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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강명신 외 지음 | 글담출판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강명신 외 지음

글담출판 / 2015년 5월 / 250쪽 / 13,800원





1장 착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_윤리학이 답하다



건전한 이기주의를 가르쳐라

흔히들 윤리 도덕이라고 하면 이타주의를 강조하며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그 어느 때에도 절대적인 선, 즉 옳음을 행하기란 수많은 고전을 통해 성인군자도 힘들어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내 아이를 성인군자로 만들기에 이 세상은 감수해야 할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악인이 존재하고, 내 것만 중요하고 남의 것은 중요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세상이 이러한데 아이를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악인에게도 선을 베풀고 자기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도덕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도덕적으로 금지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자기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이는 또 다른 중요하고도 곤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이익 추구의 자유가 있을지라도 모두가 이를 추구하다 보면 모두 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는 필연적으로 나름의 규칙과 질서의 항목이 생겨난다. 이중에는 지키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는 것도 있지만,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것도 있다. 이때 비록 법적인 제재가 없는 것일지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개념이 바로잡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타주의를 이기주의와 대치시켜 놓고 이기주의가 나쁜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건전한 이기주의’야말로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건전한 이기주의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뜻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는 남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아이에게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부모들은 내 아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면서도,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착해서 손해 보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이에게 자신의 자유와 이익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인지시키고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은 아이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길이기도 하다.



2장 부모 마음, 아이 마음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_프로이트가 답하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마음이 형성되는 과정, 즉 마음의 발달을 살펴봄으로써 이를 통해 부모로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음의 기초를 쌓아 가는 아이: 아이의 마음은 배 속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세상에 나와 본격적으로 발달해 나간다. 세상에 나와 마주한 현실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나 다름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돌보는 사람인 주양육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대부분의 주양육자인 엄마는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과 자신이 경험한 양육 방식을 토대로 정성껏 아이를 돌보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애착이 형성된다. 이때 엄마가 자신의 심리적 문제로 인해 정상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아이에게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지게 된다. 관계의 경험이 마치 유전되는 것처럼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아이는 다양한 신체 접촉, 눈 맞춤, 다양한 놀이 등을 통해 엄마가 믿을 만하고 안전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아이의 욕구는 끊임없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엄마가 우유를 타러 가는 그 순간에도 아이는 좌절을 경험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엄마를 원망한다.

이처럼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아이는 인지적으로 발달하고 엄마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결국 엄마에 대해 알게 된 다양한 모습을 바탕으로 통합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데,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안정적인 아이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처럼 든든함을 느낀다. 이 준비가 잘된 아이일수록 세상 밖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따라서 자녀가 아주 어릴 때는 너무 큰 좌절을 겪지 않도록 충분히 욕구를 보살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에게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하고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한편 관계에 필요한 믿음을 닦아 줄 수 있다. 이런 기초가 튼튼해야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좌절을 무사히 극복하고 성장해 갈 수 있다.

이와 달리 엄마가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하고 일관되지 않은 양육을 하거나 정서적인 (혹은 신체적인) 학대를 한다면 아이 마음속에서 세상은 예측 불허의 불안하고 두려운 존재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마음의 세 가지 기능: 마음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마음을 구체적인 모양으로 떠올릴 수 있다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것이 ‘마음의 구조’다. 실제로 마음에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마음의 대표적인 기능을 묶어 이름을 붙이고 구조라는 단어를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프로이트가 고안해 낸 세 가지의 분류는 간단하지만 무척 유용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드(id)’다. 우리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동기가 이에 해당한다. 본능적인 욕구를 포함하여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기는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젖을 찾는다. 또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이성을 만나면 성적인 충동을 느낀다. 이드는 이 모든 본성과 연관되어 있다. 즉 최대한의 쾌감과 만족을 추구하며 쾌락의 원칙에 따르는 기능이다. 그러다 보니 이드가 너무 강할 경우 많은 현실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욕구를 문제없이 충족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마음의 구조인 ‘자아’는 ‘우리 자신의 욕구’와 우리를 둘러싼 ‘실제 환경’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현실’ 간의 타협점을 찾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마음속의 현실이란 외부 현실에 대해 한 개인이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마음에 담아 둔 것을 말한다. 간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고 해 보자. 이때 현실의 엄마(간식을 주기 위해 온 다정한 엄마)와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엄마(공부 안 한다고 무섭게 야단치는 엄마)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자아는 중재자로서,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면서도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켜 자존심을 지키는 한편 외부 현실에도 적응해 나가는 마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는 이처럼 여러 요소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쾌락의 원칙에 따르기보다는 현실의 원리를 따른다. 다음에 설명할 ‘초자아’를 포함하여, ‘이드, 초자아, 현실’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마음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자아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그 개인의 삶이 결정된다. 건강한 자아라면 이 세 가지 마음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재미있는 게임을 선물받았다고 가정하자. 자아 기능이 튼튼한 아이라면 시험이라는 현실과 재미를 찾는 본능 사이에서 자신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려해서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정해진 시간만 놀고 공부를 할 것이다. 그리고 시험이 모두 끝난 후 게임을 즐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초자아는 이상적인 것을 대표하며 완전성을 추구한다. 양육자로 인해 원하는 욕구가 제한됨으로써 좌절을 경험했을 때 아이는 스스로 통제하고 자제하는 기능, 초자아가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이를 ‘일종의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기능’ 또는 ‘양심의 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스스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생기면서 만들어진다.

아이가 온 집 안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논다면 엄마는 화가 나서 크레파스를 빼앗아 버릴 것이다. 즐거움을 주던 것이 사라진 아이는 좌절하고 울 것이다. 이때 보이는 엄마의 반응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엄마는 단호하게 화를 내며 벌을 줄 것이다. 또 어떤 엄마는 침착하게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난 이유를 설명하며 달랠 것이다. 물론 이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때 전자의 경우에는 무서운 벌을 주는 초자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벌을 받고 징계를 받으면 당장의 욕구는 참게 되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상처를 입고 화를 느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역시 좌절은 하겠지만 아이가 경험하는 감정적인 상처는 훨씬 적을 것이다. 또한 욕구를 참는 과정에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은 덕분에 따뜻한 초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 아이는 두 경우 모두 욕구를 제한받았지만, 이때 생기는 마음속의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초자아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좌절들의 경험이 모여 형성된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이 세 가지의 기능이 현실과 타협해 나가면서 아이는 저마다 고유한 마음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 만약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너무 두드러지거나 너무 약해져 있다면 건강한 성격 형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초자아를 예로 들어 보겠다. 부모가 제한 없이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양육을 할 경우, 아이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심한 경우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고 들 것이다. 흔히 이러한 사람을 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결국에는 외부의 힘에 의해 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 구조는 스스로의 욕구와 충동을 자제하는 기능이 너무 약하다.

이와 반대로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철저하게 단속하며 지나치게 엄하게 키울 경우, 가혹한 초자아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항상 자신을 탓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등 자신감이 없고 늘 주눅 든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이들은 평소 타인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 않지만, 어느 순간 한계점에 다다를 경우 폭발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마음의 기능에는 우위가 없다. 모두 꼭 필요한 기능이다. 마음이 건강하다는 의미는 이 세 가지의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잘 적응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의미다. 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일하고 각자의 삶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3장 자신의 시선에 아이를 가두는 부모에게 _셰익스피어가 말을 건네다



아이는 모두 불효자가 되어야 한다

『햄릿』과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은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자식들과 불화를 겪고, 결국 가족의 비극을 초래한 리어 왕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의 왕 리어에게는 고네릴, 리건 그리고 코델리아라는 세 딸이 있다. 이제 왕좌에서 내려와 여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리어 왕은 그의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한다. 그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그 사랑의 크기만큼 왕국의 땅과 재산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고네릴과 리건은 ‘우주보다 그리고 목숨보다 사랑한다’는 감언이설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거짓과 과장으로 이루어진 언니들의 고백을 거부하며, 듣기에 좋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한다.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자식의 도리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고,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사랑의 반은 남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언니들이 말한 것처럼 우주보다 목숨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이에 리어 왕은 분노한다. 평소에 가장 많은 사랑을 주었던 딸이었기 때문에 그의 분노는 더욱 증폭된다. 그 결과 리어 왕은 자신의 재산을 고네릴과 리건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코델리아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은 채 왕국에서 내쫓아 버린다. 충신인 켄트 백작이 이를 나서서 저지해 보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리어 왕은 그마저도 추방시켜 버린다. 리어 왕의 이러한 행위는 재산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한 두 딸 고네릴과 리건에게조차 비난받는다. 평소에 아끼던 코델리아를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매몰차게 내쫓아 버린 것은 그의 노망을 의심할 정도로 지나친 행동이었던 것이다.

진심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코델리아를 내쳐 버린 리어 왕은 결국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준 고네릴과 리건에게 배반당한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비록 유산을 받기 위해 아첨을 하여 리어 왕의 환심을 얻은 그들이지만 코델리아를 대하는 태도에서 아버지의 지나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침묵한 것은 재산 때문이었고, 이제 그 재산이라는 무기가 없어진 리어 왕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믿었던 두 딸에게 버림받은 리어 왕은 그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광야를 헤매다 극심한 분노에 정신을 놓기에 이른다.

흔히들 리어 왕을 비극으로 이끈 주된 원인을 그의 성급한 판단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 명의 딸 중에서 어떤 딸이 진심으로 어버이를 위하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을 앞세워 직언을 한 코델리아를 버린 것이 그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성급한 판단 이전에 리어 왕이 갖고 있었던 문제는 자신의 왕국을 나누어 주면서도 그 왕권, 즉 자신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했다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왕권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왕권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랐던 것이다. 리어 왕은 그의 자식들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표명하는 코델리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고, 이것이 그를 분노하게 했던 것이다.

리어 왕은 왕좌에서 내려온 후에도 권위를 계속 휘두를 수 있게 해 주고 왕권을 보장해 줄 자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두 딸이건만, 두 딸은 더 이상 아첨할 이유가 없어진 아버지를 받들 이유가 없었다. 그것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리어 왕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진실을 볼 수 있게 된다.

리어 왕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의 말을 더 잘 듣는 아이를 보다 편애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자신의 말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만약 이런 태도가 지속될 경우 리어 왕처럼 정말로 보아야 할 진실은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자식은 어떤 면에서 보면 부모의 뜻을 어기는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보통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부모 세대의 삶에서 만들어진 요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 사는 세상은 부모가 살던 세상과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선택하고 취해야 할 삶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식이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다 보면 당연히 불효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식에게 좋은 삶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온 파편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많이 본 부모라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좋은 학벌보다 뛰어난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본 부모라면 대학은 꿈을 위한 무수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조언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아이에게 주는 삶에 대한 도움말(지혜, 정보)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만 삶에서 깨달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최선의 정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요구할 때 그것이 부모의 뜻인지 아니면 아이 입장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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