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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파스칼 보나푸 지음 | 이봄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파스칼 보나푸 지음

이봄 / 2013년 12월 / 264쪽 / 18,000원





마지막 양말 한 짝을 벗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다. 그녀가 누구냐고? 그냥 여자다.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여자.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여자. 계속 달라지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인 여자. 지금 그녀는 혼자 있고 싶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몸짓과 선택을 하려는 참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 몸단장 의식은 오로지 내밀할 때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그녀는 몸단장을 은밀하게 할 수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목욕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공중목욕탕이었다.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중세 유럽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그곳에는 남녀가 함께 드나들었다. 그러니 13세기에 공중목욕탕은 타락의 장소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가면 포주 노파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공중목욕탕 경영을 천하게 여기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목욕탕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1496년경 뒤러(1471~1528)가 목욕탕에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나체 여성들을 그렸을 때, 그는 관능보다는 죄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16세기의 판화들을 보면 서로 어루만지고, 몸을 부비고 껴안는 사람들이 나온다. 판화에 나오는 여성과 남성의 포즈를 보면 그들의 첫 번째 관심사가 몸을 씻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어느 작품을 보든 그 시대의 공중목욕탕은 흥청망청 방탕하게 즐기는 장소이며, 그런 곳에 다닌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6세기 말 궁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남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퐁텐블로 궁에는 국왕 프랑수아 1세의 뜻에 따라 목욕하는 데 할당된 방이 있었는데, 그 방에서 몇 사람이나 목욕을 같이 했을까? 넷? 아니면 그 이상? 1594년에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보면 여인 두 명이 함께 목욕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느 여자가 아니다. 한 사람은 가브리엘 데스트레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로부터 온갖 명예로운 작위를 수여받은, 거의 여왕이나 다를 바 없는 여인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녀와 자매지간인 비야르 공작부인이다.

두 여인이 목욕하는 장소에 대해서는 이미 그로부터 약 30년 전인 1567년 건축가 필리베르 들로름이 그의 책 『건축 제1권』에서 “몸단장하는 방, 한증실, 목욕탕, 회랑, 서재 그리고 귀족들이 종종 머리를 매만지고 쾌락을 누리는 곳”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이런 장소에 있을 때 사람들은 ‘섬세한 일’에만 신경을 썼다고 덧붙인다. 당연히 육체의 ‘욕구’ 역시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게다가 우연인지 몰라도 이런 장소에서는 쾌락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었다.

그녀는 “몸단장하는 방, 한증실 그리고 목욕탕” 앞에 17세기 시인 프랑수아 드 메나르의 다음과 같은 시를 써 붙이면 좋겠다고 즐겨 상상하곤 한다. ‘신중하고 노련하게 행동하려고 / 신경 쓰는 독자여, / 내 말대로, 이곳에 접근하지 마시오. / 비너스 여신이 옷을 벗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경고는 이미 문을 통과한 독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런 한증실이나 목욕탕에 들어갔다면, 그녀는 아마도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너에게 목욕이란 무엇인가? 기름, 땀, 냄새, 끈적거리는 몸, 온갖 구역질나는 것들.” 그녀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처럼 깨끗한 물을 쓸 수 있을 법한 인물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녀는 이제 결심했다.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몸단장을 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남들에게 조금도 보여주지 않기로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시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이런 결정은 일시적 변덕이 아니다.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이런 특별한 고독의 필요성을 이해한 듯했다. 그녀의 상념을 감싸는 고요한 고독을 흩뜨리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천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물이 찰랑이는 소리, 대리석 탁자 위에 향수병을 올려놓을 때 나는 짧고 건조한 울림,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림뿐이다.

몸단장할 때는 마음을 모으고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어떤 몸짓들은 거의 자동적이겠지만, 그래서 화가들은 아마도 그녀에게 자기 쪽을 바라보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녀가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얀 스테인(1626~1679)이 「몸단장하는 여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침대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의 그녀는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 어떤 화가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껏 꿈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었다.



벌거벗은 채로



벌거벗은 몸을 그려도 좋은가?

그녀는 벌거벗었다. 그런데 그녀도 알다시피 나신이란 일탈일 수밖에 없다. 중세 유럽은 성서를 믿음의 기반 중 하나로 삼았던 만큼, 인간의 나체를 수치스럽고 부정하게 여겼다. 나신은 죄의 상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버려야 할 허물인 육신을 그리고자 하는 것 또한 죄스러운 욕망이었다. 한동안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그림에 드러난 여체는 죄 많은 이브의 몸이나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 마리아의 젖가슴에 불과했다. 감히 비너스라는 아름다운 이교(異敎) 여신을 그린 그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너스가 그림에 등장한 것은 정확히 말해 몇 년간이었다. 아니, 사실 한 세기 남짓한 동안이었다. 그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이 아니었더라면 몸단장하는 여인이 주제인 그림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신을 그리게 된 경위서

기독교가 지배하는 유럽에서 마침내 나신을 그릴 수 있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하학과 수학의 도움으로 원근법이 고안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빚은 인간의 육신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학에 힘입어 인정되고, 가톨릭교회의 대분열이 종식된 뒤 교황이 로마에서 공사를 벌이면서 그전까지는 용납되지 않았던 이교 신들의 조각상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신화를 다루는 텍스트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화와 인문학의 이름으로 누드를 그리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자, 이제 ‘이교적’이고 ‘세속적’인 비너스와 디아나(아르테미스) 여신의 목욕 장면을 그리는 것을 금지할 이유는 전혀 또는 거의 없었다. 그 장면은 결국 성서에 나오는 밧세바나 수산나의 목욕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윗 왕의 욕망을 불러일으킨 밧세바나 원로들에게 부정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수산나 역시 여신들 못지않게 아름다웠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여신들이나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궁정에서 마주치는 여인들의 아름다움까지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궁정인』에서 카스틸리오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성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즐거움이나 만족도 없을 것이며 투박하고, 감미로움도 없고, 야생동물들의 삶만큼이나 거칠어지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의 마음에서 비열하고 천한 생각, 걱정, 비참함 그리고 종종 여기에 따르는 고통스러운 슬픔을 닦아줄 존재는 여성들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카스틸리오네의 책에 나온 기나긴 논쟁의 결론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영혼이 고귀한 힘으로 물질적인 자연을 제어하고 자신의 빛으로 육체의 어둠을 극복했을 때, 그처럼 승리한 영혼에 주어지는 진정한 트로피”이다.

카스틸리오네는 아름답되 정숙하지 못한 여인들이 있지 않느냐는 반박도 다음과 같이 깨끗하게 물리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을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내모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은 선과 단단히 이어져 있기에 그들을 수치스러운 행동에서 멀리 떼어놓으며 덕스러운 품행으로 이끈다.” 플라톤이라도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을 이런 논증이 있는데, 무슨 구실로 여인의 나신을 그리는 것을 금지할 수 있겠는가?

“나신을 그리는 데 명분이 필요한가요?”

디아나에서 수산나, 비너스에서 밧세바에 이르기까지 신화나 성서에서 누드화의 명분을 찾는 일을 그만두자, ‘이국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구실이 등장했다. 특히 이슬람 세계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금남의 장소인 하렘은 누드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주제였다. 그러나 하렘이 불러일으키던 음탕한 흥분은 곧 잊혔다. 사창가의 여인들도 터키 황제의 후궁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화류계 여성의 방에 놓인 목욕통이 하렘의 목욕탕을 대신했다.

어떻게 해서 19세기의 몇 년 사이에 화가들이 그전의 모든 가식적인 명분에서 벗어나 그저 평범한 여인의 누드를 그리게 되었는지, 그녀는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에드가 드가(1834~1917)가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처럼 말이다. 드가는 젊은 영국인 소설가 조지 오거스터스 무어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누드는 언제나 관객을 전제로 한 포즈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여성들은 모두 평범한 서민 출신으로 육체적인 상태를 돌보는 것 외에는 다른 관심사가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열쇠 구멍으로 엿보는 모습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거울 앞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그녀는 누가 문 뒤에 숨어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예상치 못한 소리, 무엇인가 스치는 소리, 열쇠 구멍 바로 위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도저히 눈감아줄 수 없는 무례를 범하는 것일까? 이토록 파렴치한 짓을 하는 자 - 틀림없이 남자일 것이다 - 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지금 그녀가 하려는 몸단장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더 이상 여신이나 성서의 여주인공처럼 보이고 싶은 야망도 없고, 화가의 주문에 따라 이런저런 역할을 할 필요도 없으며, 그저 한 여인으로서 그녀 자신인 상황에서, 그녀가 몸단장을 통해서 유혹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유혹이라는 게임에서 패가 바뀌었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유혹은 이제 더 이상 육체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몸단장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눈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혼자 준비해야 한다.



물에 몸을 담그다



그녀가 목욕을 추억한다

이제 그녀는 목욕이란 오로지 혼자 할 때만 제구실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녀나 시녀, 노예의 시중을 받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그녀도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맛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모델로 섰을 때 시중을 받았던 일, 그때 받았던 마사지는 아직도 그립다.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한 인물의 어깨 위에 노예들이 “장미로 뒤덮인 방처럼 강렬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희고 고운 가운”을 걸쳐주고, 몸에는 “장미가 들어간 물, 오렌지꽃 물, 자스민꽃 물”을 뿌려주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1578년 나바라 왕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가 남편(훗날 프랑스 왕 앙리 4세)을 유혹하기 위해 했다는 몸단장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녀는 또한 클레오파트라가 당나귀 젖으로 목욕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목욕하려면 도대체 당나귀가 몇 마리 있어야 할지 궁금하다.

그녀는 당나귀 젖으로 목욕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다. 문득 그녀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기억해내는 데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전설인지, 민담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욕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를 읊조리게 되고, 오래된 텍스트가 꼬박꼬박 떠오른다. 그녀는 목욕이란 지극히 복잡한 일이라는 사실에 매혹된다. 얼핏 더없이 간단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 지극히 숭고한 것과 뒤섞이는가 하면, 신학 문제가 수도관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목욕은 ‘점잖은 예절’이 부과하는 규칙에서 유행의 예측할 수 없는 변덕까지, 미학적 기준에서 ‘화장품’의 역사까지 온갖 요소가 교차하는 장이다. 그러니 거의 5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목욕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설명하다 보면, 자꾸만 이런저런 주제들 사이에서 두서없이 헤매게 된다. 시를 읊다가 갑자기 비누 이야기로 건너뛰는 것과 같은 일은 예사이다.



몸을 말리다



“남자들은 가려달라고 했다!”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용인된다. 그러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몸의 일부를 속옷, 시트 또는 수건으로 가리는 방법을 왜 마다하겠는가? 이 세상 모든 타르튀프의 시선을 끌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타르튀프』 3막 2장에 나오는 위선자 타르튀프의 대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타르튀프가 손수건을 내밀며 일단 그 손수건을 받으라고 말하자 도린은 “무슨 말씀이신지!”라고 말하며 놀란다. 타르튀프는 이렇게 응수한다. “무슨 말씀이냐고? 도저히 볼 수가 없으니 그 가슴을 가리시오. 그런 부분들 때문에 영혼이 상처 입는다오. 죄스러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거든.”

드러나 보이는 것은 마음을 흔들지 못하며, 환한 빛을 받는 것은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은 사실인데, 화가들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잘 알았다. 알프레드 스테방스(1823~1906)나 리히텐슈타인(1923~1997)이, 가슴이 보이지 않도록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고 주문했던 것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한다. 렘브란트(1606~1669)가 그녀에게 속옷을 걷어 올리고 일정한 높이에서 붙잡고 있어달라고 부탁한 것도 같은 목적, 바로 가리기 위함이었다. 가린다는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가 보기에 관건은 언제나 ‘죄스러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부분’들을 가려두는 것이었다. 아예 감추어버리기보다는 마치 매복시키듯이 덮어두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조금 보여주어 남자가 나머지를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여자는 그를 사로잡는 데 벌써 4분의 3은 성공한 것이다. 사실 사랑이 궁금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라고 생각한 남자가 카사노바만은 아닐 테니까.

“대신 ‘슬쩍만’ 가려달라고 했다!”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한 ‘슬쩍 가리기’는 그림에 사용된 곡언법(曲言法)이다. 곡언법이란 일부러 줄여 말함으로써 오히려 강조하는 수사학적 도구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전부는 아니라도 본질적인 것을 전달한다. 아주 단순한 질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혹시 누드 역시 곡언법과 비슷한 수사가 아닐까? 바지유(1841~1870)의 누드에서 다리 위로 흘러내리는 시트, 자코모 파브레토(1849~1887)가 그린 커다란 수건, 발로통의 여인이 붙들고 있는 치맛자락처럼 중요한 부위를 가리는 천들이야말로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침묵하는 곡언법이 아닐까? 라파엘 필(1774~1825)의 그림에서 빨랫줄에 걸려 있는 수건은 이런 수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가 보기에 이런 사실은 또 다른 무엇, 즉 모든 화가들의 집요하고 강박적인 공통 관심사를 숨기고 있다. 화가들은 언제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보는 이로 하여금 눈앞의 그림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역사에 속한다. 얀 스테인의 그림에 나오는 요강과 톰 웨슬만(1931~2004)의 그림에서 하나의 장식으로 보이는 변기 좌대를 비교하는 것은 위생의 역사 이야기이지 미술 이야기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스테인의 그림에서 여인의 다리 위에 난 스타킹 끈 자국과 웨슬만의 그림에서 여인의 몸 위에 보이는 하얀 브래지어 자국을 비교하는 것은 속옷의 역사를 말해주지 미술에 대해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역사적 변화를 추론하고 증명해주는 것들로 만족하고, 그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는 본질적인 것, 미술 자체는 그냥 지나치게 된다. 또한 흰색이 미술에서 차지한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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