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한 끼
주영욱 지음 | 덴스토리
맛있는 한 끼
주영욱 지음
덴스토리 / 2015년 4월 / 240쪽 / 14,000원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가 좋습니다 - 친구들과 함께하기 좋은 맛집
미 피아체_ 청담동 트렌드 세터들도 반한 이탈리안 요리ㆍ강남구
대학교 졸업 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나가던 평범한 주부가 있었다. 한때 ‘현모양처 양성소’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유명한 대학교의 가정대학 출신답게 꽃과 예쁜 그릇,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시댁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저것 일을 거들다 보니 요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리를 제대로 한번 배워 보고 싶다, 주부로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요리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36세라는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요리 공부를 떠났다. 파리의 최고급 호텔인 리츠(Ritz)에서 운영하는 고급 요리 학교였다. 처음엔 단기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배우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 체류를 계속 연장하면서 다양한 요리를 배웠다.
그 시간 동안 요리는 물론 음식을 만드는 기초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 납품되는 식재료를 이용해서 수업을 받으면서 좋은 식재료를 보는 눈이 생겼고, 아주 정성스럽게 공을 많이 들여야만 좋은 음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단순한 소스 하나라도 몇 번씩 끓이고 졸이는 복잡한 과정을 되풀이해야만 제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고, 화려한 프랑스 요리를 배우면서 음식은 역시 눈이 즐거워야 맛도 좋다는 진리를 체득했다. 꿈만 같았던 유학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리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길모퉁이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던 이름도 없는 작은 동네 레스토랑,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사람들이 편하게 찾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2003년, 청담동 골목길에 ‘미 피아체(Mi Piace)’라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김혜령(54세) 사장이 개업 후 처음 내세운 콘셉트는 ‘복잡하지 않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였다. 이 소박한 콘셉트에 청담동의 트렌드 세터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장사가 잘되었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행에 민감한 고객층의 관심이 그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개업한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그동안 쌓았던 내공을 총동원하고, 외국의 유명한 레스토랑들을 찾아가 배우면서 새로운 메뉴들을 개발했다. 다양한 애피타이저를 만들어 메뉴의 가짓수도 늘렸다. 심기일전하여 꾸준히 노력했더니 손님이 점점 많아졌고, 지금은 단골손님이 전체 고객의 50~60%를 차지할 정도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미 피아체의 음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성’이다. 열심히 준비해 정성 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으로 꽉 찬 맛이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써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고, 다른 곳보다 양도 푸짐해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또 음식이 나오는 그릇도 아기자기해 눈마저 행복해지는 곳이다. 그릇과 꽃들 모두 김 사장이 직접 준비한다고 한다. 김 사장은 요리를 제대로 즐기면서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요즘 다이어트니 건강이니 하면서 일부러 음식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기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집에 온 손님을 잘 대접하고 싶은 안주인의 마음 그대로다. 미 피아체는 이탈리아어로 ‘나는 좋아한다’라는 뜻이다. 미 피아체를 한 번 찾은 사람들은 그 정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야진 생태찌개_ 싱싱하고 푸짐한 생태가 보글거리면 마음도 따뜻해지네ㆍ강남구
명태만큼 우리나라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온 생선이 있을까? 사시사철 여러 가지 음식으로 우리 밥상을 즐겁게 해주고, 심지어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 이른바 ‘국민 생선’이다. 온몸에 실타래를 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잡귀를 감시하는 역할까지도 한다. 가수 강산애는 <명태>라는 노래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감사합니데이”라고 명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받는 만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생으로, 반쯤 말려서, 바짝 말려서, 얼려서, 얼렸다 다시 말려서 등 다양하고 복잡하다. 겨울에 먹는 명태 요리의 최고봉은 역시 얼리지 않은 생태로 끓이는 생태찌개다. 산란기여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알이 가득 찬 신선한 생태로 끓인 얼큰한 찌개는 추운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녹이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겨울철이면 참새 방앗간처럼 찾는 생태찌개 집은 삼성동에 있는 ‘아야진 생태찌개’다. 싱싱한 생태가 보글거리는 넉넉한 냄비를 마주하고 앉으면 먹기도 전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비린내나 잡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국물과 부드러운 생태 살이 입안에서 즐겁게 부서져 내린다. 김숙자(68세) 사장은 원래 강릉에서 큰 음식점을 오랫동안 운영했던 분이다. 그런데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고, 설상가상으로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빚만 늘어갔다. 자녀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싫어서 식당을 정리하고, 60세의 늦은 나이에 돈을 벌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식당을 하는 지인에게 사정사정해 어렵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설거지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20여 일 만에 주방장이 주인하고 싸우고 그만두는 바람에 얼떨결에 음식 조리를 맡게 되었다. 옛날에 음식점을 운영하던 솜씨로 생태찌개를 끓였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었다. 1년쯤 일하다가 몸이 아파져서 쉬고 있는데 단골손님이었던 분이 찾아와서 동업을 제안했다. 김 사장의 음식 솜씨를 인정한 것이다. 자신은 돈을 대고 운영을 맡을 테니 김 사장이 요리를 맡아서 함께 음식점을 해보자고 했다. 좋은 기회다 싶어 고향 지역의 이름을 딴 ‘아야진 생태찌개’를 함께 오픈한 것이 2007년이었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맛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식사 때면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빚도 모두 갚았고, 돈도 좀 벌었다고 한다.
김 사장이 말하는 ‘생태찌개를 맛있게 만드는 법’은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싸더라도 1등급의 싱싱한 생태를 사용하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깨끗하게 다듬어 비린내와 잡미가 없도록 한다. 그리고 육수도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서 오랫동안 끓여, 깊고 풍부한 맛이 나도록 정성껏 준비한다. 생태의 양도 다른 집보다 더 푸짐하게 넣는다. 이렇듯이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성을 다해 요리하고, 거기에 양까지 푸짐하면 성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 하나도 다르다. 이미 구워진 맛김을 사용하지 않고, 생김을 사서 직접 구운 다음에 손으로 뜯어서 손님상에 낸다. 가위로 자르면 맛이 떨어진다는 고집 때문이다. 이런 세심한 정성들까지 더해져 이곳의 음식이 더욱 특별해지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명태는 그 성질이 따뜻해서 장기를 따뜻하게 해 주고, 기운을 보충해 준다고 한다. 국물도 따끈해서 추위를 달래기에도 좋으니 겨울철 이만한 음식이 또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음식을 준비하는 이곳 분들의 정성에 마음이 먼저 훈훈해진다.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힐링 맛집
문경집_ 야생 산나물에 조선간장 양념장, 보약이 따로 없네ㆍ송파구
예로부터 건강한 식생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자연 변화에 반응하기 때문에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몸에도 좋다고 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우리 선조들의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 ‘신토불이(身土不二)’ 사상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음식 중 아주 소중한 것이 바로 봄에 나는 야생 산나물이다. 추운 겨울 동안 살아남아서 싹을 틔워 올리고,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자라난 산야초(山野草)는 강인한 생명력의 결정체다. 이 산야초로 만든 산나물은 우리 몸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물론,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해 노곤해지는 몸에 활력을 주는 완벽한 제철 음식이다. 야생 산야초는 제철인 4~6월에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문경집’은 야생 산나물로 만드는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주인인 김종대(60세) 씨가 매해 봄마다 경상북도 문경에 내려가서 직접 구해 오는 취나물, 참나물, 영아자, 어수리, 곤드레, 사향초, 거름대, 엄나무순 등 여러 가지 향긋한 산나물로 비빔밥을 만든다. 제철이 아닐 때는 냉동해 놓은 산나물을 사용한다. 1992년,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김 사장은 문경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부인과 함께 식당을 열기로 결심했다. ‘산골 메밀묵’이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이 그 시작이었다. 어머니가 만드시던 메밀묵 밥, 안동 국시, 보리밥 등의 소박한 향토 음식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식당도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갔다.
고향 음식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아예 문경 향토 음식으로 특화하기로 했다. 상호도 지금의 ‘문경집’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때부터 각종 야채, 산나물, 쌀, 돼지고기 등의 모든 식자재를 문경에서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추장, 간장, 된장도 문경에서 고춧가루와 콩을 가져와 직접 만든다. 경상북도 문경은 중산간 지역으로 일교차가 심해 채소의 향과 맛이 좋고, 청정지역이라 좋은 식재료가 많다고 김 사장은 자랑한다.
문경집 음식의 특징은 모든 음식이 건강식이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부인이 주방장을 맡고, 김 사장은 식자재 선택과 손질을 맡는다. 20여 년 동안 매주 메밀묵과 두부를 직접 만든다는데, 그 시간과 과정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는 울퉁불퉁하게 변형되고 휘어진 김 사장의 손가락 마디를 보면 알 수 있다. 손님이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해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에게 손님들은 단골이 되는 것으로 보답했다. 지금은 오랜 단골손님들이 손님의 60~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봄에 맛보는 문경집의 야생 산나물 비빔밥은 그야말로 싱그러움의 집합체다. 향긋한 초록의 산나물들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향으로 조화롭게 입안을 가득 채워 준다. 오랜 노하우로 무르지 않고, 적당하게 씹히는 맛도 좋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고추장을 넣어서 비벼 먹는데 이곳에서는 조선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으로 비벼서 먹는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막상 먹어 보면 산나물 본연의 향을 더 잘 즐길 수 있고, 뒷맛도 개운하다. 이 귀한 비빔밥을 먹고 있으면 봄 햇살과 추운 겨울 동안 농축된 땅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생명력이 몸 안에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보약 한 첩이 따로 없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데, 쓰지 않고 향긋하면서 맛도 좋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카페 휘바_ 몸에도 좋고, 맛도 있는 북유럽 건강식ㆍ경기도 양주
‘건강에 좋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하는 곳이 어디 없을까?’ 하고 찾아다니는 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 송추에 있는 ‘카페 휘바(hyvaa)’다. 북유럽의 건강식을 테마로 해서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원칙은 세 가지다. 소금을 적게 사용하고(less sodium), 설탕을 적게 사용하며(less sugar), 기름기가 덜한(less fat) 음식들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체득한 요리법으로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휘바의 특징이자 자랑이다.
짠맛의 경우, 음식에 직접 소금을 넣지 않고 해산물 같은 음식 재료가 원래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짠맛을 이용해서 간을 맞춘다. 짠맛이 약해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신맛 같은 다른 맛으로 보완한다.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일반 설탕이 아닌 과일에서 나오는 과당(fruit sugar)을 사용한다. 혈당을 올리지 않아서 비만이나 당뇨병 환자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당분이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면 건강을 위해서는 맛없어도 먹어야 한다는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휘바는 건강 음식 관련해서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조원장(57세)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조 대표는 ‘휘바~ 휘바~’라는 광고로 유명한 핀란드산 천연 감미료, 자일리톨 성분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해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휘바는 핀란드어로 ‘참 잘했어요’라는 뜻이다. 조 대표는 25년 동안 핀란드와 덴마크의 식품 원료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다. 건강 다이어트에 대한 책도 쓰고, 각종 매체와 학술지에 꾸준히 기고해 온 건강 음식 이론가이기도 하다. 정년 퇴임 후 건강 관련 음식점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어 온 셰프와 뜻을 모아 2013년에 휘바를 열게 되었다.
이 카페가 들어선 곳은 원래 조 대표의 부모님께서 30년이 넘도록 가꾸어 온 농원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휘바에서 사용하는 모든 야채는 농원에서 직접 유기농으로 가꾼 것들이다. 건강 음식 이론가와 전문 셰프가 만나서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원칙들을 지키면서 만드는 요리라고 하니 듣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거기에다가 맛까지 훌륭하니 화룡점정이다.
이곳에서는 철따라 계절의 특징을 살린 메뉴가 개발된다. ‘송추의 봄’이라는 브런치 메뉴는 이름에서부터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신선한 로메인(romaine, 상추의 한 종류)에 발사믹 소스를 얹은 샐러드와 빵,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넣어서 만든 오믈렛, 라타투이(ratatouille, 이탈리아식 야채볶음) 그리고 염도가 낮은 훈제 삼겹살로 만든 베이컨, 여기에 500년 넘은 농원의 뽕나무에서 직접 딴 오디를 숙성시켜서 만든 식전 음료 한잔까지 함께한다.
송추계곡은 1970~1980년대에 아주 유명했던 유원지였다. 새로운 놀이 장소들이 많아진 요즘 그 명성이 시들해졌지만 도봉산, 북한산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채로는 여전히 아름답다. 봄 마중 나들이도 하고, 건강한 브런치도 즐길 겸 ‘송추의 봄’을 찾아 나서 보자. 봄기운 가득한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휘바~ 휘바~’ 하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이 새삼 고맙습니다 - 부담 없이 즐기는 골목 맛집
광화문집_ 젓갈 뺀 시원한 김치와 넉넉한 돼지 생목살의 궁합ㆍ종로구
긴 유럽 출장의 끝자락, 터키의 어느 작은 해변 도시에 간 적이 있다. 지중해 휴양지답게 풍광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오랜 출장에 지친 탓인지 경치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거창하고 고급스런 서양식 만찬도 신물이 났다. 그저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 비벼서 뚝딱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 식당을 찾아보려 애쓰다 공연한 그리움만 커졌고, 덕분에 남은 일정은 더 고달파졌다.
마침내 일을 마치고 수도인 이스탄불로 넘어왔다. 이틀 밤을 더 보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기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국 식당을 수소문했다. 두 군데의 한국 식당 정보를 얻었지만 하나는 잘못된 주소였고, 하나는 하필 식당이 쉬는 날이라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시 그곳을 찾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한국 음식은 돼지고기 대신 가공 베이컨을 넣고 끓인 김치찌개였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먹었던 김치찌개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훌륭한 맛이었다. 김치찌개 한 그릇 덕분에 해외 출장의 피곤함과 외로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잦은 해외 출장 탓에 남들보다는 외국 음식에 제법 익숙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한국 음식을, 그것도 김치찌개를 간절히 원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다음부터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의식적으로 김치찌개를 찾아 먹게 되었다. 출장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가장 먼저 찾는 음식 ‘영순위’는 김치찌개가 되었다. 김치찌개를 잘한다는 집은 꼭 찾아가 보는 습관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