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희망이 있다면
김경희 지음 | 호이테북스
괜찮아, 희망이 있다면
김경희 지음
호이테북스 / 2016년 1월 / 240쪽 / 13,500원
학습지 교사의 인생 수업
결혼하고 7년 만에 남편의 월급을 처음 받아 보았다. 손가락을 꼽으며 그날만을 기다렸던 나에게 남편은 “당신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까, 첫 월급 나오면 당신 마음대로 해. 양가 부모님들 조금씩 드리고,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해.”라며 목이 메어 말했다.
우리는 시댁의 보조를 받으며 7년을 살았다. 첫아이를 낳고 한 달에 30만 원씩, 둘째를 낳은 뒤로 50만 원씩 시댁에서 보조해 주셨다. 시댁의 도움으로 살다가 남편의 취업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도록 행복했다.
처자식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동안 우리 남편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고정 수입이 없던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앞줄에 앉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그 남자는 목사님의 설교는 듣지 않고 자꾸 옆에 앉은 부인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나무라면 아이처럼 주눅이 들어 다시 목사님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다. 그 남자는 좋은 대학을 나와 사회적으로도 잘나가는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하던 일이 잘 안 풀리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옆에서 아는 집사님이 귀띔해 주었다.
그런데 무척 천진난만한 남편의 표정에 비해 그 옆에 자리한 아내의 얼굴은 사나운 사자의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분노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눈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눈빛이 매서웠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 남편도 가끔씩 화나 있는 나를 저렇게 바라봤을 수 있겠구나. 돈 못 번다고 스트레스를 받아 우리 남편도 저 아저씨처럼 되면 큰일이지.’ 갑자기 등골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 후로 남편이 미워질 때마다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공무원의 월급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작은 액수에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공무원 초봉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살림을 하기에는 너무도 빡빡했다. 결국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신문 구인란에 학습지 교사를 뽑는 광고가 눈에 탁 들어왔다. 학습지 교사인데 방문도 하고 공부방 지도도 겸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두 아이의 학습지 비용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내가 학습지 선생님을 하면 우리 아이들은 공짜로 공부하겠구나.’라는 계산이 앞섰다.
면접을 보고 간단한 테스트를 한 뒤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본격적인 업무를 위해 필요한 교육을 모두 끝내자 회사 현판을 주었다. 회사 로고와 문양이 새겨진 ‘000공부방’이라는 현판을 우리 집에 걸던 날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선생님이 되었다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런 아이들이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좋지도 않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밤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낮에는 회사 팀장님이 가르쳐 준 대로 마케팅을 했다. 다행히 경쟁사 학습지를 하던 이웃들이 서서히 우리 학습지로 바꿔 준 덕분에 어느새 가장 실적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면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중 나는 물론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던 영우(가명)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서운함이 밀려와서 눈물이 핑 돈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이웃들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기존에 하던 학습지를 내가 하던 것으로 바꿔 주었는데,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영우 엄마만 묵묵부답이었다.
가끔 만나면 “일은 잘돼? 열심히 해 봐.”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게 영 찜찜했는데, 드디어 영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러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휴, 드디어 영우 엄마가 우리 학습지로 바꿔 주려나 보구나. 아이들이 둘이니까 적어도 세 과목은 신청하겠지?’라며 서운한 마음을 잊은 채 단숨에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영우 엄마는 거실 바닥에 경쟁사 학습지들을 과목별로 나란히 깔아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대뜸 각각의 학습지를 과목별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각 학습지의 장단점을 무척 친절하게 이야기하더니 결론은 우리 학습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습지를 우리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이유를 멋들어지게 설명해 준 것이다. 나는 그녀의 치밀하고 야무진 설명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에게는 복이 되는 좋은 습관 하나가 생겼다. 배려하는 습관 말이다. 그날 이후 지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최대한 도우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탁해야 하는 그 속마음이 열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우 엄마는 학습지를 바꾸지 않았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하던 대로 열심히 뛰었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전단지를 돌렸다. 그 전단지에는 직접 “귀하의 소중한 자녀를 저에게 맡겨 주시면 성심성의껏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라고 하나하나 손편지를 써서 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다른 학습지가 발을 못 붙일 정도가 되었다.
낯선 집에 방문해서 처음 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점차 아이들과도 격의 없이 친해지고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면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서 인정을 받자 성취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면서 정작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똑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집마다 천차만별이고, 고유의 향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집은 따뜻하고 편안한가 하면, 또 어떤 집은 인테리어는 멋있는데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집도 있었다.
학습지 교사는 가정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다양한 가정과 사람들을 만났고, 회사라는 조직이 어떤 것인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했던 일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라는 기억을 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리라.
전업 주부에서 사업가로
강사가 되는 기본 교육은 받았지만, 나를 강사로 보아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남편조차도 “살림만 하던 여자가 무슨 강의를 해. 당신, 친절을 한자로 쓸 줄이나 알아?”라고 혀를 차며 빈정거렸다.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품었던 열정과 용기가 흐물흐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것만 같아 나는 날이 갈수록 소심해졌다.
영어학원을 운영 중이던 오빠에게 비어 있는 강의실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오빠에게 강의실을 맡겨두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 공간을 좀 쓰고 싶다고 말했다. 오빠는 “박 서방만 OK하면 사용하렴.” 하고 흔쾌히 승낙했다. 총 사업 자금 200만 원으로 컴퓨터와 사무실 집기를 장만했다. 모두 중고 가게에서 구입했다. 책상과 의자는 오빠 학원에서 남는 것을 얻어다 사용했다. 전업주부로만 살던 나는 그렇게 창업에 도전했다.
잊지 못할 맨발의 첫 강의
정식으로 강사료를 받고 처음 강의를 한 곳은 ‘다레’라는 숯불갈비집이었다. 그곳은 우리 아파트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위치한 직원이 30명쯤 되는 큰 식당이었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그날도 어김없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사장님께 회사 명함을 드리며 간단한 소개를 했다. 우리 회사는 서비스 계발을 돕고, 직원들에게 친절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레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친절 교육을 시키고 싶다며 연락을 해 왔다. 나는 한달음에 식당으로 달려갔다. 사장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사장님은 먼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장님은 고향이 전라도 곡성이라고 하셨다. 고교 시절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열렬히 사랑했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해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고 하셨다. 나이가 어려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사장님이 서울에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배달일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취직한 곳이 서울 시내 식당에 고기를 납품하는 곳이었다. 사장님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했고, 곧 주인에게서 인정을 받아 한 지역의 점포를 맡게 되었다. 그 후, 사장님은 일을 열심히 배워 창업을 했고 돈도 꽤 많이 벌었다. 그러나 도망치듯 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광주로 내려와 큰 갈비집을 오픈했다. 젊은 시절 온갖 고생 끝에 금의환향한 사장님의 이야기에 감동이 밀려왔다.
사장님은 요즘 직원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은 것 같아 고민하던 차에 내가 준 명함을 보고 참 반가웠다고 하셨다. 사장님은 친절 교육과 관련해 나에게 바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요청한 사안을 교육과정에 반영해 다음 날 다시 사장님을 찾아뵈었다. 사장님께서는 교육 시간과 비용은 알아서 하라며 무조건 나에게 맡기겠다고 하셨다. 나를 믿어 주시는 사장님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나는 직원들의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교육했다. 식당이라서 강의실이 따로 없었기에 가장 큰 룸에서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맨발로 교육을 진행했다. 첫 강의를 구두를 벗고 맨발로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식당 직원들을 앞에 두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 채 발가락을 내놓고 강의를 하고 있자니 옷을 벗은 듯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듯하다.
교육은 점심 영업시간과 저녁 영업시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 시간은 원래 점심 영업을 한 직원들이 저녁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이었다. 휴식 시간이 돌연 교육 시간으로 바뀌었으니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직원들의 반감을 없애고 친해지기 위해 서로에 대한 호칭을 언니 혹은 동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직원이 직접 손님이 되어 보는 역할극도 진행했다. 한 사람은 고객처럼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또 한 사람은 평소에 하던 대로 주문을 받아 보라고 했다. 직원들은 재미있어하면서도 고객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객이 직원들에게 원하는 것이나 반대로 직원들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의 사장님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당당하게 내민 명함 한 장을 이렇듯 나에게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기회란 어쩌면 이렇게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꿈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니까 악처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한 친구가 있다. 법원에서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남편이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친구를 원망하더란다. “왜 이렇게 쉽게 나를 포기한 거야? 내가 나쁜 길로 가면 못 가게 어떻게라도 잡아 줬어야지.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거야.” 친구의 남편은 순순히 이혼해 준 내 친구에게 도리어 이렇게 원망했다.
미성숙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해 결혼을 한다. 힘들 때는 당연히 서로 안아 주고 위로하며 한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남편이나 아내가 비뚤어진 길을 가려 할 때도 있다. 물론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참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부부 사이에는 무조건 참거나 못 본 척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독한 악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노련한 간호사들조차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아픈데, 따끔한 주사를 맞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병이 나으려면 잠깐의 따끔함은 감수해야 한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쪽 배우자가 방황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할 때 나머지 한쪽은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습게 여겼던 감기를 방치하면 큰 병이 되는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보기만 해도 아찔한 주삿바늘을 배우자의 가슴에 ‘푹’ 하고 찌를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겉보기에는 참아주는 듯, 봐주는 듯, 너그러운 듯 포기 반, 체념 반으로 사는 부부들이 많다. 작은 예방주사 한 방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던 것들을 처음부터 방치하면 그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가정은 시름시름 앓게 된다. “우리 아내는 나를 포기했나 봐.”라고 말하는 남자보다 “우리 아내는 반 점쟁인가 봐.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챈다니까. 나는 우리 집사람이 무서워서 아무 짓도 못하겠어.”라며 엄살을 부리는 남자들의 표정에 오히려 행복의 윤기가 흐르는 이유다.
현대의 부부들은 자유로움을 원하지만, 흔들리는 자신을 꽉 잡아 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배우자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뜯어말릴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부라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첩을 두어도 아내가 투기를 하면 오히려 아내를 칠거지악으로 몰아 죄인으로 만들어 쫓아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남편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남자들은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아내가 좋기만 했을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자신을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만 보는 아내가 고마웠을까? 끝까지 다른 여자에게 가지 못하도록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아 주는 야무진 아내를 원하지 않았을까?
‘당신에게 더 이상 뭘 기대하겠어. 당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앞으로 당신은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어.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기는 하지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포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포기는 부부를 결코 행복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부부는 서로 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인생에서는 사실 악역이 더 힘든 법이다. 자꾸만 이상한 길로 가려는 사람을 바로 세우는 것은 무척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악역은 진짜 독을 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악역을 자처한 당사자가 더 아프고 괴롭다.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지금 악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면 하루빨리 가슴에 품은 독을 해독해줘야 한다. 배우자가 품은 독을 해독하는 방법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다.
아내가 원하는 남편이 되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가 되어 주는 게 사랑이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내 고집대로 산다면 가족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은 져줄 때 행복해진다. 끝까지 내가 이기려 할 때 행복은 도망간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악역을 맡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악역을 맡은 배우가 행복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불행해지던지 빨리 죽는다. 아내를 위해 술 먹는 걸 싫어한다면 남편은 술 먹는 것을 멈춰야 하고, 남편이 쇼핑하는 걸 싫어한다면 아내는 쇼핑을 멈춰야 한다. 지금이 내 아내, 내 남편, 내 가족을 위해 싫어하는 것을 멈추어야 할 때다. 사랑한다면 더 늦기 전에.
시대의 자화상 같은 내 친구의 일기
섹스를 신혼 때처럼 즐기고 사는 부부가 있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신혼부부 같다. 그 친구의 리얼한 부부 관계에 대해 듣다 보면, 딴 세상 이야기처럼 신기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그렇게 실컷 웃고 나면 왠지 씁쓸해지곤 한다. 아직도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 친구가 부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