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김원섭 지음 | 원앤원스타일
아주 특별한 세계여행
김원섭 지음
원앤원스타일 / 2014년 12월 / 376쪽 / 17,000원
1부 아시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역사 깊은 실크로드의 중심지 카슈가르 - 중국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카슈가르는 녹색 융단을 펼쳐 놓은 듯했다. 우루무치에서 텐산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넌 후에 만난 푸른색이라 더 반가웠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이름처럼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땅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왕래하던 대상들은 이 사막의 남북 언저리를 지나는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다. 이 실크로드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에 카슈가르가 위치해 있다. 약 2천 년 전부터 중국과 서역을 오가던 사람과 교역품은 반드시 카슈가르를 통과하게 마련이었다.
중국에 속하지만 우리가 아는 중국과는 다른 카슈가르: 카슈가르는 일 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역임에도 농업과 목축이 발달했다. 북쪽의 텐산 산맥과 남쪽의 쿤룬 산맥, 서쪽의 파미르 고원에서 스며든 빗물이 복류하다가 카슈가르 주변에서 솟아나 오아시스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실크로드상의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동서양의 문화도 이곳을 거쳐 가며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4세기에는 로만 글라스가 동쪽으로 전파되어 신라 경주에 이르고, 유럽에 수출된 청화백자가 르네상스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지리학도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실크로드 깊숙이 있는 도시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카슈가르는 중국에 속하지만 우리가 아는 중국의 모습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유목민이었던 위구르인들이고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양고기와 낭(빵)이 주식이고, 달고 향기로운 하미과(멜론의 일종)를 먹는다. 한여름이지만 해발 1,294m의 고원 도시라 바람이 시원했다. 구시가지의 중심 치니바그 호텔 앞에서 지하도를 건너니 청진사로 향하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청진사 후문에 이르자 길거리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면도칼로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 풍경이 우리나라의 1970년대 풍경 같아서 반가웠다.
청진사는 중국에서 부르는 이슬람 사원으로, 정식 명칭은 ‘에티갈 마스지드’다. 2개의 첨탑(미너렛)이 인상적인 모스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진노랑으로 빛난다. 안으로 들어가니 꽃과 나무로 장식한 정원이 나오고 기도실로 이어진다. 이 지역에 이슬람교가 들어온 것은 10세기경부터라 한다. 에티갈 마스지드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무슬림의 성지다. 이 사원의 역사는 1442년부터 시작되었다. 평일에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요예배 때는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이 기도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스크 안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남자들에게만 예배가 허락된다고 한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카슈가르 국제 바자르: 오후에 구시가지를 거쳐 국제 바자르(시장)로 향했다. 바자르 입구의 모스크 앞을 지나는데,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온몸을 감싼 차도르 차림의 미망인이 숨죽여 울고 있었다. 이슬람 도시를 여행해보면 대부분 남성이 경제의 주체이고, 여자들은 집안일만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 일찍 사망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무슬림이 지켜야 할 5대 의무 중의 하나로 ‘자카트(자선)’를 중요시한다. 잠시 지켜보니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인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시장은 어딜 가나 그렇듯이 카슈가르 국제 바자르 역시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카슈가르 시내 동북쪽 투만 강 동안에 위치해, ‘중국-서아시아 국제무역시장’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시장에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물건들로 넘쳐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5천 개가 넘는 점포에 소, 말, 낙타, 양부터 전자기기와 그릇, 옷가지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시장에서 빠지면 서운한 것이 바로 현지 음식이다. 시장 한쪽에서 면 요리와 볶음밥, 양 꼬치와 양 백숙, 빙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요리가 위구르 국수인 빤미엔(拌麵)이었다. 양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소스 그리고 면이 따로 나와 비벼 먹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고 달달하고 깔끔한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한 쌀이 귀한 이 지역 최고의 음식은 볶음밥으로, 과거에는 잔칫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고 한다. 쌀밥에 양고기와 양파, 당근, 피망 등을 넣고 볶아낸 볶음밥을 여행하는 내내 맛있게 먹는다. 양 백숙은 큰 컵에 양고기와 채소를 넣고 화덕 위에서 오랜 시간 끓인다. 기름진 소고기국 같은 맛으로, 나날이 지쳐가는 여행자의 기력 회복에 최고였다. 또 이곳의 명물 하미과는 달고 향긋한 맛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면 5명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하미과의 달고 향기로운 맛이 지금도 그립다.
빛의 도시 바라나시에 진짜 삶이 있다 - 인도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이 화두의 답을 찾아 바라나시로 떠났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찬란한 빛의 도시 바라나시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다. 인도 사람들이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 강가에는 많은 힌두교 사원이 있고, 길게 늘어선 가트와 화장터가 있다. 사람들은 매일 강물에 몸을 씻고, 물을 마시고,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또 죽어서도 육신의 재가 갠지스 강에 뿌려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갠지스 강에서 맞은 찬란한 아침: 아침 5시. 푸른 새벽에 나는 갠지스 강가로 향하는 릭샤에 오른다. 근육질의 릭샤왈라(릭샤를 운전하는 사람)는 금세 나를 강가에 데려다준다.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보고 있으니 성스러운 기운이 전해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많은 수행자와 사람들이 해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가가 일순간 술렁인다. 사두(힌두교 수행자)뿐만 아니라 운집한 사람들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를 올린다. 어느 가족은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져온 공양물을 신에게 바치며 기도를 한다. 강물에 소원을 담은 등불을 띄우며 금잔화를 바치고, 신상에 꽃을 바치며 기도를 올린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을 아침 풍경이 지금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요즘도 이곳 사람들의 신심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바라나시는 인도 최고의 성지로 남에서 북으로 갠지스 강이 흐른다. 이들은 ‘어머니’라 불리는 갠지스 강물이 ‘신비한 힘’, 즉 생명과 정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살아생전의 모든 죄가 씻기고, 죽은 육신을 갠지스 강에서 화장하고 그 재를 강에 뿌리면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곳은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일 년 내내 북새통을 이루고 강가 화장터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나룻배를 타고 강 안쪽으로 들어간다. 강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는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 50년 이상 노를 저었다는 뱃사공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져온 초코파이를 하나 건넨다. 사공은 맛있게 먹더니 손으로 강물을 떠서 마신다. 오염된 강물을 마셔도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지만 사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기만 한다.
다시 강가로 돌아와 걷는다. 강가에는 작은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많은 사두들이 보인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그중 몸에 진흙을 바르고 나체수행을 하는 일련의 사두들이 눈길을 끈다. 온몸에 회칠을 한 전라의 수행자들.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웃으며 허락해준다. 이들은 무소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수행하는 사두들이다. 속옷조차도 소유의 집착을 가져온다며 나체수행을 하고 있다. 다른 수행자들도 옷은 입고 있지만, 가진 것은 단벌옷과 작은 주머니 그리고 지팡이 하나가 전부다. 이들은 “물건을 많이 갖고 있으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야 온전하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삶의 2가지 진리: 뜨거운 대낮의 볕을 피해 라씨(Lassi, 인도식 요구르트)를 한 잔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눈앞에서 운구행렬이 지나간다. 4명의 남자들이 시신을 올려놓은 까빤(대나무로 만든 들것)을 메고 화장터로 가고 있다. 죽은 이는 은색의 화려한 수의를 입고 목에는 금잔화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남자들은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연신 “람 남 사뜨야 헤이(Ram Naam Satya Hai, 람의 이름은 진리다).”를 외친다. 람은 인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인공으로 비슈누의 화신이다. 류경희의 『인도의 종교와 종교문화』에 따르면 “삶에는 2가지의 진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는 것이다. ‘람 남 사뜨야 헤이’라고 읊으면서 시신을 운반하는 까닭은 죽음은 진리이며 동시에 그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진리임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장례행렬을 따라 강가의 마니까르니까 화장터로 향한다. 화장터에는 화장용 장작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문득 화장 절차가 궁금해진다. 장작더미가 준비되고 시신을 강물에 담그는 것으로 정화의식을 한다. 그다음 사제가 경전 구절을 낭송하는 가운데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간단한 의식을 하고 삭발을 한 뒤 하얀색 옷을 입은 상주가 불을 붙인다. 이들은 불을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보기 때문에 화장을 선호한다. 이후 망자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며 장작더미 주위를 돈다. 시신이 완전하게 타기까지는 3~4시간이 걸리는데, 지켜보는 가족들은 담담하다. 모두들 덤덤하게 지켜볼 뿐이다. 이들은 죽음 또한 일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회를 믿는 인도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화장 후의 육신은 5가지 물질요소로 돌아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영혼은 새로운 몸을 취해 다양한 생명체로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에게 몸이란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는 옷과 같고, 죽음은 영혼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화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담담했고 통곡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올 수밖에 없는 곳,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든 불가촉천민이든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야 하는 것이 진리다. 결국에는 연기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은하수 내리던 환상의 하늘호수, 판공초 - 인도
인도 히말라야 산맥 북쪽 끝자락, 해발 4,350m에 위치한 판공초는 하늘과 닿아 있어 ‘하늘호수’라 불린다. 호수의 물은 맑았고 만년설을 머리에 인 산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롭게 느껴졌다. 호수도 아름답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도 매력적이다. 마치 외계의 어느 별에 온 듯, 거칠고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물이 있는 곳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고, 푸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야크 떼와 파시미나 양 떼들이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천상의 세계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닿아 있는 마법의 하늘호수: 판공초는 라다크 지역의 중심도시 레에서 약 150km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1시간 30분이면 도달할 거리지만, 급경사를 이루는 산에 지그재그로 난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야 하기에 자동차로 4시간이 걸렸다. 레에서 가까운 곳은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만, 고갯길은 대부분 비포장이라 먼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동차까지 지독한 매연을 내뿜고 있어 견디기 힘들었다. 창 라 고개의 정점에 오르자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고 호흡은 가빠지며 머리는 깨질 듯 아파왔다. 한여름이었지만 윈드재킷을 입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쌀쌀했다.
창 라 고개는 해발 5,36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자동차 도로가 있다. 고갯마루에는 작은 곰파(사원)가 있고, 수많은 룽다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오색 천에 새긴 부처의 말이 세상 곳곳에 퍼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것이다. 일행들과 얼른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산반응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창 라의 급경사 길을 내려가자 푸른 초원과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이 나타났다. 고생 끝에 도착한 판공초 호수는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고 아름다웠다. ‘길고 좁은 마법의 호수’라는 뜻의 판공초. 이렇게 청청하고 아름다운 호수는 생애 처음이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호수에 발을 담그니, 발이 아릴 정도로 차가웠고 물맛은 짭조름했다. 판공초는 인도와 티베트에 동서로 길게 걸쳐 있는 호수다. 길이 134km, 해발 4,350m로 사방으로 해발 7천 미터가 넘는 고산들에 둘러싸여 ‘하늘호수’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런데 다른 호수와 달리 판공초는 소금호수다. 육지에 웬 소금호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판공초는 약 6천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곳이다. 인도 판과 아시아 판이 충돌하면서 지각이 서서히 솟아올랐고, 바다의 일부분이 산맥 사이에 갇혀 만들어진 염호다. 그래서 판공초에는 다른 호수와 달리 아득한 옛날부터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래를 비롯해 다양한 바다 생물들이 살아간다. 갈매기도 날아다닌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호숫가를 산책하고 라면을 끓여 저녁식사를 했는데, 내 생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 호수의 저녁 풍경을 촬영하고, 호숫가 숙소에서 잠이 들었는데 호흡곤란으로 잠이 깼다. 다시 누웠지만 악몽과 함께 호흡이 가빠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늘호수에서 은하수를 마음에 담다: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차라리 은하수를 촬영하러 나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판공초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이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짧게 그치듯 별똥별도 내리고 있었다. ‘밤하늘에 별이 저렇게 많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많은 별들 중에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이 지구뿐이라면 공간 낭비다.”라던 영화 <콘택트>의 대사가 생각났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은하수를 마음에 담고, 또 카메라에 담았다. 은하수를 카메라에 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준비하고 삼각대가 있어야 한다. 나는 15mm 광각렌즈로 은하수를 담았는데, 은하수의 1/3도 못 담아서 많이 아쉬웠다. 10mm나 화각이 180도인 어안렌즈를 사용하면 은하수를 더 넓게 담을 수 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의 감도(ISO)는 2500, 조리개는 f2.8, 셔터속도는 25초, 초점은 수동으로 무한대로 맞추면 신기하게도 카메라에 은하수가 담긴다. 이렇게 촬영한 뒤 포토샵 등 보정 프로그램에서 밝기를 밝게 해주면 현장에서 본 은하수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멋진 사진이 된다.
새벽 5시가 되자 서쪽 하늘은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고, 동쪽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을 품은 호수 또한 오렌지빛, 체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하늘과 호수가 연출하는 신비로운 풍경화에 빠져들었다. 호수의 아침은 쌀쌀했지만, 청정한 아침 기운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늘호수는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판공초 호수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면의 배경지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곳곳에서 “All is well(모든 것은 잘될 거야)!”이라며 힘들 때와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용기를 낸다. 또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떻게 오늘을 살까?”,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봐.”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름다운 판공초를 배경으로 열연하던 그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