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말
강현규 지음 | 소울메이트
영조의 말
강현규 엮음
소울메이트 / 2014년 11월 / 252쪽 / 13,000원
1장 애민을 몸소 실천하다
한 사람의 백성이 쓰러지면 위를 저버리는 것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은 곧 백성이고 조종(祖宗)이 나에게 준 것 또한 백성이다. 임금이 된 자가 만약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고 조심하고 조심한다면, 마음에서 늘 ‘한 사람의 백성이 쓰러지면 위를 저버리는 것이고, 한 사람의 백성이 원통함을 품고 있어도 또한 위를 저버린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고 살펴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 백성들을 거의 다스릴 수 있다. 아, 이 도를 알면 나라가 다스려지지만, 이 도를 알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다.『어제자성편, 외편』
내가 때때로 친히 농기구를 잡는 이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먹을 것에 의지하니, 중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신농(神農)은 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쳤고, 주(周)의 후직(后稷)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았고, 우리 조정의 창업도 또한 주나라와 같았다. 공자께서 “나는 그 예(禮)를 아낀다.”라고 하셨는데, 성인이 가르치신 뜻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권농(勸農)이 곧 실속이 없는 말이 되었지만, 몸소 밭에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권장하겠는가? 때때로 내가 친히 농기구를 잡아 여러 백성에게 권장하고, 각 관청의 신료들이 몸소 밭 가는 기구를 갖추어 첫 해일(亥日)에 거행하는 것이 어찌 다만 농사를 중히 여기는 것일 뿐이겠는가? 바로 내가 처음 정사를 펼칠 때 위로는 제사 때 쓸 곡식을 바치고 아래로는 백성을 권면하고자 했던 뜻이다.『영조실록』, 영조 15년(1739) 1월 15일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을 통해 중농의 의지를 보이겠다고 교서에서 밝히며
백성의 부모로서의 도리를 스스로 묻다
아,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태평하다.’라고 성현의 가르침에 실려 있다. 오늘날 나라의 근본이 튼튼한가, 그렇지 않은가? 오늘날 백성들이 편안한가, 그렇지 않은가? 아아, 양만들은 바야흐로 도탄(塗炭)에 빠져 있다. 옛날 이윤(伊尹)은 한 사람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시장에서 매를 맞는 것처럼 부끄럽게 여겼다. 하물며 몇십 만의 백성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임금이 되어 구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찌 백성의 부모로서의 도리라 하겠는가?『영조실록』, 영조 26년(1750) 7월 3일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아가 대소 신료와 사서 및 백성들에게
임금이 덕을 닦아야 백성이 편안해진다
나라의 임금은 백성에게 의지하고, 우리 백성은 임금에게 의지한다. 임금 한 사람이 덕을 닦으면 모든 백성이 편안해지고, 임금 한 사람이 덕이 없으면 모든 백성이 곤궁해진다.「어제가긍자민기편자군」, 영조 48년(1772) 5월 8일
백성을 위해서는 풍년을 빌 뿐
근본인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말은 내가 예전부터 들었다. 임금은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임금에게 의지한다. 임금은 배에 비유되고, 백성은 물에 비유된다. 옛사람의 가르침은 절실하다고 할 만하다. 예전에 이것을 그려서 여러 전각의 옆에 붙여놓았다. 내가 비록 덕이 부족하지만, 우러러 듣는 것에는 익숙하다. 더구나 늘그막에는 밤낮으로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 첫째는 선왕에 대한 추모요, 둘째는 백성을 위하는 것이다. 아아, 추모는 하고자 해도 무엇을 했던가? 아아, 백성을 위해서는 항상 풍년을 빌 뿐이다.「어제본고방령」, 영조 49년(1773) 7월 4일
법보다 위에 있는 간곡한 백성의 사정
작년에 흉년이 들어 굶주림과 추위에 못 이겨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이 소가 없으면 무엇으로 농사를 짓겠는가? 참장(站將: 역참을 지키던 하급 관리)도 또한 직책이니, 그대의 재량으로 결정하라.『정조실록』, 정조 5년(1781) 8월 15일 영조가 아직 연잉군이었던 경종 1년(1721) 8월 15일 부친 숙종의 탄신일을 맞아 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다가 소도둑을 잡은 참장 이성신에게 권고하며
2장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하다
지금의 잘못된 폐단을 고치도록 하라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은 수령에게 달려 있으니, 관직을 맡을 사람을 잘 고르라는 뜻을 일찍부터 특별히 당부했다. 한(漢)나라에서 먼저 했던 것은 오직 좋은 관리를 뽑는 것이었는데, 내가 구하는 것은 또한 오직 원칙만 따르는 관리[循束]다. 원칙만 따르는 관리의 다스림이 비록 효과가 느리고 더딘 것 같지만, 그것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반드시 칭찬이나 바라는 관리보다 갑절은 될 것이다. 원칙만 따르는 관리를 채용하기에 힘써 지금의 잘못된 폐단을 고치도록 하라.『영조실록』, 영조 20년(1744) 8월 19일 관리의 업무 평가(도목대정)를 하면서 하교한 말
균역법을 추호도 늦출 수 없다
이밖에 생각이 서늘해지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하면 앞으로 균역청에 여유가 생겨 혹시라도 백성을 위한 일이나 공적인 일이 아닌 곳으로 귀속될 수 있는데, 이것은 나의 마음을 저버리고, 나의 백성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니, 이 하나의 일로 비추어 말하더라도 선혜청을 설립하기 전에 형조와 군문(軍門)은 어디에서 청구하고 어디에서 빌렸던가? 나라 안에서 여유가 있는 것은 오직 선혜청뿐이었기 때문에 호조에서 빌려 쓴 것이 몇 만이나 되는지 모르고, 군문에서도 월과미(月課米)라고 칭하면서 가져다 쓴 것이 또한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균역청사목』에서 백성을 위한 일 이외에 대해서 비록 거듭 당부한 바가 있지만, 이 뒤로 이러한 폐단이 없을지 어찌 알겠는가? 만약 균역청에 손을 대게 되면, 결전(結錢: 균역법의 시행으로 군포가 2필에서 1필로 줄어 발생하는 부족액을 충당하기 위한 재원)을 감면하려는 정책이 어찌 시행되겠는가? 비록 혹시라도 군관의 군포를 감면해주려고 하더라도 또한 어찌 시행할 수 있겠는가? 어찌 이뿐이겠는가? 균역청이 크게 위축되면 1필로 감면해주려는 정책은 어찌되겠는가? 이것이 내가 서늘해지는 까닭이다.
아, 천지가 혼돈해지기 전에는 이 법을 늦출 수 없다. 균역청에 저축해둔 것이 비록 썩어 문드러질지라도 위로 왕실의 비용에서부터 아래로 여러 관청의 비용에 이르기까지 또한 이곳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아, 왕실에 관련되는 일도 결코 가져다 쓰면 안 되는데, 하물며 다른 것은 어떠하겠는가?
조정에서는 마땅히 이 뜻을 따라 앞으로 호조와 군문은 물론이고 여러 관청에서 그 법을 해이하게 하는 자가 있거나 또한 균역청에 저축한 것을 청탁하는 자가 있으면 자급에 구애받지 말고, 재상이 엄하게 징벌할 것으로 청해 곧바로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임금의 조서를 어긴 자를 다스리는 법률)을 시행해 내가 늘그막에 백성을 위해 고심한 정책을 굳건하게 하고 거듭해서 힘써 당부한 뜻을 본받게 하라.『비변사등록』, 영조 29년(1753) 10월 25일 균역청 재원의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하면서
나라의 흥망이 금주의 실행에 달렸다
만약 표적이 없으면 활 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지름길이 없으면 다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약 술 빚는 사람이 없다면 어디에서 마실 술을 구하겠는가? 술 빚기를 금하는 법령을 어기고 술을 팔거나 마시는 자는 모두 나라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업종이 여러 가지인데, 또한 무슨 까닭에 편한 것을 버리고 위험한 것을 취하려 하는가? 이것으로 말한다면, 술 빚는 자도 또한 술 마시는 자와 다름이 없다. 막중한 제사에도 예주(醴酒)를 쓰고 술을 금지하니, 곧 나라의 흥망이 오직 금주가 실행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너희들은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니, 이것은 진실로 나라의 흥망에 관계된 것이다. 휘령전(徽寧殿)에서 오늘부터 시작할 것이니, 상식(上食)은 주다례(晝茶禮: 왕이나 왕비의 3년상 기간 내에 낮에 지내던 제사)의 예에 따라 차(茶)로 예주를 대신하도록 하라. 내가 특별히 정문(正門)에 나아가서 마음을 열고 가르치는 것이니, 너희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잘 듣고, 내가 늘그막에 정문까지 나아가 거듭 당부하는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라.『영조실록』, 영조 34년(1758) 9월 16일 흉년이 계속되자 홍화문에 나아가 백성에 직접 내린 금주령의 내용
세 감면 그 자체가 아닌 실질적인 혜택이 중요하다
지금 재상과 호조판서가 주청한 것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경신년(1740)에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비록 혜택이 없었더라도 그 대신 선혜청에 수십만 석의 미곡이 있었기 때문에 외방에 직접 내려주어 대신 운반할 때의 폐단이 조금도 없었지만, 금번은 외방에서 그 대체 재원을 준비해서 보충해야 한다. 비록 군포 대신 내는 미곡이더라도 상평을 위한 미곡이나 진휼을 위한 미곡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반드시 운반할 때의 폐해가 있을 것이다. 또 듣건대 어찌 이뿐이겠는가? 그 미곡을 백성들이 도정해서 배로 운반하도록 맡긴다고 하니, 이와 같다면 아아, 가난한 백성은 본래의 세가 비록 반으로 감면되었더라도 그 폐해는 전보다 심할 것이다. 만약 결전을 감면할 때, 재상의 주청대로 환모(還耗: 가을에 환곡을 수납할 때에 원곡 이외에 쥐나 참새에 의한 손실을 채우기 위해 원곡의 10분의 1을 더 거두어들이는 것)를 시행하면 가난한 백성이 과연 실질적인 혜택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듣고 내가 매우 기뻤다.
『승정원일기』, 영조 50년(1774) 7월 8일 조세 감면의 수혜자가 주로 지주층에 국한되자 이에 전세 감면분을 일반 농민들이 대부분 부담하던 환곡 탕감의 혜택이 되도록 조치하며3장 탕평책으로 정치를 맑게 하다
두루 사귀면서 편을 가르지 않는 것
두루 사귀면서 편을 가르지 않는 것은 곧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을 가르고 두루 사귀지 않는 것은 실로 소인의 사사로운 의도다.당쟁의 중심인 성균관에 세운 「탕평비」에서
탕평은 공, 붕당은 사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려는 의리와 친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려는 도리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습(黨習)에 혹시라도 어긋날까 염려를 하니, 이것이 곧 충인가, 효인가?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은 3백 년 동안 여러 성왕(聖王)께서 서로 지켜온 종사(宗社)를 떨쳐 일으키지 못한 것이니, 다른 날 무슨 면목으로 하늘에 계신 조종(祖宗)의 영혼에게 돌아가 배알하겠는가? 탕평하는 것은 공(公)이요, 당에 물드는 것은 사(私)인데, 여러 신하들은 공을 하고자 하는가, 사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비록 덕이 부족하지만, 폐부(肺腑)에서 나온 말이니, 만약 직언을 구하는 것을 빌미로 시기하고 모함하는 무리는 마땅히 먼 변방으로 귀양 보내는 법을 시행할 것이다.『영조실록』, 영조 즉위년(1724) 1월 21일 인사에서 탕평의 원칙과 붕당 척결 의지를 교서로 작성해 널리 반포하며
보복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때 옥사(獄事)를 맡았던 자들 모두 어찌 여러 사람들의 원통함을 알지 못했겠는가? 오직 권세를 탐하고 남의 화(禍)를 즐기는 마음에서 서로 점차 물들어 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한쪽 사람들을 일망타진하면 오래도록 정권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많은 억지 죄목을 만들어내서 세상의 반을 반역의 죄로 몰아넣었고, 거짓으로 옥사를 부풀려서 마구잡이로 베어 죽였다. 숙종께서 의지하시던 대신과 부리시던 여러 신하들이 한꺼번에 도륙되었고 그밖에 죽임을 당하거나 장(杖)을 맞아 죽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천지 사이에 지극한 원한이 서리고 맺힌 것이 이와 같은데, 화목한 분위기에 손상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참혹하고 가련함이 과연 어떠한가? 이러한 까닭으로 오늘날 누명을 벗겨주는 일이 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이렇다고 해서 또 주륙(誅戮)을 가한다면 이것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복일 것이다.『영조실록』, 영조 1년(1725) 3월 2일 노론이 노론과 소론 중 하나를 택하라며 강경하게 압박하자
붕당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할 것
내가 조화와 균형[調劑]에 고심한 것은 붕당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염려해서다. 어진 사람과 간사한 사람의 나아가고 물러남 또한 나라의 흥망에 관계되는 것이니, 너는 반드시 이 뜻을 본받아 힘쓰도록 하라.『영조실록』, 영조 25년(1749) 2월 17일 세자를 옆에 앉게 하고 훈계하며
4장 욕망을 경계하며 수신하다
스스로를 가다듬는 임금의 의지
아, 옛사람이 “창업은 어렵고 수성은 쉽다.”라고 하기도 하고 “수성은 어렵고 창업은 쉽다.”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창업과 수성은 그 어려움이 하나같다.”라고 말한다. 좋았던 나라가 무너져 망함에 따라 어려운 새 왕조를 개창하기도 하고, 편안히 즐기다가 혹시라도 타락할까 경계해 스스로 가다듬어 중흥하기도 한다. 만약 그때의 임금이 창업의 어려움과 중흥의 어려움을 생각하도록 한다면, 멋대로 즐기려는 마음이 어찌 한가하고 편안한 사이에 싹틀 수 있으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의지가 어찌 잠깐 사이라도 소홀할 수 있겠는가?
선비나 백성은 비록 덕을 닦지 않더라도 오히려 선비나 백성의 이름을 갖는다. 임금은 천명이 사라지고 인심이 원망해 필부가 되려고 한다 해도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모골이 송연해지고 마음이 서늘해진다.『어제속자성편』
어떻게 완전히 마음을 늦출 수 있겠는가
내가 3가지 일에 있어서 경들에게 밝히도록 하겠다. 첫째, 여러 신하들이 내가 ‘일에 싫증을 낸다[倦勤].’라고 하는데, 일에 싫증을 낸다고 하는 것은 요임금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근래에 내관들 가운데 아뢰는 문서들을 읽어 전해줄 만한 자가 없고, 혹 비답을 적으라고 명해도 번번이 잘못 쓰는 것이 많으니, 내 마음도 답답하다. 승선은 비록 혹 잘못 쓰더라도 사관(史官)이 곁에서 지적해서 알려주니, 이것이 폐단을 제거하게 된다. 둘째, 내가 『당서ㆍ본기(唐書ㆍ本紀)』를 보다가 ‘현종(玄宗)이 촉(蜀)에 거둥한(안녹산의 난으로 양귀비와 촉으로 피신한)’ 부분에서 그 전후가 아주 달라진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지금 내가 비록 여색(女色)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만약 해이해진다면 아마도 현종과 같이 될 듯하다. 셋째, 내가 문자를 보는 데 있어서 예전에는 한 번 보면 대략 파악했는데, 근래에는 정신이 점차 예전 같지 않아 비록 일마다 모두 살피려고 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에 관련된 것에는 또한 어떻게 완전히 마음을 늦출 수 있겠는가?『영조실록』, 영조 23년(1747) 6월 22일
마음이 크게 부끄러워 몸을 둘 곳이 없다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도리는 내가 이미 물리도록 경험해서 이 마음은 차가워진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경은 헤아려주기 바란다. 전에 받았던 ‘지행순덕영모의열(至行純德英謨懿烈)’이라는 여덟 글자를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자성(慈聖: 인원왕후)께서 정청(庭請: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세자나 정승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정에 이르러서 계언을 올리고 전교를 기다리는 것)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교하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 뒤로 그 여덟 글자를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 땀이 등을 적신다.
‘순덕’이라는 글자 같으면 장주(章奏)에 으레 사용하기 때문에 익히 들은 지 이미 오래되어 늘 있는 것으로 보아 넘길 수 있지만, 그 위의 두 글자인 ‘지행’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성군(聖君) 이외에 그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두 글자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진실로 크게 부끄러워 몸을 둘 곳이 없다. 한 번도 오히려 지나친데 다시 할 수 있겠는가?『영조실록』, 영조 28년(1752) 2월 16일 김재로가 존호를 높이기를 강권에 가까울 정도로 청하자 완강하게 거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