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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생각 아이마음

김광호, 김미연 지음 | 라이온북스
엄마생각 아이마음

김광호, 김미연 지음

라이온북스 / 2013년 4월 / 252쪽 / 14,300원





누구나 힘든 육아, 정말 답은 없을까?



박학다식해지는 부모, 점점 무거워지는 육아

<60분 부모>를 맡은 이후로 나는 짬만 나면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내내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아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에서 한 전문가가 ‘코치형 부모’라는 말을 했다. 아이의 성장에서 선수는 바로 아이 자신이므로 부모는 코치석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부모는 코치 된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도와야지, 직접 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아차 싶었다. 내 모습이 코치가 경기장까지 나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참견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진득하니 지켜보기보다는 “야,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나섰다. 아빠 입장에서는 잘 가르쳐주면 아이가 더 잘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가 직접 해야 할 일을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직접 해준 격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코치형 부모가 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아이와의 놀이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아이와 장기를 둘 때도 아주 기본적인 규칙 몇 가지만 가르쳐주고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이전보다 더 재미없어했다. 사실 나도 참견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던 터라 영 재미가 없었다. 참다못해 “아니, 차(車)를 이쪽에 놔야지. 그쪽은 아니지”라고 한마디하고는 ‘어? 내가 지금 아이의 자율성을 침해한 것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아이와의 놀이는 즐겁기는커녕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당시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단어는 ‘아이의 눈높이’였다. 아이의 눈높이는 아이의 속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나는 그동안 아이의 속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못 했으니 아이한테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까? 그런데 아이에게도 속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 후, 무슨 말이든 편하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뭔가 제한을 두려고 할 때도 아이의 마음이 자꾸 의식되어 제때 제대로 된 말을 못 했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적절한 제한도 가르칠 의무가 있음에도 ‘아이의 속마음’이 걸려서 매번 기회를 놓쳤다.

그 감정들은 조금씩 쌓이다가 바로 후회를 하곤 했지만 결국 어느 순간 큰소리로 나갔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아주니 확실히 아이들이 전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지만 눈치를 보는 일도 늘어났다. 내 머릿속에는 아이의 속마음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었지만 동시에 부모 노릇에 대한 수많은 갈등도 있었다. 아이는 기억도 못 하겠지만 아이의 잘못과 관련해서 참아온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까지 했다. 그것들이 복합 작용을 일으키며 일순간에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지만, 아이가 느낀 것은 단지 아빠의 엄청난 ‘화’였다. 아빠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아이는 알 수가 없다. 아이는 단지 ‘아빠는 잘 놀아줄 때는 엄청 좋지만, 이따금 뜬금없이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는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뭐가 이렇게 알수록 후회되고 힘들까?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꼬일까? 혹 내가 섣부르게 알고 한 행동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현장에서 엄마들을 만나보면 나와 똑같은 느낌을 이야기했다. 야단 한 번만 쳐도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알면 알수록 육아가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큰 문제 행동에는 잘 참고 있다가 정작 별것도 아닌 행동에 화를 내고, 결국 화를 낸 자신에 대한 큰 실망감으로 후회하게 된다고 했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육아 지식’은 분명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힘든 육아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은 아니었다. 아니, 그 많은 지식이 오히려 부모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는 짐이 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뭘까? 아이의 속마음을 더욱 세심하게 돌볼 수 있도록 알아가 보자.



아이는 왜 그럴까? ‘아이의 눈높이’



아이는 없고 부모만 있는 ‘아이 밥상’

아이를 자극하고 또 자극하는 ‘심리적 저항’: 미국 버지니아 주의 아동심리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연구자들은 두 개의 장난감을 준비해 각각 투명한 유리 사이에 두고 아이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하나의 장난감은 쉽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였고, 다른 하나는 높은 유리벽을 돌아가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였다. 아이들의 나이는 만 2세였다. 어떤 장난감을 더 많이 선택했을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장난감이었을까? 어렵게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이었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후자였다고 한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장난감보다 3배나 많은 수의 아이가 어렵게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브렘(Brehm)은 이것을 ‘심리적 저항’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위협당하면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동기가 유발되어 우리는 그 자유를, 또한 그것과 관련된 대상을 이전보다 더욱더 강렬히 원하게 된다고 한다. 만약 어떤 대상이 점차 희귀해져서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면 우리는 그 대상을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소유하려는 심리적 저항을 한다는 것이다.

몸에 좋지 않은 단 것을 숨기는 것, 많은 부모가 궁여지책으로나마 생각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숨기면 숨길수록 아이들은 더 강렬하게 원하고 부모들은 그것을 점점 더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원래 누르면 누를수록 더 튀어나오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건강검진을 위해 금식하라고 하면, 원래 아무것도 안 먹는 시간인데도 배가 더 고프다. 홈쇼핑에서 마지막 세일이라고 하거나 딱 하나 남은 상품이라고 하면 더 사고 싶다. 일찍 자야 하는 날이면 잠이 더 안 온다. 장염으로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해야 하면 칼칼한 음식이 더 먹고 싶다. 그렇지 않은가?

심리학자들은 저항이 곧 본능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에 대한 제한을 받으면 저항한다는 것이다. 흔히 좌뇌는 이성적이고 우뇌는 감성적이라고 한다.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좌뇌에서 분석하고 최종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그 평가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우뇌라고 한다.

결국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기분이 나쁘면 최종 평가와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 말이 다 옳다는 건 인정하지만 엄마가 기분 나쁘게 하면(숨기는 행동으로 나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먹는다고 자꾸 핀잔을 주면) 엄마 말과는 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심리적 저항은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청개구리 효과’라고도 부른다.

만 2세부터 아이는 마음대로 걷고 뛰고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자기 자유 의지가 강해진다. 그런데 부모는 그런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안 돼”라는 말을 달고 산다. 많은 부모가 “우리 애는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살아요”라고 말하지만 유아교육학자들은 그것은 엄마가 ‘안 돼’라는 말을 달고 살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심리적 저항’에 입각해 육아 전반을 훑어보면 아이가 왜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지가 조금은 이해된다. 편식하는 아이에겐 먹으라는 말이 지긋지긋했을 것이고, 비만인 아이에겐 그만 먹으라는 말이 오히려 계속 더 먹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TV를 많이 보거나 게임에 빠진 아이, 잘 씻지 않은 아이,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는 아이에게 부모가 했을 말을 생각해보자. 브렘은 전에는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행동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되었을 때, 그 행동이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일 때, 제한하는 정도가 강하고 기간이 길수록 더 심하게 반발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의 건강이 모든 것의 최우선이라는 생각

수면 습관, 모유 수유, 아이 키·몸무게, 아토피만 보였어요: 사냥개 20마리가 정신없이 뛰고 있다. 무언가를 쫓는 듯 컹컹 짖으며 맹렬히 달린다. 그러다 리더인 듯 보이는 사냥개와 그 주변의 몇 마리가 돌연 멈춘다. 하지만 나머지 사냥개들은 처음과 다름없이 맹렬히 달려 멈춰선 사냥개들을 지나간다. 그들은 왜 그렇게 달리는 것일까? 리더인 사냥개는 토끼를 쫓고 있었다. 쫓던 토끼가 사라지자 달려야 할 이유가 없기에 멈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달린 사냥개의 꼬리만을 보고 달리던 다른 사냥개들은 왜 달려야 하는지 처음부터 이유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멈춰야 하는 시점도 몰랐다. 그들은 마치 시합 중인 경주마와 같이 계속해서 맹렬히 달렸다.

우리의 삶은 앞선 리더의 꼬리만 보고 달리는 사냥개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그리하는지 모를 때가 너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의 행복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일은 때때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즐거움과 휴식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여행 자체가 목적이 되면 피곤하고 힘만 든다. 육아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너무 많다. 부모들은 소위 ‘꽂혔다’ 하면 종종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는다. 특히 건강과 관련된 것에 더 심하다. 어떤 엄마는 수면 습관이 중요하다며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따로 재웠다.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따로 재우는 것이 좋다는 항간에 떠도는 말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게 울어도 이를 꽉 물고 아이의 수면 습관만을 생각했다. 이로 인해 아이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까다로운 아이가 되었다. 아이의 다른 발달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수면 습관만 생각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모유 수유 간격 때문에 매일 고민하는 엄마도 있었다. 4시간 간격으로 주어야 한다며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젖을 물리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울음이 배고픔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는 갈등했지만 지금 완수해야 할 과제는 ‘모유 수유’라는 생각에 귀를 막았다.

아이의 편식이 고민인 엄마들은 아이가 무엇을 하든 얼마나 골고루 많이 먹었는가만 봤다. 다른 아이를 보더라도 그 아이가 ‘먹는 것’만 보았다. 아이의 비만이 고민이면 아이가 어디에 있건 ‘아이의 살’만 보았다. 다른 아이를 보더라도 우리 아이보다 뚱뚱한지 날씬한지만 봤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의 병’만 보았다.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아이의 기분, 말, 태도, 행동, 입맛, 관심사, 건강 상태, 버릇, 아이가 처한 상황 등 적게는 10가지에서 많게는 100가지도 넘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유심히 보아도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말까이다. 그런데 그 많은 것 중 부모 눈에 유난히 띄는 딱 ‘한 가지’만 보는 것이다.

아이 건강에 대한 것일수록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자. 그러려면 부모인 ‘나’를 먼저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의 건강은 아이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해도 전체는 아니다. 지금 내가 가장 조급하게 생각한 그것은 육아의 한 ‘상황’일 뿐이다. 다양한 아이의 발달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중요한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육아에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목적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잘하다가도 삐걱거리는 육아, ‘아이 눈높이’를 잊을 때

아이의 성장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아이의 눈높이: 1991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는 ‘헬리콥터 부모’라는 신조어를 기사화했다. 헬리콥터 부모란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처럼 어느 상황에서나 아이의 인생에 간섭하는 과잉보호형 부모를 뜻한다.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을 육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미국조차 부모들의 과잉보호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이 나오기 몇십 년 전부터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유행한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헬리콥터 부모’라는 신조어가 생기자마자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며 칼럼이나 기사 등에 수없이 등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헬리콥터 부모는 유치원부터 회사, 군대까지 아이의 일을 대신하려고 한다. 대학생이 된 자녀의 리포트를 대신 써주고, 수강신청을 해주고, 성적이 잘 못 나오면 교수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 취직한 자녀의 연봉 협상을 대신하고 야근이 많다고 상사에게 항의하기도 한다.

이런 ‘과잉보호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과잉보호에 반비례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경영하는 능력과 자립심을 상실한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작은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그에 관한 책임을 진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인생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즉, 생활 속에서 스스로 해내는 힘을 배우고 익히면서 성공을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다 해주면 아이들은 인생을 경영할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더욱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까지 쌓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마더쇼크>에서 부모교육 강의를 듣는 할머니를 만났었다. 이 할머니는 요즘 부모는 자애롭고 친절해야 한다는데 자신의 딸이 손자손녀들에게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로서 부족한 딸의 일정 부분을 자신이 배워서 채우려고 부모교육까지 듣고 계셨다. 할머니는 새로 배운 지식으로 딸의 육아에 계속 간섭했다. “요즘 애들은 그렇게 키우면 안 돼. 그러면 애 기만 죽는다.” “할머니가 해줄게. 너는 이렇게 하는 걸 더 좋아하지?” “엄마만 믿어. 엄마가 잘 키워줄게.”

친정엄마는 딸이 출근하기 전 딸의 집으로 갔다. 딸이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딸과 손자 손녀들과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딸은 엄마의 역할을 경험할 시간이 없었고, 엄마의 권위를 가질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서른 살을 넘긴 딸을 아직도 품고 계셨다. 딸은 자신이 부모임에도 엄마 앞에서 독립된 한 성인으로 우뚝 설 수가 없었다. 엄마 품에 갇혀서 클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헬리콥터 부모의 마지막 모습이다.

헬리콥터 부모는 항상 높은 곳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본인이 챙기기 때문에 ‘아이의 눈높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아이를 유아기로 대한다. 엄마가 계속 유아기로 대해도 아이는 사춘기까지의 수준으로는 자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몸은 자라도 마음은 자라지 못한다. 20세가 되어도 30세가 되어도 사춘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많은 심리학자는 이런 성인의 상태를 ‘어른 아이’라고 말한다. 어른의 모습이지만, 아이인 채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제대로 성장시키려면 아이의 성장에 맞춰 아이를 대하는 눈높이가 바뀌어야 한다. 첫돌 때까지는 엄마가 다 챙겨야 하지만, 두 돌만 되어도 혼자 하도록 지켜봐야 하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간단히 아이의 나이에 따른 엄마의 역할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단계는 ‘보호자’의 역할이다. 태어나서 1년까지의 역할로 엄마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보충과 수면, 위생 관리, 외부의 위협 요소를 막아줄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때 엄마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2단계는 ‘양육자’의 역할이다. 아이의 나이 만 1~3세에 해당하는 시기로 애착을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한 보호는 물론이고 연령에 맞춰 신체, 정서, 두뇌 등이 골고루 발달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3단계는 ‘훈육자’의 역할이다. 아이의 나이 만 4~7세에 해당하는 시기로 첫 단체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웬만한 신변처리 능력을 갖추게 하고, 사회규범이 정한 공공도덕, 규칙, 질서 등을 잘 익히게 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알려주고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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