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충격
이일용 지음 | 글드림
지능의 충격
이일용 지음
글드림 / 2014년 11월 / 428쪽 / 16,000원
지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새로운 지식
1인칭 학문의 부재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학습 능력’과 ‘사고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지만, 막상 ‘학습 능력’과 ‘사고력’ 자체는 어떤 학문으로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수많은 학문이 있지만, 막상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해 주는 ‘손에 잡히는 학문’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인생을 연구하는 ‘인생학’은 없으며, 교육을 연구하는 ‘교육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학습을 연구하는 ‘학습학’은 없고,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이란 학문은 있지만 사고력을 연구하는 ‘사고학’이란 학문은 없습니다. 즉, ‘학습, 사고력, 인생’은 다른 학문의 하부 항목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독립된 학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문명의 문제점’입니다. 학문과 지식은 수도 없이 많은데, 모두 다 배워야 하는 학문들뿐이지 정작 우리가 실전에서 직접 쓸 수 있는 학문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인류가 정립한 모든 학문은 대부분 ‘3인칭’이기 때문입니다. 학문이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고 객관성을 확보할수록, 학문은 주관성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관찰 위주의 3인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관성’을 다루는 ‘1인칭 학문’은 쉽게 만들어지기 힘들며, 대신 이런 류의 주제는 ‘나는 이렇게 하여 성공하였다’라는 식의 개인적인 ‘성공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마다 모두 적성이 다르고 장점이 다르니 한 사람의 성공법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는 1인칭의 학문, 실천할 수 있는 학문으로서의 이 3가지 학문(학습학, 사고학, 인생학)이 우리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절실히 인식하고 이것의 부재를 걱정해 왔지만, 불행히도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저는 이러한 중요성과 긴박함을 가슴에 안고 결국 지난 1995년부터 각 학문당 30년을 투자하여 이 3가지 학문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가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이 3가지 학문을 만들려면 반드시 알아내야 할 뭔가 ‘끔찍하게도 어려운 개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습이 안 되는 이유와 사고력이 떨어지는 이유, 그리고 인생이 힘든 이유를 알아내려고 할 때마다 이 모든 이해하기 힘든 증상과 원인들이 결국에는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길래 이런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요? 바로 ‘지능’이라는 개념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습과 사고력,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려면 먼저 ‘지능’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지능’을 그저 똑똑함이나 영리함으로 알고 있던 분들은 잘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생명체에게 행사하는 지능의 영향력과 위엄이 얼마나 광범위하며 근본적인지 알게 된다면, 그동안 인류가 얼마나 ‘지능’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제가 이 3가지 학문을 정립하면서 뜻하지 않게 마주친, 인류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지능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지능으로 착각하기 쉬운 개념들
지능 연구의 중요성
이제부터 ‘지능의 정체’를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이 IQ가 지능을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아직도 IQ로 지능을 측정하도록 방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게다가 애초에 왜 ‘지능의 정의’ 대신에 ‘지능의 측정’부터 하려고 했었던 것일까요? 제가 연구해 보니 여기에는 3가지 착각 - ‘지능’이란 무엇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착각, ‘지능’이란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이라는 착각, ‘지능’이란 무언가를 잘 학습하는 능력이라는 착각 - 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가지를 측정하여 수치화하면 그것이 곧 지능 지수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위 3가지에 사고학의 ‘인과관계의 3분법’을 적용해 보면, 이들은 모두 지능의 ‘현상’일 뿐이지 지능의 ‘원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사후 평가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무엇을 해결하고 나서야 ‘잘 해결하는구나’ 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해결을 하지 않는 더 고차원적인 이유가 있어도 이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죠. 따라서 어떤 것을 더 잘 이해한다고 해서, 또 더 잘 해결한다고 해서, 또 더 잘 학습한다고 해서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 3가지는 지능 지수뿐 아니라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학자들도 모두 ‘지능’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항들이라,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런 오해가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왜 인공지능 학자들은 ‘학습하는 능력’에 그렇게도 매달리는 것일까요? 그래야 ‘자발성’이 가능한 기계가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능’이란 ‘자발성’을 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학습만 잘한다고 ‘자발성’이 습득되는 것일까요? 지능의 진짜 정체를 찾으려면 더 이상 ‘현상’을 ‘원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능에 대한 새로운 질문, 지능의 자격을 말하다
지능에 대한 7가지 새로운 관점
이해력과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학습하는 능력이 ‘지능’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지능’이어야 하는지, 사고학에서 제시하는 다음 7가지 관점의 질문을 함께 풀어 보면서 ‘진짜 지능’에 대한 감각을 키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7가지 관점으로 ‘지능’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지능’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크게 넓힐 수 있습니다.
① ‘불나방’에 대한 질문 - 어떤 곤충들은 자신의 습성 때문에 매우 단순한 환경에서도 탈출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곤충들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로 불나방은 빛에 대한 습성 때문에 불을 보면 불을 향해 나선형으로 날아들다가 결국 타 죽게 됩니다. 불나방에게 하나의 지적 능력만 주어 불나방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② ‘기생충’에 대한 질문 - 어떤 기생충은 숙주의 뇌를 마치 좀비처럼 조정하여 천적에게 잡아먹히게 합니다. 이 숙주 동물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③ ‘개미’에 대한 질문 - 개미나 벌 같은 곤충들은 인간처럼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파리보다 지능이 높은 것일까요? 만일, 파리처럼 사회성 없이 그저 단순한 생활을 하며 산다고 해서 지능이 낮은 게 아니라면, 그리고 ‘사회성’만을 가지고는 지능을 비교할 수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파리와 개미의 지능을 비교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④ ‘오랑우탄’에 대한 질문 - 오랑우탄은 침팬지와 같은 집단 사회를 이루고 살지 않습니다. 혼자 살며 생활도 단조롭습니다. 그렇다면 오랑우탄은 침팬지보다 지능이 낮은 것일까요? ‘사회성’이 지능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지능 차이는 그만큼 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상을 깨고 침팬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오히려 오랑우탄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바로 지능이란 ‘사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성을 띠려면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여러 가지 규칙을 배워야 하므로 더 지능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위의 사례들은 이러한 사실에 심각한 의문을 던집니다.
⑤ ‘배란기’에 대한 질문 - 인간은 왜 발정기가 사라졌으며 인간의 여성은 왜 배란기가 은폐된 것일까요? 포유류 중에 유독 인간만은 발정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배란기는 표시도 안 나고 여성 자신도 이를 거의 알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실패 없이 아이를 가지려면 배란기를 잘 계산해야 한다는 생리학적 불리함을 갖게 됩니다. 즉,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 책을 덮을 때까지 꼭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이 ‘배란기 은폐’와 ‘발정기 소실’에 대해서는 현재 많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무도 명백하게 그 이유를 밝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배란기 은폐’에 ‘인과관계의 3분법’을 적용하여 이를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간주합니다. 즉, ‘배란기 은폐’는 생물학자들이 제시하는 그러한 결과를 위한 ‘원인’이 아니라, 또 다른 ‘숨겨진 진짜 원인’ 때문에 유발되는 ‘현상’일 뿐이며, 그 진짜 원인이 바로 ‘지능’이라는 것입니다. 지능이 발전하면서 그 결과의 하나로 ‘발정기 소실’과 ‘배란기 은폐’라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유독 인간만이 이러한 현상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지능’ 때문이라고 가정하고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⑥ ‘침팬지’에 대한 질문 - 침팬지의 지능은 시간이 흐르면 우리 인간처럼 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생물학 관련 서적에는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인간 순으로 진화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인간 사회의 원형을 자꾸 이들 유인원(침팬지나 보노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이면에는, 이들 사회가 인간 사회보다 ‘먼저 출현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이 있습니다. 즉, 인간 종과 이 유인원 종의 공통 부모는 이들 유인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간 것이죠. 그래야 이들 유인원 사회를 인간 사회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만일 이들 유인원 사회가 인간과 분리된 ‘이후에 출현’하였으며 이들 유인원 사회의 특징이 공통 부모에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 사회의 원형을 인간의 조상에서 찾지 않고 전혀 상관도 없는 침팬지나 보노보 사회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⑦ ‘전두엽’에 대한 질문 - (정상적인) 인간이 뇌의 전두엽 장애로 인한 의지의 상실, 즉 무의지증(abulia)에 걸린 경우 지능은 어떤 상태라고 보아야 할까요? 전두엽은 추리와 사고력 등과 같은 인간 정신 작용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전두엽에 손상을 입으면 여러 가지 정신 장애가 발생하지만, 그중에서도 ‘지능’과 관련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장애는 심각한 의지의 상실, 즉 중증 무의지증을 촉발시키는 전두엽 증후군들입니다. 이런 무의지증 환자들은 마치 감정을 빼앗긴 로봇처럼 아무 감정이나 욕구도 없이 그저 멍한 눈으로 하루 종일 좀비처럼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지능은 정상인데 의지만 결여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지능 자체가 장애를 입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의지증 환자들 중에 일부는 정상적인 지적 기능을 보인다고 합니다. 즉, 지적인 기능은 정상 동작하는데 그야말로 의욕이나 감정 기능만 결여된 산송장 같은 환자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들의 지능은 정상인 것인가요? 아니면, 욕동(drive) 상실로 인해 ‘자발성’이 훼손되었으므로, 지적인 기능이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지능은 손실된 것으로 간주해야 할까요?
지능의 자격
이상으로 지능에 대한 7가지 새로운 관점을 문제 형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찾고 있는 지능의 정체(정의)는 이 7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하나의 원리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한 줄로 이 7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지능’이란 참 대단한 것입니다. 결국 ‘지능의 자격’이란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① 불나방처럼 무엇에 홀린 듯 불 속으로 뛰어들어 한순간에 허망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아 주어야 합니다. ② 기생충에게 뇌를 조정당해 자신도 모르게 포식자를 찾아가 잡아먹히는 것도 막아 주어야 합니다. ③ 화학 물질에 속아 평생을 여왕을 위해 일만 하며 착취당하는 것도 막아 주어야 합니다. ④ 복잡한 사회 규칙에 숨 막히게 갇혀 있지 않고, 혼자서 유유자적 살아도 똑똑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⑤ 발정이 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임신과 출산만 하게 되는 것도 막아 주어야 합니다. ⑥ 인간의 사회를 침팬지나 보노보의 사회의 원초성과도 구별되게 해 주어야 합니다. ⑦ 좀비처럼 아무 의욕이나 감정도 없이 건조하게 살아가는 것도 막아 주어야 합니다.
지능의 딜레마를 풀다
딜레마의 소개
지금까지 지능으로 착각하기 쉬운 3가지 개념과 지능에 대한 7가지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지능’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또 ‘지능’이라는 개념에는 어떤 가능성이 내포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즉, 최소한 ‘지능’의 정의에는, 내부나 외부의 조정자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조정당하지 않게 생명체를 보호해 주는 개념과 이와 동시에 의욕을 가지고 똑똑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능의 요약
‘지능’이란 결국, 자신에게 발생한 욕구의 존재는 감지할 수 있으나 그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1단계와 무엇인지도 모르는 욕구를 처리하기 위하여 해당 욕구를 추론하다가 때론 다른 욕구로 착각하여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기도 하는 2단계나 합쳐진 개념입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2단계가 지능의 발생 과정이 아니라, 이 2단계 자체가 지능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은 단일 상태가 아닌 ‘과정을 거치는 개념’이지만, 편의상 간단하게 언급할 때는 1단계를 생략하고 그냥 ‘욕구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여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모든 부가 능력들(욕구 추론을 위한 생각,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은 모두 지능의 속성이 아니라 현상인 것입니다.
즉, ‘지능’이란 ‘욕구 해결 능력’이 아니라 ‘욕구 창출 능력’이었던 것이죠. (이후부터 지능을 간단히 언급할 때는 1단계를 생략하고 간결하게 ‘지능’이란 ‘욕구 창출 능력’이라고만 하겠습니다. 또한, ‘2단계’라는 용어는 ‘욕구의 존재 감지와 욕구의 정체 파악 실패’라는 첫 번째 과정과 ‘욕구의 추론 및 예측을 하다가 때론 욕구를 착각하여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는 두 번째 과정을 통칭하는 용어로, 앞으로는 이런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단순히 ‘2단계’라는 용어만 사용하거나 여기에 간단한 설명 정도만 추가하여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2단계’라는 용어는 지능의 핵심이므로 앞으로 자주 나오게 될 것이므로, 반드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욕구 불창출의 원리
하지만 저는 실제 지능의 정체를 알고 보니, 이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지능의 정체가 기존의 인류 지식 체계에 어떤 큰 파장을 몰고 올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꾸 그 ‘2단계 구조(욕구 발생 단계와 욕구 추론 단계)’와 ‘자신에게 발생한 욕구를 몰라야 한다는 것’이 뭔가 마음에 걸립니다. 사실, 위 7가지 문제의 해결은 모두 고마운 일이지 이것을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이런 큰 선물을 공짜로 받았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능의 구조를 너무 좋게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다시 한 번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다음과 같은 2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① 한번 발생한 욕구를 어떻게 자신이 모를 수 있을까요? 또 자신의 욕구를 전혀 모른다면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② 생명은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욕구를 창출해 내야 하는 것일까요? 그냥 욕구를 발생시키면 안 되는 것일까요?
우선 제일 궁금한 것은 ‘지능의 구현체’입니다. 즉, 우리가 찾아낸 ‘지능’이라는 설계도를 우리의 뇌는 과연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욕구를 몰라야 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생리적인 욕구(배고픔, 갈증 등)를 비롯해 무작정 모든 욕구를 몰라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것은 물론 생존마저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필수적인 욕구들을 골라서 인지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기생충이나 본능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과연 인간의 뇌는 어떻게 이 딜레마를 해결했을까요? 어떤 욕구는 처리하고, 어떤 욕구는 몰라야 하는 이 풀기 힘든 딜레마를 말이죠. 또 그것에 대한 부작용은 없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