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의 비밀
김현수 지음 | 덴스토리
중2병의 비밀
김현수 지음
덴스토리 / 2015년 2월 / 272쪽 / 13,500원
회자되는 중2병 이야기
중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면 학년마다 대답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내용의 유머가 있습니다. 1학년을 부르면 “네.”라고 답하고, 2학년을 부르면 “뭐요?”라고 답한답니다.(잘못 부르면 한판 할 기세) 3학년을 부르면 귀찮다는 투로 “왜요?”라고 답합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벌써 선생님이 부를 때 대답하는 태도부터 달라져 있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가정이나 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워진 2학년, 그러니까 만 14세, 우리 나이로 15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던 찰나, 언론에서 찾아낸 재미있는 소재가 일본에서의 중2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중2병이란 말이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소식통들이 전해온 단신부터인 것이지요. 중2병은 일본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주인 히카루의 ‘심야의 엄청난 힘’>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1999년 진행자인 이주인 히카루가 방송 중에 “나는 아직 중2병에 걸려 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회자된 중2병의 특징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말로 하면 ‘허세 쩌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소개된 일본 중2병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아래의 여덟 가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오타쿠 용어의 기초지식』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1. 맛도 없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2. 인기 밴드에 대해 “뜨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정색을 한다.
3.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4. 엄마에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해달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5. 사소한 토론이나 분쟁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했을 때 승리를 건방지게 우월화하고, 또는 패배를 심하게 합리화한다.6. 이기거나 지는 것을 스스로 좋아한다.
7. ‘나는 신’ 혹은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8.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웹툰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중2병을 정의하였는데, 중2병이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고독하며 세상을 등진 존재라 여기는 증상을, 몇 학년 더 먹은 사람들이 비꼬아 만든 신조어”라고 하였답니다. 이런 것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마치 아이들이 중2병에 걸리고 싶어 하거나, 자신들의 세대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과도하게 만들려는 시도처럼 비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자신들에 관해 규정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특별하게 대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단지 중학생들이라고 불리기보다는 특별한 중학생들이라고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특별히 잘하는 아이들을 제외한 다수의 중학생들, 혹은 1등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아이들이 받는 사회적 수준의 자기애적 손상(narcissistic injury)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14세, 15세의 아이들 다수가 중학교에 와서 겪는 내면의 손상은 바로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에도 이런 우열의 아픔을 느끼지만 자의식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라 아픔이 덜하다가 중학교에 와서는 정말 아파지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점차 알아갑니다. 상위 그룹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는 상실과 슬픔은 큰 아픔입니다. 아이들이 겪는 열다섯 살의 자기애적 손상, 나는 잘하는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잘하는 아이들의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아픔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시기에 모두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조용하게 지르는 아이들은 무기력해지기 쉽고, 크게 지르는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파괴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합니다. 존재감을 위협당하는 것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반응하는 것이지요.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느낍니다. 민감한 부모,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아픈 비명을 예민한 귀로 탐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 선생님들은 난청에 가까울 정도로 듣지 못합니다. 그저 열심히 하지 않은 아이들을 욕하기에 바쁘지요.
아이들은 전국의 동년배들이 서 있는 긴 줄에서 자신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 줄에서 빠져야 되나, 계속 서 있어야 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기분이 유쾌할 리 없습니다. 사실 참담한 상태이지요. 내 자식은 잘하니까 그런 내면의 아픔은 겪을 일이 없다고요? 혹시 어렴풋이나마 기억하시나요? 내가 대단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 우리 엄마ㆍ아빠가 그렇게 예뻐해주시고 잘해주셨지만 나는 그냥 70명 반 아이들 중에 중간 정도 하는 아이였다는 것을, 그때 그 마음을 처리하던 자신의 내면세계를 기억하시느냐 말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잘하는 소수의 아이들에게는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면서도 나머지 다수의 아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은 하지 않습니다. 때로 위로나 격려를 한다고 하지만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지요. 새로운 기준의 제시, 이런 것에는 정말 무능한 상태이고요. 요즘 아이들은 이 과정을 더 아프게 겪는 것 같습니다.
허세ㆍ선빵이 최고의 맞불
이렇게 왜소해진 상태의 자신을 보면서 아이들은 여러 궁리를 합니다. 다양한 공상과 환상을 갖겠지요. 아이들에게 “아무 생각이 없다.” 이런 말은 정말 금기에 속하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가장 흔한 말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서 탈입니다. 다만 이야기하지 않을 뿐입니다. 때로는 잘 정리되지 않아서, 때로는 아직 그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어서요.
하지만 무시당하는 느낌을 가질 때,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어기제는 부인하고 오히려 과장해서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말하는 “허세 쩐다.”의 피상적인 심리기제입니다. 큰소리치고 말 못하게 하고 두고 보라고 하고 까칠한 분위기 만들고 하는 등등. 이는 아이들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두려워서 만드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허세를 부려서 순간순간 모면하고 말로 받는 심각한 자기애적 손상을 줄여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예 그런 분위기를 선제적으로 만들어서, 즉 선빵을 날려서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침울하고 까칠하다가, 또 어떤 때는 큰소리치고 걱정하지 말라며 기세등등하게 나가고, 이런 왔다 갔다 하는 상태가 초기 청소년기 기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알아채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이 침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어합니다.
15세, 미래로 가는 버스의 승차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등급이 다른 버스가 내 버스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때로는 이 세상이 확 변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도 별로지요.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주인공만 살릴 테니까. 지금 연출되는 학교라는 무대에 나는 몇 번 등장하지 않는데, 엄마ㆍ아빠는 큰 꽃다발을 들고 보러 올 것입니다. 그래서 “오지 말라고, 오면 난 무대에 서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실 무대에 몇 번 혹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막은 내렸습니다. 이런 기분으로 우리 아이들이 오늘 집을 나설 수도 있답니다.
노력과 능력의 프레임
노력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15세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 기로에 섰을 때 노력하는 대신 가장 좋은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 ‘나는 공부 머리가 아니다.’라고 하는 머리 탓입니다. 고착된 능력으로서의 머리를 탓하면서 노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관하여 스탠퍼드 대학에 있는 캐럴 드웩은 여러 가지 이론을 수립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부류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고 고정되어 있어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과제가 어려워지면 머리 탓, 능력 탓, 운명 탓, 환경 탓을 하면서 과제를 포기합니다. 이런 고착된 마인드세트를 가진 사람은 발전이 어렵습니다.
반면 또 다른 부류는 능력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고 시도와 실패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과제가 어려워지면 노력을 더 하고 새로운 방법과 비결, 관점을 찾아 과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간다고 합니다.
캐럴 드웩은 이 두 부류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능력을 탓하는 사람들은 평가목표를,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학습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평가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어떤 평가를 받느냐입니다. 자신의 흥미와 성장을 위한 목표는 없습니다. 반면, 학습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이고 흥미이며 교훈입니다. ‘지금 어떤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이 불쾌하기만 한 경험이 아닙니다. 배우고 익히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제가 어려우면 힘든 면도 있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의 자녀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한 훈육, 잔소리는 노력과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나요? 저는 이 패러다임에 대해 여러 책에 썼고 강의에서도 많이 이야기해왔습니다. 정말 중요한 삶의 프레임입니다.
중학생이라면 목표 선택의 경향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태도를 선택해서 행동합니다. 아주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은 아니지만 이미 평가목표 성향이 몸에 밴 일부의 14세, 15세 아이들은 이 프레임에 따라 움직여가기 시작합니다. 즉, 노력은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원래 좋았던 머리가 아니었음을 탓하고, 공부가 싫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혹은 재능이 없는 분야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특정한 행동을 보입니다. 흉내만 내거나(부모에 대한 미안함으로), 무기력해지거나(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반항하거나(기대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게임에 슬슬 더 깊이 발을 담그는(도피하기 위해서) 등 여러 행동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오해는 금물입니다. 어떤 오해냐 하면,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슬픈 생채기들이 다들 조금씩 남아 있습니다.
부모가 명심해야 할 자기 점검 Tip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봐주시고 노력해서 나아지는 법을 알려주시는 부모가 되어주세요. 그러기 위해 다음 사항을 명심해주세요.- 노력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되어주세요. 잘하지 못한다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세요.- 실패를 후벼 파기보다 아이들이 성공한 것을 부각해주세요. 아이의 성공을 발견해주는 부모가 되어주세요.- 성공보다 ‘성공의 비결’,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의 교훈’을 물어봐주는 부모가 자녀에게 힘이 됩니다. 혼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격려와 칭찬은 의무이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1일 1격려, 1일 1칭찬은 필수 영양분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적어도 25~30년의 세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달라도 너무 다른 시대에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몸의 변화가 가져온 거실 혁명
2차 성징의 본격적인 발현은 가정 내에서도 금기를 가져옵니다. 가족이지만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엄마 젖을 만지고 벌거벗고 지내고 한방에서 자고 하는 것은 끝난 일이지요. 부모 입장에서도 초등학생 때까지 쉽게 했던 예쁘다고 엉덩이를 두드리고 만지는 것, 몸을 쓰다듬는 것, 이런 관계가 끝난 것입니다. 아무리 단출한 세 식구(부모, 아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계가 없다면 사춘기 청소년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성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남자아이는 다른 사람을 임신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자아이는 아기를 임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른 사람 안에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적 관계, 즉 부모도 포함이 되지요.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어떤 형태의 경계, 금기에 따른 선이 그어져야 합니다. 예전처럼 가까이 지낼 수는 없는 것이지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서 큰 상실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이는 의존하면서 지냈던 부모와 서먹한 면이 생기면서 유아성이 상실되고, 부모는 자녀를 유아처럼 예뻐할 수 있었던, 품 안에서 키울 수 있었던 상황을 상실하게 됩니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피터 블로스라는 사람은 유아기에 있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다시 재활성화되면서 그 해결 과정으로 가족과의 분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거나 부모에게 의지를 해서 지낼 수 없다는 압력이 주어짐과 동시에 독립과 더불어 다른 이성에 대한 동경, 갈망도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이 시기의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때때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컸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할 때는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제 저것이 말도 안 하네.’, ‘문은 왜 닫아?’ 하는 생각에 섭섭해지고 자녀 입장에서는 ‘아직도 날 아기 취급하려 드네.’, ‘언제까지 부모 마음대로 하려고 저러지?’ 하는 마음에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이런 상실에 건강한 부모는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을 진행합니다. ‘얘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젠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지요. 건강한 아이는 “저 혼자 좀 있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시작합니다. 이 거리는 아이들에게는 존중의 거리입니다. 그런데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고집을 피웁니다. 자신이 크던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는 비교를 하고야 맙니다. “예전에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살았을 때도 있었다.”, “어디 벌써부터 문 닫고 제 맘대로 하려고 드는 거야?”
사회가 더 자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의 성적 충동과 성생활을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성교육, 이성 교제를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데이트 교육도 필요하고 또 성적 충동을 해소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신체 활동과 예술 활동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방송이나 인터넷을 다루는 요령과 성 정보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에 관한 지침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자극을 주어놓고 더 많이 참으라고만 하면 불공평하지요. 주변은 모두 성적으로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쳐다보면 안 된다고만 하는 것은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니까요. 사람을 화나게 하는 일이지요.
한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부모들이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 하지요?” 사실 부모님들이 성교육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님들과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니까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성 친구가 생겼을 때라든지 좋아하는 이성 연예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또 몸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물을 때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안심시켜주고,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연애를 시작하므로 연애에 대한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연애, 데이트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데이트를 하도록 도와야지요.
금지하면 더 하고 이해하면 조절한다
“연애, 화장, 아이돌. 정말 우리 애가 중학교 올라가서 엄청 바빠졌는데 그게 다 연애, 화장, 아이돌 문제들이에요. 적당하게 관심 가지면 누가 뭐라 하나요. 아주 아이돌과 같이 살다시피 해요. 미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