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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장홍제 지음 | 베이직북스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장홍제 지음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 496쪽 / 18,000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본인



아마 중국인은 지구촌 그 어느 민족보다 일본인에 대해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일본인에 대해 물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일본은 중국과 매우 친숙한 나라다. 같은 문화, 같은 종족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 나라 등으로 이야기할 만큼 가깝다. 자동차, 텔레비전,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 다양한 상품이 ‘일제’라는 명찰을 달고 줄줄이 바다를 건너와, 지금은 사무실, 일반 가정집, 길거리 등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아울러 중국인은 대부분 사요나라, 바카야로 등 간단한 일본어 한두 마디쯤은 대수롭지 않게 구사한다. ‘사요나라’라는 일본어는 중국인들에게 오싱, 사치코, 오오시마 시게루 같은 드라마 주인공들을 연상케 해 아름다운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바카야로’는 아픈 전쟁의 기억과 함께 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제독) 같은 일본 장수를 연상케 해 잔인한 일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중국에게 가장 낯선 민족이기도 하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일본과 교류해 왔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과거 100여 년 동안 여러 번 주위를 놀라게 한 주체가 바로 일본이다. 옛날 중국 조정이 막강한 군사력을 내세운 서양 열강 앞에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을 때 눈에 띄지도 않던 소국이었던 일본은 이를 기회로 삼아 급부상했다. 그러더니 서양 열강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중국 조정을 놀라움에 빠뜨렸다. 이어 중국 대륙을 가볍게 무너뜨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강국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한 번 중국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45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일본의 콧대가 마침내 꺾였고 일본 제국의 운명도 다하는 듯 보였다. 일본 열도는 산산조각 났고 도마 위의 생선처럼 전승국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일본은 그 잿더미 속에서 부활했다. 이처럼 일본이란 민족은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일본이 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성공을 거두었고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움과 용서, 멸시와 존경, 친근함과 생소함, 감탄과 혐오, 부러움과 질투심, 과연 어떤 단어로 일본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지금 중국의 젊은이들은 과거 부모 세대를 따라서 일본을 ‘소일본’이라고 폄하한다. 왜소한 체구와 작은 땅덩어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전 국민이 동시에 침을 뱉으면 작은 나라 일본은 잠겨 버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반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만주국 시대를 회상하며 일본인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당시에는 일본인 두세 명만 있어도 중국의 현 하나를 통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 군인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도 정신은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인은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일본에서는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수를 놓은 듯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마다 찬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 뒤에는 잔인한 모습이 숨어 있다. 수십 년 전 전쟁에서 일본이 보여 주었던 치를 떨 만큼 잔인했던 야만성을 그 누가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추악하고 피비린내 나는 만행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신화를 창조해 낸 일본의 단결력, 노력, 책임감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보여 준 결실과 진지함을 들여다보면 실로 우수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들이 가진 인색함, 자만심, 이기심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더욱이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주도한 전쟁의 아픈 상처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그때는 다른 나라들도 다 그랬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민족과 진실한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상대를 어려워하고 말주변도 없으며 걸핏하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일본인, 이 민족의 대단한 창조력과 활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치열한 경제 전쟁 속에서 어떻게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경제 분야에서는 가장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국이면서 왜 국제 관계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일본은 지금도 국제정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본 음식은 실제로 먹어 보면 어찌 그리 맛이 좋은 것일까? 꼭두각시 인형처럼 기괴한 모습의 일본 고전극 노(能)는 왜 그리 매력적인 것일까? 사회생활에서는 마치 한 사람인 듯 어쩌면 그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루쓰 베네딕트는 “미국이 한창 전쟁에 열을 올릴 때 상대했던 여러 적수 중 가장 파악하기 힘든 민족은 일본이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는 “일본은 결코 평범하고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매우 특이한 나라라는 것,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라고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말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배워야 할 것들



한국이 중국인에게 주는 메시지

어리석은 척? 정말 어리석은 것?: 중국은 줄곧 주변국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중국이 급부상하자 ‘중국위협론’까지 운운하며 중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하지만 고대 역사가 말해 주듯 세계에서 중국만큼 선량한 대국은 없었다. 중국은 착하다 못해 나약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진시황 때부터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줄곧 방어태세만 취했다. 만리장성이 바로 그 증거다. 중국은 과거 역사 속에서 귀중한 양식, 비단, 심지어 공주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평화를 지키려고 애썼다. ‘황화’는 유목민족에게는 영광이자 씻을 수 없는 죄악이기도 하다. 중국은 황화로 상처를 입은 여러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모든 죄를 중국에 뒤집어씌우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유사 이래로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베푸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의 조공관계도 알고 보면 중국 백성들의 피땀 어린 노동을 대가로 얻은 번지르르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조공관계로 중국이 얻은 것이라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심리적인 우월감이 전부다. 반면 상대국은 상당한 이윤을 챙겼다.

근대 역사를 돌아봐도 중국처럼 마음이 어질고 모든 일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범적인 국가는 없다.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이 전쟁으로 거의 모든 가산을 탕진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은 원수인 일본에게 아량을 베푸는 대범함을 보였다. 인도와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군대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자멸했고 사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다음 날 뜻밖에도 중국 군대는 이미 인도 국경지역에서 철수한 상태였고 몰수했던 인도군의 군용차를 깨끗이 닦아 그대로 돌려주었다. 또 자국민이 기근에 허덕이며 힘들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3국의 국민들을 위해 중국의 쌀을 나눠 주었다.

중국의 이런 행동에 전 세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곤 했다. 중국은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즐겼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고작 몇백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걸출한 철학자 한 명 배출하지 못한 그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어봤겠는가.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말을 이해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라는 말의 참뜻을 알겠는가. 그들에게 “한순간을 참으면 안정이 오고, 세 걸음만 물러서면 편안해진다.”라는 주옥같은 말이 있긴 하겠는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순간의 이익 때문에 양보하지 않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그들의 무지하고 근시안적인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이 한 번이라도 중국의 고서를 펼쳐 봤다면 지금 그들이 자행하는 것이 ‘패도(?道)’이고, 패도는 결국 말을 아끼고 이익을 멀리하는 ‘왕도(王道)’ 앞에 무릎 꿇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정책은 나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외유내강의 모습을 가진 점에서 태극권과 상당히 닮아 있다.

중국은 넓은 안목과 원대한 포부를 가진 나라다. 언젠가는 세계인들도 중국이 결코 이기적인 나라가 아니며 주변국을 이롭게 하는 나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중국이 전 세계를 감동시켜 그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진정으로 중국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앞장서서 세계의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들이 중국위협론을 거론해도 중국은 본분을 잊지 않고 착실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중국의 배려에 세계 어느 나라도 감동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일본은 실속을 챙기고 잘난 체까지 하며 사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인도는 더 가관이다. 중국이 한발 물러나 후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 남의 영토를 자기 지역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러고는 전 세계를 향해 중국을 겨냥한 원자폭탄 실험발사를 한다고 공표까지 하고 나섰다. 사실 지금 남중국해에 위치한 섬들 절반 정도가 다른 나라의 통제를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보냈던 쌀은 훗날 중국 군대와 전쟁을 할 때 그들의 전투 식량으로 쓰였다.

한국인에게 한 수 배우다: 한국이 일본과 영토 문제를 놓고 발끈했던 것처럼 중국도 일본과 영유권을 놓고 오랫동안 다투어 왔다. 바로 조어도인데, 중국어 이름 댜오위다오, 일본어 이름 센카쿠열도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폭이 200미터도 채 안 되는 이 섬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풀과 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한국인은 이곳을 독도,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부른다. 이 섬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슷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이 섬은 일본 소유였다가 한국의 독립과 함께 영유권이 한국으로 넘어갔다. 조어도 분쟁을 둘러싸고 일본이 보여 준 ‘영토 수호’ 결심은 중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도 이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그들은 교과서에도 영유권에 관한 내용을 실으며 시시각각 이 섬의 주인은 일본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일본의 한 우익인사가 무인도였던 이 섬에 몰래 푯말을 세웠다. 사실 일본의 이런 도발은 조어도 문제에서도 그대로 연출됐던 수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인의 상대가 지혜로운 중국인이 아니라 이번에는 강직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일본인이 이 섬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23세에 불과하던 한국 청년 홍순칠이 들고 일어났다. 그는 전쟁기간에는 무기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을 이용해 불법으로 총 몇 자루를 구했다. 그리고 열혈청년 몇 명과 함께 독도에 상륙해 일본인을 내쫓고 그 자리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 후 홍순칠은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하면서 홀로 독도를 지켰다. 그 기간이 무려 3년 8개월이다.

그의 일기에는 일본 함정, 일본 어선과 대치했던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전쟁이 종식된 후 정부는 독도수비대를 파견했고 홍순칠의 신성한 ‘국토 수호 대장정’도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정부는 규정을 무시한 홍순칠을 처벌하지 않았고 오히려 훈장을 수여해 그의 깊은 애국정신을 치하했다. 지금도 한국 해군은 독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독도에 34명의 상주 경찰을 파견하고 구축함, 쾌속정, 헬리콥터까지 배치해 시시각각 이어지는 일본 어선이나 해군의 침략을 막고 있다. 그들이 있기에 일본은 함부로 독도를 넘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항의 성명서만 보낼 뿐이다.

너무 지혜로운 중국인, 너무 충동적인 한국인(?): 중국인의 대처가 정말 지혜로운가? 이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국의 행동은 확실히 충동적이고 무모하며 이성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이야기하다 보면 일본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군사적ㆍ정치적 동맹관계로 묶여 있으며 한국 경제의 대일 의존도는 중국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에 대한 원한을 숨기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도 대세를 핑계 삼아 일본에게 양보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우익 일본인의 태도에 한국인은 언제나 분노한다.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성난 불길처럼 거세다.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 꼼수를 부리면 한국 전체가 들고일어난다. 고이즈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은 즉각 반응했다. 몸에 태극기를 두른 한국 청년 20명은 서울의 독립공원에서 항의 집회를 가진 후 새끼손가락을 잘라 주한 일본 대사관으로 보냈다. 또 9명의 한국인은 단식투쟁을 벌이며 일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도 주일 한국대사를 귀국시키며 강력한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일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일장기를 불태웠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은 중국처럼 일본인을 전범자와 선량한 일본 시민으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인 자체를 증오한다. 심지어 일본의 까마귀, 가옥 등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미워한다. 한국의 인기스타 김희선은 한 행사장에서 마무리 인사를 일본어로 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자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의 인기스타 자오웨이가 일장기가 그려진 의상을 입어 물의를 일으켰던 것과 사뭇 비교된다. 1992년 이상옥 한국 외교부장관은 일본 정부에 전쟁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은 물론 정부 역시 예리한 칼날을 세우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한국인의 이러한 대처가 소(小)를 위해 대(大)를 희생하는 것이고, 양국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어리석으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한국이 정치와 경제 관계에서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한국의 이런 강력한 대응이 한일관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한일 경제관계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보였다. 1995년에는 한일 교역액이 485억 달러를 넘어섰고,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일본인이 한국인에게만 사죄했다는 사실이다. 1992년 방한한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은 서울에 머무는 3일 동안 무려 여덟 번이나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4일 일정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그 기간 동안 한일 양국은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본 수상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시인하면서 정식으로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잘못 알려진 춘추전국시대



개혁의 물결: 전제군주 제도의 탄생 과정

(1) 중국과 고대 그리스라는 양대 문명의 발상지는 서로 멀리 떨어진 데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초기 역사의 태동에서 미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전후 중국과 그리스가 거의 동시에 사상들을 대거 쏟아낸 것처럼 기원전 4세기 전후 고대 그리스와 중국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개혁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관중, 이회, 조열후, 상앙이 거대한 개혁의 파도를 연거푸 일으켰을 무렵 저 멀리 그리스에서는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에피알테스, 페리클레스가 개혁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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