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아메리카
배성규 지음 | 힐링21
서프라이즈 아메리카
배성규 지음
힐링21 / 2015년 6월 / 380쪽 / 14,800원
협곡에 빠지다
산타페 - 황토와 인디언의 도시
뉴멕시코의 주도 산타페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미국에서 가장 미국답지 않은 도시랄까. 도시 전체가 황토 빛이다. 건물 외벽을 황토나 황토색의 시멘트로 바르고, 창살도 황토색 나무로 덧대었다. 3층 이상 건물은 보기 힘들다. 사각형인데 위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계단식 구조다. 시청사와 호텔, 상가, 심지어 교회까지도 같은 구조를 지녔다. 과거 인디언들의 가옥 스타일에 스페인 풍이 혼합됐다고 한다. 길에는 차도, 사람도 많지 않다. 한적하면서도 여유롭다. 도시 전체가 쾌적하고 깨끗하다. 거리 곳곳의 갤러리와 박물관 주변에는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가의 영감이 넘실거린다. 소설가 D. H. 로렌스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 같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고 예술혼이 깨어났다고 한다.
이곳의 대표적 건축물인 프란시스 성당은 소박한 외양과는 달리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각종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맞은편의 스페인 총독 관저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아이들은 무료지만 어른은 한 명당 10달러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 유물과 건축, 회화, 조각 등이 다수 전시돼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총독부 내부에 있던 교회였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는 예수상이 수십여 점 있었다. 그 형상이 매우 사실적이고 다채로웠다. 성스러움을 강조한 우리 예수상과는 사뭇 달랐다. 인도와 한국 불상의 차이라고 할까.
산타페의 중심지는 플라자 광장이다. 이곳에 오자 때마침 거리 악사들이 노래 공연을 시작했다. 여성 4인조였는데, 멕시칸과 백인, 인디언이 섞여 있었다. 흥겨운 리듬에 관광객과 아이들이 따라서 춤을 췄다. 물론 ‘막춤’이다. 도시 초입에 있는 산 미구엘 교회는 1600년대에 세워졌다. 미국 내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로 기록돼 있다. 좁은 예배당 안에선 신부님과 100여 명의 신도들이 미사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 스태프들이 미사에 참석한 관광객들에게 모자를 돌려 1달러씩의 참가비를 받았다. 참으로 독특한 방식으로 교회 운영비를 벌고 있는 것이다. 한 노점에서 산 18달러짜리 텍사스 카우보이 모자는 여행 기간 내내 미 서부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수호신이 됐다. 이 지역 전통 레스토랑에서 저녁 메뉴로 나온 미국 남부식 검보(매콤한 쌀죽)와 밀전병에 싸먹는 새우 파지타도 일품이었다.
산타페에서 차로 30분 정도 북쪽에 있는 인디언 마을 ‘타오스 푸에블로’에선 인디언의 현주소를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인디언 마을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마을 앞에는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카지노가 서 있었다. 대규모 인디언 부락마다 어김없이 들어선 것이 바로 카지노다. 인디언 생계보호를 명목으로 만들었지만, 거꾸로 인디언의 사회진출과 자활을 막는 ‘우민화’의 지배도구로 이용돼왔다는 비판이 적잖다. 인디언 기성세대 중 상당수는 술과 도박, 마약에 찌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오스 마을 내부도 지저분하고 쇠락한 모습이었다. 골목에서 만난 인디언의 얼굴엔 윤기가 없었다. 눈의 초점도 흐렸다. 마을 내부의 사진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인디언 사내 한 명이 달려 나왔다. “사진 찍지 마라. 마을 입구에 가서 먼저 입장료를 내고 관광객 등록을 하라”고 채근했다. 소박했던 인디언 마을에 침투한 상업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밸리 오브 파이어 - 불타는 기암괴석
라스베이거스에서 후버 댐을 지나 미드 호수를 따라 올라가면 붉은 불모지가 나타난다. 바로 ‘불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밸리 오브 파이어’다. 바위의 색깔이 불타는 듯 붉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햇빛이 강할 때는 계곡 전체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불의 계곡은 지도만 봐선 찾기 힘든 외진 곳에 있다. 자이언 캐니언에서 만난 미국인 아주머니가 “꼭 가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후버 댐에서 꼬불꼬불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거의 두 시간이나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선 순간 그 두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외계 행성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이곳은 공원 입구 풍경부터 낯설었다. 매표소나 표 파는 직원이 안 보였다. 대신 관광객들이 자율적으로 돈을 내라고 적힌 안내문과 함께 나무로 만든 돈통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희한한 시스템이다. 그냥 지나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도,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이게 선진국인가 싶었다. 대한민국 문화시민의 자긍심을 갖고, 쓰인 대로 요금 10달러를 충실히 냈다. 제일 처음 나타난 포인트는 엘리펀트 록이었다. “코끼리 모양의 바위가 어디 있지” 하면서 한참을 찾았다. 차로 500m 정도를 더 내려가자, 마침내 코끼리가 떼로 몰려 나왔다. 한 마리가 아니라 곳곳에 코끼리 모양을 한 붉은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사막의 누런 색깔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붉은 빛깔의 바위들. 오랜 기간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바위들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마치 동물의 눈이나 코, 입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코끼리의 모양새나 색깔도 각양각색이었다.
2km 정도를 차로 더 달려가자 인디언 전사의 얼굴을 닮은 30m 높이의 큰 바위가 나타났다. 인디언들이 썼던 사냥도구의 이름을 딴 ‘인디언들의 서낭당’이었다. 이 바위에는 고대 인디언들이 새겨놓은 선사시대 벽화가 있었다. 평면TV처럼 생긴 벽에 각종 동물과 사람, 그림, 기호 등이 새겨져 있었다. 고대 인디언 제사장들이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벽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비는 무속신앙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만든 관광객용 계단 옆으로는 과거 인디언들이 사용했던 낡은 돌계단도 있었다. 수만 년의 시간을 넘어 돌계단에 녹아 있는 인디언의 체취가 느껴졌다.
‘삼형제 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세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듯한 특이한 형상의 바위였다. 다행히 이곳엔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람쥐 한두 마리씩 모여들었다. 처음엔 그냥 무시했다. 그런데 바람에 음식 그릇이 뒤집어져 날려가자 이놈들이 잽싸게 테이블 주변으로 달려들어 음식을 훔쳐 먹었다. 20마리가 넘는 다람쥐 떼가 모여들었다. 큰 소리를 쳐서 쫓아도 금세 다시 다가왔다. 식사를 어느 정도 끝낸 터였기에 우리가 물러나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붉은 바위들이 이어져 있었는데 우연히 계곡의 제일 깊은 쪽 포인트로 향하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이곳이 정말 대박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리고 이리저리 뒤틀린 붉은 바위들이 제각기 다른 기기묘묘한 형태의 조각품을 빚어내고 있었다. 동물이나 사람을 닮은 바위도 많았다. 거북이 바위, 호랑이 바위, 사자 바위, 상어 바위, 노인 바위, 괴물 바위. 시선을 던지는 곳마다 조각품이요 사진거리였다. 내추럴 아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처음엔 “왜 이런 황량한 곳에 데려왔느냐”고 투덜거렸던 아내도 연신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바위 아래 공터에는 캠핑카들이 진을 쳤다. 사람들이 왜 이곳까지 다시 캠핑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해 질 녘이 되면 더 환상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돌아 나오면서 눈길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의 해안
빅서 - 태평양의 절벽 해안
LA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산타 바버라를 거쳐 3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샌 시에몬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유럽식 성채인 허스트 캐슬이 있는 곳이다. 20세기 초반 억만장자가 된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이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세웠다. 허스트 캐슬은 1919년 착공, 1947년 완공됐다. 이 성은 그저 그런 보통의 성이 아니다. 유럽식으로 지어진 성곽 외부 모습도 멋지거니와 성 내부의 로마식 정원과 회랑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물로 채워진 건물 내부 홀인 로만 풀과 회랑으로 둘러싸인 로마식 수영장인 넵튠 풀은 허스트가 얼마나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을 동경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곳에선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 <스파르타쿠스>가 촬영됐다. 넵튠 풀에서는 태평양과 성채 일대의 자연풍광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허스트 캐슬은 ‘미국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다이너스티’라고 불린다. 성 안에는 총 56개의 침실과 61개의 욕실, 19개의 응접실이 있다. 또 다양한 크기의 정원, 수영장, 극장에다 비행기 활주로까지 있다. 성에는 허스트가 모아놓은 각종 미술품과 그 카피본이 가득하다. 2시간 투어를 하는데 30달러 정도이고 만찬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허스트가 1951년 88세로 사망한 뒤인 1957년 허스트 사는 이 저택과 부지를 캘리포니아 주에 기부했다. 지금은 주립 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샌 시에몬을 지나자 빅서의 웅장한 절벽해안이 거센 비바람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해안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6월 하순인데 체감 기온은 거의 영하였다. 빅서 초입에는 바다코끼리 해안이 있다. 거대한 바다코끼리들이 집단 서식하는 곳이다. 절벽 아래에선 20여 마리의 바다코끼리들이 몸을 맞댄 채 ‘크억 크억’ 소리를 냈다. ‘동물의 왕국’에나 나오는 바다코끼리를 코앞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특히 바다코끼리들이 영역다툼을 하느라 자기들끼리 커다란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야생 그대로였다. 한동안 추위도 잊은 채 바다코끼리 떼의 향연을 즐겼다.
빅서로 들어서자 도로는 급경사로 변했다. 미 서부의 산타 루치아 산맥이 해안으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모래 해안은 절벽이 되고, 도로는 해안 산맥의 경사면을 따라 꼬불꼬불 기어 올라갔다. 도로 옆 절벽의 높이가 족히 100~200m는 돼 보였다. 절벽길에서 내려다본 태평양의 웅장한 풍광은 심장을 압도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거친 파도, 하얀 물보라를 맞으며 꿋꿋이 버티고 선 해안 절벽, 그 앞에 첨병처럼 나가 파도와 싸우는 바위섬들이 어우러져 환상적 경관을 만들어냈다. 이런 해안 절벽 도로는 캐멀 부근까지 100km가량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해안 계곡에 세워진 빅스바이 브리지는 빅서의 명물이다. 100m 길이의 이 다리는 모양새가 특이할 뿐 아니라 주변 산세, 바위섬과 멋지게 어울리기 때문에 각종 자동차 CF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다리 옆으로 흘러내린 계곡 물이 바다와 부딪히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빅서의 절벽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빨간 주유등 표시가 들어왔다. 아! 샌 시에몬에서부터 경치 감상하느라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전전긍긍하면서 10여 분을 더 달렸을 무렵, 전방에 작은 휴게소와 주유소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차에 내려서 주유를 하려는데 주위 사람들 반응이 심상찮다. 휘발유 가격표를 보니 1갤런당 4.9달러로, LA보다 60%나 더 비쌌다. 알고 보니 이곳은 사방 60km 내에 있는 유일한 주유소였다. 샌 시에몬부터 빅서까지는 절벽 외길인 데다 자연보호구역이라 주유소가 들어설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만큼 독점의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가 아닐까 싶었다.
눈과 얼음의 세계
컬럼비아 대빙원 - 수만 년 전 빙하수를 마시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중간 지점을 지나자 끝없는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산중턱까지 구름에 가려진 검붉은 바위산이 나타나더니, 잠시 후 거대한 설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컬럼비아 아이스필드였다. 캐내디언 로키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넘버원 포인트다. 대빙원은 엄청난 양의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대한 설원이 쓰나미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첫눈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설원의 상단은 고도가 너무 높아서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설원의 맨 아래에는 빙하가 녹은 푸른 석회색의 호수가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빙원 건너편에 있는 리조트와 휴게소는 컬럼비아 대빙원 관광의 출발점이다. 여름에만 운영되고 가을부터 봄까지는 폐쇄된다.
컬럼비아 대빙원은 개인 차량으로 들어갈 수 없다. 빙하 진입로는 돌산과 절벽을 깎은 비포장도로다. 급경사인 데다 언제 절벽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 빙하가 녹은 급류도 넘어야 한다. 더구나 빙하에 들어가면 일반 차량은 아예 움직일 수가 없다. 바퀴가 헛도는 것은 물론이고 빙하에 빠지거나 크레바스 사이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 바로 설상차(雪上車)다. 전 세계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설상차. 빙하 위를 종횡무진 달리는 거대한 중장비형 버스다. 설상차를 타기 전 컬럼비아 빙원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전망대로 갔다. 옅은 햇빛 줄기가 구름을 뚫고 빙하를 비췄다. 빙하가 반사한 빛 때문에 난 한 순간 설맹(雪盲)이 됐다.
이곳의 얼음은 빙하시대 말기부터 수만 년간 쌓여온 것이라고 한다. 빙하는 양옆으로 솟은 두 개의 큰 산에 둘러싸여 있다. 오목한 계곡에 수만 년간 눈이 쌓이면서 거대한 빙하가 형성된 것이다. 깊이가 최대 900m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산(837m)보다 높은 것이다. 설상차는 바퀴 수가 8개이고, 바퀴 하나의 높이가 어른 키만 했다. 타이어의 두께와 너비도 엄청났다. 차의 하부는 대형 중장비와 흡사했지만 상부는 버스 모양이었다. 전체 높이도 일반 버스의 2배였다. 이 차는 눈에 빠지거나 헛도는 일이 절대 없다고 한다. 여러 개의 바퀴에 모두 동력이 전달되는 방식이라 바퀴 한 개가 눈에 빠져도 다른 바퀴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빙하는 멀리서 볼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평평하게 눈 쌓인 평지가 아니라 얼음이 삐죽삐죽 튀어 올라온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빙하가 움푹 꺼진 곳도 있었다. 안내원은 곳곳에 눈이 녹아 만들어진 웅덩이와 크레바스가 있고, 얼음이 꺼질 위험이 있으니 절대 멀리 가지 말고, 독자 행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앞다퉈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일제히 “으악! 추워”라며 비명을 질렀다. 수만 년간 얼음을 채워놓은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라. 영하 5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버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바로 빙하가 녹은 물을 마시는 일이다. 수만 년 전에 하늘에서 눈으로 내려와 얼음이 됐다가 다시 빛을 본 100% 순수한 H2O다. 녹은 빙하수가 모여 흘러내리는 작은 시냇물이 있었다. 푸른색이 감돌았다. 생수병에 담아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차갑고, 눈이 환해질 정도로 깨끗했다. “캬, 죽인다!” 아내와 하영이, 준하도 한번 맛을 보더니 계속해서 들이켰다. 배가 부를 만큼 빙하수를 마시고 나서 생수병에 다시 가득 담았다.
아내는 “준하가 감기 걸릴지도 모르겠다”며 먼저 버스에 올랐다. 나는 하영이 사진을 찍어주려고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오른발이 갑자기 푹 빠졌다. 그리고 엄청난 냉기가 엄습해왔다. 빙하가 녹아 생긴 작은 웅덩이에 발목 위까지 빠진 것이다. “앗, 차가워”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주변 사람들이 달려와 “괜찮냐”고 물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발이 얼어붙었다. 급하게 버스에 올라 신발ㆍ양말을 벗고 수건으로 발을 감쌌다. 빙하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칠 뻔했다. 양옆으로 솟은 거친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컬럼비아 대빙원을 내려왔다.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장관이었다.
옐로스톤 - 살아 있는 화산의 땅
와이오밍 주 북서쪽, 몬태나ㆍ아이다호 주와의 경계선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태초의 신비와 야생이 살아 있는 광활한 대자연이다. 1872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립공원이다. 왜 옐로스톤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이곳은 북미에서도 화산 활동이 가장 왕성하게 살아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이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어 항상 뜨거운 지열과 온천이 뿜어져 나오고, 화산의 유황 성분 때문에 간헐천(땅속에서 지상으로 분출해 솟구치는 온천) 주변의 바위와 땅이 대부분 노란색으로 뒤덮여 있다. 노란 바위의 땅인 것이다. 옐로스톤은 앞으로 수십~수백 년 안에 대규모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럴 경우 북미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