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대화법
강금주 지음 | 북클라우드
사춘기 대화법
강금주 지음
북클라우드 / 2014년 6월 / 288쪽 / 14,000원
아이는 부모의 말을 먹고 자란다
아이는 부모의 말로 조각되는 존재
‘나는 누구일까?’, ‘난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난 어디에 속해 있을까?’, ‘난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까?’ 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질문이 많아진다. 주된 탐구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날마다 매 순간 나에 관한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질문은 많은데 답이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이 다 다르다. 가족에게 물어보면 아들이거나 딸이고,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 동생 중 하나다. 선생님께 물어보면 몇 학년 몇 반 몇 번 누구일 뿐이다. 여기에 몇 등 정도의 성적에, 무슨 과목을 잘하고 무슨 과목은 조금 약하다는 설명이 붙는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더 알 수가 없다. ‘넌 사차원 같아’, ‘넌 착해’, ‘넌 멋져’, ‘넌 재수 없어’, ‘넌 내 친구’, ‘ 넌 의리 있는 놈’, ‘넌 공부 잘하는 애’, ‘넌 존재감 없는 애’, ‘넌 일진들 주변을 얼쩡거리는 애’, ‘넌 게임 잘하는 애’, ‘넌 축구 잘하는 애’ 등 제각각이다. 사회나 매스컴은 사춘기 아이들을 두고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완전 무개념 세대’라고 평한다.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사춘기 아이들이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부모의 말이다. 부모만큼 날마다 비슷한 말을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날마다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싫어도 듣게 되고, 그렇게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서 기억되어 사고 형성의 근간이 된다. 특히 자아 형성과 관련된 말은 아이에게 여지없이 그대로 투영된다.
“넌 어려서부터 참 착하고 말이 없었어. 어디서나 책만 읽었지. 하도 조용해서 돌아보면 혼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어.” 이런 말을 듣는 아이는 은연중에 자기는 늘 책을 읽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만든다. 반면, “넌 어려서부터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어”라는 말을 부모로부터 듣는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지도 않고 ‘난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입력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못한 것, 틀린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는 데는 열심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인색하다는 사실이다. 즉, 아이가 뭔가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 특별히 눈여겨보거나 칭찬해 주지 않는다.
“네가 그린 그림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와.”, “네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참 착한 아이가 네 안에 있는 것 같아.”, “네가 쓴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 아이에게 이런 칭찬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의 특별함을 찾아내서 다른 아이와 얼마나 다른지 칭찬해 주고,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점을 크게 말해 준 적이 있는가?
누구와 비교해서 네가 더 뛰어나니 기분이 좋다거나, 어떤 경쟁에서 혹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네가 특별하다가 아니라, 너의 말이나 표정, 너의 생각, 너의 표현들이 얼마나 특별한지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런 칭찬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간다.
아이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의 말은 건축물의 콘크리트 뼈대와 같다. 아이는 부모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을 기둥으로 삼아 그 위에 ‘나’라는 건물을 세운다. 아이는 순간순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가 궁금한데 부모가 늘 공부 얘기만 한다거나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거나, ‘이건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는 말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잘하는 것이나 특별한 면에 대한 말을 듣지 못한 채 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약한 기둥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건물처럼 약하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될 것이다.
살면서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떠오르는 것은 수학 공식도 과학의 법칙도 아니다. 영어 문장도 아니고, 아름다운 시구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부모가 늘 나에게 해 주었던 평범한 이야기다. 이것이 아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기죽지 마라.” 다섯 살 때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소녀를 일으켜 세워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만든 힘은 부모가 늘 반복해서 들려주던 ‘기죽지 마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장애 때문에 학원에서 거절당했을 때, 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동정 어린 말을 들었을 때, 장애 때문에 애써 두드린 마음의 문이 닫혔을 때도 그 소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부모가 늘 해 주던 ‘기죽지 마라’는 너무나 평범한 말이었다.
사춘기 아이는 부모의 말에 의해 조각되는 존재다. 매 순간 말로 내 아이를 끊임없이 조각하며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넌 커서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부모의 희망적인 바람과 말이 아이를 아름답게 조각하는 끌과 망치가 된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가 어려운 이유
감정을 읽지 않고 해법만 이야기한다
1년 전에 만난 중학교 2학년생 성민이는 태권도와 유도를 배우는 아이였다. 그런데 운동하는 아이치고는 어딘가 표정이 어둡고 말수도 적어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너는 중학생인데 운동을 두 가지나 하는구나? 다른 아이들은 하던 운동도 중학생이 되면 공부 때문에 그만두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니?” “아빠가 운동….” 성민이는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빠와 운동’ 사이에 뭔가가 있구나 싶었다.
“중학교 1학년 초에 한 친구가 저를 교실 밖으로 불러냈어요. 화장실 뒤로 따라갔더니 6명이 둘러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모두들 돌아가면서 한 대씩 피웠지만 전 ‘담배 안 피워’ 하고 거부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그 친구가 저를 또 불러냈어요. 같은 장소로 가 보니, 이번에는 다른 형들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가 저를 보더니 ‘담배도 같이 안 피우는 게 무슨 친구야?’ 하면서 형들하고 같이 저를 때리고 밟았어요. 그날 밤 아빠가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네가 힘이 없어서 맞는 거다. 아무도 너를 짓밟을 수 없게 실력을 키워라’ 하시며 다음 날 태권도 학원과 유도 학원에 등록해 주셨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운동을 두 개나 하는구나. 운동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어?” “9개월 정도요.” “그럼, 아직 친구 앞에 ‘짠’ 하고 내보일 정도는 아닐 거고. 너 영화 <친구>를 많이 보았겠구나?” “네. 수십 번 보았어요.” “그 영화를 볼 때마다 너도 그 친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네. 많이요.” “부모님께서 네가 <친구>를 보는 건 모르시지?” “네. 몰라요.” “그럼, 오늘 여기서 네가 생각한 친구 죽이는 방법 좀 들어 볼까?”
성민이는 3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모두 말했다. 부모가 들었으면 ‘말없이 순하고 착한 우리 아들 머릿속에 저렇게 끔찍한 생각들이 들어 있다니!’ 하면서 심장마비가 왔을지 모른다. “그래,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니?”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도 치고, 성민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자기의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다시 되묻기도 했다. 아이는 나와 대화하면서 조금씩 편안함을 찾아 가는 듯 보였다.
십대 아이와 말이 통하려면: 사건의 처음을 잠시 떠올려 보자. 성민이는 담배를 피우자는 제안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했다가 친구와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성민이 아빠는 성민이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로운 답을 주었다. ‘네가 강하면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 못하고 못 건든다. 네가 스스로 강한 힘을 키워라’라고. 하지만 성민이 아빠는 성민이가 어떤 기분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이의 감정을 다독여 주지는 않았다.
성민이는 지금도 운동을 하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다. 부모 눈에는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민이는 여전히 교실에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고 몇 배로 되갚아 주고 싶은 분노를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런 감정을 부모에게 말할 수는 없다. “엄마, 학교에서 그 애를 볼 때마다 그 애를 죽이고 싶어.” 이렇게 말을 하면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억누른 채 운동을 한다.
사람은 감정이 상하면 이성이 제시하는 길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이 아무리 “길에서 벗어났으니 몇백 미터 앞에서 유턴해 주세요”라고 안내를 해도 감정이 상하면 내비게이션 안내도, 빨간 신호들도 모두 무시하고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이성적인 해답 못지않게 감정도 인정해 주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십대는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나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이 상하면 뻔히 알면서도 엇나가는 소리를 한다. 때문에 십대와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기분이 어떠했을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아이의 그런 감정과 기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아빠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난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친구라면서 선배들까지 데리고 와서 너를 때렸으니 억울하고 분하지. 아빠가 어떻게 너를 도우면 좋겠니?” “잘 모르겠어. 그냥 억울하고 싫은데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더 분해.” “그래, 나라도 그럴 거야. 그 애를 보면 언젠가는 내가 당한 것보다 더 크게 갚아주고 싶은 복수심이 들 거야.” “교실에서 그 애를 보면 죽이고 싶을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어. 그런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 “나도 그건 알아요.” “그렇다고 분노와 복수심을 느끼는 너를 자책할 필요는 없어. 누구라도 네 입장이면 그런 기분이 들 거야. 아빠는 앞으로도 네가 그런 감정이 생기면 숨기지 않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빠가 너를 도와줄 수 있도록.”
상한 감정을 풀어 주지 않으려면 아무리 이성적인 해답을 가르치고 설명을 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해답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고 헤아려 주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대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긍정적인 언어로 자존감을 살려 준다
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은 아이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인정하고 온전히 믿어 준다는 뜻이다. 결과에 근거해 긍정적인 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독려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신뢰받는 아이는 건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으며, 부모의 쓴소리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과정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 주려면 부모의 눈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아이의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부모나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않고, 아이의 가치 기준으로 그 선택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험을 앞둔 아이가 시험공부는 안 하고 한동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더니, 책상에 앉아서도 또 인터넷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음잡고 공부 좀 하려고 보니 갑자기 겁이 난다. “해야 할 공부가 이렇게 많은데 난 뭘 한 거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이는 혼잣말을 하면서 부모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면 답답하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누가 시험 앞두고 그렇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놀고 싶은 거 다 노니? 여태 놀고 나니까 이제는 아예 포기하고 싶지?”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사실적인 판단이 아니다. ‘아직 기회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시작하라’는 말이다. ‘아직 안 늦었으니 빨리 공부모드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꾸중을 들을 줄 알았다면 게임하며 게으름 부린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공부를 시작했거나 잠을 잤을 것이다.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부모를 통해서 ‘긍정적인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미안할 만큼 놀았으니까 앞으로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 봐. 시험은 공부한 양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했느냐도 중요해. 그러니까 남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해 봐.” 부모의 이런 말에 아이는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잘했어. 그래, 네가 맞아. 네가 옳은 거야” 하며 아이를 두둔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 속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언어로 칭찬했으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며 안심하라는 뜻도 아니다. 부모로부터 들은 부정적인 평가가 한 번 머릿속에 입력되면 아이는 그 평가 그대로 자신을 정의 내리기 때문에 그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마음의 문도 닫기 쉽다.
긍정적인 말은 건강한 자아상을 만든다: 옷 입고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민아는 성적이 좋지 않다. 특히 영어와 수학은 바닥권이다. 그런 민아에게 “우리 딸은 패션에 참 남다른 감각이 있어. 그 분야로 나가면 참 특별한 사람이 될 거야. 그 감각을 더 구체적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너만의 패션 세계를 만들어 봐”라고 말한다면 민아는 영어, 수학 점수가 바닥이라도 그 점수와 상관없이 패션에 대한 감각과 미래의 가능성은 인정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패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져 영어 공부를 하게 되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관련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즐기는 일이 취미가 되고 취미가 호기심을 자극해 공부로 이어지면 저절로 전문가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부모가 원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남다른 재능의 싹까지 국영수 점수에 맞춰 잘라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멋 내는 시간에 공부를 하면 그 점수가 나오겠니? 멋 내는 데 쏟는 정성만큼 공부하면 서울대도 가겠다.”
이 순간 민아의 ‘못하는 공부’와 ‘잘하는 멋 부리기’는 다 부정적으로 평가된 것이다. 부모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칫, 나도 엄마가 기분 좋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데 그런 엄마를 기쁘게 할 일을 하고 싶겠는가. 그로 인해 자신이 손해를 입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손해 보는 것보다 엄마가 기쁜 것이 더 싫은 것이다.
평소 부모로부터 긍정적인 말을 듣는 아이는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가시 돋친 비판에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현재 진행형일 뿐 ‘난 결국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자아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밖에서 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다.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9가지 대화의 기술
말투 - 감정이나 판단을 싣지 마라
“왜요?” “뭐요?” “아닌데요.” “그래서요?” “몰라요.” “됐거든요.” 말 자체만 보면 딱히 나쁜 뜻은 없지만 말투에서 전해지는 뉘앙스가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감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말투다.
말하는 내용 못지않게 어떤 말투로 말하느냐가 대화의 수준을 결정한다. ‘하든가 말든가’ 식의 표현이나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하는 식의 따지는 말투로는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없다. 끝을 올리는 말투 역시 짜증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쉽다.
아이를 움직이는 말 vs 아이가 거부하는 말: 아이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부모의 말투는 대체로 다음 중 하나다.
“계속 스마트폰만 하고 있을 거야?”, “네가 할 건 다 해 놓고 그렇게 있는 거야?” 따지고 질책하고 판단하는 말투다. 이런 말투에는 고개도 들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기 쉽다. “스마트폰 꺼. 당장 들어가서 공부를 하든 말든 해” 단호하고 명령적인 말투다. 아이들은 명령적인 말투에는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더 단호하고 강한 명령이 내려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