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여지영, 이진숙 지음 | 한빛라이프
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여지영, 이진숙 지음
한빛라이프 / 2014년 5월 / 336쪽 / 15,000원
니혼바시
가다랑어포 상점 : 닌벤
닌벤의 창업자인 타카츠 이베이는 1679년 관서지방인 미에 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두 살이 되던 해 에도로 건너와 니혼바시의 잡곡상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699년, 니혼바시에서 가다랑어포와 건어물을 중심으로 한 좌판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상인으로서 좋은 평판을 얻자 고향을 거쳐 오사카, 교토까지 장거리 출장을 다닐 만큼 폭넓은 거래처를 확보했다. 또한 현장 경험을 통해 질 좋은 가다랑어포를 입수할 수 있는 루트를 확립했다. 닌벤이 유명해진 것은 당시 금, 은, 동 세 가지 화폐가 유통되고 화폐의 환산 비율이 유동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금화 중량 단위인 문(?) 단위 정가로 가다랑어포를 판매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닌벤은 간판에 정해진 현금으로 결제해야 하고 금화 60문이라고 내걸었다. 에도 시대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가격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객에 따라 조금 더 싸게 받거나 비싸게 파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닌벤은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가격에 판매한다는 방침을 간판에 내건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인이 질 좋은 가다랑어포를 구하긴 쉽지 않았는데, 3대째 가업을 이은 초대의 차남 모헤이가 형의 뒤를 이어 판로 개척에 주력, 가게의 기반을 쌓았다.
1830년부터 1844년까지인 6대째는 경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시기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은제 상품권을 창안해 유통시켰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사용했던 것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꾸면서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다. 닌벤이 개인 상점에서 주식회사로 바뀐 것은 1918년으로, 8대의 아들인 롯베이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11대인 요시마사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절정기를 맞았고, 전후에 신사옥을 짓고 가다랑어포뿐 아니라 식품부를 설립해 조림식품을 제조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1977년에는 12대가 취임했으며, 2010년에 지금의 본점 무로마치 빌딩에 점포를 개설, 다시 바(Bar)를 만들어 마시는 다시를 판매하면서 30만 개가 팔릴 정도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닌벤은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맛을 세계의 맛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12대의 아들인 카츠유키가 수련을 마치고 사장으로 취임, 13대를 이어받고 있다. 창업자인 이헤이가 상점 이름을 이세야이헤이라 하고, 이세야와 이헤이의 사람인변[?]과 판매를 견실하게 하기 위해 오카네(お金)를 합쳐서 로고를 만들어 카네닌벤(かねにんべん)이라 했는데, 에도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닌벤이라 불리며 사명으로 굳었다.
이쑤시개 전문점 : 사루야
일본의 격식 있는 음식점들은 작은 이쑤시개 하나에도 품격을 더한다. 고급스러운 가이세키 요리를 내면서 후식과 이쑤시개를 아주 싼 것으로 쓰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무리가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고급 음식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쑤시개 전문 브랜드가 ‘사루야’다. 이쑤시개 전문점 사루야는 에도 시대인 1704년에 지금의 자리에서 시작해 약 300년간 성업 중이다. 사루야는 원숭이라는 뜻인데, 야생 원숭이의 이빨이 깨끗하고 충치가 없어 이쑤시개 상점에 적합한 이름이라 여겨 상호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루야의 건물은 일반 사무실 건물과 비슷했다. 300년이라는 전통을 여실히 보여줄 건물을 상상했는데, 회색빛 시멘트 외관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진열대에 다양한 이쑤시개 상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십이지에 해당하는 동물 혹은 붉은색, 검은색 글씨가 새겨진 상자 속에 담긴 이쑤시개, 천으로 만든 지갑에 담긴 휴대용 이쑤시개, 심지어 포춘 쿠키처럼 점괘가 적힌 종이가 함께 들어 있는 이쑤시개까지 있다. 길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사루야의 이쑤시개는 음식물 제거용과 화과자용으로 나뉜다. 음식물 제거용은 6cm와 7.5cm이며, 화과자용은 좀 더 두껍고 긴 9cm, 10.5cm, 15cm 세 종류다. 이곳에서는 고급스러운 이쑤시개 포장의 진수를 볼 수 있다.
8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사루야의 사장 야마모토 카즈오 씨에 따르면, 이쑤시개 문화는 나라 시대(700년대) 때 인도,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에 들어왔다. 일본에 처음 이쑤시개가 들어왔을 당시에는 승려를 비롯해 상류층에서나 즐기는 고급문화였으며, 주로 잡화점이나 이쑤시개 전문점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했다. 이후 헤이안 시대 말기 무렵부터 점차적으로 서민들도 접하게 되고, 에도 시대에 본격적으로 서민에게까지 보급되었다.
사루야의 매장 한쪽 벽 유리장에는 가느다란 나무토막과 오래된 브러시, 에도 시대의 풍속화 우키요에, 사루야의 기사가 실린 잡지 등이 들어 있다. 이상한 모양의 오래된 브러시는 에도 시대에 만든 후사이쑤시개(한쪽 끝을 브러시로 만든 이쑤시개)이고, 가느다란 나무토막은 버드나무의 한 종류인 쿠로모지(조장나무)다. 쿠로모지는 이쑤시개의 가장 귀중한 재료다. 쿠로모지를 입안에 넣으면 청량한 나무향이 나고 표면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잘 부러지지 않는다. 특히 이쑤시개용으로는 키 1m, 직경 1cm 정도의 어린 나무만을 사용하는데 어린 나무를 둘로 쪼개고, 다시 4개로 쪼개서 세공용 칼로 가늘게 깎아서 만든다. 기계로 만든 이쑤시개는 표면이 거칠어 잇몸에 상처를 낼 수 있지만 손으로 매끄럽게 가공한 이쑤시개는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니 기왕이면 품질이 좋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카즈오 사장이 대를 이어 이쑤시개를 만드는 이유다. 사루야가 창업할 당시만 해도 이쑤시개 상점은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사루야뿐이다. 그만큼 이쑤시개의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루야가 이쑤시개 하나로 주식회사가 되고, 연매출 4천만 엔을 달성한 것은 좋은 상품을 만들려는 노력과 다양한 상품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사루야 이쑤시개의 주 고객은 고급 음식점이다. 주문에 따라 만드는데, 장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양으로 세공하기도 한다. 또 결혼식 답례품이나 명절 선물로도 많이 찾는다.
긴자
향 상점 : 코주
일본에서는 향도라는 말을 쓴다. 향에도 예(禮)가 있어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를 갖춰 지키는 문화로, 일정의 작법하에 향목을 피우고 피어오르는 향을 감상한다는 의미다. 차도(茶道), 화도(畵道)와 함께 3대 예도(禮道)로 꼽힌다. 일본에 향이 전해진 건 6세기로 불교와 함께 전파돼 처음에는 종교 의식에서 향목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종교 의식에 사용하던 향이 본격적으로 문화가 된 건 9세기 헤이안 왕조 때다. 이 시기의 향은 코우보쿠(香木)와 타키모노(薰物)로 나뉘었는데, 특히 타키모노는 여러 가지 향료 가루를 개서 만들었다. 이들은 이 향을 방향 목적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몸에 지니기도 했으며, 타키모노 아와세(薰物合わせ)라 부르는, 여러 사람이 만든 타키모노를 피워 우열을 가리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향이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향을 피우려면 높은 신분과 재력, 뛰어난 지성과 센스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렇게 시작된 향 문화는 가마쿠라 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한다. 코우보쿠의 가치가 높아지고, 코우보쿠를 음미하거나 비교하는 수준도 꽤 오른다. 현재 일본에서는 산조니시 사네타카의 ‘오이에류’, 시노 소우신을 원조로 하는 ‘시노류’ 2대 파가 향도 문화를 계승ㆍ발전시키고 있다.
코주의 역사는 대략 430년. 향을 포함해 검이나 도장집 등의 물건을 취급하는 도구 상점이었다. 초대는 쇼군 겐지 명장의 12대 자손인 야스다 마타에몬 미나모토노 미츠히로라고 전해진다. 3대는 마사키요로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으로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4대 마사나가는 전국통일의 주역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부름을 받기도 했다. 향만 전문으로 취급한 것은 8대인 다카이 주에이몬부터다. 그가 향사로 이름을 높여 그때부터 최고의 조향사가 대를 이어왔으며, 코주의 대를 잇는 사람을 다카이 주에이몬이라고 부른다. 현재 코주의 향사로 17대를 잇고 있는 사장은 이나사카 요시히로다. 그는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극단에서 활동한 극작가이자 광고 디렉터였는데 UN에서 열린 향 이벤트 연출을 계기로 향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고, 2005년 주식회사 코주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향은 크게 ‘코우보쿠(香木)’, ‘네리코우(練香)’, ‘센코우(線香)’로 나뉜다. 코우보쿠는 향의 소재가 되는 나무를 말한다. ‘백단’, ‘침향’ 등이 대표적이다. 백단은 나무 자체에서 향이 나지만 고가의 향목인 침향은 나무의 이름이 아니다. 나무의 상처를 통해 내부로 들어간 박테리아가 수액을 향기로 변화시키고 그 나무가 수명을 다해도 향이 화석이 되어 남는 것이다. 네리코우는 향목이나 한방 향 원료의 분말에 꿀 등을 섞어 치대서 굳히고 숙성시킨 것으로 환약을 열로 데워 서서히 향을 즐긴다. 센코우는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향이다. 네리코우의 성분은 길고 가는 형태로 굳히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타이완에 서식하는 ‘타부’라는 나무껍질의 분말을 접착제로 사용해 모양을 유지시킨 것이 센코우다. 타부는 무향이면서 균일하게 연소되는 성질이 있어 센코우를 시계 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향을 듣는 법, 향도에서는 향을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고 표현한다. 향은 오감(맵다, 달다, 시다, 짜다, 쓰다)으로 감상할 수 있다. 문학, 시 혹은 계절을 테마로 두 종류 이상의 코우보쿠를 피워 그 향기의 차이를 들으며 마음을 이미지화하기도 한다.” 이것이 요시히로 씨의 향 철학이다.
천 상점 : 오오노야
히가시긴자역, 가부키좌 맞은편으로 일본의 전통 패브릭 소품을 파는 ‘긴자 오오노야’라는 이름의 테누구이(手拭い), 즉 일본 전통 수건 전문점이 있다. 이곳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게 된 건 가게 앞에 전시된 아이용 유카타(浴衣) 때문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유카타가 정말 귀여웠고, 소재로 삼은 천의 패턴이 제법 재미있었다. 밖에서 구경하다 보니 슬슬 가게 안에는 더 재미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이곳은 조그맣고 단아했다. 오래된 가게의 단아한 느낌은 어쩐지 강한 이타적 보수성을 드러낼 것 같아 선뜻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웠다. 조용히 둘러본 매장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장식장과 선반 가득한 고양이, 나팔꽃, 금붕어 무늬의 일본색 짙은 다양한 천이 손수건, 유카타, 패브릭 장신구 등과 함께 칸칸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 일본 전통 문양이 세련되게 그려진 천이 눈길을 끌었다. 질감이 좋아 보이고 어떻게 염색을 했는지 발색도 꽤 고급스러웠다. 여행자의 가벼운 주머니가 한없이 아쉽기만 했다.
오오노야는 메이지 원년인 1868년에 창업했다. 원래 이곳은 타비(足袋) 가게였는데 전쟁이 끝나자 기모노의 수요가 줄어 업종을 변경, 테누구이 전문점으로 거듭났다. 타비는 우리나라의 버선과 비슷한데, 조리나 게다를 신기 때문에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네 발가락이 나뉘어 있다. 그 모양이 자못 족발과 비슷한데, 우리나라에서 일본인을 ‘쪽바리’라는 비속어로 부른 것도 타비를 신은 일본인의 발 모양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오노야의 현재 사장은 5대 우메자와 미치요 씨로 15년 전에 4대였던 오빠에게서 물려받았다. 오오노야는 도쿄인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곳으로 실제로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이 천 가게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단골 가게라며 이곳을 추천했다.
테누구이의 생명은 디자인과 염색의 질인데, 특히 염색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인의 솜씨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오오노야는 오랫동안 테누구이 염색만 한 숙련된 장인에게 제작을 의뢰하기 때문에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현대 문양이 아닌 오롯이 전통 문양과 패턴만 사용하는데도 요즘 감각 못지않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건 미치요 씨의 솜씨 덕이다. 그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전통 천과 기모노에 대한 높은 교양을 바탕으로, 전통 문양과 컬러감을 재구성해 색감이 뛰어난 테누구이를 만들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가격. 예를 들면 12m 천으로 유카타 한 벌을 만들 수 있는데, 천 가격은 대략 1만 6,000엔이며, 제작 비용은 대략 1만 2,000엔으로 약 3만 엔 정도가 든다. 백화점보다는 저렴하지만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건비가 오른 결과다. 그래서 여느 천 상점은 유카타를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제작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지만 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게 흠이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게의 대를 잇는 것은 자식이지만 그녀는 오빠에게 물려받았다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다음 대를 이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치요 씨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단다. 가족은 아니더라도 혹시 물려받고 싶은 사람은 있지 않을까 했으나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데다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천이나 기모노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데,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가 없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결국 150년 가까이 이어온 천 가게의 명성이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닌교초
칼 상점 : 우부케야
역사가 느껴지는 큰 목조 간판과 미닫이문, 칼과 가위가 종류별로 전시된 쇼윈도가 눈길을 끄는 오래된 목조 건물이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칼 상점 우부케야다. 우부(産毛)는 배냇머리를 뜻하는 말로 ‘배냇머리를 자르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세월의 연륜을 고스란히 품은 칼, 가위, 족집게 등이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멋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에도 시대에 만들어져 주오구의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일본 최초의 서양 개량 재봉 가위도 있었다.
우부케야는 장인이 만든 가위와 식칼을 판매하면서 낡거나 날이 뭉뚝해진 칼과 가위를 수리해준다. 옛날에는 칼 가게에서 수리를 비롯한 손봐주는 일까지 다 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판매만 한다. 우부케야처럼 낡은 칼을 잘 쓸 수 있도록 수리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우부케야의 시작은 에도 시대인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사카에서 개업해 막부 말기에 니혼바시로 옮겼고, 메이지 초년에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는데 관동대지진 후 건물을 다시 지었다. 이곳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메이지 초기다.
현재 이곳의 주인은 8대인 야자키 유타카가이며, 그의 차남인 야자키 타이키가 대를 잇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매장 뒤편의 크고 작은 숫돌과 기계식 연마기를 비롯해 오랜 세월을 머금은 도구들과 칼ㆍ가위 수리 과정에서 나온 흔적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작은 공방에서 종일 머물며 작업한다. 칼과 가위라고 해서 모두 똑같이 수리하는 것은 아니다. 식칼은 채소용, 생선회용, 고기용 등 종류에 따라 날의 각도가 다르고, 날을 연마하는 방법 또한 다르다. 가위의 경우 옛날에는 크기만 다를 뿐 날은 차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용도별 가위가 등장해 그에 따라 수리법도 달라졌다.
일본의 가위는 6세기경 그리스에서 중국을 거쳐 전해졌다는 설이 있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화장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길이가 긴 의복용 가위, 섬세한 자수용 가위, 손톱을 자르는 가위 등 다양한 가위가 등장하고, 가위를 만드는 직업도 생겼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가위의 명공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는 양복, 군복이 늘어나며 직물을 자르는 가위와 이발 가위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10년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코야마무네츠구(古山宗次)가 서양식 미용 가위를 만들었고 요시다 야쥬로가 아주 무거운 서양의 재단 가위를 만들었다. 이 가위들은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우부케야에 진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