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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 더 시티

박정배 지음 | 깊은나무



푸드 인 더 시티



박정배 지음

깊은나무 / 2016년 9월 / 352쪽 / 17,000원





뜨끈한 고깃국물 “추위 물렀거라” - 서울 설렁탕



설렁탕은 서울 음식이다. 외식이 본격화한 19세기 말부터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 자). 서울 설렁탕이 처음 규모를 갖춘 곳은 남대문 밖 잠배(현 중림동)였다.

20세기 초까지 남대문 안쪽에는 한성에 물건을 공급하는 선혜청 창내장(현 남대문시장)이 있었고, 남대문 바깥쪽엔 한강을 따라 올라온 생선을 주로 파는 칠패시장이 있었다. 새벽에 장이 열리는 칠패시장 때문에 어물전 상인과 인부들은 새벽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필요했다. 칠패시장 주변 잠배 설렁탕은 필연이 만든 산물이었다.

지금 중림동에는 ‘중림장 설렁탕’이 있다. 1970년대 영업을 시작한 집이지만 설렁탕 맛에서 서울을 대표할 만하다. 적당히 익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김치와 깍두기가 설렁탕에 앞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고기 냄새 살짝 나는 따스하고 깊이 있는 국물은 설렁탕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수육도 설렁탕에 뒤지지 않는다. 차돌부위를 두껍게 썰어낸 소위 ‘차돌양지’는 고기 씹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잠배에 있던 설렁탕 식당들은 1900년 경인철도 남대문정거장이 세워지면서 급속히 몰락한 칠패시장과 운명을 같이한다. 하지만 6ㆍ25전쟁 이전까지 잠배골에선 ‘잠배설렁탕’이란 집이 유명했다. 서울시청 건너편 중앙일보사 주변에 있는 ‘잼배옥’은 33년 창업한 뒤 몇 번의 이사를 거쳐 74년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아 영업하고 있다. 이름이나 주인 증언으로 봐서는 잠배골 설렁탕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설렁탕보다 수육이 더 유명하고 맛있다.

현 종로타워 뒤켠인 이문(里門)은 당시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검문소가 있었고, 나무시장이 주변에 있었다. 이문 안쪽에는 ‘이문’이란 이름을 단 식당이 많았다. 구한말 세워졌다 사라진 ‘이문옥’과 20세기 초반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문식당’, 1920년대에 기록이 남아 있는 ‘이문설농탕’은 모두 설렁탕을 팔던 식당이다. 지금 ‘이문설농탕’은 60년에 현재 주인의 어머니가 양씨 성을 가진 주인에게서 인수한 것이다. ‘이문설농탕’은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홍종환 씨가 운영한 ‘이문식당’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전 주인 양씨가 ‘이문설농탕’을 홍씨에게서 인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신촌 설렁탕은 1960년대 이후 형성됐다. 70년대 택시기사가 많이 이용했지만, 현재 신촌설렁탕이란 이름은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신선설농탕’ 2호점이 세련된 설렁탕을 선보이며 강자로 등극했다. 마포에선 ‘마포양지설렁탕’과 ‘마포옥’, 그리고 여의도에선 ‘양지설렁탕’이 유명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양지를 기반으로 한 고기맛과 단맛이 동시에 나는 국물이 일품이다. 굵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점도 마포 설렁탕 식당의 공통된 특징이다.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넣어 끓여 먹는 설렁탕은 한정된 고기를 많이 나눠먹기 가장 좋은 요리법이다. 겨울은 설렁탕의 계절이다.



군사도시의 부대볶음 우연이 아니다 - 동두천의 오래된 맛



경기 동두천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군사도시다. 의정부와 동두천에는 특히 미군이 많다. 동두천시의 43%가 미군기지다.

동두천 음식에는 전쟁 상흔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대찌개집은 의정부 ‘오뎅식당’이다. 1960년대 초반 장사를 시작한 ‘오뎅식당’은 미군부대를 출입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져온 햄과 소시지, 스팸, 쇠고기를 볶아서 팔았다. 부대찌개는 이후 만들어졌다. 부대찌개 조상에 해당하는 ‘부대’ 고기로 만든 부대볶음은 ‘오뎅식당’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부대볶음은 동두천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동두천에 부대찌개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실비집’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고 ‘호수식당’이 그 뒤를 이었다. 인기 많은 ‘호수식당’ 입구에는 대기자를 위한 의자들이 놓여 있을 정도다. 부대볶음은 커다란 철판에 소시지와 햄, 양파와 양념장을 넣어 볶아 먹는 음식이다. 소시지와 햄이 상당히 많고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동시에 나는 것이 특징이다. 동두천 부대찌개는 의정부 부대찌개와는 닮은 점이 많지만, 당면과 쑥갓이 들어가는 것은 의정부 부대찌개와 다르다.

경기도와 평안도 실향민들은 의정부와 동두천에 많이 정착했다. 고향과 가깝고 미군부대가 있어 안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군부대 주변에는 돈이 돌고 먹을거리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실향민들은 장사를 하거나 식당을 운영했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1950년대 초반 세운 ‘평남면옥’도 그런 경우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평남면옥’ 맛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서울의 평양냉면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의정부 ‘평양면옥’과 더불어 경기 북부 냉면 문화를 이끌어왔다. ‘평남면옥’의 육수는 동치미 국물과 쇠고기 육수를 섞어 만들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남도는 일제강점기 ‘냉면국’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냉면이 성행하던 곳이다.

평안도에서 냉면은 ‘겨울 일상 음식’이었다. 몇 집 걸러 한 집마다 냉면을 뽑는 틀도 있었다. 냉면 사리로는 대개 메밀의 겉껍질을 벗겨낸 하얀 국수를 사용했다. 겉껍질이 들어간, 거뭇하고 거친 국수는 ‘막국수’라 불렀다. 면발은 단순했지만 육수는 다양했다. 겨울에 주로 먹기에 동치미 국물이 대세를 이뤘지만, 동치미 국물에 쇠고기 육수를 섞은 동치미 쇠고기 육수도 많이 먹었다. 고급 식당이나 부잣집에선 쇠고기 육수만 사용했고, 평안도 명물 ‘평북돈(平北豚)’을 사용한 돼지고기 육수나 꿩, 닭고기 육수도 냉면 국물로 많이 먹었다.

‘평남면옥’은 동치미 국물과 쇠고기 육수를 섞어 사용한다. 동치미 국물의 톡 쏘는 청량감과 채소 특유의 단맛이 쇠고기 육수의 묵직함과 어울려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은 면발은 매끄럽고 부드럽다. 기존 평양냉면 면발과 조금 다른 식감이다.

‘선주후면’이란 말처럼 냉면집에서는 으레 냉면집 특유의 안주에 술 한잔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서울 남대문 ‘부원면옥’의 빈대떡과 닭무침, ‘을지면옥’의 돼지편육, 장충동 ‘평양면옥’의 커다란 만두가 유명한데, ‘평남면옥’에서는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채소와 섞고 겨자소스를 뿌린 무침이 술안주로 제격이다.



시원 달콤 매콤, 여름을 날린다 - 물회 왕국 강원 속초



일평균 기온이 20도가 넘어가면 찬 음식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뭍에 사는 이에게 여름 별식으론 보통 냉면과 막국수가 꼽히지만, 해안가에선 물회 인기가 더 높다. 회를 좋아하는 이에겐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원한 국물에 숭덩숭덩 회를 썰어 넣은 후 후루룩 마시듯 먹는 물회는 한국식 음식 문화의 또 다른 변형이다. 활어와 장을 푼 국물을 함께 먹는 문화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음식체계이기 때문이다.

물회는 원래 선원들 음식이었다. 선원들은 배를 탈 때 된장이나 고추장을 준비해간다. 고된 노동 뒤 꿀맛 같은 식사시간, 그들은 상처가 나 상품가치가 떨어진 생선들을 모아 회를 떠 찬합에 넣고 물에 푼 된장이나 고추장을 섞어 먹었다.

원양어선 선원들은 상어에게 뜯어 먹혀 상품 가치가 없어진 다랑어를 국수처럼 가늘게 썰어 시원한 얼음물에 초고추장을 푼 ‘참치 즉석 (물)회’를 먹기도 했다.

선원들이 먹던 물회가 처음으로 상업화한 것은 1960년대 초반 경북 포항에서였다. 포항을 비롯해 동해안에선 고추장이나 초장을 물에 타서 먹는 물회 문화가 일반화했다. 하지만 남해안과 제주에선 된장에 회를 넣는 문화가 더 보편적이다. 강원 속초는 포항과 더불어 물회 문화가 성행한 도시다.

작은 식당으로 시작해 두 번이나 이사하면서 몸집을 불린 ‘봉포머구리물회’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물횟집이다. 밖에서 기다리다 안에 들어가도 시장 같은 왁자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곳의 인기 비결은 당연히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의 해산물을 물회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육수는 들깨를 갈아 넣어 걸쭉한 맛이 난다. 단맛과 매운맛, 신맛이 어우러진 투박한 질감의 맛이다. 각종 채소와 함께 물회 재료로는 광어, 방어, 가자미, 해삼 멍게, 개불, 오징어 등을 쓴다.

‘봉포머구리물회’ 앞에 자리 잡은 ‘청초수물회’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봉포머구리물회’가 재래시장에서 먹는 분위기라면 이곳은 실내 장식이나 음식이 정돈돼 있다. 물회 육수가 셔벗처럼 얼려 나오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들깨가 들어가지 않아 육수가 상대적으로 가볍다. 양이 적고 가격도 비싼 편이지만 상당히 안정된 맛이다.

‘청초수물회’ 옆에 있는 ‘속초어장물회’는 수족관을 운영하고 있다. 물회에 사용하는 재료들을 바로 잡아 요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재료를 각각 따로 제공하여 자신이 먹고 싶은 물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횟집이라면 어디나 물회를 판다. 속초 동명항은 횟집이 길게 늘어선 횟집촌이다. 어부가 잡아온 해산물을 파는 ‘이모횟집’은 싱싱한 해산물로 이름이 높다. 싱싱한 해산물이 맛의 관건인 물회가 메뉴에서 빠질 리 없다.

육수는 단맛이 강하지만 부담스럽진 않다. 키위 같은 과일로 단맛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키위에는 생선이나 육류를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있다. 방금 잡은 활어도 키위 앞에선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들깨를 넣지 않아 국물이 가볍고 경쾌하다. 다양한 어물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뜨거워서 더 시원한 최고 보양식 - 대전과 충남 금산의 삼계탕



닭과 인삼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것을 뜨겁게 끓여 내는 삼계탕을 먹으면 몸이 개운해진다. 삼계탕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논쟁거리가 삼계탕의 주인, 즉 핵심 재료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삼이 귀했을 때는 닭을 중심으로 해 계삼탕이라 불렀고 인삼이 대중화하면서 삼계탕으로 이름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1894년 이제마가 쓴 사상의학서 ‘동의수세보원’에는 삼계고가 설사병 치료제로 등장한다. 1921년 9월 11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요리점 ‘해동관’ 개점 광고 말미에 ‘계삼탕-보원제로 극상품’이란 문구가 나온다. 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한 계삼탕, 즉 삼계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23년 일본인이 작성한 ‘중추원 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이 자료에는 ‘여름 3개월간 매일 삼계탕, 즉 암탉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적고 있다. 그 당시 삼계탕은 닭고기를 먹는 게 아닌, 국물을 우려서 먹는 약의 일종이었다.

1956년 12월 28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지금 먹는 삼계탕과 거의 흡사한 계삼탕 조리법이 등장한다.

‘계삼탕 - 삼복더위에는 계삼탕을 먹으면 원기가 있고 또 연중에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여 사람들은 많이들 먹는다. 계삼탕이란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배를 따서 창자를 낸 뒤 그 속에 인삼과 찹쌀 한 홉, 대추 4, 5개를 넣어서 푹 고아서 그 국물을 먹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인삼가루가 아닌 생삼인 수삼이 정부 규제 완화와 냉장시설 발달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자 상인들은 계삼탕보다 인삼에 방점을 둔 삼계탕이란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한다. 육류 소비가 급증하는 1975년 이후 닭 한 마리와 인삼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은 여름 최고 보양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금산인삼 유통의 중심지인 충남 금산군 금산수삼시장은 여름이면 활력이 넘친다. 인삼 최대 수요 철이 이맘때이기 때문이다. 인삼은 750g을 한 채로 부른다. 삼계탕용 인삼은 인삼 중에서도 가장 작아 한 채에 100~120다마(개)다. 크기가 작다고 연수가 적은 건 아니다.

금산인삼은 대개 4년이 돼야 출하된다. 조선시대부터 인삼으로 유명했던 금산에 삼계탕집이 생긴 건 1990년대 중반이다. 금산수삼시장 건너편 상가 2층에 있는 ‘원조삼계탕 본점’은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인삼 본고장답게 인삼 한 뿌리가 들어 있고 인삼 가루도 뿌린 삼계탕을 판다. 콩가루도 더해져 국물 맛이 고소하다.

하지만 충청도 삼계탕 문화의 중심지는 대전이다. 금산과 같은 생활권에 있다. 옛날 역전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대전역 부근에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삼계탕 전문점 ‘금성삼계탕’이 있다. ‘금성삼계탕’이 여느 지역의 삼계탕과 가장 다른 점은 쌀을 닭 배 안에 넣지 않고 뚝배기에 끓여 낸다는 것이다. 국물에 당근을 넣는 것도 색다르다.



쫄깃한 식감… 고기 다루는 솜씨도 최고 - 전주의 돼지고기



맛의 다양성만 놓고 보면 전주는 서울과 견줄 만하다.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딴 지명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전주는 오랫동안 전라도의 행정, 문화 중심지였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주를 “천 마을 만 부락에서 삶에 이용할 물건이 다 갖춰졌고, 관아가 있는 곳에는 민가가 빽빽하고 물화가 쌓여 있어 한양과 다름없는 큰 도회지”라고 했다.

남도의 풍부한 물산이 모여든 덕에 다양한 음식을 선보일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마련됐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련된 음식과 서민 음식이 동시에 발전해왔다. ‘전주’ 하면 대부분 전주비빔밥이나 콩나물해장국을 떠올리지만 전주에 며칠만 있어 보면 전주 사람의 깊은 육고기 사랑을 알 수 있다.

전주의 대중적인 돼지고기 문화는 1960년대 이후 본격화한 것이다. 전주 남문시장은 1894년 동학혁명 이전부터 장이 서던 유서 깊은 곳이다. 60년대 이전에는 ‘전북의 현금 80%가 전주에 있고, 전주의 현금 60%가 남문장에 있다’고 할 정도로 남문장 규모와 위세는 대단했다.

시장 먹자골목에는 전주를 대표하는 콩나물국밥집 가운데 하나인 ‘현대옥’을 비롯해 현지인과 외지인이 모두 좋아하는 맛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 ‘조점례 남문 피순대’이다. 아침 7시 문을 열 때부터 밤 12시 문을 닫을 때까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이곳의 주메뉴는 순댓국과 피순대다.

전라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피순대 문화가 남아 있다. 전라도는 지역에 따라 소창, 대창, 막창 등 다양한 순대껍질을 사용하지만 순대 속만은 선지가 그 중심에 있다. 곡성에서는 100% 선지만 넣은 순대를 ‘똥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선지에 비해 채소와 밥 비율이 조금씩 높아진다.

‘조점례 남문 피순대’는 선지와 채소, 다진 고기 같은 재료의 섞임이 기막히다. 선지를 좋아하는 전라도 사람과 선지를 적게 먹는 외지인도 부담 없을 정도로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비결이다. 깊은 국물맛의 순댓국과 초콜릿 같은 짙은 갈색의 순대 한 점은 전주의 대중적인 돼지고기 문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피순대와 더불어 전주의 돼지고기 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은 매운 양념족발이다. 전주 시내에 넓게 퍼진 양념족발을 대표하는 곳은 ‘가운데집’이다. 이 집은 1968년 시작했는데, 양념족발은 단족(앞발뼈, 뒷발뼈 마디를 자른 것)만 사용한다. 살코기는 별로 없고 거의 콜라겐으로만 이뤄진 껍질이 주를 이룬다.

전주 사람들은 생삼겹살 같은 생고기보다 양념을 한 고기 요리를 즐겨 먹는다. 내장과 족발이 아닌 돼지고기 살코기로 유명한 집도 많다. 그중 전주의 밤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야식집 ‘오원집’과 ‘진주집’은 1980년대 장사를 시작했다. 두 집 대표 메뉴인 ‘돼지구이 한 접시’는 삼겹살 부위에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워주는 방식이다.

전주는 예나 지금이나 전라도 음식이 모여들고,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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