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에세이 2
김교빈 지음 | 동녘
동양철학 에세이 2
김교빈 지음
동녘 / 2014년 5월 / 336쪽 / 14,000원
동중서 - 유가 독존 이천 년을 열다
이천 년을 이어온 유가의 독존
『전한서』 중 <동중서전>에 따르면, 동중서는 한무제가 어진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량대책>을 올렸는데, 이 글에서 동중서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세상의 영원한 법칙이며,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보편적 정의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상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제자백가 또한 방법과 뜻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통치자는 통일을 유지할 수가 없고, 백성들은 법과 제도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육예(六藝) 과목이나 공자 사상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없애버려서 함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한다면, 사악하고 치우친 주장들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기강이 하나로 통일되고 법률 제도가 분명해져서 백성들이 좇을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무제가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가를 높이고 다른 학문을 내쫓은 뒤부터 유가는 지배 세력의 지원 아래 정통 학문으로서의 권위를 얻었다. 특히 무제는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같은 유가 경전마다 전문가를 뽑아서 박사(博士) 칭호를 주었다. 박사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모아서 유가 경전을 가르칠 수 있었다. 또 한나라는 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유학 사상을 익힌 사람을 추천받아 관리로 임명했다. 이로부터 이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유학과 정치의 연결 고리가 완성되었다.
동중서는 위에서 언급한 공으로 강도 지역 재상에 임명될 수 있었다. 더구나 동중서는 『춘추번로』에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이며, 임금이 되는 일은 하늘이 인정한 것이라는 왕권신수설로 한나라와 무제의 통치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동중서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았다. 왜냐하면 『춘추번로』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임금이 잘못하면 하늘이 벌을 준다는 재이설을 주장해 무제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중서의 사상은 양날의 칼처럼 통치 계급을 지지하는 주장과 절대 권력을 견제하는 주장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한 왕권신수설이든 왕권 견제를 위한 재이설이든 그의 주장 모두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신념 위에 서 있었다.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일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밝히는 작업은 인류가 제기한 중요한 철학적 주제 가운데 하나다. 논의는 크게 인간과 자연이 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으로 갈리는데, 전자를 천인상관론이라 하고, 후자를 천인무관론이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의 차이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사회를 설명하는 이론 체계도 다르게 만들었다.
하늘과 사람은 하나다
한나라 초기에 맹자의 관점을 이어받아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이해하면서 천인상관설, 또는 천인감응설을 주장한 사람이 바로 동중서였다. 이 같은 동중서 사상의 기초는 기에 대한 이해였다. 동중서는 진나라 이전부터 자연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아온 기 이론을 받아들였고, 특히 음양과 오행 개념을 가지고 만물의 변화를 설명했다. 동중서는 인간과 자연이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 음양과 오행이 다 들어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은 기를 매개로 서로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는 그릇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다
이 같은 동중서 생각의 강점은 자연과 인간을 유기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안점은 전제군주 옹호가 아니라, 인간의 정치 행위와 그에 대한 자연의 반응을 밝힘으로써 군주의 전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잘 담은 책이 『춘추번로』다. 그는 이 책에서 공자가 쓴 『춘추』에 나타난 지진, 해일, 일식, 월식, 가뭄 같은 자연현상들을 당시 천자나 제후들의 정치 행위와 연관 지어 해석하고, 자연 재앙이나 이변이 모두 인간 행위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했다. 『춘추번로』에 담긴 동중서의 생각은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가지고 지금의 절대 권력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예로는 농번기에 백성을 동원하거나 만물이 자라는 봄이나 여름에 형을 집행하면 정치가 정당성을 잃고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져서 자연 재해를 불러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생각들은 비록 과학적 합리성은 부족하지만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력히 권고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천인상관론과 무관론의 대립 - 목적론과 기계론의 대립
한나라 말에 이러한 동중서의 철학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왕충이다. 왕충은 실증적,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천인상관설에 담긴 종교적 관념성과 신비주의를 비판했다. 왕충의 사상은 그가 지은 『논형』에 잘 나타나 있다. 『논형』의 ‘형(衡)’은 저울추라는 뜻으로, 제목처럼 균형을 잡기 위해 치우친 논리를 비판하는 책인데, 이 책에서 왕충의 생각이 잘 드러난 것은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왕충의 관점은 사회현상과 자연현상을 별개 영역으로 보았던 노학파의 관점을 이은 것이었고, 순자의 사상과 많은 관련을 지닌다. 일찍이 순자는 하늘을 도덕의 근원으로 보지 않았고, 기계적 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자연현상으로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자는 그 이전까지 이해하기 힘든 자연현상이 나타나면 하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신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순자는 별이 떨어지거나 나무가 소리 내어 우는 기이한 현상들을 모두 천지자연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이해했다. 정치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해에서도 자연법칙과 인간의 도덕법칙을 구분하여 이해했고, 인간 사회의 안정과 혼란,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인간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같은 인간의 역할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인간을 하늘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맞설 수 있는 대등한 존재로 파악함으로써 인간을, 하늘을 포함한 만물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부각했다.
동중서와 왕충의 차이는 목적론적 세계관과 기계론적 세계관의 차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목적론에 해당하는 것은 기독교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한다면 동중서는 하늘의 섭리를 이야기했던 것이며, 그 핵심은 왕의 권력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왕권신수설과 하늘이 왕권을 견제한다는 재이설이었다. 하지만 왕충은 이와 달리 자연 변화는 인간 사회의 질서나 인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객관세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왕충은 『논형』의 여러 부분에서 자연의 이변을 정치적인 행위와 연결 지은 동중서의 재이설을 비판했다.
예로 왕충은 <자연>편에서 “옛날에는 재이란 것도 없었고, 설령 재이가 있다 해도 하늘이 주는 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사람들이 순박해서 서로의 잘못을 비난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져서 위아래가 서로 비난하고 재이가 때맞춰 생기자 이를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하늘이 바로 옛날 하늘이니, 옛날 하늘은 더 너그럽고 오늘 하늘은 야박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하늘이 주는 벌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은 사람들이 주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미루어 생각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동중서에서 시작된 유가의 독존 현상은 얼마 안 가 비이성적인 모습으로까지 나아갔다. 기원전 1세기 무렵 나타난 공자 신격화 작업이 그것인데, 이는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면서 다시 인간으로 끌어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동중서가 경고했던 재이가 예언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 결과로 동중서의 재이설은 주역의 신비성과 결합하여 술수로 타락하고, 군주에 대한 하늘의 사명 또한 그 존재 의미를 잃고 말았다.
주희 - 동아시아 중세 보편적 세계관의 창시자
복건에서 나서 동아시아의 산맥이 되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의 중심축은 유교, 불교, 도교이다. 그 가운데서도 근대 이전 시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교, 특히 성리학이며, 그 영향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주희(朱熹, 1130~1200)다. 주희는 앞선 유학자들, 특히 북송오자 - 주희에 앞서 성리학의 토대를 다진 사상가들로 주돈이(1017~1073, 염계), 소옹(1011~1077, 강절), 장재(1020~1078, 횡거), 정호(1032~1085, 명도), 정이(1033~1107, 이천)를 가리킴 - 들의 사상을 합쳐 성리학을 완성함으로써 유학의 방향을 새롭게 바꾼 사람이다. 그래서 성리학을 다른 이름으로는 주자학이라고도 부른다. 주자란 주희의 성에다 공자, 맹자 같은 최고 존칭을 붙인 것이며, 주자학이란 주희의 사상 전체가 곧 하나의 학문 체계이자 학문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월인천강의 그물로 얽힌 리의 세계
주희는 가장 큰 틀에서 정이의 리 중심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여기에 주돈이와 장재, 소옹의 기 중심주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 체계에 맞춰 해석했다. 그래서 세상 만물의 발생과 존재 근거를 하나의 틀로 설명하는 이기론을 만들었고, 만물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존재인 인간의 마음과 본성을 도덕적 입장에서 분석한 심성론을 만들었으며, 감각적 욕구 때문에 선악의 가능성을 다 지닌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제시한 공부론을 완성했다. 이처럼 주자의 이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이기론을 알아보자. 주희의 이기론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정이와 장재다. 사실 두 사람은 매우 상반된 이론을 전개했다. 정이는 만물의 본질을 ‘리’라고 보았고, 장재는 ‘기’라고 보았다. 그런데 주희는 이 두 사람의 이론을 합치면서 만물의 본질을 리로 설명하는 정이의 주장을 중심에 놓고, 만물의 변화를 기로 설명하는 장재의 이론을 덧붙였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성즉리(性卽理)’이며, 이 말은 ‘본성이 곧 이치’라는 뜻이다. 이 명제는 성리학의 이기론이 늘 리와 기를 같이 들어 말하는 것 같지만, 궁극의 본성을 기가 아니라 리일 뿐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리학은 이기이원론이 아니며, 이와 기 두 가지를 다 사용하여 설명하더라도 그것은 방법상의 문제일 뿐 논리구조에서는 리일원론임을 알 수 있다. 일원론, 이원론, 다원론 같은 표현들은 가장 궁극의 존재가 하나인지, 둘인지, 여럿인지를 가르는 표현이다.
주희는 궁극의 자리에 있는 리를 태극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모든 본질은 현상을 통해 나타난다. 착하다는 추상적인 개념이 착한 학생, 착한 마음, 착한 가격처럼 구체적인 현상에서 판단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본질로써의 태극, 즉 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이 현상에 담겨서 나타날 때는 다양한 모습이 된다고 설명한다. 만물의 이치가 궁극에는 하나이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의 이치, 개의 이치, 나무의 이치, 돌의 이치, 바람이 이치, 불의 이치처럼 사물의 수만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편 본래 리는 성리학의 개념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들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불교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리고 궁극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현실에 드러나는 이치는 사물마다 다르다는 논리 또한 불교에서 왔다. 이 논리를 불교에서는 ‘월인만천(月印萬川)’, 또는 ‘월인천강(月印千江)’으로 비유한다. 위 비유를 가져다 이기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달은 리이고 개천은 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하늘에 있는 달, 즉 본질에서는 리만 있는 것이고 그것이 현실에 나타날 때 한강에 비친 달, 양자강에 비친 달로 달라지는 것처럼, 달을 담은 강, 즉 리를 담은 기에 의해 달라진다. 그래서 만물의 본질이라는 보편성에서 보면, 어떤 강에 비친 달이든 다 똑같지만, 현실의 특수성에서 보면 모든 강에 비친 달이 다 다른 달이 된다. 하지만 주희가 본질로써의 달과 특수로써의 달을 똑같은 리라는 말로 설명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주희는 이것을 ‘한 가지 근원으로써의 리’와 ‘나뉘어 갈라진 리’라고 구분했다.
그렇다면 리와 기는 어떤 관계인가? 주희는 그 둘의 관계에 대해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면서’ 동시에 ‘서로 뒤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은, 어떤 사물이든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는 것은 기이면서도 그 안에 항상 그 사물의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은 이치는 이치일 뿐이고 그 이치를 둘러싼 형질의 기는 기일 뿐이어서 서로 뒤섞일 수 없이 완전히 다른 존재임을 뜻한다. 그래서 주희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본다면 리와 기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지만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가치론적으로는 언제나 리가 먼저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근거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도덕 실현을 할 주체로서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에 대한 논의를 주자학에서는 심성론이라고 한다. 심성론은 인간 존재에 대한 도덕성 논증인 셈이며 주된 논의를 나누면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논의의 궁극 목적은 내 속에 담긴 하늘로부터 받은 이치를 보존하고, 기 때문에 생기는 인간적인 욕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주자학의 인간 이해를 심성론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 핵심 논의가 마음, 본성, 감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도덕적 인간론이기 때문이다. 주희의 주된 관심은 도덕 행위의 주체가 되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어떻게 선을 끌어내고 악을 누를 것인가였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 안에는 본성과 감정이 있다고 한다. 본성은 인간이 인간인 까닭이며 동시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모든 도덕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감정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희ㆍ로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으로 표현되는 온갖 느낌들이다. 그 경우 본성은 이기론의 리에 해당하므로 아무런 움직임도 의도함도 없으며, 본성이 현실과 만나 드러나는 것이 감정이다. 따라서 성리학은 본성과 감정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는 성정일원의 관점에 서 있다. 또한 마음, 본성, 감정의 관계를 볼 때 본성과 감정을 통섭하는 것이 마음인데, 이 셋의 관계를 ‘심통성정’이라고 부른다.다음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논의를 보자. 본연지성은 타고난 인간의 순수한 본성으로써 도덕성을 의미하며, 기질지성이란 그 본연지성을 기질이 둘러싼 현실적인 인간의 본성을 뜻한다. 예를 들어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할 때의 본성은 순수한 본성으로써의 도덕성을 의미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인간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이 바로 기질에 싸인 본성이다. 이러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대한 주희의 논리는 인간의 본성을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눈 장재의 논리와 궁극의 본원으로써의 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눈 정이의 논리를 가져다 합친 것이다. 따라서 처음 이런 구분을 만든 사람이 장재이므로 장재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주희는 논의의 중심축을 정이의 주장에 두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까닭은 기철학의 입장에서 태허의 기운에서 나온 것을 천지의 본성이라고 했던 장재와 달리, 주희는 ‘성즉리’를 주장한 정이의 이론을 받아들여서 본연의 성을 인간의 이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희는 리철학의 입장에 서서 장재의 주장과 정이의 설을 계승했다. 하지만 기질지성은 참된 본성이 아니라고 했던 정이와 달리 하늘로부터 받은 궁극의 본원으로써의 성만이 참된 성이라고 보고,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토대로 순수한 본모습을 회복하겠다는 입장에서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을 대립이 아닌 관계로 설명했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논의 가운데 세 번째는 인심과 도심에 대한 논의이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두 가지 모습이 있음을 발견했다. 인심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욕심 섞인 마음이며, 도심은 도덕적 본성을 따르는 순수한 마음인데, 언제나 욕심 섞인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도심이 자신을 주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주희가 본성과 감정을 나누고, 타고난 본성과 기질로 둘러싸인 본성을 나누고, 욕심 섞인 마음과 순수한 마음을 나눈 것은 인간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가 어디에서 달라지는 것인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고, 나아가 어떻게 악한 요소를 없애고 완전한 도덕을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래서 늘 ‘하늘로부터 받은 이치를 보존하고 인간의 욕구를 없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