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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박사의 용기를 주는 자녀교육법

호시 이치로 지음 | 이너북



아들러 박사의 용기를 주는 자녀교육법



호시 이치로 지음

이너북 / 2015년 3월 / 224쪽 / 12,000원





1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큰 차이점



아이를 실패에서 지켜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부모의 처지에서는 아이가 운동회에서 활약하거나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훌륭한 성적을 올리거나, 입시에서 합격을 하면 정말 자랑스럽고 기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숙제나 학용품을 잘 잊어버려서 선생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거나, 축구팀에서 주전선수가 되지 못하거나, 나쁜 점수를 받은 시험지가 책가방 안에서 뭉개져서 나오기라도 하면, 부모는 당황하거나 실망하거나 혹은 화가 날지도 모른다.

‘자식을 실패에서 지켜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 이라고 굳게 믿는 어머니가 많다. 그래서 사전에 위험한 일은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하면서, 성과가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렇게 하면 잘 된단다”, “이대로 하지 않으면 넌 실패할 거야”라면서 아이를 위해 미리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항상 부모가 준비해 준 길을 걸으며 실패를 하지 않는 아이는, 결국 어머니의 말만 듣고 있으면 다 해결되기 때문에 실패를 체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일이 가능할까?

초등학교 성적이 늘 1등이던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똑같이 1등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또 고등학교에 가서도 반드시 1등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더구나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1등이 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처럼 반드시 어떤 시점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사회에 나와서까지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라고 무조건 어머니의 말을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코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잉보호란 굳이 사치스러운 것을 많이 사주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체험하지 못하게 하고 극진히 보호하면서 키우는 일이 바로 과잉보호다. 실패를 모르고 자란 아이는 ‘실패에 약한’ 아이가 된다. 100점 만점을 받지 않으면 자신을 좋아할 수가 없게 된다. 사춘기가 지나면 아이는 친구관계도 복잡해지고, 크고 작은 수많은 실패에 직면하는데 실패를 모르는 아이는 작은 실패에 직면할 때조차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실패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착한 아이보다 대처능력이 있는 아이가 더 크게 성장한다



최근 들어 쉽게 좌절하는 아이가 확실히 늘고 있다. 물론 어렸을 때는 부모가 실패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므로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사춘기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면, 그 문제는 표면에 떠오른다. 사소한 인간관계에서 좌절을 하고, 상처를 입어 스스로 고립되고 마는 것이다. 섭식장애(정상적인 식사행동에 장애가 오는 것으로 의학적으로 신경성 식욕부진, 신경성 폭식증 등으로 나뉜다. 일반인에게는 흔히 거식증, 과식증으로 잘 알려져 있다)를 일으키거나 자해행위, 또는 가정 내 폭력을 서슴지 않으며 사회에 나와서는 쉽게 좌절하고 우울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 아이들이 잘못했다거나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좌절을 하고, 큰 상처를 입고, 열심히 SOS를 외치고 있다. 그런 식으로 괴로움을 표현하는 이외에 달리 대처할 방법으 모르는 것이다. 실패하면 분명히 상처를 입는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뭔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슬픈 감정을 느끼고 실망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제대로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란 아이는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다.

대처능력이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스로 판단한 후,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힘이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능력이다. 성적이 좋은지 나쁜지 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아이인지 아닌지와 같은 점보다는, 실패했을 때 대처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점이 된다. 아이가 실패로 인해 조금 상처를 입더라도 그는 반드시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실패는 ‘노란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빨간불도 되고 파란불도 되는 것이다. 실패를 체험하지 않은 아이는 아무리 ‘착한 아이’라도 그저 매뉴얼적 인간이 될 뿐이다. 지시한 대로밖에 행동하지 못하고, 응용도 못 하며, 막상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타입이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의 실패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이번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면 된다. 실패란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군’ 또는 ‘이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들을 직접 가르쳐 주는 귀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2장 그저 ‘야단치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방식’을 가르쳐라



억지로 사과를 시키지 말고, 아이 스스로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형이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게임기를 동생이 만지작거리다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때 가장 나쁜 대응의 전형은 다음과 같다. “그럼 못 써!”라고 어머니가 야단을 치자 동생은 어머니에게 “잘못했어요”라고 빈다. 그러자 어머니는 형에게 “게임기가 망가졌단다. 동생이 망가뜨렸지만, 일부러 한 게 아니니 용서해 주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서를 해 주는 것에 앞서 남동생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망가뜨린 일이 옳다 나쁘다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는가가 중요하다. 이럴 때는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 좋다. “형이 소중히 하는 게임기가 망가졌구나. 형에게 뭐라고 말할래?” 동생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고 한다면, 솔직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도와주어야 한다. 형이 화낼까 봐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하면 “엄마가 옆에 있어줄까?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네가 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본인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형은 “왜 망가뜨린 거야! 너, 두 번 다시 내 물건 만지지 마!”라고 마구 화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동생이 불쌍한 마음에 엄마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안 된다. “동생이 사과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일부러 한 게 아니잖아! 넌 형이니까, 동생에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해야지.” 이런 식으로 동생 편에 서서 야단치지 마라. 애써 사과할 용기를 낸 동생의 편에 서고 싶겠지만 형도 소중한 것이 망가져서 지금 마음이 너무 슬프다.

형제란 어느 쪽이 어머니의 관심을 더 받는지 항상 경쟁하고 있다. 어머니가 동생 편만 든다고 생각하면, 형은 분해서 한층 더 거칠게 말을 하거나 나중에 동생에게 분풀이를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런 말을 하면 동생이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잖니”라는 말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다.

다음은 쌍방이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사회’ 역을 맡거나 또는 어머니가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뜻밖에도 어머니가 없어지면 형제간의 싸움이 진정되는 경우도 많다. 사회 역을 맡는다면 아이들이 서로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다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에 대해서 결론이 나오도록 이야기의 행방을 지켜보도록 하자. 이때 ‘형의 물건을 두 번 다시 만지지 않는다’로 결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형에게 물어본 후에 게임기를 사용한다든지, 교대로 사용한다는 규칙을 정하거나 혹은 게임기를 고칠 수 있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등 긍정적인 방법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험담을 하지 마라보다 험담을 듣는 편이 낫다가 마음에 울린다



“남을 험담하면 안 된다”고 아이를 야단치는 어머니가 있다. 물론 그냥 험담하게 두는 것보다는 낫지만, 가능하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아이에게 해 주면 어떨까? “엄마는 네가 그런 말투를 쓰는 게 별로 좋지 않다. 만약 누가 너에 대해 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 조금만 생각해보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신체의 특징을 놀리거나, 인격을 짓밟는 말을 듣게 된다면 누구든지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들었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성적이 좋거나 경쟁에 이기는 것보다도, 인간으로서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험담을 하는 아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다. 아이는 원래 잔혹한 데가 있어서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만 재미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놀리기도 한다. 그리고 성장함에 따라서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힘을 익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상처를 입고 슬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행동을 하면 마음이 아플까?’, ‘이런 말을 들으면 슬퍼할지도 몰라’ 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좋다, 나쁘다”만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건 안 돼”라고 금지하거나, “대단하구나”라고 칭찬하는 방식보다는 “네가 그런 일을 하면 엄마는 슬프단다”, “그런 행동을 해서 엄마는 기뻤단다”라고 어머니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

엄마, 아빠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도 아이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여름 방학 중인 8월 말이 되면서, 아이들은 산더미처럼 남은 방학숙제 때문에 소동을 피우곤 한다. “엄마, 숙제 어떻게 해?” 그럴 때는 “그러니까 내가 빨리 빨리 하라고 했잖아”라고 야단을 치거나, “네가 잘못했으니까, 엄마는 몰라”라고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실패했다!”며 도와달라고 호소를 하고 있으니, 도와주는 것이 좋다.

단, “엄마는 이걸 해줄 테니까, 너는 문제풀이를 빨리 해라”라는 식으로 돕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아이는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게 한 뒤, “어떻게 할 거야?”라고 아이에게 물어본다. “엄마. 부탁이니까 도와줘!”라고 아이가 부탁한다면 그때서야 “엄마가 뭘 해 주면 좋겠니?”라고 확인을 구한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협력을 해 주면 된다.

아이 대신 과제를 해 주는 것만이 ‘협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풀이의 답 맞추기를 해 주거나 평소보다 늦게 자도 좋다고 허락을 해 준다든지 미술숙제 중에서 어려운 부분을 조금 돕거나 자유연구 아이디어를 같이 생각해 주는 등 아무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탁이에요!”라고 애원을 하는 아이 대신에 어머니가 과제를 완성해 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도와주지만, 원래 네가 전부 다 해야 하는 일이야.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네 힘으로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두렴” 이라고 말해 두자.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과제를 다 끝내게 하는 것만이 해결방법은 아니다. “숙제를 끝내지 못했습니다”라고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말해서 야단을 맞는 방법도 있고, “기한을 연장해 주실 수 없습니까?” 라며 부탁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3장 ‘의욕과 재능’을 이끌어내는 말의 마법



비판에도 지지 않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부모의 한 마디



담임선생님에게 주의를 받은 한 아이가 풀이 죽어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물어보자, 아이는 “선생님이 저보고 동작이 둔하대요. 절 싫어하시나 봐요”라고 말했다. 이때 어머니가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심하네!”라고 아이 앞에서 선생님을 헐뜯는 행동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생각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런 행동을 하면 선생님을 존경할 수 없게 된다. 선생님도 그것을 느끼고 아이와의 관계가 더욱 불편해진다.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선생님께선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하지만 엄마는 네가 동작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해주면 된다. 실제로 아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동작이 느리거나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린 아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 아이의 인격과 행동은 별개다.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기본이다. 제멋대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제멋대로인 아이’는 없다. 나쁜 행동은 있어도, ‘나쁜 아이’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사고방식과 말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잘못했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신 모양이구나. 하지만 엄마는 다르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말해 주셨으면 좋겠니?” 라고 물어 보자. 이때 아이가 “둔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면, 그 마음을 선생님에게 어떻게 전할지 함께 생각해 보자.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교과서를 다 꺼내지 못한다는 점을 선생님에게 주의 받았다면, 쉬는 시간에 미리 준비를 해 두면 좋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도 너무 느려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게 했다면, 앞으로는 집에서 옷을 빨리 갈아입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앞으로 이런 식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선생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선생님 역이 되어서 연습을 시키면 좋다. 이런 때는 그냥 말로만 “선생님에게 말하면 되잖아”라고 해서는 안 된다. 쉬운 듯하지만 아이는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워한다.

만약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또 선생님에게 왜 그런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럼 엄마가 선생님에게 물어 볼까?”라고 도움을 주면 좋을 것이다. 아이가 “네, 선생님에게 물어봐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대신 물어보러 가도 좋다. “저희 아이가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싶어 합니다. 선생님, 저희 아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느린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라고 상냥하게 부탁하면 된다. “미술시간이 끝나도 도구를 잘 치우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면, “그럼 좀더 빨리 치우게 하면 되죠, 선생님께선 우리 아이의 행동이 전부 둔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빨리 치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거였군요”라고 웃으며 대화를 끝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이를 칭찬하면서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고,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구나”, “OO를 잘 하는구나”라는 말을 남발하는 어머니를 많이 본다. 분명 아이는 칭찬을 들으면 기쁘기 때문에, “착한 아이구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싶어서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하지만 “칭찬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타인의 평가를 마음에 쓰고, 칭찬을 듣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열심히 한다. 그래서 칭찬을 듣지 못하면 불만을 갖게 된다. 또 비판을 받으면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상냥한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 나오면 강한 말에 노출되기 때문에, 칭찬을 받기를 기대하다가는 불만과 상처를 쉽게 받고 만다.

한편 ‘인정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고, 타인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는다. 비판을 받아도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거리를 두면서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칭찬한다’와 ‘인정한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칭찬은 부모가 자식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무조건 그렇다고 단정 짓는 일이다. “착한 아이구나”라는 말은 “둔한 아이구나”와 마찬가지로, 그 아이 자체에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한 아이가 나쁜 일을 하면, 곧바로 ‘나쁜 아이’가 되어 버린다. 인정을 한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와 관계없이 그 아이의 인격이 아니라 행동이나 감정 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정말 열심히 했구나”, “도와줘서 큰 도움이 되었단다”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다. 실패한 일도 낙담한 일도 인정을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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