 대통령과 주민들이 처음으로 대통령 전용버스를 함께 탔다. 이 버스는 퇴임하면서 여사님 승용차를 사지 않는 대신에 구입한 차량이었다. 이미 오리농법을 하고 있었던 진영읍내 방동마을로 현장견학을 나섰다. 주형로 선생은 오리막사와 오리그물에 대해 설명했다. 외부로부터 천적들의 침입을 막고 또 일꾼오리들이 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오리막사와 오리그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아침마다 일꾼오리를 풀어주고 저녁에는 막사로 거둬들이는 수고가 필수였다. 설명을 듣고 있던 이기우 씨가 한마디 툭 던졌다. “오리농법이 그리 까다로워가 다리가 불편한 내는 몬하긋따.” 대통령이 뒤를 돌아보며 이기우 씨의 말을 받았다. “그라믄 자네 논은 내가 하지. 아침에 오리를 풀어주고 저녁에 가두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내가 운동 삼아 해주꾸마.” 논두렁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친환경 농업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니 마을 주민들도 마지못해 오리농법을 조금 해보기로 했다. 5월초 마을 주민 열세 명으로 ‘봉하마을 친환경농업생산단지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황봉호 씨, 나는 간사를 맡았다. 마을 앞 들판 중에서 화학농약을 치는 논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지역을 오리농법 단지로 선정했다. 2만 4천 600평, 33개 구역의 논이었다.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배할 논과 농법을 결정하는 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막상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하려니 장애물이 나타났다. 농업용수의 수질이 문제였다. 친환경 농사를 하려면 흙과 물이 중금속이나 화학농약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토양이 중금속에 오염된 것이 아니라면 친환경 농사를 당장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학 농약에 오염된 농업용수로는 친환경 농업 자체가 불가능했다. 봉하마을에는 농업용 저수지가 없었다. 김해 진영에 본산공단이 조성되면서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화포천 물을 농업용수로 끌어다 쓰고 있었다. 본산공단에서 봉하 들판으로 흘러드는 뱀산 쪽 남제방 수로에는 건너편 금봉마을의 축산폐수와 공단에서 몰래 흘려보내는 공장폐수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악취가 나는 슬러지가 수로 바닥에 잔뜩 쌓여 있었다. 대통령이 나섰다. 급하게 농어촌공사에 오염된 슬러지를 준설해달라고 요청했다. 김해시 환경보호과에는 공장과 축사에서 몰래 버리는 폐수를 강력히 단속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워달라고 했다. 들판 전체가 화학농약을 써서 농사를 지었을 때는 중앙수로에서 용수로 퍼 쓰든 배수를 하든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친환경 오리농법에서는 화학농약에 오염된 중앙수로 물은 농업폐수일 뿐이었다. 오리농법 시범구역에서 거리로는 꽤 떨어져 있지만 물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오염된 농업용수를 같이 쓰는 셈이었다. 대통령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업용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데, 올해 친환경 농사에 당장 필요한 농업용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친환경 벼농사는 1년 뒤에나 가능한데, 그렇다고 또 그때까지 농업용수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김해시의 농업용 관정사업비는 이미 고갈되고 없었다.
대통령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자기희생을 결단했다. “기왕지사 친환경 농사를 짓기로 한 것. 우째 1년을 떠내려 보낼끼고? 우선 강금원 회장이 출자한 ㈜봉하의 자금으로 농업용 지하수를 파자.” 한국지하수개발협회의 도움으로 지하수를 개발하는 공사를 서둘러 착수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세 개의 지하수 관정에서 하루 1천여 톤의 깨끗한 농업용수를 확보했다. 당장은 지하수 세 곳을 파서 농업용수를 해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농어촌공사가 낙동강 물을 봉하 들판까지 끌어오는 농업용수 공급 사업을 요청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친환경 벼농사를 위한 장애물을 넘었다.
4월이 되자 마을 주민들은 못자리를 준비했다. 못자리 할 곳만 로터리를 치고 논두렁을 조성한 뒤 물을 대 주었다. 다시 물로터리 작업과 써레질을 해서 못자리 바닥을 고르게 만들었다. 어린이날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주차장 모퉁이에서 볍씨 파종을 시작했다. 파종부터 못자리 설치까지는 품앗이였다. 파종이 완료된 모판은 두꺼운 스티로폼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왕초보 농군인 나는 일의 순서와 요령을 파악하면서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마을주민이 빠져 빈 공정이 생기면 그 자리에 대신 투입되었다. 초보농군의 벼농사 견습기는 하루하루 그렇게 이어졌다. 3일 뒤, 어버이날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새벽부터 이기우 씨네 못자리 설치를 위해 마을주민들의 품앗이가 한창이었다.
새참이 나올 무렵 김호문 씨가 나에게 물었다. “대통령은 안 나오시냐?” “얘기를 안 해서 아마 모르실 겁니다.” “새참 드시러 오시라고 전화 한번 해봐라.” 경호 데스크에 전화를 했다. 대통령은 벌써 자전거 타고 화포천을 거쳐 들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저만치 육묘장 쪽에서 자전거 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나타나자 모상자를 들어 옮기던 일꾼들의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다들 신이 났다. 내가 슬그머니 대통령께 여쭈었다. “모판 좀 옮겨보시렵니까?” “대통령 때 같았으면 하는데, 퇴임 대통령은 그런 거 안 한다.” 능청스런 대통령의 대꾸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말은 안 한다고 했지만 이내 대통령은 모판 옮기는 일을 거들었다. 얼마 뒤 막걸리에 두부김치, 김밥에 어묵탕을 곁들인 새참이 도착했다. 막걸리 잔을 채우고 대통령이 건배사를 했다. “봉하마을 친환경 오리농법을 위하여!” 대통령과 마을 주민은 같이 땀을 흘리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나도 난생처음으로 논에 발을 담그고 볍씨 싹 띄우기와 파종하는 요령을 배우고 익혔다. 마을 주민들과 고된 노동을 함께하면서 그들의 마음도 한 꺼풀씩 알게 되었다 섬 올챙이가 농부로 탈피하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