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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육아

백서우 지음 | 첫눈



삼대육아



백서우 지음

첫눈 / 2016년 8월 / 240쪽 / 13,000원





무면허 엄마



“선배, 나 너무 힘들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어.”

회식 자리에서 후배 녀석 하나가 소주 섞인 한숨을 내쉬며 글썽거린다. 두 돌배기 아들을 둔 초보 아빠인데, 가쁜 소식을 참 비통하게도 전한다.“어머, 축하해. 좋은 일에 ‘힘들다’는 왜 붙여.”

“애 엄마가 너무 짜증을 내. 천둥벌거숭이 아들 하나 돌보기도 벅찬데 임신해서 입덧까지 하니까 당연히 힘들겠지. 그래서 처음엔 계속 받아줬는데 이제 나도 더 못 참겠어. 퇴근하고 집에 가면 마음 편히 쉬고 싶다고. 계속 화만 내니까 진짜 지쳐.”“어휴, 애 엄마가 한창 힘들 때야.”

“선배는 그래도 짜증 안 내고 애들 잘 돌보는 것 같더만. 아내가 요즘 화낼 때 보면 연애할 때 그 여자가 맞나 싶다니까.”“어이구, 나는 더 했어.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봐. 아이가 두 살이면 고작 2년 동안만 엄마로 산 거잖아. 이제 겨우 두 돌짜리 엄마라고.”“잠시만 선배. 여보세요. 뭐라고? 애가 어쨌다고?”



씩씩대면서 애 엄마 험담할 때는 언제고, 후배는 집에서 온 전화 한 통 받더니 황급히 회식 자리를 몰래 빠져나갔다. 총총 뛰어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남편도 똑같았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는 정말 더 심했었지. 아이가 울기만 해도 바들바들 떨면서 애꿎은 남편한테 짜증이나 부리는 빵점짜리 초보 엄마였다.

누구나 자격 없이 엄마가 된다. 막상 엄마가 되었는데 아무런 자질이 없다. 투정이나 부리면서 학교 다니고, 공부만 하다가 취업하고 연애한다. 그러다 어느 날 프러포즈라도 받으면 못 이긴 척 결혼이라는 걸 하는데, 어수룩한 살림 실력에 정신없이 헤매다 보면 덜컥 아기가 생기고, 어느새 조리원에 누워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역시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나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육아서를 읽고 인터넷에서 각종 정보를 모으며 선행학습을 했다. 부푼 배를 안고 도서관을 쏘다니며 육아 코너의 책을 모조리 꺼내 읽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자마자 깨달았다. 물컹거리는 신생아를 안을 줄도 모르는 현실 앞에서 책이란 그저 종이와 글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렇게 조그만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하나. 조리원에서 나갈 날이 다가올수록 두렵고 막막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당연히 젖을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젖이 돌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젖은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가슴이 엄청나게 아팠다. 힘껏 빨아도 나오지 않는 엄마 젖에 아기는 지쳤다. 기어코 인공 젖꼭지를 찾아 무는 아기를 안고 나는 좌절했다.

엄마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도 회의가 들었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아니 제대로 되지 않는 모유수유는 내 자존감마저 해쳤다. 원숭이도 제 새끼는 배부르게 먹이던데. 아, 나는 원숭이보다 못하구나. 이대로 계속 모유수유를 고수하며 아기의 배를 굶길 수는 없는 터라 마지못해 분유를 타면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본능인지 학습된 것인지, 모유를 꼭 먹여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모유에 집착했다. 흡사 젖소가 된 듯 억지로 미역국을 두 사발씩 먹으며 스스로를 사육했다. 젖이 돈다고 소문난 음식은 죄다 해먹었으며, 신통하다는 마시지도 받으러 다녔다.

숱한 노력에도 내 유축 성적은 초라했고 아기는 배가 고픈지 쉬이 잠들지 않았다. 눕히면 번쩍 눈뜨는 아기를 안고 깨달았다. 나는 다만 아기를 낳은 상황에 직면한 한 마리의 동물일 뿐 아직 엄마가 아니라는 걸.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세상에 없다. 무려 엄마가 당연직이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엄마는 그냥 되는 게 아니라 만만치 않은 도전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나는 지금껏 주변을 돌보기보다는 보살핌을 받으며 겨우 살아온 인간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꽃길만 걸은 건 아니지만 큰 굴곡 없이 자랐고 위기 없이 살고 있다. 매일 같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 사람 좋은 남편 덕에 편안하게 살아왔다. 이런 내가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 길러 내야 한다. 양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벌벌 떨고 있는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이런 고민의 시작을 감히, 엄마의 자격이라고 여겨도 되는 것일까.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부족했다. 아이를 온전히 키워내려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일단 휴직을 하고 내 인생의 삼 년은 오롯이 아기를 위해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따라붙는 아기를 혼자 내버려두고 출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집에 들어앉기는 했는데 막상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인터넷에는 각종 육아 정보가 쏟아졌지만 내겐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었다. 친정 엄마나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시간이 해결해 준단다.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가 있나. 방법을 물어보는데 시간이 답이라니.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 역시 지금 누군가 물으면 똑같이 답한다.)

그놈의 모유수유에 집착한 탓에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했다. 후유증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팠고 가만히 있어도 발이 시렸지만 아무리 아파도 손에서 아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낡아갔다. 나와 불쌍한 내 아기는 신혼집 아파트에 갇힌 채 서로 어쩔 줄 몰랐고, 아기도 처음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어 보였다.

옷 갈아입히다 아기 팔이 꺾일 뻔도 하고, 목욕시키다가 아기를 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투명하고 얇디얇은 손발톱을 깎아주다 결국 피를 보고야 말았다. 우는 게 제일 문제였다. 집이 떠나가라 우는 데 당최 어떻게 해야 그치는지 알 수가 있나. 옆집에서 인터폰으로 항의를 해대는 데도 속수무책이었다. 하루 종일 시달리다 녹초가 되어 잠들면 아기는 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또 울었고 나는 좀비처럼 일어나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았다.

우는 아이 손 붙들고 함께 울던 날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는 새 나는 하루가 다르게 엄마가 되어갔다. 아기를 안아 들면 힘들고 무겁기만 했는데, 힘들고 무거워서 얼굴을 살필 새도 없었는데. 점점 아기띠 사이로 예쁜 얼굴이 보였다. 아기가 무거워질수록 살이 올랐다며 기뻐했다. 한 손으로 거뜬히 기저귀를 갈고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가 고픈지 잠이 오는지 알아차렸다. 신생아 목욕 시키기 같은 건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아프기도 한 아기는 아픈 만큼 더 자랐고 아기가 아픈 만큼 나도 조금씩 경험이 쌓였다. 그렇게 내가 엄마의 자격을 손톱만큼이라도 갖추었을 때, 아기는 내게 ‘엄마’라고 불러주었다.

그때는 처절했으나 이제는 아련해진 무면허 엄마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후배 녀석이, 또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힘들다고 투덜대며 담배나 뻐끔거릴 줄 알았더니 커피를 들이키며 이제 아이 둘 아빠니 금연할 거란다. 아내와는 화해를 했단다.

“난 사실, 우리 엄마는 항상 희생했는데 아내는 왜 이럴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근데 그때 선배가 그랬잖아. 아내는 아직 두 돌짜리 엄마라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 모습은 엄마로서 많이 성숙했을 때가 아닐까 싶더라고. 아내가 두 살 된 엄마라고 생각하니까 좀 짠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야지, 안 그래요?”

녀석도 이제 조금 철이 들어가나 보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한참은 힘들겠지만 너희가 조금씩 부모가 되어가다 보면 언젠가 ‘엄마, 아빠’ 소리를 듣는 날이 오겠지. 그러는 나도 뭐 이제 고작 여덟 살짜리 엄마이지만.



늦깎이 부성



큰아이가 막 세 돌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출근하는 아빠를 빠끔히 쳐다보며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왜 자꾸 우리 집에 와?”

오, 불쌍한 인간. 크게 충격 받았다. 아들 머릿속에 바쁜 아빠는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매일같이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집에 오는데 어쩔 수 없지. 내심 고소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마음에 슬며시 웃었지만, 남편은 웃지 못했다. 아이의 한마디는 우리 가족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이 달라진 것이다. 웬일인지 조금씩 일찍 퇴근하며 아이에게 신경 쓰기 시작했다. 술고래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술자리까지 파하고 오는 일도 생겼다. 급기야 어느 날은 무려 5시 30분에 집에 온 것 아닌가.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네. 6시도 안 됐어.”

“응, 집에서 저녁 먹고 다시 가서 일하려고. 잠깐이라도 우리 아들 얼굴 보고 가야지.”

아니, 신혼 때도 저런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집에서 회사가 가까워도 그렇지, 아이 얼굴 보려고 집에 오다니. 심지어 아이 목욕 시켜주고 잠드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야근하러 나서는 것 아닌가. 샘날 지경이다.“그동안 아이 목욕 한 번 안 시키더니 이게 웬일이니.”

“그게, 자꾸 보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일이 손에 잡혀야 말이지. 시간 되면 최대한 보러 올게. 주말에도 아이 자면 출근하고 낮에는 놀아줄 거야.”“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기분을 아들이 세 살이나 돼서야 느꼈단 말이지. 보통 태어나면 바로 느끼지 않나?”“이게, 시간이 좀 필요했나 봐. 자기는 뱃속에서 열 달 품고 있었잖아. 먼저 부모가 된 거라고. 너무 잘난 척 하지 마.”

아무래도 남편에게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이와 부대끼며 아이 냄새를 맡을 시간. 아빠로서의 마음을 다질 시간. 임신 때부터 아이를 안아서 젖이나 우유를 먹이는 엄마와 달리, 부성은 조금 더디 자라나 보다.

남편 말대로 뱃속에 품고 있어서인지 감성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척 보면 아는 일을 남편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지 잠을 재워야 할지 잘 몰랐다. 옷이라도 입혀보라 하면 뒤집어 입혀 놓질 않나 뜨거운 물에 분유를 타오기도 했다. 이유식은 달래서 먹여야 하는데, 아이가 먹는 기색이 안 보이면 곧바로 리모컨을 붙잡고 소파에 드러눕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우리 남편은 그렇게 느려 터져서 ‘아빠 왜 우리 집에 와’ 라는 뼈에 사무치는 말을 듣고서야 각성한 것이다.

남편은 이제 눈꼴시어 못 볼 지경의 아들 바보로 돌변해버렸다. 어머님조차 작작 하라고 하실 만큼 확실히 변했다. 이 사람이 정말 세 돌까지 아이 목욕 한 번 안 시킨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같이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아이가 아침 식사를 마칠 때쯤 돌아와서 놀아주다 저녁 늦게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아들과 캠핑도 다니고 시간 날 때마다 아들을 한 팔에 안고 운동장으로 나가기도 했다. 아들이 짠 스토리에 그림도 그려줘서 최근 부자 합작 그림책도 완성했다. 아, 저런 아빠를 만난다니. 우리 아들 정말 부럽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남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첫 아이의 백점 아빠로 거듭난 남편이건만, 두 번째 산이 생겼다. 둘째의 불평이 늘어난 것이다. 딸아이는 아빠가 오빠만 좋아한다고 늘 투덜거린다. 사실이기에 나도 덩달아 투덜댄다. “저기, 이번 캠핑은 따님은 빼고 가야 할 것 같아. 같이 가는 집에서 아들만 데려온다고 해서 말이지···.”“흐어어엉, 아빠는 오빠네 아빠야. 엄마만 우리 엄마야.”

“어이구, 우리 딸. 그래. 공주님끼리 편 하자. 칫, 남자들만 캠핑 가라고 해!”

곁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님도 한마디 거드신다.

“저렇게 대놓고 차별을 하노. 지난번에도 아들만 쏙 데려가서 막내가 얼마나 서운해 했는데.”

‘오빠네 아빠’ 소리를 듣고도 아직 저 모양이니 진짜 우리 딸도 ‘왜 자꾸 우리 집에 와서 오빠만 데려가냐’는 말이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지. 딸아이 세 돌이 넘었는데 아직 둘째 아빠로서 마음은 더 닦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기다려 줘야지 뭐. 빵점 아빠에서 백점 아빠로 거듭난 각성의 대가 아닌가.

토요일이다. 남편은 부지런히 일어나 새벽같이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해서 어쩌느냐고 말리는 어머님 원성을 뒤로 하고 기어이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다녀왔다. 유난히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과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눕혀 놓고 묵묵히 서류가방을 샀다. 여느 때처럼 다시 회사로 돌아가 남은 일을 하려는 것이다. 남편이 낡은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꼭꼭 다져 묶는 운동화가 낡았다. 운동화 끈이 조일수록, 내 마음도 함께 조여 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을 나서는 남편을 따라 함께 집을 나섰다.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남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사로 향하는 남편의 어깨에서 이제는 남자보다 아빠가 보인다. 남자는 그렇게 조금씩, 아버지가 된다.



아빠 육아의 힘



처음 아이 아빠가 아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목격한 날, 아파트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아이를 공중으로 휙휙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기 때 머리가 흔들리면 큰일 난다는 할머님들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한달음에 뛰어가 아들을 안았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팔을 휘휘 저으며 뛰어오는 내 모습에 남편이 더 놀랐다.“아니, 이사람 호들갑은. 강하게 키워야지. 이리 내. 괜찮아요.”



남편은 기어이 내 손에서 다시 아들을 낚아채고는 놀이터로 데려가,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목마를 태우고 공중에서 한 바퀴 휙 돌려 내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지켜보던 꼬마들이 물밀듯이 밀려와 돌아가며 비행기 태워준 것은 물론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하는 나에게 남편은, “나도 어릴 때 아버지랄 프로레슬링 하면서 놀았어. 친구들이랑 격투기 흉내 낸답시고 치고 박고 놀다가 머리도 터졌었고. 그런데 지금 봐봐. 건강하게 잘 커서 잘 살고 있잖아.” 큰소리치며 안심을 시키는 것이다.

어느 집이건 아빠가 아이들과 노는 방식은 엄마와는 완전히 다르다. 아빠들은 몸을 써서 놀아준다. 나도 몸 놀이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스킨십 위주라고 할 수 있다. 그저 많이 안아주고 간지럼 태우는 정도다.

그런데 아빠는 아이들이 깔깔 넘어가게 몸을 던져 놀아준다. 물건처럼 휙 던지고 툭 받아내고 난리도 아니다. 직접 개발했다는 ‘늑대 전사’ 놀이는 아빠인 본인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돌아다니는 설정으로, 극악무도한 대사는 잔인하기 짝이 없다. 나도 모르게 ‘이런 미친놈이 있나’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아이들은 열광했다.

뭐냐 이런 반응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놀아주는데 배신자들. 배신은 아프지만 어떻든 커다란 신체를 이용한 몸 놀이는 아빠들이 가진 최고 강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아빠 놀이에 더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면서부터 우리 큰아이가 달라졌다. 큰아이는 사회성 발달이 조금 늦은 편이라 많이 걱정을 했었다. 눈맞춤이 잘 안 되고 말을 빨리 배운 것에 비해 대화는 더딘 편이었다. 그런 아이를 예의주시하며 고민만 하던 차에 남편이 나섰다. 아들의 사회성을 길러 주겠다고 아빠와의 캠핑을 기획한 것이다.

남편은 회사 동료들과 팀을 꾸려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집에 틀어박혀 책 읽기나 즐기던 아들은 이제는 캠핑장 연못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정도가 되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최근엔 ‘서글서글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나는 까칠한 아들이 서글서글해지기까지 남편의 숨은 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남편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신이 났는지 아이들과 딱 붙어서 교감 중이다. 특유의 넉살로 인심 팍팍 쓰며 인기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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