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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존 롱 지음 | 행성B이오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존 롱 지음

행성B이오스 / 2015년 4월 / 224쪽 / 13,800원





생물학 최대의 미스터리



거대한 물건을 가진 오리



아르헨티나 오리의 수컷은 긴 페니스를 자랑한다. 지금껏 보고된 것 중 가장 긴 것은 무려 42.cm다. 오리가 척추동물 최대의 페니스를 가진 동물로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짝짓기의 진화에 얽힌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두 종류의 정보원에 의존해야 한다. 첫째는 ‘살아 있는 동물의 세계’인데, 동물들을 관찰하여 그들이 어떻게, 왜 짝짓기를 하고, 짝짓기의 성공률(생물학자들은 ‘적합성’이라 말한다)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둘째는 화석인데, 화석에 나타난 고대의 뼈, 식물, 기타 흔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짝짓기의 진화 과정을 추론할 수 있다.

만일 10년 전,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짝짓기의 기원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한사코 만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박물관 동료들과 함께 지난 25년간 우리가 발견한 엽기적 사실들을 엮어 짝짓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에는 교미를 통한 체내수정의 기원뿐만 아니라 ‘사상 최초의 척추동물용 페니스’의 복잡한 구조까지도 포함된다. 우리의 논문들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수컷의 성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련의 독특한 화석들을 면밀히 비교 검토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의 첫 번째 발견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모나시 대학교의 고생물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나는 판피어류(placoderms)라는 고대 어류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판피어류는 거의 7,0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척추동물로, 당시에는 전 세계의 바다, 강, 호수를 누볐지만, 오늘날에는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든 물고기들의 어머니



나는 2004년 말 서호주 박물관의 척추고생물학 담당 큐레이터에서 멜버른 박물관의 과학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중반 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탐사팀을 이끌고 킴벌리 지역에 위치한 고고 유적지를 찾았다. 나의 탐사여행은 대성공이었고, 우리 팀은 새로운 화석들을 잔뜩 챙겼다. 당시 매우 특별한 화석 하나를 발견했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2005년 7월 7일, 나의 오랜 친구 린지 해처는 나와 50m 떨어진 곳에서 허리를 숙인 채 발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후 서너 시쯤 됐을까? 린지가 휘두른 망치 끝에 바위 하나가 덜커덕 걸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하얀 뼛조각이 드러났다. 린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나는 달려가 그 뼛조각에 돋보기를 들이대고는 “이건 판피어류야.”라고 말했고, 린지는 펜을 꺼내 표본의 여백에 ‘판피어류’라고 적었다.

우리가 그 화석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의 일이었다. 린지가 발견한 화석(이하 ‘린지의 화석’)의 추출작업은 2007년 11월 초, 내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약산 용액을 이용하여, 바윗속에서 잠자고 있던 린지의 화석을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머리와 두개골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대번에 범상치 않은 표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서호주 대학교의 케이트 트리나즈스틱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연구할 것을 제안했다. 분석 결과, 린지의 화석은 틱토돈티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나는 물고기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는 게이트에게 지질학자 쿠르트 타이헤르트 교수를 기리는 뜻에서 ‘타이헤르토두스’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 후 2007년 11월 말, 나와 케이트는 커다란 뼈들에 대한 분석을 대부분 완료하고, 꼬리 부분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게이트에게 동의를 구하고, 표본을 약한 산에 한 시간 정도만 담가 꼬리뼈를 뒤덮고 있는 얇은 석회암 층을 녹이기로 했다. 이윽고 예정된 시간이 되어 나는 표본을 꺼내 현미경 아래에 놓고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 댔다. 물고기의 몸통에 연결된 꼬리 부분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마지막 처리에서 드러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예상했던 대로 표본의 꼬리는 일련의 작은 척추뼈들로 구성되며, 이것들은 몸통뼈의 끝 부분에서 시작하여 꼬리지느러미의 첫 부분까지 가지런히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특이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표본의 몸통뼈 바로 뒤에 미세한 반투명의 뼛조각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이 아닌가. 언뜻 보기에 그것은 무슨 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주 작은 치어의 화석으로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타이헤르토두스가 죽기 직전에 집어삼킨 먹이가 미처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화석에 포함되었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얼기설기 얽힌 뼛조각들을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치어의 것으로 보이는 위턱과 아래턱이 두 쌍 발견되었다. 턱이 네 개의 분쇄형 치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정체불명의 치어는 틱토돈티드 그룹에 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모든 과학자들이 일생에 한 번 맞이하기를 고대하는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케이트를 불렀다. “아무래도 우린 《네이처》에 논문을 쓰게 될 거 같아요. 나는 이게 단순한 새끼 물고기가 아니라, 어미 물고기가 잉태하고 있었던 배아라고 생각해요. 척추동물의 화석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배아 말이에요. 어때요?” 케이트는 내게로 달려와 현미경에 눈을 갖다 댔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배아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 나는 그동안 촬영해왔던 사진을 꺼내 배아의 뼈와 일일이 대조해가며, 전처리 과정에서 유실된 배아의 뼈가 없는지 체크했다. 그리고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전처리 부산물들을 뒤져, 유실된 뼛조각들을 찾아낸 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날 밤 나는 아내, 케이트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우리는 3억 7,500만 년 전의 화석에서 물고기 모자(母子)를,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한 것이었다.

그즈음 우리는 가장 오래된 물고기 배아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것은 치어를 빙 둘러싸고 있었던 노끈 모양의 구조체였다. 케이트는 “주사 전자현미경으로 세밀히 관찰해야겠어요.”라며, 화석 추출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구조체 부스러기를 바이알에 담아 보관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케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구조체를 수천 배로 확대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한 결과, 그것이 ‘탯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2007년 말, 나는 캔버라에서 개빈 교수, 팀 교수와 함께 며칠 동안 마라톤 회의를 통해 논문 집필에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바야흐로 세계 최고의 배아 화석에 관한 논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개빈의 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눴다.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본의 아니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아’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말았다. 어미의 뱃속에서 배아가 자라려면 암컷이 물속에 알을 낳은 다음 수컷이 다가와 그 위에 정자를 분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어미의 몸 밖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어미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3억 8,000만 년 전 석회암이 풍부한 해저에서 암수 물고기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그들은 짝짓기를 했을 것이다. 매우 은밀하고 복잡하게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미의 뱃속에서 배아가 자라고 있었을 리 없다. 갑자기 개빈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그는 맥주 몇 모금을 홀짝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가끔씩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린 오늘 역사상 처음으로 성행위 장면이 담긴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여왕도 본 성인영화



2007년 11월 말에 연구를 마무리한 우리는 곧바로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싣기 위한 전격 작전을 개시했다. 첫 번째 단계는 캔버라에 있는 팀 교수의 연구실에서 마이크로 CT를 이용하여 표본의 3차원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3차원 영상을 통해 물고기의 골격 구조를 새롭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별도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 물고기의 해부학적 특징을 또렷이 나타내고 각 부분에 이름을 붙였다. 수차례에 걸친 편집과 재편집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모든 공저자들이 만족할 만한 1차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2008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우리의 논문을 《네이처》의 논문제출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귀하께서 제출하신 원고는 심사에 회부될 것입니다.”라는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 야호! 우리는 첫 번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논문제출 과정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동료평가 과정이다. 2008년 3월 초, 나는 수정된 논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3월 중순, 우리는 드디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네이처》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과했다. ‘일류 저널 기고’라는 1단계 목표를 달성했으므로, 우리의 다음 목표는 ‘유명 언론매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번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고기 모자(母子)’의 사례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성(性)의 기원’을 암시하는 것으로, 전 세계의 유명 언론매체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일 것이 뻔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네이처》와 호주 과학미디어센터는 우리의 논문을 발표작으로 확정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 전원이 5월 28일 밤 애들레이드에서 열리는 디너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5월 29일 오전 10시에는 멜버른 박물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이 계획되어 있었다.

5월 28 오후, 멜버른 박물관의 스태프들은 기자회견 리허설을 시작했고, 끝난 뒤에는 틱토돈티드의 화석을 박물관의 모든 위치에서 보일 수 있도록 정중앙에 진열하고, 그 옆에는 임신한 틱토돈티드의 실물 크기 모형을 배치했다. 동영상이 상영될 대형 스크린도 준비됐다. 암수 틱토돈티드가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낳는 장면이 담긴 30초짜리 동영상이 공개될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나는 애들레이드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공저자인 케이트, 팀 그리고 호주 과학미디어센터의 수전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을 곁들인 간단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2부 순서로 공연이 이어졌다. 내가 케이트, 팀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는 동안, 사회자는 마이크에 대고 이벤트 스케줄을 소개했다. 그 순간 무대 뒤편의 흰색 스크린에 불이 켜지며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연구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곳에도 많은 내빈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간단한 내빈 소개와 양측 인사들의 기념사가 있은 후,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우리는 애튼버러 경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어미 첫 번째 물고기의 이름을 타이헤르토두스에서 마테르피스키스 아텐보로이로 변경했다. 이는 ‘애튼버러의 어머니 물고기’라는 뜻이었다. 우리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전 세계의 시청자들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고고 유적지에서 발견된 판피어류의 화석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고기 배아를 찾아냈습니다. 하나는 보존상태가 완전하고 탯줄까지 딸려 있으며, 다른 하나는 세쌍둥이입니다. 3억 8,000만 년 전의 물고기들이 알을 낳지 않고 임신 및 출산을 했다는 것은, 그 시절의 물고기들이 우리 인간들처럼 ‘즐기기 위한 성관계’를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이전의 물고기들도 성관계를 했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번식을 위한 의무감에서였을 뿐 이들처럼 여흥이 목적은 아니었을 겁니다.” 뒤이어 여섯 장의 슬라이드를 띄우고 동영상을 상영한 후 내 발표는 끝났다. 다음으로 케이트가 탯줄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팀은 CT 기법에 대해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입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예상했던 대로 타블로이드 기자들의 집중적인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그들은 ‘즐기기 위한 성관계’라는 내 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즐긴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냐고 캐물었다. “이번 사례는 우리의 오랜 조상인 물고기들이 오늘날의 물고기들처럼 알을 낳지 않고,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성관계를 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의 성관계는 절차가 꽤 복잡하고 때로는 고통도 수반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성관계를 즐기지 않고서는 그런 성관계가 진화되거나 유지될 수 없었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날 밤에는 거의 모든 호주의 TV 방송들이 ‘어머니 물고기’를 톱뉴스로 다뤘다. 이윽고 프랑스, 독일, 미국, 스페인 등 전 세계 언론들도 ‘어머니 물고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나와 공저자들은 그 다음 주까지 전 세계 언론들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태초에 성이 있었다



사라진 수컷들



우리가 ‘어머니 물고기’로 대박을 터뜨린 후, 두 번째 대박 스토리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제리나 요한슨 박사였다. 2008년 8월, 나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고, 그곳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요한슨 박사에게 고생대 어류 전시관으로 안내되어 표본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킴 데니스-브라이언과 로저 마일스 박사는 1981년 발표한 논문에서 “두 개의 인키소스쿠툼 화석에서 소화되다 만 위 내용물이 발견됐다.”고 기술한 적이 있었다. 즉, 인키소스쿠툼의 위장관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판피어류로 추정되는 작은 물고기의 잔해인 뼈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나와 케이트는 그 논문을 읽는 순간 그건 소화되다 만 먹이가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문제의 논문을 처음 입수하여 나와 케이트에게 보여준 사람은 제리나였다. 당시 세 사람(나, 케이트, 제리나)은 다른 물고기의 화석을 공동으로 연구하던 중이었다. ‘어머니 물고기’에 관한 논문이 《네이처》에 발표된 직후 그녀의 제보를 들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특종감이 분명했다. 2008년 8월의 런던 자연사박물관 방문은 대성공이었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두 개의 인키소스쿠툼 표본에서 발견된 작은 뼛조각들은 ‘소화되다 만 먹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미 물고기가 뱃속에 품고 있던 미출생 배아였다. 뼈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은 위산에 의해 부식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껍질에 아로새겨진 매우 미세한 무늬는 판피어류 치어의 전형적 특징과 일치했다. 더욱이 나는 표본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함으로써, 사진에 포착되지 않았던 치어의 형태와 특징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기가 발견되었으니, 이젠 아빠를 찾아낼 차례였다. 동정생식이 아닌 다음에야 암컷에게 정자를 제공한 수컷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우리는 고고 유적지와 다른 유적지에서 발견된 표본들을 찾아 영국 자연사박물과 전체를 깡그리 뒤졌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애타게 찾던 증거는 바로 우리 코앞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호주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는 보물을 내버려 둔 채, 엉뚱하게 먼 영국 땅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척추동물의 페니스를 찾던 우리는 “우리가 아는 판피어류의 화석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들만을 골라, 배지느러미를 모두 비교해보자.”고 의견의 일치를 봤다. 케이트와 제리나는 서호주 박물관과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고고 화석을 찾아보기로 하고, 나는 멜버른 박물관을 맡았다. 멜버른 박물관에는 그 동안 내가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연구했던 화석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특등품’만을 골라 라텍스 주형을 다시 떴다. 차제에 ‘혹시 내가 초기 연구에서 간과했던 것은 없는지’도 확인해볼 요량이었다.

2008년의 전면 재검토 작업 결과, 필로레피스의 기기연골에서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기다란 기기연골이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가늘어지더니, 어느 순간 마치 뭔가가 잘려나간 것처럼 뭉툭한 절단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논란 끝에 이 부분을 ‘본래 기각이 부착되어 있다가 잘려나간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2008년 후반이 될 때까지, 우리는 확실한 물증(기각)을 잡아내지 못하고, 2008년 말, 나는 케이트, 제리나와 함께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했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아르트로디라 물고기의 뱃속에서 배아를 처음 발견했으며, 아르트로디라의 배지느러미 구조가 현생 연골어류(기각을 이용하여 교미하는 어류)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보고했다. 우리는 또한 “초기어류의 진화 과정에서, 교미를 통한 체내수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번식 방법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논문은 《네이처》의 동료심사 과정을 통과하여 2009년 1월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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