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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시

장유승 외 지음 | 샘터



하루 한시



장유승 외 지음

샘터 / 2015년 9월 / 316쪽 / 15,000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붉을 홍’ 한 글자만 가지고 눈에 띄는 온갖 꽃을 말하지 마라

꽃술도 많고 적음 있는 법이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들 보라

- 박제가(1750~1805), <사람들을 위해 고개에 핀 꽃을 읊다>, 《한객건연집》



박제가는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나, 서얼 출신이라는 제약 때문에 출세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삶에서 돌파구는 중국 체험, 곧 청나라 연행이었다. ‘서얼’이라는 두 글자를 이름 앞에 다는 순간 사람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곤 하던 조선과는 달리, 청나라의 많은 문사들은 인품과 학식만으로 그를 평가했다. 넓은 세상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와 그들에게 받은 인정은 박제가를 트인 시야와 국제적 안목을 갖춘 지식인으로 자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시는 박제가가 고갯마루 위에 핀 꽃을 보면서 지은 것이다. ‘붉다’라는 개념 하나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꽃들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자세히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박제가의 생애와 연결해 생각해보면 서얼의 굴레를 씌워 갖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세태를 은연중에 꼬집고 있는 게 아닐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200여 년을 사이에 두고 나태주의 현대시 <풀꽃>과 조선시대 박제가의 <사람들을 위해 고개에 핀 꽃을 읊다>는 하나로 통한다.

‘꽃은 붉다’라는 선입견은 붉지 않은 꽃을 외면하게 한다. 심지어 붉은 꽃 사이에도 꽃술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 꽃잎이 낱장인 꽃이 있는가 하면, 겹겹이 싸여 있는 꽃도 있다. 이렇게 꽃 하나의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사람은 어떠한가? 과연 한두 글자의 타이틀로 묶어낼 만큼 단순하던가?

사물의 ‘설명서’, ‘사양’ 정도를 지칭하는 스페시피케이션이 언젠가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는 ‘스펙’이라는 신어로 재탄생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을 지칭하는 ‘취업 5대 스펙’이 만들어졌고, 봉사 활동, 인턴 경험, 수상 경력까지 더해진 ‘취업 8대 스펙’도 공공연하다. 이렇게 대상의 일반화, 규격화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박제가는 말한다.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들 보라!



노년의 시간



세상의 묘미는 노년에 남다르고 인간의 삶은 말로가 어렵다네

- 이황(1501~1570), <친구의 시에 차운하다>, 《퇴계집》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구 “대장부는 관 뚜껑을 덮어야 비로소 성패가 결정된다”에서 유래한 ‘개관사정’이라는 말은 노년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젊은 시절 패기 넘치고 용감했던 사람이 노년이 되어 젊은 날의 신념을 저버린 채 변절하기도 하고, 반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시절 저지른 과오를 고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노년은 활력 없는 시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이 그 시기의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처럼 느껴진다. 노년에는 쇠퇴의 과정을 몸으로 겪어나간다. 육체는 쇠약해지고 사회적 위치나 역할도 사라져간다. 외적인 조건들은 내면으로 침투하기 마련이라 몸이 노쇠해짐에 따라 마음도 약해진다. 배우자와 친지를 사별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을 느끼며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의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연장되는 시대에 노년기는 더 이상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로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활기찬 노후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일에 얽매여 시간과 체력을 소진했던 중, 장년기에 누리지 못했던 꿈을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 활짝 피우기도 한다.

활기찬 노년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좋은 마무리를 강조하는 ‘개관사정’과는 다른 관점에서 노년의 가치를 역설한다. 현재든 과거든 노년이 ‘퇴적의 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것도 몰라서 곧잘 실수를 저질렀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상당히 신중해졌을 것이고, 시행착오를 통해 수많은 일들을 겪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황은 화답 요청을 하는 친구에게 당시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마른 몸이라 추위를 두려워하여 문 닫은 채로 솔바람 소리를 듣고 화로를 끼고 앉아 눈 내린 매화를 구경한다고 했다. 원숙해진 눈과 귀로 들어오는 솔바람 소리와 눈 속의 매화는 어땠을까. 남다름 묘미를 맛볼 수 있는 노년의 유쾌함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승리를 거두려면 많은 길을 알아야 하고 위기를 막으려면 멀리 내다봐야 한다네

- 정사룡(1491~1570), <바둑>, 《호음잡고》



웹툰과 TV드라마로 유명한 <미생>은 인생과 사회생활의 냉혹한 생리를 바둑판에 비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생(바둑에서 독립된 두 집이 나지 않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이라는 바둑 용어를 앞세워, 늘 무언가에 쫓기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일상을 실감 나게 그렸다. <미생>을 보면 바둑이 우리네 삶과 닮았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판세, 국면, 정석, 악수, 꼼수, 승부수, 자충수 등 일상에서 쓰는 바둑 용어가 참 많다. 무엇보다 빈 공간에 바둑돌 하나하나를 배치하고 연결하는 단순한 규칙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우리 삶과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 이 때문에 수백 년 전 인물이 바둑을 둔 뒤에 지은 이 시에서도 그 삶의 태도를 짐작하게 된다.

정사룡은 일찍부터 관료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두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을 떨쳤으며,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거쳐 학문적 권위의 최고봉인 대제학에 올랐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과거시험 문제를 응시자에게 누설한 죄로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다시 공조판서를 지냈지만, 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려던 이량의 일당으로 지목되어 결국에는 삭탈관직을 당했다.

이처럼 정계의 한가운데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정사룡은 한 평생 정치적 완생(바둑에서 독립된 두 집이 나서 완전히 살게 된 상태)을 추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바둑판을 보며 정치판에도 승리를 위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바둑판을 보며 정치판에도 승리를 위한 많은 길과 위기를 막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끝내 패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몇 번의 악수를 복기하며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사활이 걸린 정치판의 묘수가 바둑판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냉혹했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정사룡이 남긴 이 구절은 저마다의 성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정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생에서 실패는 없을 수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패감 속에서 삶이 바둑과 닮아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 점에서 <미생>의 대사는 실패를 극복하는 정석이라고 할 만하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어. 돌이 외로워지거나 곤마(바둑에서 살기 어렵게 된 돌)에 빠진다는 건 근거가 부족하거나 수읽기에 실패했을 때지. 곤마가 된 돌은 죽게 두는 거야. 단, 그들을 활용하면서 내 이익을 도모해야지. 전체를 보는 거야.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작은 패배를 견뎌낼 수 있어.”



대나무를 사랑한 이유



나란히 서서 빌붙을 생각 없으나 구름을 찌르고도 남으리라

- 박은(1479~1504), <용재 이행에게 쌍죽분을 보내며>, 《읍취헌유고》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네 가지 식물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이 넷은 예로부터 지덕을 갖춘 군자의 상징물로 일컬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매란국죽을 사계절과 연관 지으면, 봄은 매화, 여름은 난초, 가을은 국화, 겨울은 대나무다. 특히 대나무는 한겨울을 견뎌내는 강인함 때문에 군자를 비유하곤 했다.

차군(此君). 번역하면 이 사람, 이 친구 정도쯤 되겠다. 그런데 이 ‘차군’은 대나무의 별명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가리킬 때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인 ‘이 사람’이 대나무의 별명이라니 다소 의아하지만, 중국 동진의 서예가 왕휘지의 대나무 사랑담을 듣고 나면 이해가 간다. 왕휘지가 잠시 머물다가 떠날 집에 대나무를 심자 주위 사람들은 곧 떠날 곳에 왜 이런 공을 들이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왕휘지가 “어찌 하루라도 이 사람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는 데서 ‘차군’이라는 대나무의 별명이 탄생한 것이다. 식물인 대나무가 ‘사람’ 대접을 받은 데는 대나무의 고결한 속성이 한몫했다.

바른말을 잘하고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던 어떤 시인 박은은 하필이면 연산군의 신하였다. 결국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했다. 연산군은 박은이 죽은 후에도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해 그의 친구들을 모두 찾아내 곤장 백 대를 쳐서 분풀이를 하였는데, 그때 제일 먼저 끌려 나온 친구가 바로 이 시와 함께 대나무를 선물받은 용재 이행이다.

박은과 아행은 한 살 차이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그렇기에 이행은 박은이 죽은 후 몹시 슬퍼하여 친구가 남긴 글씨 앞에서 “낡은 종이엔 아직 먹 자국 짙게 배었건만 청산 어디에도 그대 혼 부를 곳 없다”며 절절히 그리워하였다. 또한 이행은 박은이 남긴 시들을 모아서 시집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 박은과 이행의 교유 내용이 무려 여든두 번이나 나온다. 그야말로 마음으로 사귄 친구이다.

시인은 절친한 벗에게 한 쌍의 어린 대나무를 보내며 ‘상하지 않도록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어려서 강하지는 못하지만, 나란히 곧은 모습을 유지하는 쌍죽의 모습에서 시인은 자신과 자신의 친구가 가야 할 길을 찾았던 듯하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어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곧은 대나무를 사랑했던 선배들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살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나

후회가 산처럼 쌓여 이 마음을 얽어매네

-조석윤(1606~1655), <봄의 소원>, 《낙정집》



프랑스 파리의 금고털이 앙리 샤리에르는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힌다. 꿈에서 재판관을 만난 그는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한다. 재판관은 그의 결백을 인정하면서도 유죄를 선고한다. 죄목이 뭐냐고 따지는 앙리에게 재판관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할 말을 잃은 앙리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유죄를 인정하고 돌아선다.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에 대해서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흘려보낸 사람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머쥔 사람도,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가 없을 수 없다.

조석윤은 23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관료에게만 주어지는 사가독서의 특전도 누렸다. 요직 중의 요직인 이조정랑을 거쳐 지금의 청와대 비서관에 해당하는 승정원 승지를 역임하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시절을 보냈으니 지난 인생에 대한 후회 따위 없을 것 같은데, 허송세월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산처럼 쌓여 마음을 얽맨다고 하였다.

지난 인생에 대한 후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두루마리 휴지와 같아서 뒤로 갈수록 빨리 풀린다고. 처음에는 이 많은 걸 언제 다 쓰나 싶지만, 일단 중간을 넘어서면 끝까지 가는 건 순식간이다. 두루마리 휴지는 새로 갈아 끼우면 그만이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계속 후회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다. 지금도 시간의 두루마리는 빠른 속도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고 가마 메는 괴로움 모르고 있네

- 정약용(1762~1836), <가마꾼의 탄식>, 《여유당전서》



‘견여’는 양어깨에 걸어 두 사람이 짊어지고 옮기는 가마를 말한다. 이 시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중국의 장가계다. 아찔하게 높은 산이 끝없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장가계는 계단이 대단히 많아서 젊은 사람들도 구경하기 힘들어한다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그곳에는 의외로 어르신들이 참 많다. 알고 보면 모두 가마꾼의 손님들이다. 그 광대한 지역을 가마꾼 둘이 어깨에 가마를 지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어르신들과 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가마꾼들의 대비된 표정이 기억에 선명하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다. 그는 정치가로, 문장가로, 학자로 여러 업적을 세웠는데, 조선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한강에 배를 이어 만든 ‘배다리’를 놓는다거나 수원화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인 업적도 여럿 쌓았다. 정약용의 깊이 있는 학문 세계와 거침없는 추진력의 중심에는 언제나 백성을 향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있었다. 그는 강진의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재물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아무리 귀하게 숨겨놓아도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면 허망하게 날아가지만, 가장 필요를 느끼는 어려운 이웃에게 주면 그 고마운 마음은 영원히 간직된다”는 정약용만의 확실한 비법이다. 상대를 살피고 그 입장에서 생각하는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의 시작임을 그는 알고, 믿었으며,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다.

스페인 출신의 에코 디자이너 쿠로 클라넷은 세심하고 따뜻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설계한 다양한 디자인들을 공개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Very Difficult Projects(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메뉴가 눈에 띈다. 전 세계의 노숙자들을 위해 디자이너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이 운동은 낮에는 의자가 되고, 밤에는 펴서 평상으로 쓸 수 있는 나무 의자를 전 세계에 판매, 설치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이 벤치가 설치된 성당이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공원에는 ‘수레등 벤치’가 있다. 긴 의자 사이에 반달 모양의 팔걸이가 놓여 있어 자리와 자리를 확실히 구분 짓는 벤치이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노숙자들이 누울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디자인이란다. ‘공유의 미학’과 ‘배제의 미학’이 보여주는 차이이다.



설득의 기술



세수할 땐 물동이로 거울 삼고 머리 빗을 땐 물로 기름 삼지요

제 몸이 베 짜는 직녀 아닌데 낭군이 어찌 소를 끄는 견우겠어요.

- 이옥봉(?~1592), <원통함을 호소하는 사람을 위하여>, 《옥봉집》



시인은 조선 중기 여성으로 서녀였는데, 시가 워낙 출중했다. 하루는 그녀에게 이웃집 여자가 찾아왔다. 남편이 소도둑으로 몰려 관아에 갇혔다는 것이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시인은 대신 탄원서를 써주면서 시를 곁들었다. 시인은 서민의 가난한 삶을 은근하게 내비치면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끌어온다. 가난한 살림이라 ‘베 짜는 여자(직녀)’ 되기도 쉽지 않으니, 남편이 어떻게 ‘소 끄는 남자(견우)’가 되겠느냐고 묻는 말에 재치가 묻어난다.

이웃집 여자의 남편이 소를 훔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머를 아는 시인의 시 한 편이 사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의 어디에서도 ‘한 번만 봐달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를 읽고 나면 왠지 한번 봐주고 싶어진다. 결국 사또는 가난한 서민 부부의 정상을 참작하여 남자를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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