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을래?
여하연 지음 | 이봄
같이 밥 먹을래?
여하연 지음
이봄 / 2013년 9월 / 254쪽 / 13,800원
Part Ⅰ. 오늘의 고민은 오늘의 요리
오늘의 요리 -가지 그라탱: 나이가 들어야 알 수 있는 맛
서른여섯 살의 봄에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고양이 알렉스를 입양했다. 심리적 고통에 대한 보상심리 반,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씩 해보겠다는 마음 반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고양이를 입양했다고 하자, 선배들은 ‘싱글 생활이 길어지겠구나’ 하며 혀를 찼다.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로 20대의 삶도 마냥 무지개빛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20대에는 청춘의 후광이란 것이 있다. 당시엔 캄캄한 터널 속을 걷는 것 같겠지만 그들은 젊기에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넘어서 방황을 시작한 여자들의 고민은 어쩐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서른다섯 살 즈음 내 주변의 여자들은 여전히 혼자이거나 가족이 있거나 제각기 다른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무렵의 어느 날 상사에게 불려갔다.
“너 참 불안해 보여. S는 결혼을 해서 그런지 안정감이 있고, K는 워낙 심지가 굳고 단단한 애라 괜찮아 보이는데, 넌 어딘가 불안해 보여.”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을 못한다거나 결과물이 안 좋다거나 업무에 관한 일로 혼이 났다면 받아들이거나 부인했겠지만, ‘불안해 보인다’는 말은 나의 근원적인 자존감을 건드렸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게 뭐라고, 너무 티를 냈나 싶기도 했지만, 친한 몇 명의 사람들 말고는 감정을 드러낸 일도 없고 마감도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서운함이 앞섰다. 사춘기 소녀들처럼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잘 모르시잖아요’, 이렇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훔치며 “업무에 지장 없이 잘 하겠습니다” 하고 방을 나왔다.
그날 밤, 아니 그로부터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별 후유증도 컸지만 ‘넌 어딘가 불안해 보여’라는 말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생기는 안정감, 아니면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심지, 둘 중 하나는 있어야 이 험한 세상을 버틸 텐데, 나는 나이만 먹었을 뿐이지 뭐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서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며 편하게 러닝머신 위를 달려왔는데, 언제 이 러닝머신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불안감은 노련하게 차곡차곡 잘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커리어에도 일기 시작했다. 후배들에 비해 감도 떨어지고 촉도 둔해지는 것만 같았다. 15년차 기자인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까.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매일 고민을 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했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친구들도 이젠 서울에 아파트 하나씩은 다 있는데, 대체 왜 내겐 여전히 사랑과 연애는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어렵고, 10년 넘게 해온 일이 버겁고, 여전히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진로 걱정을 하고 있는지 한심했다. 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새 둥지를 찾아 떠나버렸고, 친구처럼 어울리며 놀던 후배들에게선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자신을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해진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그녀의 소설 『삼십세』에서 말했던 그 유명한 구절은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즈음 시대에는 30세가 아닌 30대 중후반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늘어가는 경제력과 줄어드는 체력이 딱 만나는 지점’이 바로 30대 중반. 유럽행 비행기표 한 장 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체력이 예전만 못해서 여행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는 서글픈 현실에 씁쓸한 미소만 나왔다. 실제 몇 년 전에는 회사를 관두고 런던에 가자마자 피카델리 서커스 거리에서 코피를 쏟았고, 지난봄에는 20대 후배와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다가 저녁 9시만 되면 뻗어버려서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들었다.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 너무 좋거나 너무 싫은 것이 줄어들면서 쉽게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확실히 ‘흥’이 사라졌다. ‘아, 왜 이렇게 예전처럼 떨리거나 흥분되지 않지? 이런 게 늙는 건가?’ 이런 감정이 왠지 낯설고 서글퍼져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거나 약속을 만들었다.
30대 사춘기를 지나, 마흔을 넘긴 지금도 불안한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감추려고 애써 즐겁고 행복한 척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내게 오는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려고 한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보다는 담담한 듯하면서 편안하고 다정한 것들에게 마음이 가고, 왜 난 집 한 칸 없나 푸념하거나 돈 많은 남자를 찾기보다는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에 만족한다. 화려한 골드 미스도, 생활에 찌들어 있는 실버 미스도, 히스테리 부리는 성질 고약한 노처녀도 아닌 즐겁게 사는 그냥 나. 우린 겨우 인생의 반을 달려왔다.
나이가 들면 식성에도 변화가 생긴다. 간이 덜된 담백한 음식에 정이 간다. 신기한 것은 20대에는 먹지 않았던 식재료에 저절로 손이 간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가지’이다. 어려서는 ‘가지’ 맛을 잘 몰랐다. 가지나물을 안 먹는 나에게 엄마는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이가 들면 아마 가지 맛을 알게 될 거야’라고 하셨다. 정작 ‘가지의 맛’에 눈을 뜨게 된 건 30대 중반을 넘어서다.
가지를 삶은 후에 손으로 찢어서 참기름과 간장, 파,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가지나물, 가지 파스타, 가지 그라탱 등 가지 두 개만 있으면 일주일 식탁이 풍성해진다. 가지 그라탱은 가지에 감자, 달걀과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로 만든 음식이다. 가지의 보라색에는 안토시아닌이라고 암을 예방하는 식물 활성 영양소가 풍부해서 항암 효과가 브로콜리나 시금치보다 두 배나 높다고 한다. 가지는 쪄서 먹는 것도 맛있고, 볶아 먹는 것도 맛있고, 이탈리안 스타일과도 잘 어울리는 식재료다. 독특한 향과 식감 뿐 아니라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을 가지고 있는데 어릴 때는 이런 가지의 진가를 몰랐다.
오늘의 요리 -떡볶이: 오후 4시 30분의 허기
“안돼. OH~ NO!!” 검은색 비닐봉지를 열어본 뒤 나는 긴 절규와 탄식을 내뱉었다. 퇴근길에 들른 분식집에서 분명 ‘떡볶이와 튀김’을 사왔는데 봉지 안에는 떡볶이는 없고, 튀김만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것과 바꿔 들고 온 것이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면 당장 바꾸러 갔겠지만,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은 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 분식집의 튀김 맛은 괜찮은 편이긴 했지만, 떡볶이 없는 튀김은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튀김봉지 안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야채튀김과 오징어튀김은 하나도 없고, 김말이와 고구마튀김만 잔뜩 들어 있었다. 퍽퍽한 튀김을 먹을 엄두가 안 나서 결국 냉동실을 뒤져 나온 떡국떡으로 떡볶이를 해 먹었다.
나의 떡볶이 사랑은 유별나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바로 생각나는 음식까지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밥과 찌개, 반찬을 빼고 간식으로 꾸준히 먹는 것이 바로 떡볶이다. 오랫동안 해외출장을 가면 얼큰한 김치찌개와 따뜻한 흰쌀밥 생각도 간절하지만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매운 떡볶이’다. 사실 오지가 아닌 다음에야 도시에 한두 군데는 한식당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식당에 떡볶이는 팔지 않는다. 느끼한 서양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가장 생각나는 건 매운 음식이고, 매운 음식 하면 ‘김치’보다 가장 먼저 ‘떡볶이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먹던 간식, 떡볶이를 지금까지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떡볶이’는 왠지 여학생의 전유물 같았으니까. 학교 앞 분식점은 늘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먹으러 온 여학생들로 붐빈다. 미원이 잔뜩 들어간 떡볶이는 중독성이 강했다. 집에서 아무리 좋은 떡과 맛있는 고추장, 신선한 야채를 준비해도 분식집이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떡볶이 맛은 재현할 수가 없다.
떡볶이는 떡의 종류나 맛에 따라 간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쌀 떡볶이, 옛날 떡볶이, 매운 떡볶이 등으로 불리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장에서 파는 옛날 떡볶이 스타일이다. 옛날 떡볶이는 밀떡으로 만들며 다른 떡볶이에 비해 맵고 달달한 것이 특징이다. 밀떡은 쌀떡보다 쫀득하고 미끌거린다. 떡이 너무 두껍지 않아서 양념도 잘 밴다. 개인적으로 100퍼센트 쌀보다는 밀이 많이 섞여 있거나 100퍼센트 밀떡이라야 왠지 진짜 떡볶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떡볶이는 재료가 너무 좋거나, 많이 들어가거나, 값이 비싸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파, 마늘과 양념 외에 약간의 오뎅이면 충분하다.
재료가 풍부한 떡볶이를 맛보고 싶다면 즉석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 프라이팬에 떡볶이떡과 각종 야채, 당면이나 쫄면을 넣어서 직접 해 먹는 방식인데, 즉석 떡볶이의 매력은 내 맘대로 ‘사리’를 추가하는 것이다. 당면을 넣을까, 쫄면을 넣을까, 튀김 만두를 넣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즉석 떡볶이의 묘미 중 하나는 눌러 붙은 쫄면과 야채를 긁어 먹는 것, 아니면 밥을 추가해서 비벼 먹는 것이다.
졸업하고 20년이 지났는데도 오후 4시 30분이면 떡볶이의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다. 달콤한 케이크나 과자로는 해결할 수 없는 허기가 있다. 그때 필요한 게 떡볶이다. 왜 떡볶이는 유독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걸까. 떡볶이집에는 여자 혹은 여자친구에게 끌려온 남자들만 있지, 남자들끼리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 남자들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남자친구 S는 이렇게 말했다.
“떡볶이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야. 다만 떡볶이를 먹으러 남자들끼리 가지 않을 뿐이지. 어디 떡볶이뿐이겠어. 식당이야 남자들끼리라도 어쩔 수 없이 밥은 먹어야 하니까 가지만, 술집이나 당구장 말고 남자들끼리는 어디를 잘 다니지 않아. 떡볶이집이야 당연히 못 가지. 왠지 가오가 떨어져 보이거든. 하물며 극장 갈 때도 용기가 필요한데 떡볶이야 오죽하겠어. 다만 떡볶이를 먹으러 남자들끼리 가는 게 창피할 뿐이라고.” S의 횡설수설을 듣다 보니 남자로 사는 것은 꽤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게 트럭에서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여자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Part Ⅱ. 맛있는 요리처럼 연애하기
연애 요리 -닭볶음탕: 남자친구에게 엄마 노릇하기
몇 년간 잡지에 연애 칼럼을 써왔으면서도 사실상 나는 연애 숙맥이다. ‘밀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10대 애들도 아는, 아니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는 밀당의 기술을 실전에는 전혀 써먹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내 연애는 꽃도 피워보기 전에 시들거나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났다. 6개월 이상 사귄 남자는 유일하게 딱 한 명. 그 남자와는 자그마치 8년간 세 번 헤어졌다 만나면서 3년 6개월을 사귀었다. 그를 다시 만난 이유가 그 남자는 밀당을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그 남자와 결혼까지 가지 못한 이유도 밀당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도 못했다. 나조차 역사 속에 묻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온 불굴의 의지를 ‘미친 사랑’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인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막무가내의 믿음으로 일을 벌였지만, 다시 그와 3라운드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시작하고, 끝내고, 시작하고, 끝내고… 두 번도 경험하기 싫은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뭘까. 스스로도 알 수 없고, 남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연민? 집착? 중독? 사랑? 의미? 우정? 이제야 난 그를 향한 감정의 정체가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감정, 즉 ‘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늘 말한다. ‘정이 무섭다’라고. 첫눈에 반하고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후에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고, 더 이상 뜨겁지도 설레지도 않고, 둘 사이가 슬슬 권태로워지기 시작할 무렵, 서로의 못마땅한 점을 찾으면서 이별을 떠올리다가도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게 하는 감정, 이처럼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 사이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이다.
정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끝나고 접어드는 그 다음 단계의 감정, 현재의 모든 불만을 덮어버리며 그의 단점까지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담요 같은 감정, 굳은살처럼 오랫동안 나와 함께해서 이제 아프지도 않으며 떼어내기도 귀찮은 감정,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내 살붙이나 가족처럼 느껴지는, 사랑보다 더 무섭고 독하고 찐한 감정, 그게 바로 ‘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코털이 밖으로 삐져나오면 못 본 척하고, 정든 사람에게는 ‘야, 너 코털 나왔어’ 하고 말하면서 휴지를 건네준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샤넬 백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지만, 정든 사람에겐 나중에 더 비싼 ‘우리 것’으로 사자고 말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능하게 보일 때는 실망스럽지만, 정든 사람이 무능하게 보일 때는 안쓰럽다.
나는 그와 정이 들었고, 남자친구가 아닌, 수컷도 아닌 ‘가족’ 같았다. 연봉, 내 상사의 성격, 식성, 술버릇, 잠버릇, 가족사 등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남자친구와 시시콜콜 주고받으면서, 우리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술 한 잔에 갑자기 눈이 풀리면 으레 스킨십 모드가 이어졌다. 하지만 연애 초기의 짜릿한 흥분과 전율이 느껴지는 애정 행각이라기보다는 본 식사 후에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오래된 연인의 스킨십은 정해진 수순 같았다.
책임감과 의리가 중요해진 이 관계의 베이스는 사랑보다 더 질긴 우정과 정이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는 그에게 여자친구보다는 철없는 딸, 또는 푸근한 엄마처럼 굴었고, 그는 섹시한 남자보다는 자상한 아빠 같다가 또 가끔은 철없는 아들처럼 굴었다.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느껴졌으며 기대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많아졌다.
남자친구가 가족 같아지면 데이트를 주로 집에서 하게 된다. 밖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느니 집에서 해 먹는다. 영화도 집에서 다운받아 보고, 술도 집에서 마신다. 산책도 한강 고수부지까지 갈 것 없이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 집 앞 공원을 걷는다. 서양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그에게 자주 해주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닭볶음탕’이다. 느끼하지 않으며 재료도 생각보다 간단하고, 나름 보양식이면서 술안주로도 좋기 때문이다. 조리 방법이 어렵지 않으면서 특별식이라는 느낌이 들어 생색내기에도 좋다.
닭볶음탕은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비율이 중요하다. 고추장을 많이 넣으면 텁텁하고 또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으면 가벼운 맛이 난다. 닭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닭을 10분 정도 끓인 다음, 물을 버리고 난 후 양념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음식을 해주고 나서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이렇게 맛있는 거 처음 먹어봐, 당신 최고야’이다. 그러나 가족 같은 남자친구와 그럴듯한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요리가 아닌 한국식 밥상을 차려주고 나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우리 엄마가 해준 것보다 당신이 한 게 더 맛있어’이다. 어린아이처럼 당근을 골라내고 먹는 그를 구박했지만, 금세 나는 용서했다. ‘당신이 해준 닭볶음탕이 우리 엄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어’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리고 난 정작 당근만 골라 먹었다. 정말 난 그때 그의 엄마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