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리고 전쟁: 게412
문창범 지음 | 중앙생활사
암 그리고 전쟁: 게412
문창범 지음
중앙생활사 / 2014년 2월 / 272쪽 / 15,000원
1장 ‘암’의 출현: 게412
게412: 2011년, 따스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던 4월 12일. ‘죄송한 말씀드리게 되어 미안합니다.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 전문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앳돼 보이는 젊은 의사가 진실로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인숙’의 오른쪽 유방 조직검사 결과를 알려준다. 우리는 둘 다 말없이 병원 문을 나섰다. 나는 ‘아! 이제부터 우리들의 인생길은 달라지겠구나!’라고 몇 번이고 울부짖었다. 암-게412-은 그렇게 출현하였다.
하얀게와 서울게: 내가 태어난 곳은 제주의 함덕이다. 그곳 함덕 바닷가에는 하얀게들이 살고 있(었)다. 어릴 적 가끔 여름이 아닐 때 해수욕장 근처 바닷가에 가보면, 어김없이 그 하얀게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곤 하였다. 잡기는 힘들었다. 재빨리 구멍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그 구멍은 또 어찌나 깊었는지 어릴 때의 조그만 손으로는 접근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게와 암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순히 암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cancer가 게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 때문에 게와 암이 서로 만난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만남이 다시 나를 유년 시대로 이끌면서 나의 고향 바닷가와 그 바닷가에서 놀던 하얀게가 불현듯 떠오르게 만들었다. 의식을 가지고 기억을 더듬는 인간 본성의 능력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묘한 감정이 인다. 그 순한 하얀게와 그 하얀 모래 그리고 조용히 흐르던 바닷물의 고요함이 죽음을 연상시키는 ‘암’의 출현에 의해 연상되다니. 그러면서도 굳이 ‘게’라는 단어를 빌려 ‘인숙’의 암 전쟁을 이야기하고, 또 보편적으로 암이라는 의학용어를 게와 대비시키는 것은, 어쩌면 ‘암’이 주는 불길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싶은 나 자신의 욕망이 우선 작용한 결과라고 하겠다.
잔인한 4월: [4. 13] 암 전문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한 사전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결과를 통보받았던 병원으로 가, ‘의뢰서’, ‘진단서’를 발급받고 조직검사 영상 ‘슬라이드’를 신청하였다. 직장 동료 교수에게 전화하여 암 치료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분의 아내가 암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분도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을까 고민하다 결국 서울로 가서 치료했다며, 집에서 갔다 왔다 하는 것 등은 남편으로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 진료: [4. 19] 드디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첫 격전지로 향하였다. 07:10 출발. 08:40 병원 도착하여 1층 암센터 진료 접수처에 조직검사 결과 CD, 슬라이드, 의뢰서, 레포트 등을 제출하고, 과거 병명, 심리상태 등에 대한 설문지 작성(2장). 10시 40분, 드디어 호출 명령이 떨어졌다. 진료실로 무겁게 들어갔다. “수술하며, 오른쪽 유방 모두 도려냅니다.” 2분여 만에 끝났다. 앞뒤 설명도 없다. 첫 격전지에서의 그 냉정함. 역시 전쟁터는 전쟁터구나. 암이 주는 공포는 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죽음이 나에게 바로 다가왔구나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그러한 본연적인 공포감을 가진 한 인간을 앞에 두고 진료 결과를 그렇게 간단히 프린트하듯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특유의 의료 사정-큰 병원 선호에 따른 유명 전문의의 과잉 진료-을 감안하면 2분여의 짧은 시간을 어느 정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기계적인 진료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된다. 수술을 받기 위한 사전 검사에 들어갔다. 오늘이 1차. 그리고 2차는 5월 2일. 운명의 수술은 5월 6일(원래 5월 13일로 처음 내정되었으나 나중 일주일 앞당긴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 되었는데 3주(실제적으로는 2주) 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 산(山) 열심히 다니고 부지런히 지내자. 또 눈물이 난다.
2장 1차 전쟁: 수술
수술 전야: [5. 5] 어린이날. 우리는 ‘암’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삶은 이런 것’이라고 몇 번씩 되뇌고 되뇌었다. 5층 입원실(521호). 6인실이다. 저녁 6시 50분경 담당 의사의 방문 진료. 암 덩어리는 5㎝경으로 유방을 완전히 도려낸다고 한다. 더욱이 옆구리 쪽도. 간단한 부연 설명조차 없다. 그저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8시 40분경 수술 전 주의 사항 교육이 이루어졌다. 10시 30분경 같이 수술을 받는 다른 환자와 함께 내일 수술에 대한 수석 간호사의 설명을 들었다. 유방은 완전 절개하며 림프선마저 제거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림프선의 경우 초음파 등에 의한 분석 결과 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러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숙’은 공포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수술: [5. 6] 몇 번이고 깨었다, 잠들었다 하였다. ‘인숙’은 잠을 못 잔 듯하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는다. 6시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을 추슬렀다. 7시경 우리가 다니는 교회 구역 목사님과 몇몇 분들이 문병을 왔다. 그리고 예배, ‘인숙’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수술을 위한 사전 준비가 담당 간호사에 의해 진행되었다. 7시 40분경 드디어 수술실로 향하다. 아, 그 모습.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은은한 인간의 무거움이 ‘인숙’의 얼굴에서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수술 대기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들이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드디어 수술 받는 환자 명단에 ‘인숙’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8시 17분 수술이 시작했다는 방송이 대기실 공기에 실려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비치해둔 신문을 읽는다.
11시 20분이다. 3시간이 지났다. 초조하다. 불안하다. 드디어 11:43, 수술 끝내고 회복실로 간다는 전갈이 방송을 타고 나왔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인숙을 보았다. 아! 입술은 완전히 부르터 있고 얼굴에는 근엄한 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평생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12:50, 비로소 병실로 옮겨지다. 지금부터는 수술 후의 회복을 위한 단계별 조치가 진행된다. 특히 마취에 따른 뇌의 산소 함량의 불협화음을 조기에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13:00, 계속 심호흡을 하다. 폐산소량 100%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15:00, 조금씩 나아지다. 18:10, 나만 홀로 지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20:20, 수술을 담당한 의사 진료가 시작되다. 무사히 수술해준 고마운 분이다. 일주일 후 조직검사가 나온다고 퉁명하고 의례적인 말이 나왔지만, 일주일이 훨씬 지나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조직검사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끝내 없었다. 대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항암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때 비로소 조직검사에 대한 자세한 결과를 듣게 된다.
수술 후: [5. 7] 아침 6시, 드디어 ‘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화장실까지. 2시경 ‘인숙’과 함께 휴게실에서 쉬다. ‘인숙’은 피곤에 지쳐 꾸벅꾸벅 졸았다. 6시 20분경 애들이 면회를 왔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라고 선물을 사왔다. 8시 면회 시간이 끝나자 애들은 돌아갔다. [5. 8] 11시경 애들이 다시 왔다. 애들이 오니 엄마인 ‘인숙’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가족의 존재가 곧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인숙’은 실내에서 가끔 운동을 한다. 10시경 잠을 잤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
[5. 9] 5시 반경 일어났다. 6시경부터 인숙 허리를 주물러주는데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만감이 교차되는 듯 흐느껴 울었다. 어찌 아니 슬프겠는가. 우리 바로 맞은편에 있는 환자분이 “서러우면 실컷 울라”고 한다. 9시 25분 유방암 교육 받으러 갔다. 휴게실에서 ‘인숙’, MP3로 중국 노래를 들으며 기분 전환을 한다. 우울증에 걸리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우려가 나의 마음을 찌른다.
[5. 10] 6시 45분 일어나다.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인숙’도 잠을 잘 잔 듯하다. 식사 후 운동 겸 복도를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인숙’은 머리를 감았다. ‘인숙’의 동생인 선희 엄마가 알리는 바람에 장모님이 찾아오셨다.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는가. ‘인숙’이 꿋꿋한 모습을 견지해주어 다행. [5. 11] 04:40, 분비액 체크. 양으로 보아 오늘 퇴원할 수도 있을 듯하다. 나는 내일까지 있고 싶은데 ‘인숙’이 퇴원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결국 오늘 퇴원이 결정되었다. 9시경 분비물 호스 제거. 9시 반 영양 교육. 진료비 계산하고, 유의 사항 듣고서 11시경 드디어 퇴원이다.
1차 전쟁 마무리: [5. 12] 6시경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하게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인숙’도 함께. 2시경 ‘인숙’이 중국어 배우러 간다고 하여 같이 동사무소까지 걸어갔다. 나는 혼자 되돌아왔다. 일상생활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게’와의 2차(항암치료), 3차 전쟁(방사선치료)을 생각하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오늘 저녁도 어제처럼 둘이서 식사를 하였다. 앞으로 항암치료에 대비하여 체내 단백질 수치를 높이기 위해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조개 등 해산물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인숙’은 고기를 먹는 데 어려워한다. 나는 옆에서 고기 더 먹으라고 윽박 아닌 윽박을 지른다.
[5. 20] 비가 나린다. 오랜만이다. ‘인숙’은 배 아파한다. 걱정이다. 학교에 나가 연구실에서 조용히 지냈다. 비가 나려서일까 울적하다. ‘인숙’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린다. 비와 눈물이 뇌 속에서 요동을 친다. [5. 24] 수술 후 첫 진료 받는 날이다. 09:20, 진료가 시작되다. 역시 2분여, 짧은 진료 아닌 면담 수준. 그리고 일방적 코멘트가 흘러나온다. 항암치료는 물론 방사선치료까지 병행한다는. 다른 곳으로의 전이는 없다는 결론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6월 2일 첫 항암치료 및 진료가 시작되는 것으로 계획표가 정해졌다. 진료기록부를 보니 ‘tumor size: 5.1 x 3.7㎠(pT3).’ 아마도 3기를 뜻하는 듯했다. 도대체 설명을 전혀 안 해주는 것이 의아하기만 할 뿐이다. 가족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해두면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치가 않다.
[5. 27]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수철리에 가보았다. 텃밭 정리를 하였다. 고추, 오이, 토마토 등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하고 노끈을 매어 싱싱한 야채공장(?)을 완성시켰다. 잡초 제거를 하는 데 꽤나 힘이 든다. 이놈의 잡초는 6월이 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식한다. ‘암’과의 전쟁도 벌이는데, 이 잡초 제거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5. 29] 오전에 잠깐 ‘인숙’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괜히 보여주었나 보다. 내 죄가 크다. 이 책은 췌장암에 걸린 어느 교수의 일기 형태의 수필로 결국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이 세상과 하직한다는 내용이다. 어제, 같은 과 교수로부터 선물 받은 것인데, 나 역시 이 책을 받으면서 묘한 감정이 일었었다. 가슴이 아프다.
3장 2차 전쟁: 항암 주사
TNBC: [6. 2] 6시에 일어났다. 1차 항암 주사가 투여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하였다. 06:30 출발. 08:00 병원 도착. 08:23 흉부 엑스레이 촬영. 09:00 아침식사. 10:40 진료. 항암치료 전문의 진료를 통하여 비로소 ‘인숙’의 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공식 명칭은 삼중 음성 유방암(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TNBC). 유방암 환자 중 약 10~15% 확률로 나타나는데, 전파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한다. 그 반면에 3년간 재발이 없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12시경 조제된 약을 구하러 병원 밖에 있는 약국에 다녀와야 했다.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편이 의사와 약사 간의 투쟁의 결과임을 안다. 환자나 그 가족들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다. 13:40 항암치료 시작. 침대에 누워 항암 주사를 받는 ‘인숙’을 쳐다본다. 소위 공포의 빨간 약(DOXO) 2개가 먼저 투여된다. 나중에 다시 2개의 하얀 약이 투여된다. ‘인숙’이 자기 시작하다. 14:50 드디어 끝나다. 어질어질한지 내가 가볍게 부축하면서 나왔다. 15:45 영양 교육을 받다. 16:00 집으로 출발.
1차 항암: [6. 3] 의외로 항암에 대한 증상이 별로 크지 않은 듯 ‘인숙’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한다. 부득부득 산에 가자 우겨 월봉산을 올랐다. [6. 4] ‘인숙’은 드디어 메스꺼움이 나타나며 항암 약물 증상이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듯했다. 아침을 힘겹게 먹고 자리에 누웠다. ‘인숙’이 곤히 자는 사이 베란다에서 박사 학위 논문 발표 자료를 점검하고 디스플레이 관련 논문을 손질하였다. 11시경 ‘인숙’이 일어났다. 산을 타고 싶다고 한다. 저 고집 어떻게 꺾나. [6. 5] ‘인숙’은 이제 완전히 입맛을 잃은 듯하다. 메스꺼움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식사하는 모습에서 눈물이 난다.
[6. 7] 6시경 일어나다. 이제 ‘인숙’의 상태가 좋아졌는지 비로소, ‘그제와 어저께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그리고 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6. 14] 오늘 ‘인숙’이 머리를 잘랐다. 샤워하는데 머리칼이 계속 빠져 결국 오늘 결심하여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를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 하였다. 아! 이 모든 것이 한바탕 지나가버리는 바람, 그저 단순 사건이기를 기원해본다. 오후 늦게 백화점으로 ‘인숙’의 모자를 사러 갔다.
2차 항암: [6. 24] 오늘은 2차 항암치료일이다. 06:40 집 출발. 08:15 병원 도착. 08:40 채혈. 접수 신청. 키, 몸무게, 혈압 등 측정. 09:40 진료. 백혈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비교적 강한 항암제를 투여하고 있는데 잘 견디어내고 있단다. 오늘 항암 주사를 맞고 계획대로 3주 후에 진료하는 길을 간다. 잘 견디어주는 ‘인숙’이 고마울 뿐이다. 11:20 항암 주사 시작. 12:35 끝남.
[6. 26] ‘인숙’은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지 무난히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래도 얼마나 힘들겠나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팠다. 아무래도 점심은 보통 음식으로는 힘들 것 같아 죽을 사러 나갔다. 그러나 일요일이어서 죽을 하는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과일과 생수 등만 사 갖고 오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결국 점심으로 마땅한 게 없어 아침에 해두었던 것을 다시 내놓았다. ‘인숙’은 밥 먹기가 싫다고 하며 밖에 나가 칼국수를 사 먹거나 아니면 집에서 메밀국수를 해 먹자고 했다. 나는 대뜸 “한 번 갔던 식당 다시 가기 싫어하지 않느냐, 그리고 메밀국수를 하려면 당신 손이 많이 가지 않느냐”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발산하고 말았다. 마음 아픈 길로 가버린 것이다. 결국 둘이서 묵묵히 점심을 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막내 ‘우주’가 공부하고 돌아왔다. 조용히 막내 방에 가서 엄마에게 할 일을 일러주었다. 현재 ‘우주’가 할 일은 “최대한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드리는 것이다. 수술하고 치료한다고 끝나는 병이 아니다”라고. 애도 눈물을 흘리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6. 27] 오늘은 ‘우주’도 제대로 아침을 하고 갔다. 안심이다. 오전에는 ‘별’을 위한 수리물리학 특강을 했다. 공대를 다니면서도 공학에는 관심 없고 오직 물리 공부에만 매달린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하고 현대물리학, 수리물리학, 그리고 기초 양자역학은 내가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어 진행 중이다. [7. 1] 오늘 ‘인숙’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에 내가 학교에 가 있는 사이 침대에서 쉬는 동안 자기 앞일에 대한 불안, 공포를 느껴서일 것이다. 얼마나 그 공포가 깊고 무서울까? 12시경 돌아왔는데 잠깐 식탁에 앉아 있는 사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울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이 기막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짓누른다. [7. 3] 나와 은하의 합동 생일 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사왔다. 오늘 편의점에서 산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다음과 같이 좋은 구절을 만났다. “슬픔과 고통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고 위로받는다. 기쁨보다 슬픔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훨씬 강하다.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