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박찬영 지음 | 리베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박찬영 지음
리베르 / 2015년 11월 / 284쪽 / 14,800원
주어가 변주하다!_ 주어
숨은 주어를 찾아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문장에도 전체를 꿰는 하나의 끈이 있다. 보석 같은 단어들을 연결해 완결된 문장을 만드는 끈은 무엇일까? 주격 조사 ‘이ㆍ가ㆍ에게ㆍ께서’와 보조사 ‘은ㆍ는’ 앞에 쓰이는 주어가 바로 그 끈이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왜 나를 싫어하지?”에서 ‘은ㆍ는’은 대조를 의미한다. 이렇게 주어에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보조사라고 한다.
주성분 가운데서도 으뜸 성분인 주어가 우리말에서는 가능한 한 뒤에 숨어 있으려 한다. 그래서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반주어는 거의 생략된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접속어ㆍ지시어ㆍ연결 어미 등만 (글 쓰는 이가) 절제해도 (독자들이) 읽기 쉬운 깔끔한 문장을 (글 쓰는 이가) 구사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절제하다ㆍ읽다ㆍ구사하다’의 주어가 일반 주어여서 모두 생략되었다.
서구에서는 광장이 많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정원조차도 넓게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에 가려진 정원이 많다. 점잖은 양반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정적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은둔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문화적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말에는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주어를 찾는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문장이 엉키면 해당 서술어의 주어가 무엇인지, 또 문장 주어는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문장이 엉키면 해당 서술어의 주어가 무엇인지, 또 전체 주어는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장의 오류가 드러난다. 문장에는 전체를 꿰는 끈이 있다고 했다. 그 끈이 주어다. 주어는 인체에 비유하면 척추이고, 집에 비유하면 대들보다. 그런 주어를 소홀히 다루다 보니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거나 대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이다.
문단에도 주어가 있고, 전체 글에도 주어가 있다. 이런 주어가 ‘키워드’에 해당한다. 계속 이어서 나오는 단어, 그래서 자주 생략되는 단어가 바로 키워드다. 키워드를 포함해 하나의 명제를 만들면 그게 주제문이 된다. 주제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사례, 통계 자료, 인용문 등을 제시해야 한다. 주제문을 논리적으로 받쳐주는 문장을 뒷받침 문장이라고 한다.
주제문은 글이나 문단의 첫머리에 올 수도 있고(두괄식), 중간에 올 수도 있고(중괄식), 끝에 올 수도 있다(미괄식). 첫머리와 끝부분에 모두 올 수도 있다(양괄식). 이 가운데 두괄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ex1] I am very fond of strawberries and cream, but I find that for some strange reason, fish prefer worms. So when I go fishing, I don’t think about what I want. I think about what they want. I don’t bait the hook with strawberries and cream. Rather, I dangle a worm in front of the fish and say: “Wouldn’t you like to have that?”
번역문: 나는 ‘딸기 넣은 빙수’를 매우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물고기는 벌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낚시하러 갈 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물고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낚싯바늘에 딸기 빙수를 매달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물고기 앞에 지렁이를 매달아 놓고 말한다. “한번 먹어보지?”(『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중에서)
해설: 영어에서는 ‘I’를 생략하면 문법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나는’을 연이어 사용하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이미 문단 전체를 꿰뚫는 주어가 ‘나’라는 것을 독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문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얼마나 유연한 언어인지 알 수 있다.
[ex2]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1천 년간 수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편 3』 중에서)
→ 교토는 1천 년간 수도였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토는 1천 년간 수도였다. ‘일본 문화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설: ‘(누군가가) 활짝 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에서 주어는 ‘과언이’다. ‘활짝 피었다’라고 말하는 주체는 생략되어 있다. 일반 주어이기 때문이다. 예문은 다음과 같이 두 문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 문화의 진수가 여기에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토는 ~ 활짝 피었다고 해도’는 부사절이다. “과언이 아니다.”를 수식한다. 부사절이 너무 길어 문장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럴 때는 문장을 나누는 게 좋다. “일본 역사에서”와 “지위를 갖고 있었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이다. 깔끔한 문장을 위해 이런 군더더기는 생략하는 게 좋다. 글을 긴밀하게 연결할 자신이 없을 때 긴 문장이나 군더더기 표현을 쓰는 경향이 강하다.
서술어와 함께 살다!_ 서술어
주어는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주어는 우리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문장의 주인이다. 하지만 우리말은 주어 없이도 뜻이 통하는 말이어서 그런지 주어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긴 문장이나 복잡한 문장을 쓸 때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나는 혼자 학교까지 걸어서 갔다.”라는 문장에서 주어인 ‘나는’은 서술어 ‘갔다’와 연결된다. ‘혼자’, ‘학교까지’, ‘걸어서’ 등 3개의 부사어도 ‘갔다’와 연결된다. ‘나는 갔다’, ‘나는 혼자 갔다’, ‘나는 학교까지 갔다’, ‘나는 걸어서 갔다’처럼 4개의 문장 성분이 모두 ‘갔다’와 호응한다. 주어와 부사어는 서술어와 동시에 호응한다.
언어의 기본 구조는 ‘-가 ~하다’이다. “(글 쓰는 이가) 바른 문장을 쓰려면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를 질서 정연하게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 문장에는 ‘주어와 서술어’의 개념이 4개나 있다.
‘글 쓰는 이가 바른 문장을 쓴다.’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질서 정연하다.’
‘글 쓰는 이가 바로잡는다.’
‘글 쓰는 이가 시작해야 한다.’
문장이 아무리 복잡하게 연결되었어도 ‘주어와 서술어’라는 기본개념이 결합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가 ~하다’라는 기본 개념들이 서로 호응할 수 있도록 유의하면 누구나 바른 문장을 쓸 수 있다.
[ex1] 이것은 그리하여 깊은 구렁에 빠진 여자가 그 깊은 구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바늘 끝만 한 하늘뿐이어서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는데 그때 갑자기 모든 대륙이 뒤집어지고 시간이 멈추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면서 죽음과 절망과 비탄의 검은 바다에서 불 뿜는 화산이 분출하듯 새로운 땅이 돋아난 이야기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중에서)
→ 깊은 구렁에 빠진 여자가 그 깊은 구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늘 끝만 한 하늘뿐이어서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그때 갑자기 모든 대륙이 뒤집히고 시간이 멈추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면서 죽음과 절망과 비탄의 검은 바다에서 화산이 불을 뿜듯 새로운 땅이 돋아난 이야기를 (내가) 하려 한다.
해설: “깊은 구렁에 빠진 여자가 그 깊은 구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바늘 끝만 한 하늘뿐이어서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는데”에서 주어는 ‘여자가’이므로 “보이는 것은”을 ‘볼 수 있는 것은’으로 고쳤다.
예문 전체의 주어는 무엇일까? ‘이야기다’가 서술어인 것은 알겠다. ‘이것은’부터 ‘돋아난’까지 긴 구절이 ‘이야기’를 수식한다. 굳이 주어를 상정한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도가 될 것이다. 예문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땅이 돋아난 이야기다.’
문장이 너무 길면 이해하기 힘들다. 문장을 나누기 위해 “소리쳤는데 그때”를 ‘소리쳤다. 그때’로 고쳤다. “불 뿜는 화산이 분출하듯”은 비문이다. 화산이 불을 분출하지 화산 자체가 분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화산이 불을 뿜듯’ 혹은 ‘화산이 불을 분출하듯’으로 고쳐야 한다. ‘이야기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로 고쳤다. 뒤 문장의 주어는 당연히 ‘나’다.
부사어도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문장을 길게 쓰면 부사어가 어느 서술어에 연결되는지 모호해지거나, 연결되어야 하는 서술어가 실종되는 경우도 있다. 주어와 서술어처럼 부사어도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문장의 필수 요소가 잘 어우러지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나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다.
부사어는 서술어뿐만 아니라 용언으로 된 주어ㆍ관형어ㆍ부사어의 뜻을 한정하기도 한다. 문장 속에서 용언이기만 하면 모두 부사어가 꾸미는 대상이 된다. “크게 이름을 떨침이 그의 소망이다.”에서 ‘크게’가 주어 ‘떨침’을, “빨갛게 핀 꽃은 장미이다.”에서는 ‘빨갛게’가 관형어 ‘핀’을, “건물이 매우 높게 지어졌다.”에서는 ‘매우’가 부사어 ‘높게’를 꾸민다.
[ex1] 돈이나 권력보다는 지성과 지식을 가진 이를 우러러보며 내가 남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한, 사회든 국가든 그 누구든 내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나의 한국현대사』 중에서)
→ 돈이나 권력보다는 지성과 지식을 지닌 이를 우러러보고 남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한, 사회든 국가든 그 누구든 내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해설: 부사어 ‘우러러보며’는 무엇을 수식하는가? 연결되는 서술어가 없다. ‘우러러보고’ 혹은 ‘우러러보며 살고’로 바꾸면 된다. ‘우러러보며’는 ‘살고’를 꾸민다. ‘우러러보며’ 뒤에 있는 ‘내가’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목적어도 서술어와 호응해야 한다
목적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다. 첫째, 목적어는 일반적으로 서술어 앞에 오기 때문에 잘못 쓰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목적어가 두 개 이상일 경우에는 목적어마다 어울리는 서술어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긴 문장에서 목적어나 서술어가 빠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많은 정보를 담으려는 신문 기사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실종된 목적어나 서술어를 넣어 서로 호응하도록 해야 한다.
주어ㆍ부사어ㆍ목적어가 서술어와 호응하지 못하는 문장이 많은 이유는, 글쓴이가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긴 문장을 쓰게 되고 문장 구조가 복잡해져 글의 흐름을 놓치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문장을 길게 써야 할 경우에는 주어ㆍ부사어ㆍ목적어가 서술어와 호응하는지 따져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1] (가) 인간은 자연에 복종하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말에서는 의미 전달에 지장이 없는 한, 중복되는 문장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성분이 생략되면 의미전달에 문제가 생긴다. (가)는 ‘지배하기도’의 목적어 ‘자연을’을 생략함으로써 문장이 어색해진 경우다.(『고등학교 국어Ⅱ』(미래엔) 중에서)
→ (가) 인간은 자연에 복종하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말에서는 의미 전달에 지장이 없는 한, 중복되는 문장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성분을 생략하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가)는 ‘지배하기도’의 목적어 ‘자연을’을 생략해 문장이 어색해진 경우다.
해설: (가) 문장은 ‘인간은 자연에 복종하기도 하고, 자연을 지배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로 고쳐야 한다. “중복되는 문장 성분을 생략할 수 있다.”가 능동문이므로 “필요한 성분이 생략되면”도 능동문으로 고쳐 주는 게 좋다. 우리말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닐 경우에 피동문을 쓰면 문장이 부자연스럽다. ‘~함으로써’는 영어식 표현이므로 ‘~해’로 바꾸는 게 좋다. 가능하면 ‘우리말식 표현’을 써야 한다. 우리말식 표현은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가능한 한 피동문은 능동문으로 바꾸어라
언어도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광장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영어에서는 행위의 주체에 따라 능동문이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된다. 주어가 무생물인 경우도 흔하다. 우리말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문화의 영향을 받아 주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어의 영향까지 받아 진짜 주어를 숨기는 피동문을 쓰는 경향도 강해졌다. 피동형을 이중으로 쓰기도 한다.
피동문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 흔히 쓰인다. 첫째, 행위의 주체가 불분명할 때다. 둘째, 행위의 주체를 감추고 싶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을 때다. 특히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에 언론사에서 피동문을 자주 사용했다. 피동문에는 주어가 숨어 있어 책임 소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는 일반적으로 피동문이 부자연스럽다.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 피동문을 쓰면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어 보여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려워진다. 주장을 잘 드러내려면 가능한 피동문은 능동문으로 바꾸는 게 좋다.
[ex1] 재미있게 구성된 글,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 있게 짜인 글이 ‘좋은 글’이다.(『글 고치기 전략』 중에서)
→ 재미있게 구성한 글이 좋은 글이다. 그러려면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글을 짜야 한다.
해설: 능동문을 쓸 수 있으면 피동문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 ‘구성된’을 ‘구성한’으로 고쳤다. 나열한 요소는 서로 대구를 이루어야 한다. 고친 문장에서 ‘독자가 싫증나지 않게’와 ‘(독자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가 대구를 이룬다.
부사를 사랑하다!_ 부사
형용사는 부사로, 명사는 동사로 풀어주라
영어에서는 주어와 목적어가 발달하다 보니 이들을 꾸미거나 연결하는 형용사와 접속어도 발달했다. 반면에 우리말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 자연히 동사와 부사가 발달하게 되었다. 명사(주어, 목적어)는 멈춰 있으려는 속성이 강해 변화가 적다. 반면에 동사(서술어)나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는 움직이려는 속성이 강해 변화가 많다.
영어식으로 표현한 ‘형용사+명사’가 부자연스러울 경우 ‘부사+동사’로 바꾸는 게 좋다. 동사는 인간 사고의 기본 개념인 ‘누가 (무엇을) 하다’에서 ‘하다’에 해당한다. 명사를 동사로, 형용사를 부사로 바꾸면 문장을 생기 있게 풀어 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It is our obligation that this nation shall have a new birth of generation.’
이 영문은 ‘이 나라가 세대의 새로운 탄생을 가지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로 직역할 수 있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서구적인 사고 개념을 잘 알 수 있다. ‘have’와 ‘of’는 자본주의 소유 개념을 보여 준다.
위 영문은 다음처럼 의역할 수 있다. ‘이 나라에서 우리 뒤 세대가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우리말은 동사와 부사가 발달했으므로 형용사는 부사로, 명사는 동사로 바꾸었고 사물 주어는 부사어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