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 2013년 6월 / 260쪽 / 15,000원
왜 나만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유행의 첨단을 이끄는 도시인 뉴욕에서, 유행의 첨단을 걷는 가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딸 둘을 키우다 보니, 종종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모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비위도 맞춰주며 격려까지 아끼지 않는데도, 아이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까지 잃었다.
30여 년 전, 우리 엄마는 하교 시간에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면서 단 한 번도 과자를 서너 가지씩 바리바리 싸들고 온 적이 없다. 나 역시 맘에 드는 과자가 없다고 신경질을 부린 적도 없다. 엄마는 자신이 과연 엄마 노릇을 잘하고 있는지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요즘 부모들은 예외 없이 이런 고민으로 하루를 다 보낸다. 일단 나부터 그렇다. 이제는 달라지려 한다.
맏딸 우나가 두 살 때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말로 자기에게 상처를 준다’고 했다. 그 상처를 준 말이란 다름 아닌 ‘네 신발 엄마한테 가져와’였다. 아이 말에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진짜 상처가 뭔지 한번 보여줄까?’라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그때는 그냥 웃으면서 방을 나왔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등하게 대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됐다. 아이들은 (운이 아주 좋을 경우) 7~8세는 되어야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프랑스인 친구 루시 뒤랑이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을 때 내 의구심은 현실로 드러났다. 순종적인 그 집 아이들은 부모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정말 조용해졌다. 식탁을 차리라고 할 때도 어르고 달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집 아이들은 저녁상에 나온 음식 중 먹기 싫은 음식은 그냥 안 먹었다. 그렇다고 그 부모가 다른 음식을 내밀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모들은 식탁에 남아 와인을 마셨고, 아이들은 거실로 가서 놀았다. 대체 얼마 만에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보는지 몰랐다. 하지만 술기운이 살짝 돌던 그 달콤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막내 대프니가 내 관심을 끌기 위해 평소 하던 짓을 시작한 것이다. 바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소리쳐 부르기’였다. 이때 아주 작은 자극만 더해져도 바닥에 드러누워 세차게 발길질을 해댄다. 우리 식구는 이를 ‘매켄로 짓’이라고 부르는데, 매켄로는 미국 테니스계의 악동이었던 존 매켄로를 지칭한다. 그러나 나도 네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기능하는 뒤랑 가족을 목도한 터였다. 그래서 평소처럼 즉각 대프니에게 달려가는 대신 루시를 쳐다보며 조언을 구했다.
루시가 간절한 내 눈빛을 알아챘는지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여 내 팔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프랑스 엄마들은 익히 알고 있는 마법의 한마디를 건넸다. “피가 났다면 모를까, 절대 일어서지마.” 단순 명료하면서 심오하다. 그렇구나! 프랑스 엄마들은 그렇게 키우고 있었구나! 피도 안 났는데 경기를 중단시킬 필요가 없다! 육아를 농구나 축구 경기처럼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내가 달려와 법석을 떨어주지 않자 대프니는 목청을 조금 더 높였다. 그러더니 울음을 터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게 뚝 멈추고는 다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루시가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관찰 결과, 아이들은 절대 반항하며 눈을 흘기거나, 문을 쾅 닫거나, 벽과 바닥을 두들기거나, 음식을 던지거나, 조르는 법이 없었다. 부모의 말에 대드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내 프랑스어 실력이 일천하여 루시와 아이들의 대화에 담겨 있었을 보석 같은 지혜를 많이 놓쳤다. 다만 엄마는 절대 아이들과 타협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이후 우리 집이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들 때마다 나는 ‘루시 뒤랑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대프니가 크레용으로 복도 벽을 온통 뒤덮어버렸을 때 우리 부부는 어째야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루시에게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부엌에 가서 스폰지와 비눗물을 가져와. 그런 다음 애를 의자에 앉히고 낙서를 직접 문질러서 지우게 하면 돼.” 낙서를 직접 지우게 한다고? 남편이 있는 힘껏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 크레용 낙서를? 이어 루시는 대프니가 스스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고 낙서 지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을 때까지 아주 잠시만 시키면 된다고 했다. 답은 명확했다. 루시는 전문가 수준의 부모였을 뿐 육아 전문가는 아니었다. 자신의 육아법이 결코 혁신적이거나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따랐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종종 이렇게 강조했다. “캐서린, 총사령관은 결국 너야.” 그리하여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좌지우지하는 총사령관이 될 수 있다.
병사는 사령관 하기 나름
내가 만난 프랑스 엄마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엄격하게 훈육하고 자제력을 길러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육아 서적을 거의 혹은 아예 읽지 않았다고 했다. 육아 서적을 참고했다고 대답한 이들은 대부분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프랑수아즈 돌토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프랑스 육아 사이트 ‘아기들의 소동’ 운영자는 돌토의 책을 정독이라도 한 듯 ‘생떼 예방을 위한 간단한 네 가지 요령’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① 명확한 규칙을 정하고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된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불변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차를 탈 때는 안전벨트를 맨 채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있는다, 정해진 시간에 잔다, 식탁에서는 똑바로 앉아 있는다 등 가족마다 구체적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반드시 지키도록 한다. ② 아이의 눈물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라. 아이가 울 때 그 이유가 정당한지 정확히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 단순한 생떼인지 부모가 가려내야 한다. 만약 생떼를 쓰고 있다면 철저히 무시하도록 한다.
③ 아이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기다림은 아이가 좌절을 견뎌내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원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음을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 ④ 아이가 부모의 욕구를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권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사령관이다! 엄마 아빠가 늘 옆에 있을 수는 없고, 늘 놀아줄 수는 없음을 인지시켜야 한다. 부모도 혼자만의 시간, 부부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프랑스식 육아법을 접하기 전에는 대프니가 언제든 매켄로로 돌변할 수 있으며 달래려는 순간 발차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저 견뎠는데, 사령관 자리를 꿰찬 후 재활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일단 돌토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생떼 예방을 위한 간단한 요령’을 실천에 옮겼다. 물론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사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질기다. 아무리 안 된다고 말려도, 벌을 줘도, 엄격해져도 쉽사리 풀이 죽거나 자긍심을 잃지 않는다. 돌토는 아이가 금지나 제한을 당했을 때 경험하는 짜증이 ‘상징적 거세’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욕구와 충동 조절 능력을 길러주려면 이런 상징적 거세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대프니는 그때까지 그런 거세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돌토가 아이에게 독재자처럼 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사령관이라고 해서 늘 완승을 거두지는 못한다. 그러니 프랑스 스타일을 실행한 뒤 즉각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절대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참고로 대프니의 생떼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인의 지혜를 언제든 써먹을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췄는가가 중요하다. 내 경우엔 본격적인 프랑스화에 앞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했다. 때문에 초기에는 정통 프랑스 스타일을 약간 변형한 나만의 스타일을 개발했다. 프랑스 부모들의 조언 하나를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두 딸이 여름캠프를 시작하던 날, 나는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대프니는 전날 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예상대로 칭얼거리면서 일어났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냉장고로 가서 점심 도시락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검열했고, 작은 초콜릿 크래커 다섯 개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행여 대프니의 심기가 불편해질세라 노심초사하고 있던 나는 아이를 부엌으로 데려가서 원하는 만큼 과자를 안겨주었다. 10분 뒤 우나가 비장한 태도로 내게 다가왔다. “왜 대프니한테는 아침으로 초콜릿 쿠키를 한 봉지나 줘?”라고 물었다. 아침 식사로 쿠키를 먹었다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적절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면 애초 점심 도시락에 넣어주었던 초콜릿 크래커를 빼앗아야 한다. 그러나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달라지는 중이었다. 대프니의 죄에 거의 상응하는 처벌을 생각해냈다. 작은 곽에 든 민트 맛 캔디 세 개. 나는 그 캔디 세 개를 빼앗았다. 하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몇 주 전 이모로부터 받은 과자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군것질거리였다. 아이의 저항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우리는 버스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 조치를 취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번엔 100% 프랑스 스타일을 적용할 참이다.
총사령관이 규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면 예의 바른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는 사실에 덧붙여, 프랑스 친구들에게 배운 요령이 하나 더 있다. 아이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적용하면서 습관적으로 포상을 제시했다. 잘못을 지적하려 들지 말고 칭찬에 초점을 맞추란 글을 어디선가 읽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영리하다. 지나고 보니 ‘날 잡아 잡수시오’라며 아이들 앞에 벌렁 드러누운 꼴이나 다름없었다. 우나와 대프니는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까지 아무런 말썽을 부리지 않았거나 저녁 식탁에서 조용히 밥그릇을 비우고 나면, 당연히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바로 그때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프랑스에서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 이유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야만 한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가족과 어울리다 보면 정말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방에 아이가 들어와도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 경험 말이다. 아이들은 그냥 앉아서 어른들 얘기를 듣는다. 물론 할 말이 있으면 끼어들어도 되지만, 어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공손히 끼어든다. 아이가 관심을 끌고자 불손하게 구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그런 아이는 부모로부터 방에서 나가라는 지시를 듣거나 번쩍 들려 쫓겨난다. 아이를 번쩍 들고 나간 부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세 돌아온다. 방에서 나가 아이와 긴 협상을 벌이지도 않고, 다시 방에 들어오면서 사과나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잠시 끊긴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뿐이다. 그럼 쫓겨난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대개는 자기 방으로 간다. 욕실이나 찬장에 갇힐 때도 있고, 어느 집에나 있는 ‘생각하는 자리’에 서 있기도 한다.
프랑스 아이들은 부모를 적당히 무서워하며 자란다. 말썽 부리다 쫓겨난 뒤에도 미친 듯이 날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듯하다. 프랑스 스타일을 접하기 전의 나였다면, 아이가 부모를 무서워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아이들로부터 존중받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자, 내가 프랑스 친구들의 과외를 받으며 어떻게 대프니를 변화시켰는지 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처음 프랑스화를 시도할 당시 대프니와 나는 꽤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앞서 소개한 생떼 방지 요령은 수년간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키는 패악이 습관으로 굳어버린 아이, 즉 대프니처럼 인이 박인 아이에게는 쉽사리 먹혀들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들이여, 프랑스식 육아법은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하자! 녹록지는 않았지만, 이제 나와 함께 대프니도 변하고 있음을 알린다. 지난 두 달 동안 대프니에게 나는 완벽한 프랑스 엄마였다. 변변치 못하게 캔디나 압수하던 시절은 끝났다.
대프니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때때로 울컥하는지 그 조그만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지만, 실제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엄청난 발전이다. 나는 종종 아이의 ‘기다림’ 근육을 길러주고 생떼 부리는 버릇을 뿌리 뽑기 위해 일부러 기다리게 만들기도 한다. 1년 전만 해도 가혹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게 됐다. 최근 아이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인터넷 연결이 끊겨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됐다고 패악을 부리면, 컴퓨터를 아예 치워버린다는 등의 규칙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은 물론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인내하고 기다리니 아이들도 알게 됐다. 이제 인터넷이 끊기면 아이들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면서 그저 나를 애절하게 바라볼 뿐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싸우고 있다. 사령관에게 싸움을 걸어서는 득 될 것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규칙과 원칙을 중시하는 프랑스 부모들에게,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빨거나, 이불에 오줌을 싸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등 비교적 가볍지만 보통 미국 부모들이 기겁을 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모두 내버려둔다고 했다. 그들은 “그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돼”라고 했다.
선택과 집중은 프랑스 부모들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지만, 모든 상황을 심각한 이슈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한다. 몇 년 동안 나는 유럽 아기들이 두 살도 되기 전에 배변 훈련을 마친다는 전설을 전해 듣기만 하다가, 다섯 형제를 둔 프랑스 엄마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실제로 가능한지 물어봤다. 답은 다음과 같았다. “글쎄. 난 그냥 우리 친정엄마가 하던 대로 했어. 아이가 9개월쯤 됐을 때 밥을 먹인 뒤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 거야.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기 변기에 앉혀. 매일 같은 시간에. 그렇게 했더니 다시는 기저귀를 찬 채로 대변을 보지 않더라고. 소변도 그런 식으로 가르쳤고.”
이 방법을 진작 알았다 해도, 우리 딸들은 프랑스 아이들처럼 아기 변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도 복종이 전제가 돼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더 자유방임적이었다면 대프니가 그렇게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다. 결론을 말하자면 엄해져야 한다. 아주 엄해지되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 고삐를 늦출 필요가 있다. 감이 좀 오는지? 나도 서서히 감을 잡아가는 중이다.
자라면서 익히는 삶의 품격
프랑스 부모들을 여럿 만나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자 노력하는 자질이 따로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더니,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애들을 제대로 다듬고 빚어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여덟 살이나 아홉 살만 돼도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들으니까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안 그래도 우나의 경우 아기였을 때부터 시간이 유달리 빨리 흘렀다. 나는 재차 자식들에게 꼭 키워주려 노력하는 자질이나 특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주로 음식을 음미할 줄 아는 능력, 훌륭한 시민 의식과 예의범절, 뛰어난 대화 기술, 스타일 감각, 삶의 환희를 누릴 줄 아는 능력,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 성실한 학습 태도 등이 거론됐다. 처음 두 가지는 나름 해결의 기미가 보이니 다행이고, 나머지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