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현자의 말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 이너북
초역 현자의 말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이너북 / 2013년 11월 / 160쪽 / 11,000원
1장 지친 마음에 안식을 주는 철학자의 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제기한 이 질문에서 철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직접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이 그의 사상을 세상에 소개하였다.
복수는 자기 반성이 아니다
가장 좋은 복수는 상대와 똑같은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다로 튀어나온 곶처럼
바다로 튀어나온 곶처럼 존재해보고 싶지 않은가.
파도가 아무리 부서져라 부딪쳐온들 곶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곶은 바다의 노여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런 곶 같은 존재가 되어보고 싶지 않은가.
- 아우렐리우스 《자성록》
작은 일에 마음 아파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행복해서이다
작은 일에 슬퍼하는 사람은 비웃거나 무시하는 편이 낫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니까.
무릇 불행한 사람은 작은 일을 걱정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는 법이다.
인생이 대체로 잘 풀리는 행복한 사람만이
자잘한 일에 민감해지고 슬퍼하므로.
- 쇼펜하우어 《처세술 잠언》
적당히 사는 일은 스스로를 천천히 죽이는 행위다
무슨 일을 하건 온 힘과 마음을 다해야 한다.
수긍이 가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홀대하지 않기 위해서.
일하다 말고 때때로 게으름을 피우거나 적당히 해치우고
방치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기 행동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그래서는 자기가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갖지 못하니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천천히 죽어가게 놔두는 일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날마다 그날의 의미를 물어봐야 무의미하다
의미 있는 날과 헛된 날은 따로 있지 않다.
하루, 또 하루. 그 모든 매일이 값지다.
- 야스퍼스 《철학 입문》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하고
신념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는 힘,
고난과 아픔을 겪거나 크나큰 실망에 빠져도 이겨내겠다는 각오이다.
이러한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인생에서 안전과 경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은
신념을 갖지 못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힘들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당신의 행동은 전 인류의 대표
개인적인 행동은 지극히 사사로운 결단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으로서 전 인류를 대표하는 행동과 결단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모든 행동과 결단을 책임져야 한다.
-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2장 쉽게 풀어 쓴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많은 번역본 중에서도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인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가져와 번역한 ‘현장본’이 주로 전해 내려왔다. 지금도 보편적으로 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다. 현장법사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톈산 산맥 사이로 뻗은 톈산 남로를 통해 장안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중생아, 무엇을 보느냐.
네 눈에는 대체 무엇이 비치느냐.
눈동자가 본 광경에 놀라 몸이 떨리고 겁나고 마음이 동요하느냐.
과연 그럴 만한 광경을 보고 있다고 말할 테냐.
중생아, 과거의 너는 지금만큼 겁쟁이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안겨 있었을 때 그 너머로 보이던 세상은 아름답게 빛났고
너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세상을 향해 미소 지었지.
그 아름다운 날들은 언제 멀어졌을까.
입술에 닿는 모든 음식이 맛있던 날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한들한들 춤추며 향기를 흩날리던 꽃들
공중을 떠돌던 감미로운 숨결
청명한 바람결은 언제 퇴색했을까.
고사리손에 아직 아무것도 쥐지 않았던 그때
네 잠은 죽음과 다르지 않았다.
죽음에 빠졌던 너는 아침이면 새로이 태어났고
인생의 하루가 천천히 흘러 밤이 찾아오면
너는 또 죽은 듯이 잠들었다.
다시 아침이 와서 네가 눈을 뜨면
너의 모든 감각은 그날의 새로운 경험으로 환희에 물들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너는 무수한 고민을 품고 있다.
아무것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떨면서 눈길을 돌린다.
수많은 공포와 불안, 후회. 네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더는 눈을 감지 마라. 외면하지 말고 똑똑히 보아라.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눈을 떼지 마라.
자, 어떠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였는가? 아니다.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지고 지금은 마음마저 사라지고 없다.
다시 물으마. 무엇이 보이느냐?
사람이든 물건이든 거기에 있는 것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그저 거기 존재할 뿐. 마침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네 눈에 비쳤을 뿐이다.
그럼에도 너는 왜 여태껏 그것을 두려워했는가.
이해관계 때문인가? 망상에 빠져서인가?
미움, 애착, 미련, 헛된 상상, 아니면 돈의 유무에 따른 문제인가?
그 모든 경우를 응시하라.
너 자신의 마음을 마치 땅속에 파묻혀 있던 과거의 유물을 조사하듯 유심히 보아라.
피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리하여 곧 조용히 깨닫게 되리라.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너는 보이는 것에 네 마음을 멋대로 연결시켜 섣불리 동요했고
이해득실과 승패에 집착하여 조바심과 감정에 얽매였으며
보잘것없는 자존심을 잣대 삼아 보이는 모든 것을 독단하였고
모든 것이 네 소유라고 굳게 믿으며 탐욕에 물들어 있었다.
요컨대
너는 비겁했다.
3장 지친 마음에 안식을 주는 달마의 말
중국 허난 성 정저우 시 덩펑에 있는 쑹산 산의 사찰 소림사.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대사가 창시한 선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훗날 선종의 이조가 된 혜가가 9년 동안 면벽수행 중이던 달마대사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 주십사 청하면서 그 가르침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무엇과도 하나가 되는 것이 부처의 길
“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부처? 부처는 여기 있는 세 근짜리 삼이다.”
“삼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혹시 삼에 깨달음이 있다는 뜻인가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손으로 삼을 캐고 계십니다.”
“오호, 그리 보았구나. 그럼 이 삼과 나는 어떤고? 서로 다른 존재로 보이느냐?”
“예. 스님은 그런 자그마한 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무렴. 물론 나는 삼이 아니지, 하지만 나는 지금 삼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을 보면 산이 되고, 삼을 캐면 삼이 된다.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것이 물아일체다. 부처란 그게 무엇이든 그것과 하나가 되는 존재이니 지금은 이 세 근짜리 삼이 곧 부처인 게다. 알아들었느냐?”- 무문혜개, 《무문관》
견딜 수 없는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라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견디기 어려우냐?”
“그야 당연히 지옥이지요.”
“아니다. 대관절 무엇이 지옥이고 무엇이 극락이더냐. 그런 생각은 방황하는 자가 하는 크나큰 망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승복을 입고도 가장 소중한 바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승복을 입고 있으니 특별하다고 생각하느냐? 예법은 이렇고 행사는 저렇게, 인사는 이런 식으로 공손하게……. 그런 의식들이 중요하다고 보느냐? 무엇을 일일이 신경 쓰고 있는 게냐. 진정으로 마음먹고 정녕 정진해야 할 일은 스스로 깨닫는 것뿐이다. 그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 조산본적, 《동산록》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인식이야말로 환상
삼라만상에는 중심도 주변도 없다.
자기 자신조차도 없다.
한데 사람은 자기가 여기에 있다고,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환상을 보고 현실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수백만, 수천만 마리의 물고기 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자기는 다른 물고기와 전혀 다르다고 믿는 것이나 똑같다.
자타에 구별은 없다.
너와 나도 그렇고 미혹과 깨달음,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도 그러하며
출생과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러므로 시간에도 전후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지금뿐인데
지금은 모두 같으니 무無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 도겐, 《정법안장》
4장 지친 마음에 안식을 주는 석가의 말
석가모니 즉 고타마 싯다르타는 고대 인도의 한 작은 나라에서 왕자로 태어나 29세 때 수행자가 되었다. 35세 때 깨달음을 얻어 깨달은 이 ‘붓다’가 되었고, 인도 북부에 있는 쿠시나가라 땅에서 80세를 일기로 입멸할 때까지 인도 각지를 돌며 설법을 펼쳤다.
지혜로운 노인으로 늙는 법
머리가 희게 쇠었다 해서 모두 지혜로운 노인은 아니다.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 덧없이 늙어버린 사람이 세상에는 수두룩하다.
그대가 나이를 먹는다면
성실하고 자비로우며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무엇을 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신중하고 언제나 몸과 마음이 단정한 노인이 되도록 힘써라.
- 《법구경》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처방전
말할 때에는 진실만을 말하라.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결코 화내지 마라.
형편이 어렵더라도 먼저 나서서 베풀라.
이 세 가지를 실천하라.
그리하면 해탈에 이를 것이다.
마음의 노예가 되지 마라
절망에 빠져 있는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그것은 전부 네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한을 품는 마음보다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훨씬 지독하다는 것을 알라.
- 《출요경》
그저 맑고 순수하게 있어라
집착하지 마라. 관여하지 마라.
마음을 흐리지 마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그저 맑고 순수하게 있어라.
- 《수타니파타》
논쟁에서 이긴 자, 칭찬은 받아도 평안을 잃을지니
논쟁하지 마라.
아무리 그대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할지라도
상대방을 설득해서 그대의 뜻대로 이끌겠다는 욕심이 있다 해도
모든 논쟁을 금하라.
논쟁의 결과는 단 두 가지, 칭찬 아니면 비난뿐이다.
설령 칭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듣지 아니한 만 못한 수준에 불과하니
도리어 마음과 몸의 평안을 해칠 뿐이다.
절대적인 평안에 이르려거든 논쟁하지 마라.
- 《수타니파타》
5장 지친 마음에 안식을 주는 성서의 말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리스도교 건축물 가운데 세계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는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이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의 묘소가 있는 땅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사후 제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떨어진 이삭은 줍지 마라
너희는 추수할 때
곡식을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마라.
이 모든 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어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것을 준수하라.
나는 너희를 지켜보는 하나님이다.
- 《레위기》
말이 인생을 지배한다
어리석은 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악인은 입술을 잘못 놀려 덫에 걸리니
그들에게 지혜는 없다.
그들은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어리석은 자가 지껄이는 말은 다툼, 불화, 슬픔, 고통을 일으키며
게으른 자는 끝내 자멸에 이른다.
인생은 너희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지배되니
무릇 인생의 과실이란 네 입술이 키운 열매나 다름없다.
- 《잠언》
탐욕스러운 인간에게는 죄의 말뚝이 박힌다
재물을 얻으려고 죄를 짓는 자는 무수히 많다.
많은 돈을 얻어 제 소유로 삼으려는 자는 사실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말뚝은 바위와 바위 틈새에 단단히 박힌다.
그와 마찬가지로 팔거나 사는 행위 사이에
죄의 말뚝이 박히는 것이다.
자손을 남기지 못할지라도 덕을 남겨라
가령 너에게 자식이 없을지라도 덕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덕은 불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인간도 덕을 기꺼워한다.
인간은 덕행을 보면 그것을 흉내 내려 들고
덕이 부족하면 쌓으려 하니
악인이 아무리 많은 자손을 두었다 한들
무의미한 까닭은 덕이 없는 탓이다.
너희는 사람을 나이로 판단하지 마라.
올바르게 살아왔는가, 덕이 있는가, 남을 아기고 사랑했는가.
이러한 덕목이 하나님에게 기쁨을 주고
그런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 《솔로몬의 지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공허하다
내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고 이기적이거나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위대하고 불멸하며 영원합니다.
- 《고린도전서》
6장 지친 마음에 안식을 주는 논어의 말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공자 사당 공묘는 공자가 태어난 고향인 산둥 성 취푸 시에 있다. 공자는 정치가로서 우여곡절을 겪은 뒤 68세의 나이로 귀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는데 한때는 3천 명이 넘는 제자를 자신의 문하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