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도은 지음 | 행성:B잎새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도은 지음
행성:B잎새 / 2014년 7월 / 256쪽 / 14,000원
따라지 인생을 만드는 체제의 그늘
위건 부두로 가는 길ㆍ동물농장 /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즐거워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자의식과 반항심이 싹트는 청소년 나이가 되자, 아이들은 나랑 같이 즐거워할 책을 고르기보다는 ‘지들만 좋아할 책들’을 골라 보는 일이 잦아졌다. 대량 생산되는 싸구려 판타지 소설이나 로맨스 책들이 나로서는 도무지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는데, 아이들은 내가 구세대고 촌스러운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물론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촌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기계화되고 대중화된 이 현대 사회에 일부러 적응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거지, 책 문제에서는 별로 촌스럽지 않거든? 언젠가 너희도 현실의 삶에 눈뜨는 때가 올 거야. 그때가 되면 너희도 무지하고 어린 마음을 홀리는 쓰레기 출판물들의 미로를 헤치고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겠지. 그러면 우리는 다시 좋은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애정 어린 비판을 주고받고 즐거워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조지 오웰의 산문들을 읽게 되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1984』나 스탈린 시절의 소비에트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동물농장』이야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옛날부터 번역되었지만, 그의 산문들은 최근에야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내가 먼저 읽고서 아이들한테 권했는데, 아이들도 금방 오웰의 산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분명하고 정곡을 찌르는 문장뿐 아니라 자기 시대의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솔직한 묘사가 왠지 속을 시원하게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중매체의 화려한 광고나 선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체제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웰의 글을 읽으면 “아, 체제란 것은 그렇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햇살 환한 양지쪽 울타리 안에서 체제의 달콤함을 누리는 소수의 특권계급이 있는가 하면, 시궁창 냄새나는 어두운 그늘에서 체제에 발길질당한 채 모욕과 절망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가슴 시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는 그런 그늘이 의도적으로 가려지기 때문에 망각하기 쉽지만, 오웰의 글을 읽다 보면 밑바닥 인생의 원인이 단지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때문만은 아님을 깨닫곤 한다. 오웰이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또렷하고 힘차고 방향이 분명하다. 모든 인간은 사회ㆍ경제체제로부터 억압당하지 않으면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인 듯하다. 차별과 배제와 빈부 격차로 가득한 현실과 체제의 구조 같은 것일랑 건드리지 않으면서, 개인의 욕망이나 폭력적인 패거리의식 혹은 인간들끼리의 암투 같은 심리전 묘사에만 열을 올리는 작가들 사이에서 오웰의 시선은 더욱 돋보인다.
그렇다면 오웰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오웰은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명문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버마에서 5년간 제국 경찰로 일했다. 그 뒤 유럽에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헌책방 등에서 일하다가 영국 북부의 탄광 노동자들의 생활을 몇 달간 취재했다. 또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자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다. 그는 이같이 굵직한 경험들을 가지고서 주목할 만한 책들을 펴냈다.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실업과 곤궁한 삶을 독창적인 르포르타주로 그려낸 『위건 부두로 가는 길』 2부에는 오웰이 버마에서 제국 경찰의 일원으로 5년을 근무한 이후 떠돌이 밑바닥 인생으로 내려가게 된 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느낀 죄책감이 너무 엄청나서 속죄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노동자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늘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생토록 꾸준히 일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으로 내쫓기는 착실한 노동자의 끔찍한 운명, 이해할 수 없는 경제 법칙 때문에 그가 겪는 모진 고통, 가족의 해체, 그의 마음을 갉아먹는 수치심……. 이런 것은 내 경험 범위 밖에 있는 일이었다.”
오웰은 산업화 자본주의체제의 그림자인 ‘밑바닥 인생’을 중산층의 감상주의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그가 이런 묘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한동안 직접 살아보고 경험한 일을 사실적이고 날카로우며 풍요로운 언어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오웰의 또 다른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내게 특히 와 닿는 글이었다. 가능하면 산업사회에 고용되는 삶을 살지 않으려고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던 내가 한번은 급한 사정이 생겨서 갑자기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농한기인 겨울 동안에 대도시에서 급히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했다. 오웰의 책들은 바로 그 시절에 읽었다. 당시 도시에서 내가 하던 일이 바로 오웰이 책에 묘사한 호텔 주방 일과 식당 종업원 일이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80여 년 전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이 한창이던 프랑스와 영국의 비정규직 접시닦이나 식당 종업원, 떠돌이 부랑자들의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궁상맞은 삶을 묘사한 책이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우리 시대에도 전혀 낯설지 않다. 사치나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버느라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모습은 어느 시대에나 비슷해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일한 호텔과 대형 식당에는 식기세척기나 거창한 전기오븐 같은 현대식 기계 설비가 들어서 있으며, 온 사방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어서 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이 빈틈없이 감시당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웰이 우려했던 사회, 빅 브라더가 무기력한 대중을 철두철미하게 지배하는 암울한 전체주의 사회에 훨씬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이었는데도 나는 늘 땀에 젖은 채 일을 마쳤다. 멋진 옷차림으로 호텔과 레스토랑을 드나드는 손님들을 그저 두둑한 돈지갑을 가진 자들로 치부하는 태도에도 익숙해졌다. 열기로 가득한 주방이나 우아한 분위기의 따스한 홀 안에 있다가 찬바람 부는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정말 기이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역에서 때가 잔뜩 낀 부스스한 머리칼의 노숙자들을 보면 오웰이 묘사한 ‘따라지 인생’들이 생각났다. 지금 나는 이 산업체제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데 쓰이는 한 개의 하찮은 부품이라는 사실을 괴롭지만 인정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실업률이 20퍼센트를 웃돌고, 비정규직이 6백만 명이다. 실업자, 비정규직, 시급을 받는 저임금 알바, 떠돌이 부랑자 같은 밑바닥 인생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오웰의 시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점점 빠르게 확대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의미 있는 울림을 준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 없는 노동’이란 내가 경험한 컨베이어 벨트 위의 노동, 즉 ‘소외된 노동’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인간의 노동이 그처럼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쓰인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아무런 도전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노동, 발전 가능성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으며 생산적이지도 않은 노동, 단지 돈을 미끼로 인간을 하나의 부품으로 여기는 노동이야말로 이 산업사회의 죄악이 아닌가 싶다.
겨울 한 계절을 도시에서 산업사회의 부품으로 일하면서 나는 오웰을 읽었고, 봄과 함께 대도시에서 벗어나 다시 농사일로 돌아왔다. 내가 먹을 것을 길러내는 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쁘다. 돈은 못 벌지만, 적어도 불우하지는 않은 이 느낌!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훼손당하기를 거부하는 ‘자유’ 때문이리라.
멋들어진 세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
언더커버 리포트ㆍ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ㆍ노동의 배신ㆍ벼랑에 선 사람들
2012년의 동짓날인 12월 21일은 마야 달력에 기록된 마지막 날이라던가. 그래서인지 한 해 동안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를 유감없이 많이 들었다. 문명붕괴론, 재앙, 위기, 극심한 기후 변화, 자기장의 변화, 혜성 충돌, 핵폭발, 기술산업체제의 붕괴 등등. 지구 종말의 날이라는 그 동짓날이 지나고 성탄절이 왔다. 내가 사는 산골에서는 성탄절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우리가 특정 종교인이 아닐뿐더러 텔레비전이 없고 인터넷이나 신문 같은 매체와도 별 관계 없이 살고 있어서 더 그렇다. 성탄절도 그냥 별일 없는 조용한 겨울날일 뿐이다.
2천 년 전 예수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해받는 가장 낮은 존재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아주 컸던 사람, 짧은 한생을 던져서 자기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고뇌했던 예수를 떠올리면서, 『언더커버 리포트』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독일의 잠입 취재기자 귄터 발라프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암행참여관찰 방식으로 독일 사회를 취재한 7건의 르포르타주를 엮은 놀랍고, 서글프고, 기가 막힌 보고서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탐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40년 넘게 독일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들을 고발해온 귄터 발라프는 독일에서는 주류 사회와 가장 많은 갈등을 빚는 열정적인 르포기자라고 한다. 사회 부조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밝혀내는 능력과 남다른 용기가 있어 보이는 그는 자기 자신을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이고, 사회 속에서의 훼방꾼’이라고 부른다. 책에는 그가 공들여 변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간간이 실려 있다. 분장 전문가의 도움으로 거의 완벽한 흑인으로 위장한 사진도 몇 장 있어서 나는 그 사진들을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암행참여관찰’ 방식이란, 어떤 삶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직접 살아내면서 자신이 겪은 현실을 값싼 감상주의 없이 밝히는 것이다. 백인인 발라프는 흑인으로 변장해서 온갖 굴욕적인 경험을 하고, 한겨울에 노숙자로 살기도 하고,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대형할인점에 싸구려 빵을 납품하는 사업체에 임시 고용된 노동자의 삶도 있는 그대로 살아낸다. 그리고 전혀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그곳의 부조리와 부당함과 모욕과 처연함을 지극히 담담하게 글로 풀어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80년 전의 조지 오웰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웰 이상으로 귄터 발라프가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멋진 신세계’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역할을 맡기로 했을 때, 나는 어떠한 일이 다가오게 될지 알지 못했다. 정신적인 압박이 지속적으로 일상화된 콜센터에서 판매 사기꾼이 된다거나, 대기업이 납품 업체의 노동 조건을 다시 초기자본주의 시대 수준으로 되돌려버렸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인종 차별을 내가 몸소 체험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이것이 우리 세계에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내친김에 귄터 발라프의 다른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는 독일에서는 1985년에 출간되어 3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계속 재출간되는 스테디셀러이자 3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한다. 이 한 권의 책이 인간 착취에 저항하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다니 놀랍다. 특히 독일 사회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책이란다. 정치적 파장도 크게 불러일으켰는데, 발라프는 맥도널드나 대형 제철소 또는 인신매매 비슷한 용역업체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하고, 가택수색과 비열한 소송에 수없이 휘말렸으며,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의 간첩 노릇을 했다는 모함마저 받았다. 우리한테 아주 친숙한 버전으로 말하자면 ‘빨갱이 사냥’이겠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소송에서는 대부분 발라프가 승리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는 30여 년 전의 독일 이야기지만,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처럼 느껴진다. 발라프는 거의 1년 동안 터키인 ‘알리’로 위장해서 온갖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터키인으로 살아간다. 알리는 용역 노동자로 고용되어 현대판 노예 생활을 직접 경험한다. 독일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거의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소모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멸시와 적대감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간다. 건강은 물론이고 마지막 진까지 다 빨아먹힐 지경이다.
책에는 충격적인 보고가 참 많았다. 대기업에 비정규 노동력을 공급하는 용역업체들의 무시무시한 외국인 혐오증, 제약업체들을 위한 실험용 인간(실험용 생쥐가 아니다!)으로 터키, 인도네시아, 라틴아메리카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주로 쓰인다는 것. 그리고 핵발전소에 고장이 생겼을 때나 부품을 수리하고 교체할 때 투입되는 임시 용역 노동자들 이야기도 크게 와 닿았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모든 나라에는 이런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특히 많다고 한다. 일본은 10만 명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네팔이나 중국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다.
그러고 보니 미국 상황을 쓴 비슷한 책으로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이 있다. 2001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워킹푸어 생존기로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잠입 취재한 글이니까 귄터 발라프의 책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에런라이크의 글은 분명 솔직하고 유머도 있다. 작가가 수입과 지출을 맞추려고 고군분투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보려고 애썼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뭔가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뭘까? 그녀는 미국 경제 호황기인 2000년 전후에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으로 취업해 저임금 노동일을 해서, 과연 그 임금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 실험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상당히 열심히 일했다. 눈에 띄는 구절을 인용해본다.
“저임금 일자리에 지원하는 일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구직자는 자신의 에너지, 미소, 진실하거나 허위인 이력을 한데 모아서 그걸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을 고용주에게 선보인다.”“관리자의 인정을 받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보기에 동료의 ‘애정 결핍’은 만성적인 박탈감 때문에 생긴 듯했다. (……)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바로 왕따의 일로,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한 일이었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찜찜해했던 것은 이 책에 미묘하게 드러난 계층의식 혹은 계급의식 때문이다. 귄터 발라프의 책들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고 글에 온전히 몰입했는데, 이 책에서는 이미 성공했고 자신만만한 중상류층 지식인 여성 작가의 자기애랄까 자의식을 느낄 때가 가끔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일은 책을 쓰기 위한 잠시의 프로젝트라는 것’,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너희 불가촉천민들과 절대 같은 계급일 수 없다는 것’, ‘난 곧 본래의 내 자리로 복귀할 것’이라는 암시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기 계급에 대한 언급 없이 충실히 그들의 삶을 기록한 귄터 발라프에게 훨씬 신뢰가 갔다.
마지막 책은 한국 상황을 살펴보는 글이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의 교수와 학생들이 발로 뛰어가며 기성 언론이 다루지 못한 각국의 빈곤 문제를 주제별로 조명한 르포기사들이다.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인 근로 빈곤의 현장, 빈곤층의 주거 현실, 애 키우기 전쟁, 의료비 문제, 부채에 시달리는 인생들을 세심하게 기사화했다. 우리나라 가난한 이들의 상황도 참 만만치 않다. 특히 쪽방, 만화방, 잠자는 다방을 전전하다가 노숙자가 되어가는 도시 빈민의 주거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 빚 때문에 창창한 젊음을 저당 잡히고서 돈벌이에 헉헉대며 우울과 좌절에 빠진 한국 청년들 이야기는 부모로서 정말이지 읽기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