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천재, 부모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김희섭 지음 | 깊은나무
IT 천재, 부모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김희섭 지음
깊은나무 / 2014년 1월 / 240쪽 / 12,000원
Chapter 01 마크 저커버그 - 전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122조 원 회사의 20대 CEO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20대 청년 갑부: 갈색 곱슬머리에 매부리코, 헐렁한 후드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젊은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이 청년은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다. 페이스북 최대 주주인 그의 재산은 약 30조 원에 달한다.
스무 살 천재가 만들어낸 페이스북: 저커버그가 스무 살 때인 2004년 하버드 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든 페이스북은 8년 만에 전 세계 8억 명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성장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0년 ‘올해의 인물’로 마크 저커버그를 선정했는데, “사람들의 인맥을 연결하는 새로운 정보교류 시스템으로 우리 모두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꿨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저커버그 부모의 자녀 교육법: 저커버그는 원래부터 천재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성공을 이룬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대박을 친 것일까? 물론 재능과 운도 따랐겠지만 자녀의 적성을 조기에 파악하고 재능을 꽃피게 도와준 저커버그 부모의 교육열이 없었다면, 페이스북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커버그의 성공 배경에는 부모의 세심한 관찰과 맞춤형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IT(정보기술)에 대한 뛰어난 관심과 집중력을 보이는 것을 보고, 아들이 컴퓨터 천재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채근한 것이 아니라, 자녀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지, 지적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해서 적절한 교육과정을 제시하며 이끌었다. 학교 수업과 별도로 개인 과외교사를 붙여주기도 했고, 아직 중학생인 저커버그를 대학 수업에 데려가 청강을 시키기도 했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킨 적은 없었다. 그
저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길러주고 도전정신을 키워주었다. 저커버그도 “내가 IT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제일 컸다”고 말한다.
Chapter 02 스티브 잡스 - IT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버린 창의성의 귀재
세계를 뒤흔들고 사라진 거물: 2011년 10월 5일, 전 세계는 한 인물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바로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한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티브 잡스다. 강력한 카리스마, 편집광적인 열정, 완벽주의, 화려한 쇼맨십, 마법 같은 프레젠테이션, 창조경영의 아이콘 등이 잡스를 상징하는 단어다. 잡스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고, 결국 세상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꿔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1970년대 말, 기업용 대형 컴퓨터만이 판을 치고 시장을 주도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어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그 덕에 그는 20대 초반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2001년 이후에는 아이팟ㆍ아이폰ㆍ아이패드 삼총사를 내세워 모바일 시대를 선도했다. 잡스는 완벽하고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다. 성격이나 도덕적인 면을 보면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기적인 행동과 지나친 독설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 잡스의 인생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잡스가 굴곡 많은 삶을 살면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면서 세상을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나를 키워주신 양부모님: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입양됐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한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20대에 애플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독선적인 성격 탓에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도 겪었다. 또 절치부심한 끝에 애플에 복귀해서 최고의 절정에 이르는 순간, 췌장암이라는 병마가 엄습했다. 불운의 연속이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다. 잡스는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빛나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에 있었다.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아내, 자녀 등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어린 시절 헤어진 여동생을 찾아서 못다 한 우애를 나누기도 했다. 잡스가 지난 2005년 6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말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진한 울림을 준다. “끝없이 갈망하라.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 말만큼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문구가 또 있을까?
Chapter 03 빌 게이츠 - 세계 최고의 부자에서 세계 최고의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IT 천재
소프트웨어 황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와는 1955년생 동갑내기다. 첫 스타트는 잡스가 빨랐다. 애플Ⅱ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잡스는 20대에 거부의 반열에 올랐지만, 당시 게이츠는 잡스를 올려다보며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하지만 이내 MS-DOS와 윈도가 히트해 게이츠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잡스는 게이츠에 열등감을 갖고 그를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게이츠도 잡스의 창조적인 직관과 뛰어난 심미안을 항상 부러워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어젖혔다.
게이츠는 PC를 작동시키는 핵심 프로그램인 운영체제(OS)를 개발했다. 게이츠가 처음에 만든 운영체제는 까만 화면에 일일이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MS-DOS였다. 이 시기에는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화면상의 아이콘(그림)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현재의 그래픽 운영체제(GUI) 윈도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게이츠는 대성공을 거둔다. 컴퓨터 제조회사는 다 달라도 컴퓨터의 내부에 들어있는 운영체제는 대부분 게이츠의 윈도였고, 세계 90퍼센트 이상의 컴퓨터에서 윈도를 사용했다.
윈도만이 아니다.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사무용 프로그램도 대히트를 쳤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를 첨단 산업으로 당당히 발전시킨 인물이다. 컴퓨터를 사면 소프트웨어를 끼워주는 것이 상식처럼 통하던 시기에, 소프트웨어도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수많은 컴퓨터 회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그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20여 년간 명성을 유지해왔다.
죽기 전에 내가 번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그가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것은 단지 돈을 많이 벌었거나 큰 회사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잡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꿨다. 엔지니어들이나 쓰는 걸로 알았던 컴퓨터를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들여놓게 한 결정적인 인물이 바로 게이츠다. 또 게이츠는 2008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명예롭게 은퇴해 지금은 부인과 함께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인 빌&멜린다 재단을 이끌며 자선활동에 힘쓰고 있다. 그는 “죽기 전에 내가 번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지인들의 성공담을 듣던 저녁시간: 게이츠의 정식 이름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아버지 윌리엄 헨리 게이츠 2세는 변호사였고, 어머니 메리 게이츠는 교사 출신이었다. 이들 부부는 지역에서 존경받는 유명 인사였다. 아버지는 지역 변호사 업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워싱턴 주 변호사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어머니 메리는 자녀들이 태어나자 교사 일을 그만두고 시애틀 지역의 자선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어머니가 역사박물관에서 방문객에게 유물 해설을 하는 동안 자녀들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같이 설명을 들었다.
바쁜 생활을 보내면서도 게이츠 부부는 자녀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다. 매주 일요일 저녁시간에는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사회문제나 문화, 역사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또 지인들을 자주 저녁식사에 초대해 자녀와 함께 식사를 했다. 대개 시장, 주 의회 의원 같은 정치가나 저명한 학자, 의사, 고위 공무원, 기업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게이츠에게 자신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어려움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들려줬다. 어린 게이츠는 초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성공과 도전정신에 대해 직감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Chapter 04 IT 천재들의 부모들 - 그들의 뒤에는 언제나 부모가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세 사람은 IT로 세상을 바꿔놓은 천재들이다. 세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면서 지내왔다. 잡스와 게이츠는 30년 지기이자 일생의 라이벌로 지내왔다. 한때 협력관계를 맺다가 적군으로 돌아서 험한 말을 쏟아내고, 법정에서 특허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능력을 알았고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로 인정했다. 저커버그는 두 거인은 성공담을 보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IT 천재들이 태어나서 자신의 회사를 창업하기 전까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어려서부터 ‘컴퓨터 도사’급 실력을 자랑했지만 인간관계는 서툴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명문대에 들어갔지만 졸업장을 받지 않고 중도에 자퇴한 것도 똑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서서 걸어갔다. 이들의 삶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훌륭한 부모가 늘 곁에 있었다는 게 발견된다. 부모들은 자녀를 매우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남다르게 교육했다. 이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교육’이 없었다면 IT 천재들도 평범한 사람에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러면 IT 천재들의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했는지 몇 가지 포인트로 알아보자.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의 존재: 세 사람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일로 바빴지만, 가능한 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게이츠의 아버지는 워싱턴 주 변호사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외부 일이 많았지만 일이 없는 날에는 늘 일찍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자녀가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지, 친구들과 사이는 어떤지, 사회적인 이슈나 문화이벤트,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특히 일요일 저녁에는 지역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자녀들에게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고 자녀의 도전정신을 키워줬다. 그리고 매년 여름방학에는 2주간 가족여행을 떠나 돈독한 가족애를 쌓았다. 어린 시절 게이츠가 가장 좋아한 것도 가족과 떠나는 여름캠프였다.
저커버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다. 그는 집 바로 아래에 개인병원을 열어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저커버그가 어릴 때부터 같이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아들의 지적 능력과 관심사를 세세히 파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친한 친구처럼 대해줬다. 저커버그도 아버지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늘 가까이에서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으로 삼았다.
잡스는 입양아였다. 하지만 잡스를 입양한 양부모는 그를 친아들 이상으로 귀하게 여겼다. 빠듯한 형편에서도 아들이 원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뭐든지 들어줬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과 차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동차 고치는 법과 울타리나 가구를 만드는 목수 일을 가르쳐줬다. 훗날 잡스가 아이폰 같은 기기를 만들 때 완벽한 제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설계와 디자인을 뜯어고친 것도, 무슨 일이든 대충 처리하는 법이 없었던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요즘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너무 바쁘다. 하지만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아니다. 회사 일 때문에 힘들다고는 해도 가급적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가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자.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그게 자신에게도 좋고 자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머니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동교육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가 자신의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면, 부모가 더 이상 공부하라고 채근할 필요가 없다.
조기 교육으로 자녀의 천재성을 일깨워라: IT 천재들의 성격은 다들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머리는 좋았지만 사회성이 서툴렀다.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지 못해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들은 “넌 왜 항상 이 모양이니”, “아빠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는 식으로 푸념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 아이는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고 더 많은 신경을 썼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발견해 키워주려고 한 것도 공통된 점이었다.
저커버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이면서도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아들이 곧잘 자신의 옆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는 데 호기심을 보이자, 아버지는 저커버그가 아홉 살 때부터 정식으로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그리고 아들이 금방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자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가정교사로 채용해 컴퓨터에 대한 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줬다. 아울러 어려운 과제를 내서 도전정신을 자극하기도 했다. 심지어 저커버그가 중학생 때는 인근 지역의 대학에 보내 전문 컴퓨터 강좌를 듣게 했다.
스티브 잡스의 부친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자동차 수리공이었는데, 잡스가 전자회로에 관심을 보이자 주말마다 아들 손을 잡고 중고 부품상을 찾아가 라디오ㆍ전축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구해줬다. 한편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잡스 부모는 아들에게 따로 과외를 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엔지니어에게 초등학생 잡스를 보내 마이크와 스피커의 작동 원리 등 전자공학의 기초를 배우게 했는데, 잡스가 자란 곳이 실리콘밸리였다는 것은 잡스에게 대단한 행운이었다. 또 아버지는 컴퓨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잡스를 데리고 나사(NASA) 연구소에도 갔다. 여기서 대형 컴퓨터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잡스는 첫눈에 반해 장차 컴퓨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좋은 학교에 다니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IT 천재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따분하다고 느꼈다. 부모들은 이 점을 간파했다. 게이츠의 부모는 아들이 공립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할 때 결단을 내렸다. 시애틀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게이츠의 어머니는 학부모회를 통해 학교에 컴퓨터 단말기를 기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컴퓨터를 본 적도 없었을 때, 게이츠는 학교 전산실에서 밤늦도록 컴퓨터를 만지며 놀 수 있었다. 컴퓨터 천재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았던 것이다.
저커버그는 최고 명문 기숙학교 중 하나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그는 여기서 프랑스어ㆍ히브리어ㆍ라틴어ㆍ고대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었다. 명문 학교에 들어간다고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면학 분위기가 좋은 학교에 다니면 아무래도 공부에 더 관심을 쏟게 된다. 물론 명문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지만, 주변 친구들이 뛰어난 학생들이라면 경쟁심도 강해진다. 즉 게이츠와 저커버그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닌 덕분에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