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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

이동연 지음 | 평단문화사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

이동연 지음

평단문화사 / 2013년 10월 / 304쪽 / 12,000원





제1장 마음 알기 - 나를 찾아가는 길



내 인생 내가 좋으면 된다

서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창조 설화 중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역사가 열릴 때 하늘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어 행복하게 살도록 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지혜를 남용하여 갈등을 일으켰고 미움은 커지고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그래서 천사들은 인간에게 준 행복의 지혜를 되찾아와 몰래 숨겨놓기로 결정했다. 천사들은 각각 인간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제시했다.

한 천사가 “행복의 지혜를 큰 산 나무 아래 깊이 파묻어 두자”라고 하자, 누군가 “인간이 땅을 파 행복의 지혜를 꺼낼 수 있으니 아예 깊은 바닷속에다 감추어 두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천사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 위에 갖다 놓자”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천사들은 교활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행복의 지혜를 가져갈 것 같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천사들의 의견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대천사가 말했다. “성공의 비결인 행복의 지혜를 인간의 마음 깊숙이 묻어둔다면 남의 것에만 관심이 많은 인간은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모여 있던 천사들이 대천사의 의견에 탄복하며 박수를 쳤다. 그 후로 인간은 행복의 지혜를 찾기 위해 바다로 산으로 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참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성공의 비결이나 행복의 원리는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다. 행복은 오직 내면에 있으며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기대를 미래에 둔 채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고 후회한다. 그들은 중년에 이르거나 은퇴한 후에는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며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과거와 미래, 저곳과 그곳은 실제가 아닌 관념의 세계이다. 오직 현재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이 참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일을 도모하면 뜻대로 안 되었을 때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의 행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행복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의 일에만 욕심을 부린다면 그만큼 우울해지고 불행해진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흔히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욕망 그 자체가 결핍이다. 자크 라캉(프랑스의 정신 분석학자)은 사람들이 갖는 욕망을 한마디로 ‘타자의 욕망에 대한 욕망’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에서 ‘타자’란 언어를 매개체로 한 문화나 다른 사람들과의 일반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나도 가지고 으스대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적 빈곤은 잘 참을 수 있지만, 상대적 빈곤은 참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다 함께 고생하고 다 함께 배고픈 것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인간은 가끔, 아니 매우 자주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갖기를 원하고 바라면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산다. 남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그 차이에서 우월감을 갖고 자기 과시를 한다. 남에게 없는 고급 외제 승용차, 남이 갖지 못하는 고급 보트나 별장, 남이 가질 수 없는 명품 등 사실 그것이 자아의 성숙이나 안정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인데도 마치 우리의 본질적 욕망인 것처럼 당연시하며 좇고 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의 자아는 참된 자신의 욕망인 행복과 평안을 찾지 못한다. 남의 욕망을 뒤좇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남에게 매달려 있다.

라캉은 이처럼 타인에게 휘둘리는 ‘비합리적이며 헛된 욕망’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론이든 사람들의 의식이든 이것은 언제나 올바르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변하기도 하고 틀릴 수도 있다. 물질이든 권력이든 외부에 행복의 잣대를 두지 말라. 나의 깊은 내면에 닻을 내리도록 하라.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얕은 강물과 같다면, 자기 내면에 닻을 내린 사람은 대해(大海)와 같다. 수심이 얕은 강과 연안 바다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큰 물결이 일고 해일이 일어나지만, 수심이 깊은 대해일수록 파도는 표면에서만 일렁일 뿐 저 깊은 심연은 태고의 정적이 그대로 존재한다. 이렇듯 자기의 내면 깊숙이 닻을 내린 사람은 세상 모든 존재의 기반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매 순간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제2장 마음 드러내기 - 당당한 내가 아름답다



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

장자가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나무꾼이 아름드리나무를 베면서도 나뭇잎이 우거진 한 나무만은 베지 않았다. 이것을 궁금히 여기던 장자가 그 까닭을 묻자, 나무꾼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나무는 옹이가 박혀 있어서 잘라봐야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요. 그러한 나무를 뭐 하러 벱니까?” 장자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깨달았다. “이 나무는 근본이 좋지 못한 탓으로 오히려 제 수명을 다 누리는구나.”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인 ‘무용지용(無用之用)’ 사상은 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산을 보라. 푸른 산은 ‘쓸모없는’ 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쓸 만한 나무는 다 베어다가 재목으로 쓰고 정원에 옮겨다 심는다. 지구의 허파인 산은 ‘쓸모없는’ 나무가 지키며, 바다의 허파인 해안선은 벼도 심지 못하고 건물도 지을 수 없다는 갯벌이 지키고 있다.

과연 우리가 구별 짓고 있는 유용ㆍ무용의 가치는 타당한 것인가? 사람들은 쓸모 있고, 없고의 기준을 지금 눈앞의 이익에 둔다. 당장 이익이 되면 쓸모 있고,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면 쓸모없다고 단정지어 버린다. 조금만 멀리 내다본다면 쓸모없는 것들이 더 귀중한 자원이 된다.

산업사회에서는 중후장대(重厚長大)가 최고였다면, 정보사회에서는 경박단소(輕薄短小)가 점점 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고 약한 것들이 유연하고 변화에도 잘 대처하며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의지할 데가 없을 때 사람은 더욱더 강해진다. 따라서 내면이 강해지면 어떤 악조건과 환경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 우리의 내면은 약하고 보잘것없을 때 한없이 강해진다.

스물다섯 살이 된 한 처녀가 카운슬러에게 자신의 불만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저는 불행합니다. 제 방도 없고, 부모님은 매사에 간섭하시며 나를 믿어 주지도 않습니다. 좋은 옷도 없으며 청혼하는 남자도 없습니다. 내 장래는 암담합니다.” 신문에 나온 이 편지를 읽고는 열세 살 먹은 지체 부자유의 어린 소녀가 투고를 해 왔다. “나는 걷지 못하는 소녀입니다. 보고 말하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입니다. 나는 걷지는 못하지만 보고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약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다. 자신의 장점에만 우쭐거리지 말고 자신의 약점에도 감사하라. 그 약점으로 내가 겸손할 수 있고, 약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칭찬받을 때만 기뻐하지 말고, 비난받을 때에도 감사하라. 비난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을 자제할 수 있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 성서에 나오는 바울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약하고 작고 볼품없으므로 더 분발할 수 있다. 작고 외롭기 때문에 육체와 물질이 아닌 순수한 내면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인 존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다. 베토벤은 귀가 먹어 천둥소리도 듣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곱사등이었다.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만든 사도 바울은 작은 키에 고질병을 앓았다. 넬슨 제독과 만델라도 키가 작았다. 에디슨은 여덟 살 때 청력을 잃었으며, 셰익스피어는 발을 절었다.



제3장 마음 다루기 - 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9회 말 역전 홈런을 노려라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생물학적 나이는 어른일지 몰라도 정신 연령은 아동기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을 내릴 때 반드시 고통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 축복을 받은 사람이 교만해지지 않고, 그 축복을 주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온 한 친구는 나에게 자기를 가르쳤던 지도 교수의 말을 전했다. 그 교수는 자신의 지도를 받는 학생 가운데 탁월하게 성악을 잘하는 학생에게 강의 도중에 다정히 말했다. “자네는 정말 아름다운 성대를 가지고 있네. 하지만 지금까지 자네의 인생은 자네에게 너무 온화하고 친절했네. 언젠가 자네에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올 때 그 시련을 잘 견뎌낸다면 정말 위대한 성악가가 될 걸세.”

인생의 행로에 언제나 따사로운 햇볕만 비추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기름진 땅에 태양만 계속 내리쬔다면 머지않아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가끔은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며 태풍도 몰아쳐야 습도를 유지하여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하루하루가 천국 같다면 어떤 감격이 있고 통쾌함이 있겠는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린위탕은 그 꿈을 접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중히 천국이나 극락 가는 것은 사양합니다.” 린위탕은 왜 이러한 말을 했을까? 울음 없이 웃음이 있을 수 없고, 아픔 없이 치료가 있을 수 없고, 실패 없이 성공이 있을 수 없다. 깊은 밤이 있어야 아침의 태양이 있듯이, 매일 즐겁다면 곧 즐거움이 뭔지도 모르는 무감각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현실에서 어려움에 부딪쳐보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을 많이 놓치고 만다. 우리의 삶에서 눈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실패해 본 사람이 약자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다. 웃음만이 가득한 세상이 천진난만한 즐거움이라면, 번뇌의 눈물 뒤에 보이는 세상은 함께 녹아들어 가 그 속에 일체가 될 수 있다.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칭찬과 비난이 늘 함께 공존한다. 인생에서 맑은 날이 계속되면 그대로 즐거울 테고, 비가 내리면 그 비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숙하면 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달이 기울면 다시 차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늘 반전과 역전의 연속이다. 이러한 삶의 이치를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하지 말고 매우 일상적이며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듭되는 역전을 마치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역전 홈런을 치는 것처럼 대단히 어려운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1953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첫 번째 등정에서 실패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여, 처음엔 네가 날 이겼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내가 널 이기겠다. 왜냐하면 넌 이미 성장을 멈췄지만 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의 길을 따라 험준한 산에 오르는 힐러리 경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으나 그에게는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자기 자신을 경영한다면 삶에서 ‘불행’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어떤 불행이 다가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역풍에 역한 자는 늘 기회를 기다리지만, 역전에 강한 사람은 늘 기회를 스스로 만든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대처하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그 자체가 반전이다. 탄생과 죽음, 입사와 퇴사, 만남과 이별 등 반전이 우리의 일상이다.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인생의 반전에 오르는 중이라고 생각하라. 기억하라. 특별한 사람들만 역전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역전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모든 일은 사소하다

모든 노이로제에 대한 완전한 치료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치유된 노이로제는 재발하지 않는다. 마치 성장기에 뼈가 부러지면 부러진 자리에 단단한 액이 나와 부러진 자리가 더 튼튼해지는 것처럼, 어떤 노이로제든 잘 해결한다면 노이로제에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절대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사소한 일이다. 지구가 생겨나고 모든 생명체와 인류가 탄생하여 오늘날까지 지속하는 동안 모든 생명체와 인류가 그 종을 후대에 남기며 살아오는 동안 각 개체에 ‘이것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이보다 더 큰 일이 지구에 있을 리가 없어’라는 생각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아마 지구 위에 살다간 개체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는 돌고 있고 문명은 발전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참행복을 찾고 있다.

영국의 식물학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어느 날 그의 연구실에서 애벌레 한 마리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고는 안쓰러운 생각에 고치를 찢어주었다. 그는 나비가 곧 고치에서 나와 날개를 펴고 힘껏 날아갈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월리스의 생각과는 달리 나비는 날려는 시도만 하다가 그만 날지도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월리스는 나비가 고치를 뚫는 일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비는 그 스트레스를 충분히 견딜 힘이 있고,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비상할 힘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신경이 약하면 모든 일에 예민해져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당신의 신경을 그토록 거슬리게 하는가? 그 일이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대한 당신의 신경 반응 메커니즘에 따라 당신은 얼마든지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여기지 않으면 모든 노이로제는 그 힘을 상실한다. 회사에 들어가 겪는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트레스보다는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모든 일을 스트레스로 여겨 얼굴을 찌푸리고 대하지 말고 신선한 자극과 도전 그리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라.

노이로제는 의심이다. 사실 기능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잘못된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해 심리적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 쓰지 말고 웃음으로 넘기며 하던 일을 계속 즐겨라.”



제4장 마음 털어내기 -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라



지금만으로도 기쁨이다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행복은 추억이나 욕망보다도 훨씬 더 근원적이다. 행복은 언제나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과거로 물러가거나 미래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이 행복의 실제이다. 내 마음속의 상처나 문제는 단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사실이다.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단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다.

명상가이며 영적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다음의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어떤 일도 과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일도 사실은 지금 일어난 것이다.”

“어떤 일도 미래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미래의 일도 사실은 지금 일어날 것이다.”

중세 서유럽 사상의 기초를 다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미래는 현재의 기대 속에 과거는 현재의 추억 속에’ 있다.

현재 실재하지도 않는 과거의 아픔으로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많다.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만큼 미래가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두려워해도 좋다. 그러나 미래 때문에 늘 초조해 해도 절대로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포로가 되어서 정작 오늘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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