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으면 진다
임건순 지음 | 브레인스토어
생각이 많으면 진다
임건순 지음
브레인스토어 / 2013년 3월 / 288쪽 / 13,000원
PART 1 야구에 미친 기자, 동산고 에이스를 만나다
내가 아는 괴물의 모든 것: 항상 정상의 자리에 서 있었고 라이벌 없이 독주해온 괴물, 투수가 세울 수 있는 많은 기록을 최연소라는 이름으로 갈아치웠던 선수, 그 괴물이 탄생한 역사적인 날이 있었다. 바로 2006년 4월 12일 LG전,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으로 LG 타선을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되며 데뷔한 괴물을 보기 위해, 경기 후 한화선수단 버스 앞에서 같이 온 일행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류현진과 인사를 한 후, 일행들과 잠실구장 근처 호프집에 가서 파티를 벌였다. 다들 나로 인해 아마 시절부터 류현진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같이 기대하고 또 마음을 졸이며 데뷔전을 기다렸던 그들과 조촐한 파티를 함께했다.
류현진 선수와 통화를 하는데 옆에 형님이 “현진이 좀 바꿔 봐” 하신다. 그가 류현진과 통화를 하고,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통화를 하고, 그렇게 사람을 바꿔가면서 내 전화기는 어느새 테이블 전체를 돈다. “정말 축하한다”, “많이 기대한다”며 격려를 하는 내 벗들. 그리고 뭐하느냐는 질문에 게임방에서 총 쏘는 오락을 한다는 류현진. 너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파티였다. 그러면서 시간이 늦어져 사람들과 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잠실에서 서울 강북의 집까지 걷고 또 걸었다.
여러 가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TV를 통해 그를 처음 봤을 때인 2003년 미추홀기 대회(류현진은 다섯 경기에 나와서 22와 3분의 1이닝에 방어율 1.17을 기록하며 3승을 거두면서 벌써 자신의 그릇을 보여줬다). 그리고 현장에서 처음 관찰을 하고 첫 대면을 했던 2005년 대통령배대회 인천지역 예선 제물포고와의 경기. 또 류현진 관련해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입방아와 악성루머도 많았고 악의적인 비아냥도 많았는데,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또 때리고 갔다.
“SK가 류현진을 1차 지명하지 않은 이유가 다 있다고.” “괜히 SK와 롯데에서 걸렀겠어?” “걔 팔꿈치가 온전할 것 같아? 토미존 서저리 받아 일찍 복귀한 애가?” 이런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현진이 실력으로 다 덮어낼 것이라 믿었기에 그냥 한 귀로 흘리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사연들로 인해 많이 서러웠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었다. 새벽녘 즈음에 집에 도착했고 이윽고 잠을 청했는데, 그 후 며칠간을 앓아누운 채 시간을 보냈다. 긴장이 풀려서 그랬을까?
팬들에게 팀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어쩔 때는 팀 성적 이상으로 중요하고 팬들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팀 컬러와 팀의 전통이다. 내가 응원했던 한화이글스는 빙그레에서 한화로 개명한 이후, 성적은 좋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팬들이 자부심을 가지는 전통이 있었다. 바로 송진우, 구대성으로 대변되는 한국 최고의 좌완들, 그리고 1기 이정훈-고원부-이강돈, 2기 송지만-이영우-데이비스로 대변되는 최고 공격력을 가진 막강 외야. 특히 최고 좌완의 팀을 응원한다는 한화팬들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고 그건 현재도 유효하다. 한편 최강 공격력의 막강 외야라는 팀의 전통은 김인식이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김인식 이후 한화는 외야를 주로 다른 팀에서 낙오되고 버린 선수들을 재활용하는 식으로 메웠는데, 조원우와 김인철, 강동우, 추승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래도 한국 최고 좌완의 팀이라는 전통은 계속되었다. 사실 과거를 떠올려보면, 그 전통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위기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진, 지승민, 이상열, 김창훈 등 아마 때 한가락 하던 좌완 유망주들이 팀에 입단해 번번이 실패했고, 드래프트 실수로 대전고의 마일영, 서승화, 공주 출신인 청원고의 오재영 등의 좌완 유망주를 놓치곤 했다.
또 구대성은 해외로 가서 돌아올 기약이 없고, 송진우도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슬슬 되어가니 한화는 점점 코너로 몰리고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두 선수가 바로 군산의 차우찬과 인천의 류현진이다. 특히 나는 류현진을 좋아하고 높이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송진우, 구대성의 후계자가 지금 아마야구에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 류현진이 한화에 입단했을 때에도 많은 분들과 함께 송진우, 구대성의 후계자가 들어왔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류현진은 좌완인 송진우, 구대성의 팀에 들어와서 그들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레전드들이 없는 팀에 갔으면 크게 성공하긴 힘들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많았고, 대부분 그렇게들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상식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속팀에 보고 배울 선배가 존재하는 것, 그건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 선수와 팀 간에 궁합이란 게 분명히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선수가 원래 가진 실력과 잠재력이다. 그러니 모든 프로구단이 그렇게 스카우트에 공을 들여 옥석을 가리고 씨알 굵은 선수를 찾으려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사실 선수가 프로 입문 전에 가지고 있던 타고난 재능과 만들어진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프로에 와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한화팬이 아니면 잘 모르겠지만 한화에 좌완 유망주로 류현진만 있었던 게 아니다. 박정진, 지승민, 김창훈 등 난다 긴다 하는 좌완투수들이 많이도 팀에 입단했었다. 하지만 입단 후 신통치 않았고 대부분 본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그런데 그들이 뛸 때는 송진우와 구대성이 증발된 상태였을까? 팀의 선배들 중에 류현진 대박의 촉매제가 된 선수는 따로 있다. 바로 신경현이라는 포수다.
한편 류현진이 동산고 시절 어느 정도 완성된 괴물이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입단하지 못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단 구속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동기생인 한기주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비공식 154㎞, 공식 152㎞의 구속으로 찍어줬는데, 류현진은 그에 비해 초라한 140㎞대 중반에 불과(?)한 구속을 보여줬다. 아마야구에서 좌완투수가 140㎞대 중반의 구속을 보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구속까지는 아니었다.
당시 한기주와 비교해서 구속이 많이 처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 입문 후 류현진이 중심 이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순 구속이라면 몰라도 공의 무게와 볼 끝까지 생각한다면 구위 자체는 근접하다 못해 역전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계약금 문제다. 언론에서는 구속이 빠른 선수만큼 계약금이 높은 선수를 좋아한다. 단순히 계약금을 많이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협상 시 프로구단과 줄다리기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더 좋아한다. 그래야 경마식 보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도장 찍은 계약금 2억 5천만 원. 그 금액이 어떻게 책정된 금액이냐면 한화구단이 먼저 류현진 부모에게 제시한 액수가 2억 5천만 원이다. 류현진이 실력과 잠재력에 준하는 조명을 받지 못한 선수여서 그렇지, 그도 나름 거물이었고, 그래서 구단은 첫 제시액으로 그렇게 제안했다. 협상이란 게 그렇다. 내가 3억 받아야겠다 싶은데 처음부터 3억을 부르는 사람은 없고, 2억밖에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2억 제시하는 경우도 없다. 그런데 구단의 첫 제시금액에 류현진 부모는 “그렇게 합시다” 하면서 바로 도장을 찍고야 만다. 아들과 부모인 자신들과 관련해서 하도 여러 말들이 많고 돈 밝힌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방아가 걱정되어, 그냥 구단의 첫 제시액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한화 구단도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옵션 계약을 했다. 첫해에 1승당 천만 원씩 받기로 한다는 옵션을 계약서에 써넣었다. 그렇게 하여 류현진은 첫해에 18승을 하며, 계약금 2억 5천만 원에 연봉 2천만 원, 그리고 옵션액 1억 8천만 원까지, 총 4억 5천만 원을 벌어들인다.
포맷의 달인, 포맷 류현진 선생: 투수에게 있어서 마인드는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투수는 타자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경기 중에 감정 기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동료들의 실수에도 담담히 넘어가야 한다. 역대 한국 투수 중 마인드 최강자는 아마 구대성일 것이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강타자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강타자들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채, 항상 그래왔듯이 타자들을 내려다보면서 던지곤 했다. 류현진 또한 구대성처럼 배짱이 두둑하고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타자를 우습게 보고 던지는 구대성과 조금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항상 경기 중에 무념무상. 아무런 잡념 하나 없이 공을 던지고는 한다.
류현진을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였다. 사실 이날 동산고는 지역예선전 제물포고와의 경기에서 패해 대통령배대회 본선행이 좌절되었고, 류현진은 그 경기에서 난타를 당하며 약체 제물포고가 일으킨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데 경기 후에 류현진 선수를 보니 웬걸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투수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안 좋은 일일수록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야 하고 거기에 뻔뻔하면 더욱 좋다. 참고로 구대성은 야수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그들을 다독이며 나머지 타자들을 힘으로 압도하는 보스다운 모습을 보이는 반면, 류현진은 동료들의 실수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동요 없는 에이스의 표정에 동료들도 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은 채 경기에 임하곤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경기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사실 특별한 비결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포맷을 잘할 뿐이다. 타자 한 명을 상대하고 바로 머리에서 포맷시킨다. 경기 내내 그는 연신 ‘Shift+delete’를 누르며 경기에 임한다. 경기에서 일어난 안 좋은 일을 잠시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한 타자, 한 타자 상대할 때마다 1회 첫 타자를 상대하듯이 경기를 풀어나간다. 이런 포맷의 달인 류현진 선생이기에 멘탈 최강의 투수일 수밖에 없다.
괴물의 조력자, 포수 신경현: 박경완과 진갑용, 김동수 등 이름만으로도 전설이 된 여러 포수들이 있다. 이 중 박경완과 진갑용은 동일한 스승 조범현을 두어서 그런지 비슷한 경향이 있다. 둘 다 어떻게든 타자를 속이고 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볼넷 불사형으로 가면서 변화구 요구를 많이 한다. 특히 박경완이 그렇다. 같은 변화구인 커브를 서너 개 연속으로 던지게 리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김동수는 투수의 직구가 팔팔하다 싶으면, 홈런을 불사하고 힘으로 승부를 하게끔 요구한다.
그렇다면 신경현 선수는 어떤 쪽에 가까울까? 신경현은 김동수 스타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투수의 강점과 직구를 믿는 스타일이고, 직구가 괜찮다 싶으면 몸 쪽 직구도 과감하게 요구해 힘으로 타자들을 누르는 데 능하다. 류현진이 입단한 후 이런 신경현과 만나게 되었고, 직구 승부와 몸 쪽 승부를 위주로 하는 그들은 잘 조화되었다. 이것이 류현진의 성공에 있어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정말 신경현과 류현진의 궁합은 아주 좋았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하기도 했다. 류현진 선수 본인도 신경현을 고맙게 생각하고, 위기가 찾아와 해법이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신경현을 찾았다. 동산고의 괴물 류현진이 한화에 와서 덕을 본 게 있다면, 송진우나 구대성보다는 역시 신경현이다. 포수 신경현 외에 고인이 되신 고 최동원 코치 얘기도 해야겠다. 류현진 선수의 직구 스피드 성장에 공이 있는 분이기에.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 류현진의 직구 구속 상승 여부와 관련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실제 그러한 시각이 아예 설득력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프로 입문 후 바로 중심이동 능력에 눈을 떠서 직구 구위를 크게 신장시켰다.
중심이동 능력이란 하체를 이용해서 던지는 능력을 말한다. 공에 체중을 제대로 실어 던지는 것인데, 투구 시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주며 중심을 이동해 공에 체중을 실어주는 것이기에 전진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류현진은 최동원 코치에게 이것을 배워 중심이동 능력, 즉 전진력을 극대화해 던지는 투수가 될 수 있었다.
타자 류현진을 말한다: 이제 내셔널리그에서 배트를 손에 쥐고 타석에 들어서게 될 류현진, 그의 고교 시절 방망이로 놀던 가락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동산고 시절 4번 타자였던 그는 좋은 타자였고 괜찮은 방망이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 청룡기 대회 때 절정의 타격감을 뽐냈는데, 대회 타율 0.389, 4경기 18타수 7안타, 출루율 0.389에 장타율 0.556. 이 기록은 알루미늄 배트가 아닌 나무 배트로 만든 성적이다. 말 그대로 강타자다. 그런데 배트스피드 자체가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워낙에 장신인 데다 유연하다 보니 스윙궤적이 이상적으로 나왔고, 특히 공을 때린 후 팔로스루가 좋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왼손으로 던지고 오른손으로 치는 좌투우타였다. 류현진은 본래 오른손잡이고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선수인데, 그래서 우타자가 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좌투좌타였다. 좌투좌타인 류현진이 리틀야구 시절 좌타석에 들어서 치다 보니 애로사항이 있었다. 좌타자 류현진은 공을 당겨 쳐서 우익수 앞으로 타구를 보냈는데, 우익수가 1루에 재빠르게 송구하면 발이 느린 류현진 타자는 그만 1루에서 아웃되곤 했다. 그래서 우익수 앞 안타가 아닌 우익수 앞 땅볼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자꾸 우스꽝스럽게 우익수 앞 땅볼로 1루에서 아웃이 되자, 이 꼬마 야구선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우타석에 들어서자. 그리고 좌익수 앞으로 당겨 치고 유유히 1루로 가야지.’
그렇게 해서 우타자가 되었다. 그 이후에는 안타를 치고 여유롭게 1루로 갔다. 우타자가 된 류현진은 타자로서도 준수한 실력을 보여줬다. 사실 프로 스타선수들을 보면, 아마 시절에 에이스와 4번 타자를 겸하면서 투타원맨쇼를 했던 경우가 많아, 류현진의 강타자 경력은 특이한 스펙이 아니다. 참고로 타격과 피칭, 던지는 것과 치는 것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별개로 보면 안 된다. 타격을 하면 피칭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피칭을 하면 타격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일단 피칭을 하면 타격 시에 장타력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피칭을 하게 되면 힘을 모아주고 중심이동을 하는 요령 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타격 역시 피칭에 도움이 된다.
PART 2 마운드의 괴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다
청룡기의 왕자, 류현진: 이제 본격적으로 2005년도 청룡기 대회 류현진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최우수고교초청야구대회, 아시아청소년대회 등 1년 내내 비교적 기복 없이 훌륭한 피칭을 보여준 류현진의 고3 시절, 그 기간 중에서도 백미가 바로 청룡기 대회였다. 그 대회 류현진의 퍼포먼스는 한국야구 최고의 투수 류현진이 아마 시절부터 대투수였다는 강력한 증거다. 2005년 청룡기 대회 본선에서 대활약을 펼치기 이전에 지역예선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인천고 강타선을 어른이 어린애 손목 비틀듯 제압하고, 다음 날 제물포와의 경기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얼마 전 패배의 빚을 깨끗이 갚았다. 이렇게 류현진의 원맨쇼로 동산고는 청룡기 본선에 올랐고 동대문으로 오게 된다.
동산고는 1회전에서 효천고를 만난다. 이날 선발 박경태가 잘 버티고 포수에서 외야로 변신한 현천웅이 나와 구원 등판해 호투하는 등, 둘이 효과적으로 이어 던지며 7-0으로 동산고가 이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국 에이스 류현진의 소모 없이 1회전을 통과한다. 2회전 부산고와 경기, 이날 류현진은 선발로 등판해 5회까지 1실점(무자책)으로 삼진을 계속 적립하며 경기 흐름을 동산고로 가져온다. 류현진의 호투에 동산고 타선이 4점이나 뽑아내자, 동산고 감독 최영환은 류현진을 1루로 보내고 현천웅으로 투수를 교체하며 류현진을 아끼는 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류현진은 현천웅이 9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마운드에 올라와 구원 등판해 경기를 매듭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