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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1

황보태조 지음 | 올림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1

황보태조 지음

올림 / 2013년 10월 / 256쪽 / 13,000원





놀면서 글자 깨치기



어느 날 아이들은 나에게 자기들이 그린 그림에 이름을 붙여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한두 개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그 많은 공주와 왕자 그리고 시녀들의 이름을 내가 어떻게 다 짓는단 말인가. 아이들이 차곡차곡 모아 둔 그림 인형들은 수십 개, 아니 수백 개는 돼 보였습니다.

“너희가 지어 봐. 너희가 지으면 아빠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꾀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아는 공주 많지 않니? 네가 아는 공주 이름과 비슷하게 지어 보면 되지 않겠니?” 사실 아이들은 수없이 많은 공주와 왕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미미 공주’, ‘리라 공주’ 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 기억에도 생생한데, 당시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아직 글자를 읽을 줄 몰랐습니다. 그 많은 공주와 왕자 이름은 글을 아는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따라 익힌 것이었습니다. 네가 아는 공주 이름과 비슷하게 지어 보라는 내 말에 큰아이는 대뜸 “라리 공주라고 하지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맞장구쳐 주었고 아이들은 이렇게 자기들이 인형 이름을 붙여 놓고 기뻐했습니다.

‘리라’ 공주 이름을 거꾸로 하여 ‘라리’ 공주라고 썼습니다. 처음에는 글자를 썼다기보다는 그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인형 이름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발음해 보고, 그렇게 알게 된 글자를 하나씩 베껴 쓰면서 새로 그린 그림 인형의 이름을 짓게 된 것입니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이렇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하, 이렇게 하면 글자를 깨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과자 상자로 ‘공부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란 괴롭고 힘든 것이라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공부’라고 하지 않고 늘 ‘공부 놀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공부 놀이’ 외에도 ‘학교 놀이’, ‘글자 놀이’ 등 아이들이 하는 일에는 무엇이나 ‘놀이’라는 말을 넣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기는 인형 놀이, 살림 놀이와 마찬가지로 공부도 놀이로 받아들이면 거부감을 갖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라면땅’이라는 과자 상자가 누워 있는 우리 눈에 들어왔습니다. “얘들아, 저 상자를 좀 봐라. ‘라면땅’의 ‘라’ 자하고 네가 좋아하는 ‘라리 공주’의 ‘라’ 자하고 같지?” 이렇게 설명하면 아이들은 그 글자에도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무척 재미있어했습니다. 많은 과자 이름은 모두 공주와 왕자의 이름에 활용되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동네 간판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기들이 아는 글자는 소리 내어 읽고 모르는 글자는 묻곤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글자를 익혀 가는 과정에서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면 가르쳐 주었을 뿐,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거나 조바심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글자를 읽어 내면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기뻐했을 뿐입니다. 내가 아이들 나이 때에는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이들의 하는 짓에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말로만 “잘한다, 잘한다” 한 것이 아니라 잘하는 일이 있으면 안아 주고 뽀뽀도 해 주고 번쩍 들어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옛날 어른들처럼 무덤덤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커서는 공부가 짐이 될지라도,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미리 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책 읽기도 가슴높이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여럿 키우면서 경험한 바로는, 좋은 책을 많이 골라 주되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가서 좋은 책을 골라 보게 하는 것도 좋겠지요.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공부만은 결국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니, 부모가 일방적으로 책을 사다 주며 읽으라고 하기보다는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읽고 싶은 것을 고르게 하든가 친구의 도움으로 스스로 책을 선택하여 읽게 하는 것이 독서 의욕을 북돋워 주는 데 좀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하여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즐겁게 읽고, 좀 아쉬울 때 독서를 마칠 수 있도록 가볍게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그 일에 잘 길들여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소를 길들일 때에도 목에 지울 멍에를 너무 굵고 무거운 것으로 시작하면 소는 목을 흔들며 아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찰흙밭에서 무거운 쟁기로 쟁기질을 시키면 힘에 부쳐서 눈앞에 있는 밭고랑은 잊어버리고 이리저리 헛고랑만 타게 됩니다. 그래서 유능한 농부는 처음 쟁기질을 시킬 때 그 멍에를 없는 듯 있는 듯 가볍게 지웁니다. 그러고는 찰흙밭이 아니라 모래밭에 내는 듯 마는 듯 가볍게 골을 냅니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서 습관을 붙여 주는 이 중요한 일에 욕심을 부린 나머지 아이들이 읽기 싫어하는 책이나 어려운 책으로 시작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막내는 어릴 적부터 ‘삼국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가 직접 삼국지 책을 읽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권짜리 『소년 소녀 삼국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한두 번 읽더니 오래전부터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여섯 권짜리 『박종화 삼국지』를 읽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성인이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문장도 어렵고 요즈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제 스스로 꼭 읽어 보겠다고 떼를 쓰니 그냥 놔둘 수밖에요. 나는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너무 두꺼운 책이라 한 권도 채 읽지 못하고 곧 포기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무엇에 홀린 듯 읽어 나갔습니다. 1권, 2권, 3권, 4권, 5권…….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아이의 끈기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뜻을 모르고서는 저렇게까지 열심히 읽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을 읽어 주면서 그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싸운 지 오십여 합(合)이 되건만 승부가 나지 아니하였다.” 《삼국지》에는 이 ‘합’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두 사람이 싸움을 하기 위해 맞붙는 것을 말합니다. 즉 50합이면 50번 맞붙어 싸웠다 떨어졌다는 뜻인데, 막내는 정확히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백 번 읽으면 뜻은 저절로 통한다’는 옛말이 생각났습니다. 이만하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막내의 독서 경험은 ‘재미는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말을 입증하는 좋은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려라



처음에는 아무리 여러 말로 설명을 하고 한자 공부를 시켜도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한 지 이틀이 못 가서 아이들은 자꾸 잊어버리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공부한 부분을 자꾸 들추어 보며 또 까먹었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간 진도가 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도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발상을 해야 합니다. 시골 사람이 처음 도시에 가서 생활하며 도시생활에 적응해가는 것으로 예를 들면, 처음부터 도시 전체를 샅샅이 알아 가는 게 아니라 다니면서 점차 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철저히 익히면야 좋겠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십 년을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인데 어릴 때부터 지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교육자들과는 다른 발상에서 아이들에게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려라”라고 말했는데, 그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갖게 되는 마음의 부담을 말끔히 없애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 속에는 오늘만 익히면 된다는, 오늘 익힌 것을 내일은 잊어버려도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로 나를 혼내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저 오늘만 재미있게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오늘만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리라고 하면 아이들이 진짜로 다 잊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내일은 잊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쉽게 잊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이 말은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줄여 줄 뿐이며,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예방책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은 이 근심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책장 넘기는 재미(진도가 잘 나갑니다)로 익히고 외울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머리가 좋아 한 번 보면 다 암기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 다섯을 두고 경험한 바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기억은 누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반복적으로 많이 보느냐 혹은 듣느냐에 비례하지, 결코 머리가 좋은 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아이들은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하고, 다른 집 아이들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젭니다. 연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궁극에는 바위를 뚫듯이 끊임없는 반복, 반복할 수 있는가의 문젭니다.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주 재미있게 반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말 가르치듯이 행복하게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엇이 가장 효과적이고 아이들을 위한 길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들의 천부적 방법에서 그것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머니들이 아기를 교육시키는 방법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부모는 누구나 갓 낳은 자기 새끼와 처음 눈을 마주칠 때 행복을 느낍니다. 눈을 마주친 부모들은 어떻게 할까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들여다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까꿍” 하면서 예쁜 볼을 부드럽게 건드려 보기도 하고 반응을 유도해 봅니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들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아기들은 차츰 옹알이를 하게 되고, 엄마는 아기의 말문을 열어 주려고 “엄마, 엄마” 하면서 반복해서 발음해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기들은 엄마를 따라 비슷한 발음을 하게 됩니다.

아기가 ‘엄마’ 소리를 정확히 따라 하지 못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드디어 확실하게 ‘엄마’ 소리를 하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짝짜꿍, 도리도리… 부모의 천부적 교육법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네댓 살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말을 하는 데 모두 천재가 됩니다.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사람은 모두 언어 습득 능력의 천재입니다.

옛날에는 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는데 지금 우리는 다른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자입니다. 문자를 가르칠 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질까 조급해합니다. 조급증은 부모의 마음을 일그러지게 합니다. 아이들은 말이든 문자든 그것에 주목하기보다 부모의 감정에 주목하게 됩니다. 부모들은 어떤 경우에도 ‘어디 사는 누구는 신문을 줄줄 읽는다더라’ 하는 비교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복습이 동전이면 예습은 금화다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학교 수업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학생에게는 학교 수업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부모는 엉뚱하게 학원이나 과외에만 매달리려고 합니다. 그 원인을 나는 학생이 수업에 임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요?

어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는 아이는 한 반에서 5%도 안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딴전을 피우지 않고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예습을 꼭 해 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복습은 하지 않더라도 예습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했습니다. “10시간의 복습보다 1시간의 예습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예습 한두 시간은 학교 수업 전부를 복습으로 만든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준비를 하고 수업에 임하면 모든 수업 시간이 복습이 됩니다.

그런데 예습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습이란 미리 공부를 다 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수업 중에 내가 무엇을 공부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공부할 내용 가운데 선생님 설명을 듣고 깨우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미리 체크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르는 것을 미리 공부해 가는 선행학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일 배울 것을 ‘미리’ 공부해 가라는 말 대신 내일 배울 부분 가운데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어디인지 체크해 가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 공부할 어려운 것들을 체크해 가면 나중 시험 기간에 밤샘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고 설파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래도 남보다 성적이 좀 좋았던 것은 이 예습이 한몫을 톡톡히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별것 아닌 예습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모든 기억력은 관심도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체크를 하고 가면 그 수업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수업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때로는 질문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학교 수업,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최근 몇 년간 책과 방송 출연 때문에 조금 알려지게 되면서 이곳저곳 강연 초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간 2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는 가운데 가장 남쪽으로는 제주도에 세 번, 가장 북쪽으로는 의정부까지 두 번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가게 되면 보통 전날 도착해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강연을 시작합니다. 제주도에 초청받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주최 측에서 고급호텔을 예약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침대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조명 기구나 세면기, 샤워기를 조작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에 고급호텔이 아직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무더운 여름이라 매일 샤워를, 그것도 여러 번 해야 할 텐데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물을 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세면대에서는 물이 나오는데 샤워기에서만 물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종업원을 불러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촌사람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그랬던 것입니다.

한참이나 헛수고를 하다가 할 수 없이 세면대의 물로 샤워를 하고는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샤워기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조작하다가 드디어 쏴 하고 물이 쏟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너무나 간단한 것이라 누가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습니다. 정말 촌사람이라고 놀림감이 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약 내가 샤워기를 어떻게 트는지 종업원에게 바로 물어 그의 설명을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것을 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나 스스로 알아내려니 이렇게 생고생이요, 그 많은 시간을 허비했구나’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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