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핀란드로부터
김은정 지음 | 라이온북스
여기, 핀란드로부터
김은정 지음
라이온북스 / 2014년 3월 / 332쪽 / 13,800원
FINLAND 01. 핀란드 생활여행자
초콜릿 공장 부른베르그
핀란드 십 대 소녀들은 정말 말랐다. 젓가락처럼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와 가녀린 몸은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아갈 것 같다. 신기한 일은 십 대를 지나 연령층이 올라갈수록 체형이 급격히 변하고 그 갭 역시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캐주얼한 핀란드 여자들은 늘어진 뱃살을 특별히 신경 쓰거나 처진 가슴을 보정 속옷으로 커버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유전적인 요소도 이유겠지만 끊임없이 초콜릿과 캔디를 섭취하는 이들의 생활습관에도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동굴 속 같은 핀란드의 겨울을 이기는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핀란드의 초콜릿 브랜드 중 판다(Panda), 파제르(Fazer) 그리고 부른베르그(Brunberg)만이 직접 공장에서 초콜릿을 만든다. 이 초콜릿들은 마트에 가면 여기저기에 있을 만큼 개수도, 가짓수도 많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파제르 공장에는 유일하게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남편 티뮤도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세 번이나 갔었다고 하니 핀란드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 기회가 많은가 보다.
어느 날, 부른베르그 공장에 직접 찾아가고 싶어졌다. 어릴 때 영화 <초콜릿 천국>을 보고 한동안 환상에 빠졌던 나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공장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이 초콜릿 안에서 황금 티켓을 얻은 것만큼이나 기쁜 연락을 받았다.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기업의 대표님이 우리를 위해 직접 시간을 내어주셨고, 나와 티뮤는 흰 모자와 가운을 입고 공장 내부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 달콤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는 것도 신기한데, 기계에서 갓 만들어진 초콜릿과 캔디를 입에 넣었을 때의 기분이란! 단 것에 취약한 내게도 그것은 신세계였으니 단 것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는 티뮤의 표정이란 이달의 스마일 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였다.
공장 내부를 돌면서 느낀 또 다른 감동은 직원들과 대표 모두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한 가족 같다는 것이다. 마치 어제와 오늘의 일상을 묻고 답하듯 자연스러웠다. 나 같은 호기심 많은 외국인 손님도 내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공장을 나서기 전 종이봉투에 이것저것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았다. 마트에서 부른베르그 초콜릿을 볼 때마다 그들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달달한 친절과 호의가 진한 다크 초콜릿처럼 다가온다.
그리운 날엔 까이보 뿌이스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엄마 밥이 너무 그립다거나, 오랜 친구 녀석들이 보고 싶을 때, 또는 날씨가 계속 비협조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감정 기복이 들쑥날쑥 일정하지 못할 때. 그럴 때면 찾는 일종의 안식처 같은 곳이 있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쉬고 싶은 곳. 바로 헬싱키의 까이보 뿌이스또다.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뿌이스또’라는 말은 공원이고 ‘까이보’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까이보 뿌이스또와 마주한 발트해를 배려한다면 바다 공원 정도로 커져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이곳은 그저 우물 공원이다. 바다보다 더 푸른 눈동자를 가진 핀란드인들도 사랑하는 까이보 뿌이스또는 헬싱키 도심 가운데 있다. 날씨가 좋으면 운동하는 사람들로, 산책 나온 가족들로, 이유 없이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만인이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며 아이들이나 강아지가 뛰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공원 위에 우뚝 서 있는 우주선 같은 모양새는 까이보뿌이스똔 옵세르바또리오 기상 관측대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수학여행 단골 코스인 첨성대가 떠오른다. 핀란드 학생들도 이곳으로 답사를 올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름이면 축구장을 연상케 하는 잔디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겨울이 되면 이곳은 더 특별해진다. 눈이 쌓이는 겨울부터 늦은 봄까지 눈썰매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말이 눈썰매장이지 개인 썰매를 가지고 와서 타고 노는 정도다. 완만한 경사가 있다고는 하나 어떻게 이곳에서 썰매를 탈 생각을 했을까?
처음 그 광경은 근처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만큼이나 낯설게 보였다. 특히 매년 2월 중순에는 봄을 맞이하는 의미의 날인 라스끼아이넨이 있는데, 말 그대로 썰매를 타는 날이다. 더 깊숙한 의미로는 종교와 연관되는 크리스찬 문화다. 도시를 해치지 않으면서 차분히 잘 이용하는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작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소꿉놀이를 하듯이 잔재미를 느끼며 삶을 즐긴다. 그런 모습들이 나를 간질이고, 반하게 한다.
FINLAND 02. 눈부신 여름은 정원이다
여름을 그리는 핀란드 사람들
핀란드의 겨울이 ‘구속’이라면 여름은 ‘해방’이다. 좀 극단적인 표현 같지만 정말 그렇다. 미끌미끌한 땅 위를 두꺼운 신발로 걷는 것이 아닌, 바짝 메마른 길 위를 가벼운 옷차림으로 당당히 걷는 기분이란. 여름은 겨울의 암흑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과도 같다.
이곳에서의 여름은 매년 돌아오는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가짐과는 사뭇 다르다. 집에서 뒹굴거리고 꼼지락대는 걸 좋아하는 나도 핀란드 여름날에는 바지런을 떨게 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온몸으로 햇살의 기운을 받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 유독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여름의 일상이다.
핀란드에 여름이 오면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바로 피크닉을 즐기는 핀란드인의 모습이다. 핀란드에서는 잔디 비슷한 것들이 보이는 곳에서는 언제든 피크닉이 가능하다. 나와 티뮤도 여름이 오면 내내 자동차 안에 돗자리나 해먹을 챙겨둔다. 야외로 나갔을 때 아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면 매번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진드기 티푸스의 공포를 걱정하거나 자외선 차단을 위해 애쓰지 않는 듯하다. 윗옷은 벗어버린 채 맨살로 태양과 마주하는 젊은 남자들, 배가 훤히 드러나는 탑만 입고 거침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금발의 백인 언니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조용히 음악에 심취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 도로와 도로 사이에 난 좁은 잔디밭에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 있는 이들도 있다. 뒷마당 풀밭이라도 행복할 정도니 이들이 얼마나 여름을 기다려왔을지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식상한 멘트 같지만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다. 도시 주변에 멋진 호수와 바다가 있다는 것은 핀란드인에게 분명 큰 축복이다. 수영복 위에 간편한 옷만 걸친 채 산책하듯 나가서 물놀이를 즐기고 그대로 바람에 몸을 말리며 집으로 걸어간다. 한국에서 내가 매년 도심 정체를 뚫고 피서지에서나 겨우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집 앞 슈퍼에 가는 일처럼 너무 쉽다.
이 축복이 더 빛나는 이유는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섞이고 즐기며 어우러진다. 백발의 할머니가 멋진 빨간색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을 걷는 모습, 어느 노부부가 사이좋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 한 명 특별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법도 없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나 외형에 치중된 패션도, 과한 화장도 없다. 그들은 진정 ‘즐김’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핀란드의 여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영혼까지 자유를 얻는 기분이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
“핀란드는 일 년 내내 겨울이에요?” 이런 질문을 꽤 많이 듣는 걸 보면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에 사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하다. 완연한 계절의 변화를 보이는 한국과 비교하자면 간극의 차이가 미지근해서 코웃음이 나오겠지만, 핀란드도 엄연히 사계절이 있는 나라다. 가령 봄이 왔다고 하기에는 겨울의 잔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그곳에 봄이 있다.
핀란드의 봄은 조금은 불친절하다. 아직 녹지 않은 미끄러운 길 위에는 자갈이 뿌려져 있는데 걷다 보면 신발 속으로 자꾸 자갈이 들어가 성가시다. 빠르게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이 오면 거리가 굉장히 지저분해지고 질퍽거린다. 장화를 신기에 적합한 시즌이다. 철 지난 두꺼운 외투를 늦은 봄까지 껴입어야 할 만큼 따사롭고 개운한 느낌은 없지만 봄이 왔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위로한다.
헬싱키 아라비아 람마스사아리에 있는 습지에는 양쪽으로 우거진 갈대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면 살짝 몸을 비틀어야 할 만큼 좁지만 걷고픈 마음이 절로 생기는 훌륭한 명소다. 아라비아는 운동이나 조깅을 하기에 제격인 장소다. 운동광인 남편의 친한 동료가 절대 이 주변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란다.
핀란드의 가을은 제법 춥다. 을씨년스러운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든 손엔 장갑을 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지만 핀란드 사람 대부분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들은 우수수 떨어지고 눈 깜짝할 사이 바람이 단풍들을 데려간다. 그러나 가을의 문턱은 순간의 찬란함처럼 고귀하다. 뚜렷한 경계 없이도 계절은 이렇게 변하고 왔다가 간다.
FINLAND 03. 헬싱키의 깊은 밤, 그리고 사람들
피니시스럽다
핀란드에 살면서 핀란드 사람들을 입이 닳도록 칭찬할 만한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 가장 첫 번째로 일어났던 일이다. 남편과 연애 당시, 정확히 내가 핀란드에 세 번째 방문했던 2007년 여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공항에 바래다주기 위해 짐들을 차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챙기기로 했던 카메라 가방을 그만 길바닥에 두고 타버렸다. 가방을 두고 차에 탔다는 사실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서로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보다도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방 안에 있던 지갑도 지갑이었지만 카메라 두 개와 렌즈들이 더 걱정이었다. 굳이 가져가자고 제안한 사람이 나였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불편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한잠도 못 자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 피곤함을 단숨에 날려준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카메라 가방이 그대로 돌아왔다는 남편의 문자 메시지였다.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까지도 함께 말이다. 지갑에 있던 운전면허증을 보고 118 서비스 센터(이름과 개인 ID를 말하면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에 전화를 걸어 친절히 찾아준 것이다. 그 사람은 당연한 일을 했다며 사례를 원하지도 않았단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인 잃은 장갑 한 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거나 머리핀 같은 작은 물건이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일들을 숱하게 봐왔다. 이런 걸 잃어버렸다 한들 누가 찾아갈까 싶지만, 그들은 땅에 떨어진 물건(그것이 크든 작든)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실험 결과로도 헬싱키가 정직한 나라 1위라고 기사에 나오지 않았는가. 물론 한국 인구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핀란드와 비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수가 있다. 사람이 많으면 더 통제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핀란드 사람들의 행동은 ‘참 피니시스럽다’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모습은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한순간에 얻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규칙을 잘 따른다는 것, 그 안에서 서로를 믿는다는 것, 그 믿음이 끈끈히 연계되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피니시스러움’이다.
꿈꾸는 핀란드 아이들
핀란드 유치원은 특별히 예외가 없는 한 아침과 오후, 하루에 두 번 가까운 놀이터로 나간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날씨가 영하권을 맴돌아도 실내에만 있지 않는다.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방수복을 입고 안전 조끼를 모두 착용한 뒤 외출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단체로 뛰기도 하고 눈 위에서 굴러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돌아오면 젖은 옷과 모자, 장갑 등을 건조기에 넣어서 말린다. 아이들 모두 공부를 특별히 하지는 않는다. 공부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매일 아침 인사와 노래, 요일과 날씨, 숫자와 색을 반복적으로 읊어주는 정도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자유로워 보인다.
밥 먹을 때만큼은 먹는 것에 집중하도록 가르친다. 옆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의자에 똑바로 앉지 않으면 바로 주의를 준다. 그러나 늦게 먹고 빨리 먹는 것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는다. 혼자 늦게까지 남아서 먹고 있더라도 “빨리 먹어”라든지 “다 먹었니?”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묻지 않는다. 무조건 음식을 다 먹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유치원 내 모든 아이들은 점심식사 이후 낮잠 시간을 갖는다. 각자 개인 침대에 누워 두 시간 정도 잠을 자는데 조용한 자장가를 틀어놓은 채 책을 삼십 분 정도 읽어준다. 그러면 나머지 선생님들은 손으로 몸을 쓸어주며 재운다. 이곳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나 역시 매일 아이들의 어깨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가끔은 내 눈을 의심하게 된다. 낮잠 자고 일어났을 때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인형이 침대에서 걸어나오는 것 같다. 뽀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에 까치집이 된 금발 아이들의 모습이란! 그렇게 낮잠에서 일어난 아이들은 삼십 분 정도 간식을 먹는다.
내가 이곳에서 정말 값지게 깨달은 건 ‘스스로 하기’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철저히 내버려둔다. 양말을 뒤집어 신거나 실내화를 반대로 신거나 바지를 거꾸로 입어도 바로 고쳐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대로 집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보고 있는 내가 오히려 답답해서 도와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은 서너 살에 불과했는데 그런 면에서 무척 훌륭하다. 스스로 음식을 먹고 다 먹은 접시를 옮기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상황에 따라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일률적인 태도도 보기 좋았다. 허용되지 않는 일에는 강하게 선을 긋고 대화로 훈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보고, 느끼고, 쓴 모든 것이 ‘다름’인지 ‘틀림’인지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많은 교육 방법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아이들과 부모를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교육의 현장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을 통찰하는 일은 혼곤하고 만만찮았지만,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유치원에서 3개월 동안 인턴으로 머문 시간은 내 삶에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가 되었다.
FINLAND 04. 겨울의 숨결을 따라가다
하늘에서 주는 선물
맞으면 춥고, 옷이 젖으니 성가시고, 분명 운전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매년 어린아이처럼 ‘눈’을 기다린다. 11월이 되면 이곳은 어둠이 짙게 찾아오고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공포적 요소를 다 갖춘 셈인데, 그나마 눈이 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존재적 힘 때문인지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어릴 때는 조금만 쌓여도 그것을 뭉쳐가며 좋아했을 만큼 간절히 눈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원 없이 소원풀이를 한다. 눈이 내리는 걸 보는 반가움도 잠시, 다음 날은 하늘에서 두부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사방이 미끌미끌하다. 찔끔찔끔 감질나게 내리는 것보다야 펑펑 제대로 내리는 함박눈이 더 좋긴 하지만, 인정사정없이 퍼붓는 속도감에 무서울 때가 있다. 영화 <노이 알비노이>의 첫 장면처럼 집 문을 열면 앞에 눈이 가득하지 않을까 할 만큼. 우산 없이 다니면 순식간에 인간 눈사람이 되고 마는데 핀란드 사람 대부분은 그냥 다 맞고 다닌다.
상황만 보면 혼잡이 예상되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답게 이곳은 제설작업 역시 빠르다. 동네마다 차이는 있지만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시에서 트럭으로 눈을 나르기도 하고 Compact Track Loader를 이용해 집 앞에 쌓인 눈을 싹 치워주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 뉴스에 속보로 나올 일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일도 없다. 사람들도 그렇다. 평소와 같이 자전거를 태연하게 잘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