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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제주여행

김병훈 지음 | 원앤원스타일



자전거 타고 제주여행

김병훈 지음

원앤원스타일 / 2015년 2월 / 324쪽 / 16,000원





1구간 용두암 ~ 알작지해변 9km

제주 일주의 첫발을 내딛다!: 카페가 즐비한 젊음과 생기의 해안길



“아, 역시 제주도는 다르구나!” 제주도를 여러 번 왔어도 막상 제주공항에 내리는 순간 이런 감탄사는 신음처럼, 때로는 은연중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육지보다 한결 따뜻한 햇살과 바람, 그리고 이국적인 야자수가 도열한 거리, 비로드 천을 감싼 듯 완만하고 평평한 기슭의 끝에 솟구친 한라산은 우리 땅에도 이런 남국의 풍경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격하게 만든다.

제주 일주는 배를 타고 가지 않는 한 제주공항이 기점이 된다. 자전거를 가져간다면 공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야 할 것이다. 현지에서 자전거를 빌린다고 해도 렌트업체가 대부분 공항 부근에 있다. 제주의 상징 중의 하나인 용두암도 공항에서 지척이다. 만약 배를 타고 왔다면 제주항에서 탑동광장을 거쳐 용두암 방면으로 가면 된다. 제주항에서 용두암까지도 2.7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제주공항 ▶ 용두암

공항을 벗어나면 오거리를 이룬 공항 입구 교차로가 나온다. 공항 담장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나 있는데, 이 길은 올레길 17코스이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제주공항 외곽을 돌아 바닷가로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올레길 17코스도 공항 담장을 따라 해안도로까지 이어지는데, 올레길 표지기를 길잡이로 삼아도 좋다. 올레길은 용담레포츠공원에서 해안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본격적인 해안일주가 시작된다. 하지만 상징적인 출발지인 용두암이 동쪽으로 1km 남짓 떨어져 있으니 용두암으로 먼저 가보자. 높이 10m 정도의 용두암은 끈적한 용암이 천천히 식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잘 찍은 사진으로 보면 인상적이지만 실물은 그리 웅장하지도, 용을 닮지도 않았다. 용두암보다는 동쪽으로 200m 더 가면 나오는 용연(龍淵)이 더 볼 만하다. 용연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지리산 칠선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탐라계곡의 하구이다.

용두암 ▶ 이호테우해변 ▶ 알작지해변

용두암을 출발하면 이제 본격적인 일주가 시작된다. 용두암에서 이호테우해변까지 7km 정도의 해변은 제주의 다른 해안도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거칠게 흘러내린 화산암이 뭉치고 바스러진 용암해변은 영화 속 남태평양의 어느 화산섬에 온 듯하고, 길가에 줄지어 선 카페와 식당, 펜션 건물은 현대적 세련미를 뽐낸다. 예쁜 디자인의 건물과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의 생기까지 더해져 길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다소 번잡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제주 해안도로 240km 중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바닷가의 봉긋한 도두봉을 지나면 곧 이호테우해변이다. 길이 600m 정도의 백사장은 화산암 때문에 회색빛을 띤다. 백사장 맞은편에 조성된 거대한 목마등대는 이곳의 새로운 명물이다.

백사장 옆을 따라 올레길 17코스가 조성되어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1132번 도로 합류지점까지 올레길 17코스 표지기를 길잡이로 삼으면 편하다. 백사장을 지나면 초미니의 현사포구가 나오고, 이제 길은 마을을 벗어나 밭 사이의 농로로 들어간다. 농로를 지나면 검은 자갈로 이루어진 알작지해변이 앙증스럽다. 해변을 따라가면 광령천을 건너는 외도교에서 1132번 도로를 만나면서 해안도로가 끝난다.

알작지해변 ▶ 하귀리 1132번 도로

외도교에서 다음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애월읍 하귀리까지의 4km는 1132번 도로를 따라가는, 일종의 이동구간이다. 1132번 도로는 왕복 사차로의 제주 일주도로인데,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내륙을 지난다. 다행히 1132번 도로변에는 대부분 연석으로 분리된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자동차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1132번 도로만 따라서 제주도를 일주하면 180km 정도 된다. 대부분의 해안도로는 1132번 도로에서 갈라지기 때문에 시간을 줄이거나 코스를 단축하려면 해안도로를 생략하고 1132번 도로를 따라 그대로 직행하면 된다.



2구간 하귀리 ~ 곽지해변 12km

초반부터 압도하는 제주도의 진면목: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길이!



이제부터 진짜 제주 해안도로다. 1구간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1구간의 종점인 알작지해변에서 내륙으로 들어와 1132번 일주도로를 따라 4km 정도 가면 애월읍 하귀2리 가문동 입구 교차로에 해안도로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빠지면 두 번째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하귀에서 곽지해변까지 12km 구간은 전체 해안도로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 중의 하나다. 살짝 높은 언덕 위를 지나면 조망이 탁 트이고 기복도 다소 있어 몸과 마음을 묘하게 담금질한다. 오르막에서 진을 빼고 나면 쾌감을 부르는 내리막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바닷길은 애월향에서 일단 끝나지만 코스 내내 시커먼 용암절벽과 돌밭뿐이던 바닷가는 마지막에 새하얀 백사장을 숨긴 한담해변과 곽지해변이 달래준다.

가문동 입구 교차로 ▶ 고내포구

1132번 도로에서 해안도로로 진입하면 처음에는 잠시 어수선한 마을길이다. 도로 옆에는 자전거도로가 어설프게나마 따로 구분되어 있다. 바닷가로 접근하면서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변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는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모텔과 펜션,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어느 한 곳에 들러서 쉬어가고픈 충동을 억누를 수 없다. 길은 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장쾌한 지평선과 확 마주한다. 높직한 언덕 위에서 보는 풍경이라 더욱 시원하고 아득하다. 이 창대한 바다를 올곧게 마주하면서 선 예쁜 펜션들은 경관의 격조를 더해준다. 고내포구 직전의 작은 언덕 위에는 제주도 전통의 뗏목인 ‘테우’를 복원해놓은 소박한 전망대가 있다. 해발 20m가 겨우 넘는 언덕이지만 전망대에 서면 지금껏 지나온 바닷길이 꿈길처럼 끝 모를 만곡을 그리며 이어진다. 언덕을 넘어서면 잔디밭에 팔각정이 자리한 산뜻한 다락쉼터가 반대편 서쪽을 조망하고 있다. 내리막길 끝에는 짧은 허술한 방파제가 겨우 좁은 피항(避航)지대를 가두고 있는 고내포구가 있는데 무척 한가롭다.

고내포구 ▶ 한담해변 ▶ 곽지해변

이제부터는 물가로 낮게 가라앉은 평탄한 길이다. 고내포구를 돌아서면 곧 애월항이다. 제주도는 해안선이 단순해서 천혜의 항구를 만들 수 있는 만(灣)이 드물다. 때문에 대부분의 항구는 인공적인 방파제를 둘러서 피항지대를 확보한다. 애월항도 거대한 방파제를 바다 저 멀리까지 쌓아 상당한 면적의 항만을 구축하고 있다. 까마득히 뻗어난 방파제는 해안에서 600~700m나 떨어져 있어 눈으로 봐도 가물거릴 정도다.

애월읍은 꽤 큰 마을이지만 도로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옛날 모습 그대로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길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집들도 한때 유행했던 라면 면발처럼 꼬불거리는 파마머리 같은 슬레이트 지붕이 주류다. 그런데도 후줄근하거나 누추하지 않고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은 원색으로 도색한 지붕과 벽, 그리고 깨끗한 골목 덕분이다. 제주도의 뒷골목은 전국에서 가장 깨끗해서 청정골목을 자랑하는 일본에 못지않다.

읍내를 돌아 다시 1132번 일주도로와 합류하기 직전, 오른쪽으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살짝 드러난다. 외지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담해변으로, 백사장은 실로 손바닥만 하지만 비교적 잘고 단정하게 흩어진 화산석이 고운 바다색과 잔잔히 어우러진다. 이 바닷가를 따라 곽지해변까지 1km 정도의 좁은 산책로가 나 있다. 산책객이 별로 없다면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되고, 산책객이 꽤 있다면 내려서 천천히 걸어가도 좋다. 길옆으로는 작은 절벽(해안단구)이 형성되어 내륙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해변길이 관광객에게 덜 알려지고 자연스러움과 한적함을 잘 간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간의 종점인 곽지해변은 이호테우해변 이후 두 번째로 만나는, 제대로 된 해수욕장이다.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은 조개 가루가 주성분으로, 절구질로 곱게 빻은 듯 살결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기 짝이 없다. ‘곽지과물’로 유명하다. 곽지과물은 구멍이 숭숭한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제주도의 특성상 지하로 스며든 물이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 우물로, 제주도 말로는 ‘과물’ 또는 ‘물통’이라고 한다. 이곳은 특히 수량이 많기로 예전부터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대형 노천탕으로 탈바꿈했다.



3구간 귀덕리 ~ 월령리 13.5km

누가 뭐라 해도 전국 최고의 바다: 협재ㆍ금능 해변이 여기 있다



곽지해변을 나와 1132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5km만 가면 다음 해안도로가 기다린다. 한림읍 귀덕1리에서 시작해 한림읍내를 거쳐 한림읍 월령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이 구간에서는 협재해변과 금능해변이 워낙 강렬해서 솔직히 다른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바닷가로 낮게 내려앉은 길은 입체감이 덜하고 경치도 고만고만하다. 상하좌우로 종횡무진 기복을 그리던 애월의 언덕바지 길을 지나온 눈에 한림의 해변길은 긴장감을 잃고 축 늘어진 빨래줄 같다.

귀덕1리 ▶ 한림항

1132번 일주도로에서 벗어나면 바로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길은 바다와 바짝 붙어 가고, 고도도 한껏 낮아져 큰 파도가 치면 물거품이 들이칠 정도다. 좌우로는 수많은 커브를 만들며 구불거리지만 상하 기복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귀덕2리를 돌아나가면 갑자기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경지 정리가 된 밭인데, 제주에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다. 지금껏 해안도로 주변은 경지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지형에 따라 무질서한 상태 그대로 개간된 밭이나 황야였다. 수원리 일원에 펼쳐진 너른 들판은 ‘구름들’이라고 하는데 길이 1.8km, 폭 900m 정도로 육지에서라면 보잘것없겠지만 제주도여서 한층 더 넓고 각별하다.

구름들을 돌아나가면 거대한 한림항이 드러나고, 바다 저편에는 어린왕자에게 보여준 보아뱀 그림 같은 비양도가 둥실 떠 있다. 한림항은 상당히 번화하고 복잡하다. 부두를 가득 매운 어선들과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길가에 즐비한 식당과 가게가 모처럼 사람 사는 곳 같은 생기를 발산한다. 길게 뻗은 부두는 동서로 나뉘는데 동쪽은 어선들이 모이는 어항, 서쪽은 건축자재나 산업 물자를 실어 나르는 공업항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한림항 앞길은 올레길 14, 15코스와도 겹친다.

한림항 ▶ 월령 삼거리

한림항을 벗어나면 바다 가운데로 쭉 뻗은 직선로가 시원하다. 직선로가 끝나는 지점의 큰 마을은 옹포리인데, 마을을 관통하는 길가에는 빨간색 자전거도로가 구분되어 있다. 이제 이 마을만 벗어나면 협재리다. 펜션과 민박이 즐비한 협재리는 인기 관광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마을을 조금 관통하는가 싶은 순간, 눈앞으로 하얀 백사장과 차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혹적인 빛깔의 얕은 바다가 환상처럼 펼쳐진다. 지나던 자동차가 절로 멈추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과 경탄의 탄사가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협재와 1.5km쯤 떨어진 비양도 사이의 바다 전체가 신비감마저 도는 에메랄드빛이다. 바지만 살짝 걷어 올려도 비양도까지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얕은 바다와 찬란한 빛깔의 대향연으로 마음이 벅차다. 감탄을 마무리하기는 아직 이르다. 금능해변은 협재해변과 다른 이름이 붙었지만 300m 떨어진 두 해변은 사실상 하나로 이어져 있다. 두 해변 사이에도 다소 불규칙하지만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두 해변의 백사장을 합치면 총 길이 1km가 넘는 장대한 해수욕장이 된다.

협재와 금능 사이의 바닷가 모래언덕에는 소담한 산책로가 나 있는데, 천천히 걸으며 이 기막힌 절경을 만끽하기에 아주 좋다. 제주 토박이들은 협재해변보다 금능해변을 더 알아준다고 한다.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과 갇힌 듯 만을 이룬 물빛이 더 잔잔하고 조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는 누구나 미인이 된다.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고, 망연히 먼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는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룬다.



4구간 신창리 ~ 용수포구 6km

짧지만 강렬한 잔상: 거대한 바람개비가 춤추는 이국적 풍경



이 구간의 바닷길은 짧다. 고작 6km이니 자전거로 훌쩍 달릴 경우 2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이 길 역시 범상치 않다. 아니, 제주도의 어느 곳이건 범상한 데가 있을까. 수치적인 거리와 속도에 비례해 이 길을 20분 만에 주파하는 것은, 계획은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중에 마주치는 풍력발전단지를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는 풍력발전에 최적이어서 이곳을 포함해 해변 2곳, 내륙 3곳의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바람은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고 언젠가 고갈될 자원이 아닌 천연 에너지원인 데다 내륙과 동떨어진 섬 제주도에는 바람이 무한정 불어대니 앞으로도 백색의 거대한 바람개비는 더 많이 들어설 것이다. 지금까지 조성된 제주도 내 5군데의 풍력발전단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한경면 신창리 바닷가에 있는 ‘신창리풍력발전단지’다.

신창 교차로 ▶ 풍력발전단지

3구간의 종점인 한림읍 월령 삼거리에서 1132번 일주도로를 따라 3.6km를 남서쪽으로 가면 한경면 입구인 두모 삼거리다. 갈림길에는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마을길로 들어서도 되지만 정남향으로 직선을 이룬 일주도로를 1.5km쯤 더 가면 해안도로 진입 표지판이 있는 신흥 삼거리다. 여기서 우회전해서 200m 가면 신창 교차로가 나오고, 왼쪽으로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해안도로에 접어들어 얼마 갈 것도 없이 눈앞에는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백색의 거대한 바람개비가 거인처럼 당당하게 나타난다. 바닷가에 7기 내륙에 4기가 서 있는데, 저만치 바다 안쪽 검은 암초에 발을 딛고 선 몸체는 더욱 창백하다. 바다 안쪽으로 도열한 3기의 발전기를 연결하는 길마저 새하얗고, 바다 깊은 곳은 예쁜 다리로 연결해놓아 섬세하게 꾸민 공원처럼 느껴진다.

멀리서 보면 발전기의 규모가 실감나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어마어마한 크기와 사납게 울부짖는 “윙윙”대는 바람개비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곧게 솟은 기둥의 높이만 자그마치 62m에 달하고, 바람개비는 기둥보다 더 커서 지름이 70m에 이른다. 바람개비의 날개가 곧추섰을 때 전체 높이는 97m이니, 25층 건물과 맞먹는다. 멀리서 볼 때는 평화롭고 아름답던 바람개비가 곁에 다가서는 순간,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기계 괴물’로 돌변한다. 바람개비들을 연결하는 통로는 바다를 가로질러 동화의 배경 속으로 이어진 것만 같다. 돈키호테의 풍차를 떠올리는 문학적 낭만, 그런데 다가서면 와락 닥쳐오는 거대 기계의 살벌함,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로 한가롭게 뻗어난 길의 평화로움…. 이렇게 특별한 풍경은 서로 다른 야누스적인 면모가 뒤섞여 있지만 종국에는 눈을 떼기 힘든 매혹으로 승화된다.

풍력발전단지 ▶ 용수리포구

마지막 바람개비를 지나면 소박하고 한가로운 바닷길이다. 길가의 양어장과 양식장은 이곳이 관광지라기보다 주민들의 일상 공간임을 알려준다. 몇 굽이만 돌아나가면 작은 만에 숨듯이 안겨 있는 용수포구다. 이 작은 포구에는 사연이 많다. 포구 바로 옆에는 절부암이란 작은 바위가 깊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숲 속에 숨어 있고, 그 옆에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이 높직이 서 있다.

절부암의 사연은 슬프다. 조선 말 이 마을의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변을 당했다. 아내 고씨는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소복을 입고 이곳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그러자 남편의 시체가 홀연히 근처 바위 아래로 떠올랐다. 이를 신통하게 여긴 판관이 고씨가 자결한 나무 근처 바위에 ‘절부암’이란 글씨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절부암 옆으로 자리 잡은 성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기리고 관련자료를 모아 전시해둔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상해에서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9월에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했다.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첫발을 디딘 곳이니 종교적으로는 의미가 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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