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지음 | 인물과사상사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5년 9월 / 252쪽 / 14,000원
제1장 아직도 되찾지 못한 우리 풀꽃 이름
모윤숙이 수필에 기록한 애기산딸나무
우리는 경쾌한 걸음으로 어제저녁 올랐던 산봉을 넘었다. 엄청나게 딸기 숲이 들어찼다. K와 나는 정신없이 딸기 숲으로 빨리 들어가서 K는 벤또를 다-잃고 한참 웃으며 찾으러 다녔다. 금시 따서 금시 입에 넣었다. 형용할 수 없이 신선한 감미여서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바가 못 된다. 비탈진 산봉을 하나하나 내려오며 우리는 그곳서 개회나무, 화살나무, 궁궁이, 며느리바플, 가지송이풀, 뫼꼬리풀, 산딸나무, 애기산딸나무, 노루꿈풀 등 거기 사는 노파 한 분을 만나게 되어 풀이름을 더러 알았다. 고사리며, 넌출도토리, 산사나무, 생달나무, 가마귀쪽나무, 이런 이름들도 배워 알았다.
이 글은 1940년 잡지 《삼천리》 제12권 제8호에 실린 모윤숙의 ?부전고원(赴戰高原)?가운데 일부다. 당시 모윤숙은 한 노파에게 풀이름을 배웠다고 했는데 궁궁이, 뫼꼬리풀, 노루꿈풀, 가마귀쪽나무 따위는 지금은 생소하지만 당시 부전고원에는 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경도에 자리한 부전고원은 한국의 지붕이라 일컫는 개마고원 서쪽에 자리한 풍광이 수려하고 희귀 식물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부전고원은 해발 2,506미터의 차일봉(遮日峰)을 비롯해 2,000미터 이상 되는 고산을 10여 개나 품고 있는 곳으로 일제는 일찌감치 이곳의 고산식물과 약용식물에 눈독을 들였다. 일제는 이곳에 경성제국대학 부속의 산장(일명 시로산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관련자들을 드나들게 해 조선의 식물을 연구케 했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였던 모리 다메조는 ?부전고원의 진귀한 동식물?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조선총독부 소속 함경남도 산림과에서 근무한 쓰다니 우미조는 ?부전고원의 경관과 고산식물의 분포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모윤숙은 일본인 학자들이 드나들던 곳에 자신도 다녀왔다는 기록을 수필 ?부전고원?에 남겼다.
모윤숙은 태평양전쟁 기간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했다. 조선문인협회 간사를 비롯해 임전대책협의회(1941), 조선교화단체연합회(1941), 조선임전보국단(1942), 국민의용대(1945) 등에서 활동한 친일 전력이 상당한 문학인이다.
친일파 시인 모윤숙이 부전고원에서 노파에게 들은 풀이름 가운데 하나인 애기산딸나무처럼 우리 풀꽃에는 ‘애기’ 자가 붙은 것이 많다. 풀꽃 이름에 ‘애기’ 자가 붙은 것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살펴보면 애기꼬리고사리(히메토라노시다), 애기골무꽃(히메나미키), 애기괭이눈(히메네코노메소), 애기수영(히메스이바), 애기어리연꽃(히메가가부타), 애기명아주(히메아카자), 애기붓꽃(히메아야메), 애기산딸나무(히메야마포시) 등이 나온다. (괄호 속은 글쓴이가 일본어 표기를 한글로 옮긴 것이며 당시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 구태여 요즘 나오는 식물도감을 예로 들지 않은 것은 이 책이 ‘애기’라는 이름이 처음 나온 문헌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애기’의 일본 말 ‘히메’)가 눈에 띌 것이다. ‘히메’는 작고 귀여운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 국어사전 『다이지센』에서는 “여자의 미칭, 귀인의 따님, 유곽에서 쓰던 말, 접두어로 사물의 이름에 붙어서 작고 귀여운 것을 나타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작고 귀여운 것을 나타내는 ‘히메’는 우리말 ‘애기’와 견줄 수 있다. 우리말 애기(아기)에도 “짐승의 작은 새끼나 어린 식물을 귀엽게 이르는 말” 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말 ‘히메’가 반드시 ‘애기’로만 옮겨진 것은 아니다. 좀부처(히메미소하기), 쥐깨풀(히메지소), 개망초(히메조온), 각시기린초(히메기린소), 처녀고사리(히메시다) 같이 좀, 쥐, 개, 각시, 처녀로 변신하는가 하면 다람쥐꼬리(히메스기란), 파대가리(히메쿠구), 작은중나리(노히메유리), 홀애비바람꽃(히메이치린소), 벼룩아재비(히메나이)로 옮겨지기도 한다.
‘히메’가 다양하게 옮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애기’다. 『조선식물향명집』에 24종이던 ‘애기’자가 들어가는 식물은 현재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애기수영, 애기달맞이꽃 등 141종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다.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식물명휘』에는 ‘애기’, ‘좀’, ‘개’, ‘각시’와 같은 한글 이름이 보이지 않다가 1937년에는 부쩍 이런 이름이 늘어났다. 초기 번역자들이 일본 말 ‘히메’를 옮기기 위해 고심한 흔적으로 보인다.
털여뀌의 ‘털’은 정말 털이 많아서 붙은 이름일까?
양지꽃과 털여뀌의 뿌리 추출물이 몸속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염증반응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015년 4월 8일 《중앙일보》 기사다. 털여뀌는 약재로도 쓰지만 5월 초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털여뀌는 노인장대라고도 하는데 생약명은 홍초(紅草), 대료(大蓼)라고 한다.
우리 풀꽃 가운데 털여뀌처럼 ‘털’ 자가 붙은 것은 상당히 많다. 일본 말로 털을 ‘게(毛)’라고 하는데 털개밀(게가모지구사), 털괭이눈(게네코노메소), 털딱지(게카와라사이코), 털뽕나무(게구와), 털별고사리(게호시타), 털꽃개회나무(게하나하미도이) 등은 모두 일본 말의 영향이다.
‘털’ 자가 붙은 이름이 대거 나오는 책은 『조선식물향명집』인데, 모두 35종에 달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털을 뜻하는 일본 말 ‘게’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털장대(야마하다자오)처럼 산(야마)을 털로 번역한 예도 있고, 털산쑥(우라지로히메이와요모기)처럼 잎사귀 뒷면에 나는 솜털을 반영해 털이라고 붙인 예도 있다. 털오랑캐는 아카네스미레라고 해서 자주제비꽃이라고 번역해야 맞는 말인데 무슨 까닭인지 털오랑캐라고 번역되었다.
털오랑캐는 이시도야제비꽃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이시도야는 이시도야 쓰토무를 가리킨다. 이시도야 이야기가 나오면 아사카와 다쿠미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사랑해 조선 땅에 묻힌 일본인이라고 알려진 사람으로, 2012년 개봉한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라는 영화로도 소개되었다. 아사카와는 1914년 청량리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때 소장이 이시도야다.
아사카와는 임엄시험장 직원으로 지내면서 조선의 백자에 눈뜨게 되고 이를 계기로 조선을 사랑하게 된다. 1919년에는 이시도야와 함께 조선의 거수노수명목(巨樹老樹名木)을 조사해 발표하기도 한다. 이들의 조선 고목 조사 사업은 토종 식물과 조선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털’ 자가 붙은 식물 가운데 털머위와 털질경이는 한약초로 알려져 있다. 털머위는 갯머위라고도 하는데 생약명은 연봉초, 탁오, 독각연이라 하며 감기로 인한 열, 기관지염, 목이 붓고 아픈 증세와 임파선염, 설사, 식중독에 잘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월부터 6월가지 연한 줄기 부분은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뒤 무쳐먹기도 한다.
털질경이는 잎과 씨를 모두 약재로 쓰며 이녀, 해열, 거담, 진해효능이 있다. 이른 봄에 어린순은 뿌리와 함께 나물로 무쳐 먹는 약용 ? 식용 겸용 식물이다. 털여뀌(오케다테)처럼 ‘털’ 자가 붙은 것들은 본래 성질보다 약간 억세거나 부드럽지 못한 것을 말하며 이름 앞에 ‘털’ 자 붙은 풀곷 이름은 상당수가 일본 말 ‘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까치 일본은 까마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한국 어린이라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따라 부르는 동요다. 그만큼 까치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새다. 요즘도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믿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우리 겨레와 까치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까치에 관한 재미난 기록이 있다. 1964년 10~12월 《한국일보》가 국제조류보호회의 한국 본부와 관련 학계의 후원을 받아 전 국민 대상으로 나라 새 뽑기 행사를 열었는데 2만 2,780여 통 가운데 9,373통이라는 압도적인 표를 얻어 까치가 나라 새로 뽑혔다. 대단한 까치 사랑의 증거다.
까치수염, 까치밥나무, 까치깨, 까치고들빼기, 꼬리까치, 까치콩, 까치발 등 ‘까치’가 들어간 풀꽃 이름이 많은 것은 까치를 좋아하는 한국 정서에는 당연한 일이다. 이 가운데 까치수염은 약재로 쓰는데 생약명은 진주채라고 부른다. 오줌이 잘 나오지 않거나 이질, 인후염 등에 말려서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봄철에는 어린 순을 날로 먹으면 식욕을 돋우고 나물로 데쳐 무쳐 먹어도 봄의 미각을 돋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치’가 들어가는 식물의 일본 이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조선식물명휘』에는 까치수염(노지토라노), 까치다리(쿠사노오), 까치박달(만시우가에데), 까치시영나무(이타도리)의 4종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이름들에 까치를 뜻하는 가사사기는 들어 있지 않다.
우리에겐 친숙한 까치가 일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까치는 규슈 일대에만 서식한다. 대신 일본은 까마귀 천국이다. 도쿄 시내만 해도 까마귀가 쓰레기통을 뒤져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을 지경이다.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조선식물명휘』보다 ‘까치’가 들어간 이름이 늘어나 까치깨(조센가라스노고마), 수까치깨(가라스노고마), 까치고들빼기(구사노오바노노게시), 까치밥나무(오모미지스구리), 가막바늘까치밥나무(구로미노하리스구리), 꼬리까치밤나무(호자키야부산자시), 큰까치수염(오카토라노), 까치콩(후지마메) 등이 보이지만 역시 까치를 뜻하는 가사사기는 들어 있지 않다. 까치가 낯선 일본의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친숙한 까마귀(가라스)를 넣어 지은 이름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까치’로 변한 것이 흥미롭다.
한편 까마귀(가마귀)가 들어가는 식물 이름도 많다.『조선식물향명집』만 봐도 가마귀마늘, 가마귀머루, 가마귀밥여름나무, 가마귀베개, 가마귀쪽나무, 가막까치밥나무, 가막바늘까치밥나무 등이 나온다. 이상한 것은 까마귀로 번역된 식물의 일본 이름에는 까마귀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가마귀베개는 일본어로 네코노치치라고 한다. 고양이 젖이라는 뜻이다. 무슨 까닭에선지 이를 가마귀 베개로 옮겨놓았다.
제2장 일제에 바쳐진 우리 풀꽃 이름
남산제비꽃은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통감제비꽃이었다
경성 남산에 피는 남산제비꽃이라고 하는 꽃은 독특한 꽃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사랑했기 때문에 통감(統監)제비꽃이라고 불렸다. 통감제비곷도 근래에는 모두 보아가 버려 매우 드물게 되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의 위대한 공적과 유방(遺芳)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조선공로자명감』(1909)에 나오는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글의 일부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병탄하기 1년 전 조정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이토 히로부미의 공로를 치하하고 있다.
연보랏빛에 고운 자태가 앙증맞은 제비꽃은 봄을 상징하는 꽃으로 우리 겨레가 일찍이 사랑하던 꽃이다. 그러나 『』조선식물명휘』에는 오랑캐꽃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 제비꽃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동요 가운데 <앉은뱅이꽃>이 있다.
봄이 오면 간다는 내 동무 순이
앉은뱅이꽃을 따며 몰래 웁니다.
동요 작사자 이원수 선생이 지은 노랫말로 유종호 교수는 여기 나오는 앉은뱅이꽃을 제비꽃으로 알고 있었다고 《새국어생활》 제12권 4호(2002년 겨울)에서 밝혔다. 앉은뱅이꽃은 지방에 따라서 제비꽃, 민들레, 채송화를 가리킨다고 했다. 제비꽃은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유래는 이용악의 시 ?오랑캐꽃?에도 나오듯이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일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광복 직후에는 제비꽃보다 오랑캐꽃이 표준말 구실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 탓인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오랑캐꽃을 “제비꽃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오랑캐꽃과로 분류해 졸방오랑캐, 단풍오랑캐, 태백오랑캐, 장백오랑캐, 남산오랑캐 등 무려 32종의 오랑캐꽃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시도야오랑캐라는 이름이다. 요즘 말로 한다면 이시도야제비꽃인 셈이다. 이시도야는 1911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에서 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한 일본 식물학자다. 그는 1912년부터 1923년까지 조선총독부 임업기사로 일했으며 나카이가 이시도야의 식물 표본 1,350여 점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시도야오랑캐의 학명에 나카이의 이름이 붙은 것은 이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조선식물향명집』에 나오는 제비꽃(오랑캐꽃) 32종 가운데 나카이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단풍오랑캐, 태백오랑캐, 금강오랑캐, 섬오랑캐, 이시도야오랑캐, 흰젖오랑캐, 넓은잎오랑캐, 서울오랑캐, 흰뫼오랑캐, 노랑오랑캐 등 10종이고, 마키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남산오랑캐, 큰장백오랑캐, 잔털오랑캐, 길오랑캐, 자지오랑캐 등 5종이다.
우리 민족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제비꽃은 일제강점기에 오랑캐꽃, 장수꽃, 씨름꽃, 앉은배잉꽃 따위의 이름으로 불렸으나 제 이름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1929년 3월 21일 《중앙일보》에 실린 ?제비꽃?이란 시는 그래서 더 반갑다.
제비꽃
- 우태형
시냇가 언덕에 제비꽃 하나 / 이쁜 얼굴 물속에 고이 담그고
봄바람님 새신랑 맞이하려고 / 맵시 있게 곱게 단장 잘한다
봄바람 사르르 얼굴 스치니 / 고운 단장을 한 제비꽃 아씨
반갑다 웃음을 방긋 웃으며 / 고개를 한들한들 보기도 좋다
왜 하필 개불알꽃인가?
개불알꽃을 보았다
우리집 바둑이의 불알과 너무나 닮았다
바둑이는 좋겠다
불알에도 꽃이 피니까
정호승 시인이 개불알꽃을 소재로 쓴 시다. 그 시인은 왜 개 불알에 핀 꽃만 보았을까? 우리 풀꽃 이름에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하는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조선식물명휘』에는 ‘개불알탈(Kaipuraltal)’이라는 한글 이름이 나온다. 일본 이름은 아쓰모리소라고 되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복주머니난’이 적합하다. 그런데 어째서 ‘개불알탈’이라고 한 것일까? 아마도 개의 불알 탈을 쓴 것 같아 붙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잘 보면 복주머니와 더 닮았다. 식물학자 박만규 교수는 이 꽃을 요강꽃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모양이 요강을 닮아서일까?
개불알꽃과 큰개불알꽃은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개불알꽃은 난과(蘭科)에 속하는 꽃이고, 큰개불알꽃은 현삼과(꿀풀과)에 속하는 꽃이다. 서로 모양새도 다르다. 『조선식물명휘』에 소개된 아쓰모리는 모두 6종인데 여기서 1종을 ‘개불알탈’로 써놓는 바람에 이후 모두 개불알꽃으로 부르게 된 것 같다.
큰개불알꽃은 5월이면 농촌 들녘이나 텃밭 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보랏빛의 앙증맞은 들꽃이다. 땅에 납작 엎드려 자라는 녀석이라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이 어여쁜 풀꽃에 개 불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다. 마키노는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마치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을 닮았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국인이 이 꽃에 이름을 붙였다면 열매를 보고 붙이기보다는 꽃을 보고 이름을붙였을지 모른다. 큰개불알꽃은 요즘에는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린다.
큰개불알꽃은 유럽이 원산지로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에 귀화식물로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 최초로 정착한 것은 1887년으로 확인된다. 큰개불알꽃은 일본 말로 크다는 뜻의 오(大)가 붙어 오이누노후구리라 불리고, 선개불알꽃은 줄기가 위로 꼿꼿하게 섰다 해서 다치이누노후구리라 한다. 큰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한글로 처음 나오는 문헌은 『조선식물향명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