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버럭하는 남편, 묻어두는 아내

김형기 지음 | 창해
버럭하는 남편, 묻어두는 아내

김형기 지음

창해 / 2014년 8월 / 332쪽 / 15,000원





1단계 팀플레이 ? 함께 서기



여러 부부가 모인 자리가 있었다. 어떤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만인의 모델이 되는 이 시대 멘토 부부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막상 속내를 드러내고 보니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이제껏 남편과 살아온 30년이 저에겐 지옥이었어요.” 이야기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 남편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동안 뭐하고 이제야…” 부인은 눈물을 닦아내며 뒷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혼자 참고 억지로 살아왔어요.” 나와 아내는 그 자리에 인도자로 앉아 있었지만 그날의 사건은 분명 우리 부부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이들 노부부는 서로 싸워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남들 이목도 있고, 아이들 눈치도 있고, 대외적으로 저명한 집안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부부간의 앙금은 조금씩 쌓여갔고, 언제나 참는 쪽은 부인이었다. 부인은 이러한 상황을 애써 가슴에 묻어두고, 사회적으로 좀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가치 그리고 도덕적 신념으로 자신을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며 산다고 하지만 방법적으로는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간다고 봐야 한다. 사랑한다 해놓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결국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으며 살아가니 말이다. 하지만 ‘부부끼리는 무조건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라고 선언하기에는 뭔가 설명이 되지 않는 맥락이 있다. 용서한다고 하지만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고, 꽉 막힌 채 흘러가지 못하는 감정의 하수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노부부의 경우, 아내의 폭탄선언은 부부가 용서 없이 화해하면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용서라기보다 서로를 용납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용납이며 또 용서는 무엇인가!

사실 나는 용서라는 의미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가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정작 피해자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하며 반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용서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반드시 손을 붙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화해하는 것이 용서의 표준은 아니다. 사과를 못 받았어도 용서는 가능하다. 화해하지 않아도 용서가 가능하다. 오히려 부부 관계에서 아내 스스로 해내기 힘들고 어려운 것은 용서보다도, 그 전에 남편의 행위를 눈앞에서 용납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용서하기’와 ‘용납하기’는 서로 다른 영역이다. 용서하기 위해서라도 서로가 헌신적으로 돌봐줘야 할 상호교류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저 인간을 용서해야지.’라고 되뇌더라도 이것이 스스로도 용납되어야 용서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려면 배트 잡는 법에서부터 헬멧을 쓰는 요령, 보호구를 착용하는 요령, 공이 얼굴로 날아올 때 피하는 요령 등등을 숙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전혀 배워본 적 없이 무작정 홈런만 치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용서와 인내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가 그러하고, 이 모든 것을 승화시키는 용서 또한 그러하다. 사과와 화해, 용납은 감정 표현과 함께 이어진 한 꾸러미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뛰어넘으면 용서의 개념은 상대에게 전가되는 폭력이 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부터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생략되기에 서로의 힘을 잃고 용서하는 것에도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자기감정만 풀어내도 궁극적으로 용서하기의 영역은 점차 넓어진다.

부부끼리 용서를 행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용납하는 감정을 갖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와 가장 밀착된 것에서부터 진정한 감정을 드러내고 그 사실을 지지하면서 이것을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진정성의 확인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면 관계가 깨질 거라는, 잘못 설정된 감정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같은 행동설계의 핵심은 특별하고도 새로운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가치 사이에 공감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원래 주어진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2단계 팀플레이 ? 함께 살펴보기



패턴은 크게 P(Pride) 패턴과 F(Fear) 패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P 패턴의 사람들은 얽히고 꼬인 상황에서 과도하게 자아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F 패턴의 사람들은 힘든 상황이 닥치면 얼어붙는다.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문제를 외면하기도 한다. 두 패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다. 모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책이기 때문이다.

P 패턴은 다시 P1과 P2 패턴으로 구분된다. P1은 스스로를 과도하게 증명하려고 상대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묻기 쉽다. 스스로도 실패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자기 에고를 지키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만한 태도를 보인다.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기대가 크고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배우자에게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경우 심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예민하고 까다로워지며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P2는 지배적이다. 자신을 드러낼 명분과 뚜렷한 결과물을 원하므로 목표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상대를 불신하고 권위적인 지배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 패턴을 지닌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요인은 ‘전능한 힘’이기 때문에 권위를 얻기 위해 애쓴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며 배우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할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에서 상대에게 지시하거나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 협력하기보다는 본인이 단독으로 일을 진행하려 하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비난하거나 폄하한다.

F 패턴은 F1과 F2 패턴으로 구분된다. F1은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연민하고 이를 누군가로부터 동정 받음으로써 해소하고자 한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회피하는 편이며,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즉각적인 감정과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결정한다. 이들은 관계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만 배우자의 감정에 이입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다. 또한 배우자를 배려하기보다는 감정을 직접 표현해버려 실수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될 때도 있다. F2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다.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는 숨기도 하지만 완고해지기도 한다. 이들은 압박과 갈등, 긴장과 분리 등을 두려워하고 수동적이며 문제를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배우자와의 감정에 관심을 두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편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상황을 경계하며, 어떤 일에 확신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일을 추진할 때도 자신감 결여로 인해 배우자에게 의사 결정권을 넘겨버린다.

흔히 부부 갈등을 성격 차이라고 말하지만, 성격 차이란 ‘각자의 두려움이 만나는 교차 지점’을 뜻한다. 배우자 중 누구의 두려움이 더 강력하게 작동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누구의 자기애적 요소가 더 강하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격전지의 불꽃은 더욱 거세진다. 이것이 더욱 크게 폭발해 자기애적 격노함으로 쏟아질 때면 내 안에 의식하지 못했던 오래 묵은 공감의 한에서부터, 그동안 받아오지 못했던 총체적인 애착의 결핍까지 모두 드러난다. 이때는 사건의 시시비비나 옳고 그름을 뛰어넘는 싸움이 된다. 두려움의 반대 개념에서 보자면 내가 받지 못한 사랑, 즉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놓고 벌이는 한 판 승부가 되는 것이다. “왜 내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는 거야!” “왜 나를 좀처럼 배려해주지 않는 거지!” 화가 나서 이성을 잃는다든지 버럭 소리를 지를 때, 기질이나 성격이 아니라 두려움의 세기가 자신을 압도한다. 차분한 이성적 판단은 없어지고 감성두뇌가 급격히 작동한다.

채워지지 않는 애착으로 인해 전두엽의 기능이 멈춘다. 전두엽의 통제를 받는 이성에 의한 장치는 잠시 스위치를 내린다. 좌뇌의 기능이 확 꺼지는 것이다. 이때 우뇌 기능에서 자율적으로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면 결국 왜곡된 선택을 하게 된다.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사람에게 욕하고 때린다거나, 자학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기도한다. 이 모두가 안정을 찾기 위해 내리는 특단의 조치다. 출생과 동시에 엄마와 함께 애착을 느끼고 기쁨을 담당하는 감성두뇌가 채워져 있지 않으면 우뇌에서 빈 애착이 나타나고 나도 모르게 애착 고통(Pain in attachment)을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배우자에게 해대는 소리는 애착 고통의 울림이다. 더 사랑받고 싶고, 나를 좀 더 사랑해달라고 외치는 빈 애착의 외침이다. 무시당한 사랑, 거부당한 사랑, 채워지지 않은 과거의 사랑에 대한 공복감까지도 한꺼번에 밀려오는, 사랑을 위한, 사랑을 향한, 사랑의 간절한 메아리인 것이다.



3단계 팀플레이 ? 함께 알아가기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결혼을 앞둔 커플 3천 쌍을 대상으로 서로의 대화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4년 안에 이혼할 커플이 누구인지를 추적했다. 적중률은 무려 94%였다. 무엇을 보고 알았을까? 부부 간에 대화만 분석해도 알 수 있는 그것, 바로 경멸과 냉소였다. 다음은 부부의 이별을 예견하는 치명적인 행동 패턴 3가지이다. 첫째, ‘빈정거리기’다. “아니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저이는 나한테 맨날 저러더라.” 단순히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분을 표출하는 것 외에 치명적인 언사가 얹어짐으로써 상황은 점점 용납하기 어려운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둘째, ‘깎아내리기’다. 배우자를 같잖게 여김으로써 상대의 가치를 낮추고 그 사람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재탄생시킨다. “잘~한다. 아니 왜 맨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지 까짓 게 알긴 뭘 알아!” 셋째, ‘잡아떼기’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맨날 생사람을 잡고 그러냐!” “너 왜 맨날 나한테 그러냐? 잔소리 좀 그만해!” 사랑으로 한 지적은 또 다른 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초에서 비롯된 가르침이 결여되면 제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에게 유익한 가르침을 가져다주는 깨달음, 은혜, 희열 등의 유용한 가치마저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소통에 실패하는 원인은 ‘너와 나는 동등하지 않다.’고 서로 주장해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다. 본인을 더 생각하고 훨씬 더 우대한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종종 여자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말을 잘 안 한다. 그때마다 남자들이 하는 질문이 있다. “왜 여자는 삐치면 말을 안 하냐?”는 것이다. 여자들은 “자기가 나를 삐치게 해놓고 그 이유를 나에게 물어보면 말을 하겠어?”라고 답한다. 주의할 점은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난리가 난다. 이럴 때는 배우자의 반응에 포기하지 말고 부드럽게 다가가 살살 달래줘야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여보, 미안해.”라고 말하면 “뭐가 미안한데! 이유가 뭔데!?” 하는 반응을 초래해 산통은 더 깨진다. 사실 남편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아내를 화나게 했는지 확실히 모른다. 매우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위기가 촉발되는 상황에서는 이성이 닫히고 감성이 작용한다. 생각으로 달라지는 타이밍이 아니다. 상처 난 감정을 싸매줘야 하는 일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때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는 시점이다. 채워지지 않는 애착의 공복 시제이다. 이는 누구나 지닌 현상이다. 그 어느 누구도 부모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본인이 받아본 사랑을 결국에는 기초 정체성으로 참조한다. 종종 이 같은 애정 결핍을 구분해서 트라우마 A형과 트라우마 B형으로 일컫는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보살핌과 관심, 애정을 받지 못해서 생기는 상처를 트라우마 A형이라 하고, 반대로 학대를 받았다거나 구타, 폭력, 비교, 강압적 지시, 지적 행위, 부당한 규칙의 강요 등으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자리 잡은 것을 트라우마 B형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고통 받는 결핍은 물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공감의 결핍이 더 크게 작용한다. 물질의 수급은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선다. 1등 신화를 향한 극성적인 자녀 교육이나 기러기 아빠들도 여기서 탄생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또 다른 결핍이 발생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은 아이들의 필요를 그때마다 공급함으로써 “대체 무엇이 문제냐?”며 접근한다. 하지만 가정교사인 마리아 수녀는 물질의 공급이 아니라 그것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결핍된 교감을 채워주려 한다. 굳이 비교하면 물질을 둘러싼 교감이 물질 자체보다 강력하며 효과적이다.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감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공복감이 삶에서 훨씬 오래가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느끼는 빈곤은 그래서 경제적인 박탈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심층에 채워지지 않는, 인간으로서 누릴 당연한 권리의 박탈감, 공감을 둘러싼 권위의 박탈감이 더욱 큰 것이다. 심순애에게 바치는 이중섭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무리 화려하다 하더라도 이것을 나누는 근본적인 마음이 상대에게 채워지지 않는다면 관계의 수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4단계 팀플레이 ? 함께 추구하기



아내는 중학교 시절 장인어른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집안이 망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일기장을 보면 환란을 참고 견뎌내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나는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고, 그 시절에 합당한 나의 순수한 욕구를 드러내지 못했다. 나와 아내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라기보다는 오히려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현실을 부인하는 편에 가까웠다. 순수한 욕구를 참고 자란 아이들의 내면은 언제나 현재형의 결핍이 대기 중이다. 나와 아내는 성장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애정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내면에서 반복했다. “난 괜찮아(넌 고통을 느낄 자격이 없어).” “혼자 할 수 있어(다른 사람을 의지할 자격이 없어).” “난 할 수 있어(내가 인정받기 위해 괜찮은 사람으로 비쳐져야 해).” 나와 아내는 어찌 보면 욕구를 드러내지 못해 좀 더 일찍 성장한 모습을 띤 사람들이었다. 감정의 절제, 회피, 갈등 상황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용서라는 항목을 도덕적, 종교적 양상으로 대입시키기도 하고, 감춰진 분노를 정의의 이름을 빌어 표출하였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따르고 지켜나가는 것이 본인에게는 멋지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지름길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아니었다. 특히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가운데 제일 먼저 입는 옷은 바로 표정이다. 표정에는 웃는 표정도 있고 무뚝뚝한 표정도 있다. 그런데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도 표정이 있다. 마음의 표정은 얼굴 표정처럼 웃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슬플 때는 슬프다고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표정이다. 당신에게는 모든 감정이 허락되어 있다. 하지만 수치심은 감정을 선별한다. 수치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수치스럽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사람이 똑같이 수치스러운 행동을 한다. 빌 클린턴과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전 세계 최고의 권력,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올랐지만 어려서 경험한 자신의 수치는 성인이 되어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수치심은 당신의 귀에다 대고 ‘인정받을 만한 일을 하라.’고 속삭인다. 그럼으로써 일상에서의 진정한 만족이나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순수한 표정까지도 앗아가 버린다.

견고한 소속감과 사랑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으며 좋은 것에 소속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자신이 유익한 가치에 소속되었다고 느낄수록 좋은 것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반면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수록 이것에서 멀어진다. ‘아냐.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거절당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후속조치가 일어난다. ‘아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함부로!’ 이런 사람은 대인관계에서도 사람을 만나면 굶주린 상태에서 폭식을 하듯 과다한 친밀감을 확보하려 한다. 그래서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크면 자신에게 더욱더 신경 써주기를 원한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수없이 전화를 하고 상대의 관심과 애정의 징표를 계속 원한다. 친밀감을 여유롭게 섭취하고 즐기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