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엄마가 고른 한 권의 그림책

신운선 지음 | 책이있는마을
엄마가 고른 한 권의 그림책

신운선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4년 5월 / 304쪽 / 14,800원





CHAPTER 1 그림책은 힘이 세다



아이의 발달 수준을 무시하면 좋은 책 읽고도 체한다

종종 출판사나 서점에서 독자 연령에 맞추어 그림책을 분류해 놓은 걸 본다. 그런데 이 기준을 참고만 해야지 맹신하면 곤란하다. 대부분 개인차에 따라 맞는 책 수준이 달라지고 이 개인차라는 것도 주관적인 생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 내용이 내 아이에게 맞는지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공원이야기: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유아용 책으로 분류되어 있는 그림책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의 독서 평가를 할 때에 종종 활용하기도 하고 학부모나 교사 대상 수업에도 자주 활용하는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공원에 갔던 네 사람인 찰스와 찰스 엄마, 스머지와 스머지 아빠다. 네 명의 인물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가 꺼내 놓는 경험은 다르다. 성격이 다르고 갈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에는 욕망이 투사되게 마련이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기억이 다른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책은 최소한의 글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그림이 상호 보완되어 독자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풍부하게 해 준다. 찰스 엄마에게 공원은 무서운 일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다. 공원에서 만난 ‘끔찍한’ 개나 ‘험하게 생긴 여자아이’인 스머지는 찰스 엄마에게는 적대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것은 모자를 눌러쓰고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찰스 엄마의 마음이 보는 공원이다.

오랫동안 실업 상태인 스머지 아빠에게 공원은 딸과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구직을 위해 신문을 뒤적이는 곳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보는 신문에 실린 뭉크의 절규 그림은 스머지 아빠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공원의 나무는 스머지 아빠의 무거운 마음을 대변하듯 육중한 몸의 코끼리로 보이고 나무들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검은 가지만 앙상하다.

찰스에게 공원은 엄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곳이다. 찰스는 친구가 없어 심심했기에 스머지를 만났을 때에 반가웠을 테지만 왠지 여자애라 별로였다고 한다. 나무 타기도 스머지가 더 잘하는 데도 찰스는 자신이 스머지에게 나무 타기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찰스는 흔히 부모의 지나친 억압이나 통제 속에 양육되는 아이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자신감 결여나 표현력 부족,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거짓말을 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아이다. 그래서 찰스가 보는 공원은 나무도 생기가 없고 자전거를 탄 두 남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려고 한다. 이 모습은 찰스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다.

스머지에게 공원은 호기심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다. 그래서 기운 없어 보이는 아빠가 산책 가자고 했을 때 기분이 좋기도 하고 공원에서 처음 만난 재미없어 보이는 찰스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찰스 엄마는 스머지네 개를 끔찍한 개라고 했지만 스머지는 찰스네 개를 귀여운 개라고 생각한다. 스머지가 경험하는 공원은 아빠에게는 기운을 차릴 수 있는 힘을 주고 스머지에게는 즐겁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그림책은 글에서 나타내지 않은 많은 것들을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글과 그림이 일치하는 그림책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이 되어 그림 읽기가 중요해지는 책이다. 또한 그림은 인물의 무의식과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글에서 생략된 많은 부분을 그림을 보며 상상과 추론, 분석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니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아이들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단편적인 정보나 이미지들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꺼내 놓기 쉬운 책인 것이다.

이 그림책으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하고 수업을 했는데 그때 한 학부모님께서 “왜 초등학교 5학년에게 유아용 그림책을 주느냐?”하고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림책은 무조건 유아용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질문인 셈이다.

이 책으로 수업을 했던 5학년 여자 아이는 찰스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와 비슷하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운 적이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보이지 말고 선생님만 읽으라며 내민 그 아이의 글에는 엄마의 지나친 통제와 간섭으로 힘들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육열이 높았던 엄마는 딸의 영어 교육을 위해 집에 오면 AFKN만 보게 했고,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집에 친구가 놀러 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며, 절약이 중요한 덕목이어서 딸에게 옷을 사서 입히기보다는 엄마의 옷을 함께 입게 했다. 그 결과 이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영어는 특히 잘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한 명이 없었다. 그러니 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았고 엄마에 대한 반발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힘들어했지만 수업 끝에는 ‘조금 후련하다’고 했으니 그림책을 통해 일부 마음의 정화를 한 셈이었다. 도서관에서 엄마들과 수업을 할 경우 많은 엄마들이 찰스의 엄마가 자신의 모습 같다고 고백하곤 한다.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명령하고 ‘안 돼!’ 소리를 습관처럼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러니 그림책이라고 무조건 유아용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좋은 그림책은 때론 예상하지 못한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성인 대상 강의 중에 함께 읽을 때,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글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측 가능한 많은 이야기들을 그림을 통해 읽으며 즐거움을 느낀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림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을 소개할 때 많이 받는 질문 중 한 가지는 “우리 애가 여섯 살인데 이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 주면 좋을까요?” 하는 말이다. 이 질문은 “오늘 내가 알게 된 이 그림책의 숨은 의미와 많은 이야기들을 여섯 살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의 다른 말일 수 있다. 혹은 “이 그림책은 유아용 책인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여섯 살 난 우리 애가 이해는 해야 할 텐데요.”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우선 여섯 살 아이에게 내가 아는 수준의 그림책에 대한 정보와 의미를 그대로 전해 주려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다. 여섯 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섯 살 수준에서 보이는 것과 열 살 수준에서 보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책에서 내가 알게 된 의미들이나 내가 느낀 생각들은 몇 번을 거르고 걸러 유아의 수준에 맞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아기들이 모유를 먹다가 이유식을 먹고 밥을 먹는 것처럼 똑같은 책이라도 유아의 수준을 고려하여 모유처럼도 먹이고 소화가 잘되도록 이유식으로도 먹이다가 밥알을 씹어 먹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여섯 살 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며 즐겁게 뛰노는 개 두 마리에 흥미를 보일 수도 있고 모자 모양을 한 구름을 신기해 할 수도 있으며 스머지와 찰스가 나무 타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흥미롭게 볼 수도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책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CHAPTER 2 엄마가 먼저 그림책으로 내 마음에 말 걸기



아이에게 바라는 내 마음에 질문하기

깊은 산골 농장에 어미 개가 낳은 새끼 개 한 마리를 사냥꾼이 데리고 간다. 사냥개로 기를 참이다. 새끼 개의 몸집이 점점 커지자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새끼 개는 나뭇가지를 물어 오기도 하고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물어 오기도 한다. 드디어 사냥꾼은 사냥개를 데리고 본격적인 사냥을 간다. 사냥꾼이 총을 쏘자 오리는 총에 맞아 땅으로 떨어졌다. “가서 물어 와.”라는 사냥꾼의 말에 사냥개는 어떻게 했을까?

사냥개는 힘없이 늘어진 오리를 보자 마음이 아파 오리를 살살 물고 작은 섬에 데려간다. 몰래 빵을 물어다 주기도 하고 오리의 상처를 핥아 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빵을 물고 나가는 사냥개를 몰래 뒤따라간 사냥꾼은 갈대 숲 사이의 작은 섬에서 상처 입은 오리와 그 오리를 보살피는 사냥개를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냥꾼은 어떻게 했을까?

나는 바보 사냥꾼이 아닌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영국의 그림책 작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바보 사냥꾼과 멋진 사냥개』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아이를 교육할 때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무엇인지, 1등이 되기 위한 경쟁이 당연한 것인지 잠시 생각하게 한다.

오랫동안 아이들의 독서 지도와 글쓰기 지도를 하며 항상 스스로에게 경계심을 가진 것 중 하나는 나의 교육 방법이나 내용 때문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제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간혹 사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 중에 교사나 부모가 좋아할 만한 글을 쓰기는 하지만 전혀 재미가 없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글을 쓰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떠한 교육 체제에 적게 노출된 탓에 글을 쓰는 데 형식적인 틀은 잡혀 있지 않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떤 글보다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잠시 ‘교육’하는 내 행위를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런 아이는 당장은 학교 수업에서 경쟁력이 떨어질지 모르고 당장은 시험 점수를 만족할 만큼 못 받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글 쓰는 기술이나 형식적인 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냥꾼이 될까?: 그러면서 이 그림책의 사냥꾼처럼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아이를 기계적으로 교육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들의 생각이 내 생각인 양 의심 없이 양육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리를 잘 물어 올 수 있도록 사냥개를 훈련시킨 사냥꾼처럼 맹목적으로 안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사냥개라면 아픈 오리를 어떻게 했을까? 내가 사냥꾼이라면 사냥개가 아픈 오리를 도와준 사실을 알고 어떻게 했을까? 그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사냥꾼은 사냥개가 아픈 오리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다친 오리들을 모두 섬에서 데리고 나와 돌보아 주다가 상처가 다 낫자 차례차례 놓아준다. 사냥꾼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순간 비로소 멋진 사냥꾼이 된다.

‘인간성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 주는 이 그림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최선은 아이가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 실상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많은 것들은 욕심일 수 있다. 그 욕심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지금의 내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내가 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 보자. 바보 사냥꾼이 될 것인지, 멋진 사냥꾼이 될 것인지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CHAPTER 3 책 좋아하는 아이로 만드는 엄마의 플랜



엄마가 먼저 책 읽기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자라는 모죽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제아무리 주변 환경이 좋아도 심은 지 5년이 지날 때까지 눈에 띄는 변화가 별로 없다고 한다. 도무지 눈에 띄게 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 기간으로 몇 년을 보내고 난 뒤에는 갑자기 하루에 70~80cm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 나무의 키가 무려 30m까지 커 버린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성장력이다. 많은 학자들이 혹시 대나무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비결은 5년 내내 드러내지 않은 대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내려 땅속 깊숙한 곳에서 주변 십 리가 넘는 땅에 기초를 다져 놓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유아기의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의 책 읽기는 우리 아이를 원목과 같은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 조용히 땅속의 뿌리를 키우는 일인 것이다.

엄마가 먼저 행복하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어머니’의 지대한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한 현재 진행형의 진리다. 교육학이니 심리학이니 공부를 하다 보면 ‘엄마’라는 이름은 ‘엄마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녀 교육관련 공부를 하는 동료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하여간 모두가 엄마 잘못이야. 엄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네.”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강의나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결론은 ‘부모가 잘해야’로 귀결되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가 없는’ 아이라고도 하고, “신(神)이 인간 세상에 직접 내려올 수 없어서 엄마를 대신 내려 보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엄마에게 기대는 환상만큼이나 실제로 엄마가 아이에게 신적인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엄마라는 역할을 잘하려면 엄마 자신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엄마가 가족을 돌보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아이를 쓰다듬어 주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많은 엄마들이 제 문제를 돌보기 전에 다른 가족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왜곡된 상태로 관계가 맺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독서심리상담에는 삶에 지치고 상처 입은 엄마들이 많이 참여한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지만 가족을 돌보느라 내 삶이 없어진 듯한 느낌에서 오는 외로움과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식의 요구에만 맞추는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으니 아이가 질문하는 것이 따지는 것처럼 들리고, 아이가 활달하게 자기주장을 펴는 것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엄마가 이렇게 느끼게 되면 말이나 행동이 곱게 나갈 리 없다. 아이의 질문에 핀잔을 주게 되고 아이의 주장을 듣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선 중요한 것은 엄마가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다. 자신을 돌볼 줄 알 때에 남도 돌볼 수 있으며, 내가 행복할 때에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눌 수 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책을 읽을 때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책을 읽으라고 권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는 대로 아이는 따라한다: 간디의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자신의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간디에게 와서 부탁을 한다. “선생님, 우리 애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는데 제가 말하면 잔소리가 돼요. 선생님이 사탕 좀 그만 먹으라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그러면 애가 말을 들을 것 같아요.” 간디는 알았다며 다음 주에 오라고 한다. 다음 주에 간디를 찾아간 부인에게 간디는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기다가 말한다. “다음 주에 다시 오십시오.” 그 다음 주에도 갔지만 간디는 또 다음 주에 오라고 한다. 드디어 그 다음 주에 갔더니 간디는 아이를 보며 말한다. “얘야, 사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치아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좀 줄이면 좋겠구나.”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이상하게 여겨 간디에게 묻는다. “선생님, 제가 3주 전에 부탁을 드렸는데 왜 이제야 이야기해 주십니까?” 그때에 간디의 대답은 “실은 제가 사탕을 끊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였다.

아이로 하여금 생활의 일부로 책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엄마가 먼저 책 읽기를 즐겨야 한다. 나는 읽지 않으면서 아이보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엄마 노릇은 직무 유기하면서 자식 노릇만 하라는 말과 같다.

국내 성인 독서율은 1994년의 86.8%에서 2011년의 66.8%로, 크게 감소한 상태다. 성인 열 명 중 네 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성인의 하루 독서 시간은 평균 23.5분으로 조사됐다. 인터넷은 2.3시간, 스마트폰은 1.6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얘기한들 무슨 소용인가. 무엇보다도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엄마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자녀에게 책 읽으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