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0월 / 408쪽 / 20,000원





과학적인 집 - 햇빛과 바람의 과학



해가 잘 드는 집

햇빛의 과학 (1): [지붕 처마의 돌출] 한옥은 햇빛이 잘 드는 집이다. 햇빛이 절실한 겨울에는 신기하게도 대청과 방 안 깊숙이 파고들어 집 안 가득 넘쳐난다. 반대로 여름에는 해를 피해 간다. 그 원리는 이렇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해는 여름에 높이 뜨고 겨울에 낮게 뜬다. 이른바 자전축이라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해가 다니는 길도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여름 해는 반구의 지름선 근처에서 떠서 반구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뒤 반대편 지름선 쪽으로 진다. 겨울 해는 반대다. 반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떠서 반구 높이의 중간 정도까지만 오른 뒤 반대 방향으로 넘어간다. 여름 해가 길고 겨울 해가 짧은 이유다.

위도에 따른 하지와 동지의 태양 각도를 찾는 공식은 이렇다. β(태양 각도)=90도 -L(위도)+δ(태양 경사도, 동지는 -19.9도, 하지는 23.5도)이다. 구체적으로 38도선 지역에서는 하지 때 태양 각도가 75.5도이고 동지 때에는 32.1도다. 이것을 땅 위에 서 있는 집을 기준으로 바꿔 이야기하면, 여름에는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내리꽂히고 겨울에는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친다. 이런 조건은 지상에서 햇빛을 받아들이는 데에 불리할 수도 있고 유리할 수도 있다. 도시 속에서는 대체적으로 불리하다. 여름 해는 수직으로 내리꽂히기 때문에 빌딩이 그늘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반대로 겨울에는 햇빛이 완만한 각도로 내리쬐기 때문에 빌딩 뒤쪽으로 온통 그늘이 넘쳐난다.

하지만 조금만 지혜를 발휘하면 유리한 조건으로 뒤집을 수 있다. 태양의 여름 각도와 겨울 각도가 다른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즉 창과 지붕과 방의 크기와 위치를 잘 조절하면 햇빛을 활용하는 최고의 과학을 행할 수 있게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지붕의 돌출 길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붕 처마를 여름 태양과 겨울 태양의 각도 사이에 위치하게 돌출시키면 된다. 이렇게 하면 여름 햇빛을 막아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통과시켜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예로 38도선 지역에서는 앞에서 찾은 하지와 동지의 태양 각도인 75.5도와 32.1도 사이에 지붕 처마가 위치하게 돌출시키면 햇빛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한옥의 처마 길이는 한여름 해를 물리치고 한겨울 해를 방 안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해진다. 또 봄과 가을에는 둘 사이에서 계절과 기온에 맞게 해 길이가 자동적으로 조절된다.

햇빛의 과학 (2): [창과 방의 크기] 둘째, 창과 방의 크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창의 크기부터 살펴보자. 겨울을 기준으로 하면 창은 가능한 한 해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창이 클수록 좋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있다. 여름에 불필요한 햇빛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름 해는 일차적으로 지붕이 튕겨낸다. 하지만 천공에 퍼져 있는 빛, 기단 바닥과 벽에서 반사되는 간접 광 등이 있기 때문에 창이 무작정 크면 여전히 방 안에 여름 햇빛이 들어올 수 있다.

창이 무작정 크면 찬바람이 들어오고 실내 열을 빼앗기기 때문에 겨울에 불리하고, 창을 열었을 때 방 안이 모두 노출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한옥에서는 창의 크기를 중간 상태로 적절하게 유지한다. 위치도 바닥까지 내리거나 지붕 선까지 바짝 올리지 않고 역시 중간쯤에 낸다. 겨울 해를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상한선이고 여름 해를 튕겨내면서 겨울에 단열을 하기 위한 것이 하한선이다. 창의 크기와 위치는 이 중간에서 결정된다.

다음으로는 방의 크기가 중요하다. 지붕의 돌출 길이와 창의 크기가 주로 햇빛을 직접 받아들이는 통로에 관한 것이었다면, 방의 크기는 이렇게 받아들인 햇빛을 실내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방의 크기에서는 방의 깊이와 천장 높이가 관건이다. 방이 너무 깊으면 겨울에 해가 들어오다 만다. 그리고 방이 너무 얕으면 사용하는 데 불편하다. 한옥에서 방의 깊이는 이 중간 상태에서 결정된다. 방을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것이 최소 깊이의 하한선이 된다. 겨울에 햇빛이 가능한 한 방 안 깊숙이 들어오게 해주는 것이 최대 깊이를 한정하는 조건인데, 동짓날 지붕 처마 끝에 걸린 햇빛을 연장해서 바닥에 닿는 곳까지가 최대 깊이의 상한선이 된다.

한편 한옥의 방은 천장이 낮은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좌식 생활에 맞춘 것이다. 또 하나는 겨울 햇빛과 연관이 있는데, 천장이 높으면 햇빛이 못 미치는 음영이 위쪽으로 크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장 높이는 창과 지붕과도 연관이 깊다. 첫째, 창에서는 앞에서 말한 창의 크기와 위치와 연관된다. 천장이 높아지면 창도 따라 커진다. 위치도 위쪽으로 쏠린다. 방 안의 위쪽이 어둡고 습하게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문제점을 유발하는데 한옥은 이것을 피했다. 한옥의 창이 사람 키와 견주며 아담한 휴먼 스케일을 유지하는 이유다.

둘째, 천장 높이는 지붕 높이와도 연관이 깊다. 건물 높이에서 천장 높이를 빼면 지붕 높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지붕이 크고 높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조형적 목적, 사상적 배경, 열 환경의 목적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열 환경의 목적은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앞에 설명한 것과 같이 여름 햇빛을 튕겨내고 겨울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처마를 길게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붕 속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다. 한옥에서는 보통 그 속을 흙으로 채우거나 일부를 공기층으로 두기도 하는데, 흙과 공기층은 모두 단열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신기한 집 - 공간의 미학



가변성과 놀이 기능

한민족과 놀이 본능: 한옥 공간은 다양하다. 한옥은 건물 골격이 늘 다양하게 변화하며 ‘항변(恒變)’의 상태를 유지한다. 한 가지로 고정된 ‘유형’적 형식이 없다는 뜻이다. 한옥은 창문을 다 닫았을 때와 다 열었을 때의 모습이 정말 달라서 같은 집이라고 믿기가 어렵다. 다 닫았을 때에는 입을 꽉 다물고 눈마저 질끈 감은 모습이다. 창문에 유리를 안 쓰기 때문에 투명한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반면 다 열었을 때는 짓다 만 것처럼 뼈대만 앙상하게 남는다. 제대로 된 집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이런 양 극단의 상태 사이에 다양한 중간 상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왜 집을 이렇게 다양하게 변하도록 지었을까. 그것은 바로 집이 놀이 기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 조상은 집을 하나의 놀이터로 생각하고 지었다. 매우 지혜로운 생각이다. 왜 그런 것일까.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국민성이 놀이를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자잘한 놀이를 즐겼다. 서양은 사회 전체 차원에서 대형 스케일의 축제(festival)를 즐겼으며 그만큼 놀이도 형식화되었다. 반면 한국은 개인이나 소집단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놀이를 즐겼다. 특별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반드시 이름을 붙일 필요 없이 친한 사람 사이에서 까불며 장난치는 것까지도 놀이 기능으로 작동했다. 이처럼 놀이 본능이 크기 때문에 집에도 놀이 기능을 넣고 싶어 했다.

사회적 배경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사회 차원에서 제공되는 놀이가 적었기 때문에 개인들이 각자 알아서 놀이 본능을 해소해야 했다. 여기에서 집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일상생활을 담당하는 의식주 가운데 덩치도 가장 클 뿐 아니라, 사람의 동작을 담는 등 행태와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아래 우리 조상들은 가급적 집에 놀이 기능을 넣으려 했다.

일반적으로 보더라도 놀이는 집에 꼭 필요한 기능이다. 이는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한마디로 집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집이 갖는 유인 기능과 심리 기능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집에 놀이 기능이 없어서 재미있지 못하면 결국 유인 기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식구들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집 밖을 맴돈다. 놀이는 또한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일종의 유머 기능과도 비슷한 것인데, 집 밖에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집이 재미있으면 집으로 들어와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집에 이런 것이 없을 경우 사람들은 집 밖에서 위안을 찾는다. 내 집과 내 식구가 아닌 남이 나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돈을 주고 쾌락을 사는 것뿐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다. 아파트에서 놀이 기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며 집에서는 잠만 잔다. 그 대신 집 밖에 온갖 야간 유흥 문화가 범람한다. 한국 경제에서 자영업 비율이 선진국의 2~3배에 달하는 이유다. 집이 해결해줘야 할 놀이 본능을 집 밖에서 유흥 문화로 해소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집 - 놀이 기능과 숨바꼭질: 반면 한옥은 놀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가변성과 무형은 놀이 기능에 가장 적합한 조건이다. 한옥은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다. 그것도 고정된 놀이 기구 몇 개를 늘어놓은 요즘의 아파트 놀이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조작하고 노는 창조적인 놀이터다. 따로 시간을 내서 놀러 갈 필요도 없다. 창문을 열고 닫으면서 집안을 오가는 일이 모두 놀이다. 일상생활 자체가 놀이이니 이것을 담는 그릇인 집은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

윤증 고택 사랑채를 보자. 이 집의 차원은 무엇일까. 3차원인지 2차원인지, 아니면 4차원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벽을 세운 목적도 모으기 위해서인지 나누기 위해서인지 통하기 위해서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공간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실내일까 실외일까. 또한 저 공간은 방일까 마당일까. 뚫린 구멍이 불규칙하고 벽이 어긋나 있기 때문에 집은 곧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기에 좋은 놀이터가 된다. 한옥의 놀이 기능은 동선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동선은 갈래를 쳤다 합친다. 동일한 목적지에 대해서 질러가기와 돌아가기가 동시에 가능하다. 지름길과 갈림길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올 수도 있다. 창문을 다 열면 뼈대만 남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집이 되지만, 적당히 열고 닫으면 숨고 감추는 데 가장 뛰어난 구조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집 - 촉각과 시각의 미학



좌식 문화와 온돌방

살갗, 촉각, 접촉 문화: 사람은 감각의 동물이다. 오감이 종합적으로 발달한 동물이다. 오감을 하나씩 떼어서 보면 사람의 감각은 그다지 우수한 기능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오감 전체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데에서는 단연 최고다. 더 중요한 것은 감각을 물리적 기능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정서적으로 느낀다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문화는 뛰어나다. 주로 접촉 문화를 통해서다. 한국 문화는 전반적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자연 속에 누각을 세우거나 집에 대청을 만들어 자연과 교감하려 한 것도 바꿔 보면 오감을 자극하며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한옥은 여러 방향으로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하는 구조를 가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촉각이다.

좌식 문화와 체성감각 : 한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촉각 작용이 일어나게 했을까. 크게 보면 좌식 문화가 그 주역이다. 좌식 문화는 집과 사람 살갗의 접촉을 늘려준다. 앉아서 생활하다 보면 엉덩이나 다리가 방바닥과 접촉한다. 앉으면 눕기도 쉬운 법, 눕게 되면 온몸이 방바닥과 접촉하게 된다. 여름에는 요 없이 바닥과 접촉하면 시원해진다. 겨울이 문제라지만 우리에게는 온돌이라는 원군이 있다. 온돌에 ‘등 지지는’ 행위는 접촉 문화와 난방이 하나로 합해진 것이다. 잠자리도 공중에 떠 있는 침대가 아니라 바닥과 밀착한 요를 사용한다. 좌식을 하다 보면 또한 자연스럽게 맨발로 생활을 하게 된다. 신발을 신은 채로 앉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신발을 벗어야 되며 신발을 벗으면 양말도 벗게 된다.

좌식 문화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며 가장 한국다운 생활방식이 되었다. 무엇인가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체성감각(somatic sensation)이다. 좌식 문화는 체성감각을 살린다. 그렇다면 체성감각은 무엇일까. 의학적 정의는 ‘전신의 피부, 근육, 골격, 관절, 결체조직, 장기에 가해지는 자극을 받아서 인식, 경험하는 감각’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데에는 눈으로 보는 장면이나 글로 읽는 지식이나 귀로 듣는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온몸, 그것도 피부뿐 아니라 그 속의 근육과 뼈마디, 몸속의 내장 모두가 인식과 경험에 간여한다는 뜻이다.

체성감각은 온몸에 퍼져 있는 신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인식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시각이나 청각보다 사람의 정서와 감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더운 물 속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라고 하는 것도 체성감각이 자극을 받은 좋은 예다. 양말이 체성감각을 약화시키는 사실은 동물을 통해서 잘 확인된다. 개나 고양이에게 양말을 신기면 못 걷거나 네 발을 따로 움직여서 우스꽝스러워진다. 이 때문에 요즘 자연 힐링 프로그램 가운데에는 맨발로 걷는 항목이 들어간다.

체성감각을 살리는 한옥 : 이처럼 체성감각은 사람의 정서, 감성, 건강 등에 모두 중요하다. 체성감각이 적절하게 자극을 받고 깨어 있어야 정서가 안정되고 감성이 순화된다. 혈과 기가 잘 돌아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서구화된 현대 생활은 체성감각을 봉쇄하고 퇴보시킨다. 점점 덜 걷고 자동차만 탄다. 외부와 단절된 실내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땀 흘릴 일이 없어진다. 문명이 발전하면 인간의 소중한 본능이 쇠퇴하게 되는 현상의 하나다. 반면 한옥은 체성감각을 자극해서 살리는 집이다. 체성감각을 정의한 내용 가운데 키워드는 전신, 피부, 자극, 인식, 경험의 다섯 가지다. 모두 한국의 접촉 문화와 좌식 문화에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피부가 중요하다. 접촉 문화와 좌식 문화는 살갗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경험 능력을 높여준다. 체성감각에는 촉각, 고유 감수성 감각, 압각, 통각, 온도 감각 등이 있는데 살갗을 통해 일어나는 촉각이 가장 대표적이다. 촉각은 다른 감각들을 총괄하는 복합 감각이다. 한옥이 이것의 집합체이니 정말로 지혜로운 집이다.

한편 신체 부위 가운데에서는 발이 중요하다. 모든 살갗이 중요하지만 발은 신경이 집중되는 곳으로 특별히 더 중요하다. 발은 인체의 축소판으로 각 내장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다. 내장 기관의 신경이 발로 모여 집중된다. 좁게는 심장 다음으로 몸 전체의 혈액 순환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발의 건강이 곧 몸의 건강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발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통풍과 지압이다. 한국인들은 피곤할 때 신발부터 벗어서 발에 통풍을 시킨 뒤 발바닥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휴~” 하고 한숨을 한 번 쉰다. 발바닥의 체성감각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좌식 문화가 바로 발의 통풍과 지압을 촉진하는 생활방식이다. 맨발로 생활하다 보면 통풍은 말할 것도 없고 발바닥에 지압 효과까지 있다. 하지만 집의 형식에 따라 차이도 있다. 현대 개인주택이나 아파트처럼 바닥이 평평한 집에서는 그 효과가 떨어진다.

한옥은 다르다. 오르내림이 많은 구조라서 발바닥 가운데 부분까지 지압이 된다. 마당에서 기단과 댓돌을 밟고 대청으로 오르는 동선이 그렇다. 모두 계단을 오르는 동작이기 때문에 발바닥을 펴게 되거나 발바닥의 가운데 부분이 돌의 모서리와 접촉하게 된다. 건넌방을 오가는 짧은 거리에서는 마당을 맨발로도 많이 다녔다. 신발을 신더라도 요즘처럼 밑창이 두껍지 않은 짚신이었기 때문에 맨발로 다니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구조를 오르내리며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발바닥의 체성감각을 자연스럽게 자극하게 된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