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고전: 서양문학편
반덕진 지음 | 가람기획
세상의 모든 고전: 서양문학편
반덕진 지음
가람기획 / 2013년 2월 / 480쪽 / 19,000원
걸리버 여행기 - 모험담 속의 날카로운 혀
『걸리버 여행기』는 스위프트가 “세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고 쓴 책”이다. 풍자문학의 대가인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런던으로 나와 모친 쪽의 먼 친척인 당시 정계의 거물이었던 윌리엄 템플 경의 집에서 비서로 일했다. 그 집에서 여러 고전과 역사를 배웠으며 여러 정치가와 접촉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지적 성숙은 여기서 이루어졌다.
대표작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차례로 여러 나라에 표착하여 이상한 경험을 한다는 줄거리이며 매우 기발한 착상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널리 애독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에 대한 스위프트의 혐오를 바탕에 두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가 집필되던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의회파가 왕당파를 누르고 권리장전 선포와 의회정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사실상의 군주제가 폐지되기 시작하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와 같은 격변의 시대였다. 이 작품의 원본은 상당 부분이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어 적지 않은 삭제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스위프트가 친구인 찰스 포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처음부터 작품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고치고 다시 고쳐 쓰고 정서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상이 이 작품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쇄업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할 용기를 갖게 되면 출판해볼 생각입니다.”
줄거리
걸리버의 모험을 통해서 본 세태의 비판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726년에 출판되었는데 출간 즉시 성공을 거두었고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했다. 배의 의사인 걸리버의 난파표류기로 된 4부작 소설이다.
제1부 소인국: 케임브리지 대학 의학도인 걸리버는 항상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3년 반 동안이나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바다여행 후 그는 런던에서 병원을 차리고 결혼도 했다. 이후 가정에 충실하다가 바다여행을 떠났는데, 풍랑으로 배가 산산조각이 났고 걸리버는 어느 섬에 닿아 쓰러져 잠들고 만다. 이 섬은 소인국으로, 두 개의 당파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 당파와 낮은 굽을 신는 당파가 싸우는 이유는 달걀을 깨는 방법 때문이었다.
제2부 거인국: 고향에 돌아온 걸리버는 가족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음료수가 떨어져 어느 섬에 머물게 되는데, 걸리버를 두고 배가 출항해버린다. 여기는 거인국이었다. 거인들의 폭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걸리버의 모험이야말로 소년소녀가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한 동화 속의 소재들이다.
제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세 번째 항해에서 걸리버는 해적들에게 잡혀 섬으로 끌려간다. 이 섬나라 주민들은 1~2부와는 달리 몸집은 거의 정상인에 가깝지만 행동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지나치게 사색에 몰두해 옆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거의 무반응이다. 그래서 절벽이 나타나면 떨어지고 기둥이 나타나면 머리가 부딪힌다. 그래서 대화를 하기 위해 시종을 거느리고 다니는데, 그들이 머리를 때려주는 도구로 대화하는 상대방의 머리를 때려야만 비로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이다. 그들은 또 매우 사색적이어서 수학과 물리 방면에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 빵조차도 원뿔이나 원기둥 등 수학적인 도형 모양으로 자른다.
제4부 말들의 나라: 선장이 된 걸리버는 네 번째로 출항하는데, 이번에는 선원들의 반란으로 인해 미지의 땅에 버려진다. 이 나라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추한 짐승인 ‘야후’와 말[馬]과 비슷한 형상인 ‘휴이넘’이 살고 있다. 걸리버는 말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나 자기 신세와 영국과 유럽의 실정을 이야기하고 이곳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된다. 말나라는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성이 존중되고 거짓이 없고 악이란 단어조차 없다. 걸리버는 여기가 바로 유토피아라고 감탄하며 깊은 애착을 가진다. 그러나 더러운 야후들에게는 심한 혐오를 느낀다.
풍자문학의 백미
사실 이 책에서 제4부가 당대 유럽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국가 간에는 전쟁이, 개인 간에는 거짓말과 도둑질이,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에는 착취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사실은 잘못된 사회통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걸리버는 깨닫게 된다. 당대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제4부의 내용은 이 책을 오랫동안 금서의 목록에 오르도록 만들었다.
제1편 소인국에서는 영국의 앤 여왕 치하의 실정에 대한 시사적인 풍자가 넘쳐흐르고, 제2편 거인국에서는 그의 조국인 아일랜드 국민의 행동과 이상국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어 스위프트의 냉철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제3편에서는 토론에는 열심이지만 실지로 응용에 머리를 쓰지 않는 학자들을 비웃으며 왕립 아카데미를 풍자하고 있다. 제4편에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당시 영국의 정치, 사회, 종교 등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를 통해 결코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인간 사회를 그려냈던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에 얽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신중하고 심오하고 암울한’ 풍자인 이 작품의 재치가 지워진 채 아동용 도서가 되는 과정에서 생긴 아이러니다. 19세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걸리버 여행기』에서 잔인한 재치 부분을 마구잡이로 삭제해버림으로써 아동용 소설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비평가들이었다. 스위프트의 재치는 어느 부분이든 삭제를 하면 전체적인 효과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다행히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완역본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소인국과 거인국만 알려져 있던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폭풍의 언덕 - 나쁜 남자, 나쁜 여자, 그리고 광란의 사랑
『제인 에어』의 작가를 언니로 두었고 평생 단 한 편의 작품을 남긴 여성작가 에밀리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 자매로도 유명한 ‘브론테 자매’란 다섯 자매 가운데 셋째인 샬롯 브론테, 넷째인 에밀리 브론테, 다섯째인 앤 브론테를 말한다. 에밀리 브론테는 1818년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의 유능한 성직자였으나 넉넉지 못한 수입으로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는 힘들었다. 1824년 6살 에밀리는 세 언니를 따라 코원브리지의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가난한 목사 딸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학비는 매우 싼 편이었으나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시설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학생들이 속출했다. 브론테 자매들도 건강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해 초여름에 첫째, 둘째 언니가 병사하고 말았다. 세상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도 이에 놀라 에밀리와 샬롯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 기숙학교는 후에 샬롯 브론테가 정열적인 고아를 주인공으로 쓴 『제인 에어』에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1847년에 에밀리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 샬롯의 『교수』, 앤의 『애그니스 그레이』가 완성되었다. 그들은 이 소설들을 런던의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출판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샬롯의 두 번째 소설 『제인 에어』가 런던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미스의 눈에 들어 출판되어 커다란 반응을 얻었고, 이에 자극받은 뉴비 사는 『폭풍의 언덕』과 『애그니스 그레이』를 출판했다. 그러나 『폭풍의 언덕』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였다. 그러나 에밀리는 결핵으로 숨진 오빠 브랜휄을 잃은 충격과 장례식 때 걸린 감기 때문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1848년 12월에 거실 소파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겨우 서른, 자신의 유일한 작품이 유명해질 것도 모른 채였다.
줄거리
염세주의자인 록우드 씨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세 들어 살게 되는데, 가정부 넬리에게 그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워온 아이 히스클리프는 언쇼 씨의 정을 듬뿍 받으며 자라난다. 그래서 언쇼 씨의 친아들인 힌들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으나 딸인 캐서린과는 친하게 지낸다. 얼마 후에 언쇼 씨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평소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던 힌들리는 그를 머슴으로 전락시킨다. 한편 캐서린은 이웃인 에드거 린튼과 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와 친해지는데 히스클리프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결국 캐서린과 에드거 린튼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히스클리프는 가출을 하고 만다.
3년 뒤, 재력가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냉혹한 복수를 시작한다. 힌들리는 부인이 죽은 후 폐인이 되어 빚을 잔뜩 지게 되는데, 히스클리프는 이를 이용하여 결국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에드거 린튼의 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캐서린에게 접근하여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임신 7개월 만에 딸 캐시를 낳고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복수를 계속한다. 힌들리가 죽자 히스클리프는 그의 아들 헤어튼에게 그가 받은 고통을 복수한다.
히스클리프의 곁을 떠난 이사벨라가 런던에서 아들 린튼을 낳고 12년 뒤에 죽자, 그는 아이를 워더링 하이츠로 데리고 와 린턴가의 재산을 목적으로 캐시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병약한 린튼은 죽고,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모두 차지한다. 에드거도 어느새 조용히 죽어간다. 복수에 성공한 히스클리프는 밤마다 밖으로 나가 캐서린의 무덤에 갔다 오곤 하며 곁에 누군가가 있는 듯 행동했다. 결국 그는 캐서린의 망령과의 완전한 합일을 꿈꾸며 일부러 나흘을 굶은 후 편안하게 죽는다.
바이런처럼 사랑하고 호프만처럼 복수하다
히스클리프는 집시와 같은 풍모를 한 매력적인 사나이다. 그러나 번갯불 같은 격렬한 성격과 예의도 교양도 없는 잔인성이 숨어 있다. 말하자면 무한한 동적 에너지의 화신이고 그런 의미에서 초인이다. 따라서 그의 애증 또한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해 있다. 사랑은 죽은 애인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포옹하리만큼 강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체감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격렬하다. 그리고 증오는 두 가족을 몽땅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만큼 강렬하다.
히스클리프와 운명적인 사슬로 맺어져 있는 캐서린 또한 인간적인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이다. 히스클리프 못지 않게 강렬한 성격과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는 그녀가 달빛에 지나지 않는 에드거를 선택한 과오는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그럼으로 인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영원성을 가진다. 영국의 대문호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했던 『폭풍의 언덕』이 발표 직후에는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너무 깊이 있는 작품은 종종 동시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폭풍의 언덕』의 진정한 가치는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걸쳐 차츰 인정되기 시작하여 ‘진정한 천재’,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 가운데 발표 당시 평이 나빴다가 현재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폭풍의 언덕』외에는 없다.
『폭풍의 언덕』은 사상적으로는 바이런적 격정이 담긴 낭만주의를, 구성 면에서는 호프만의 괴기소설이나 공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처음으로 개화된 일면을 갖는 이 작품은 강렬한 이성에 의해 계산된 사실주의에 뒷받침되어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인 샬롯의 작품과 더불어 여성의 입장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 대한 반역, 강렬한 자아정신의 존중을 나타낸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궁벽한 시골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짧은 삶을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스럽게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것이 그 예이다. 사랑이 바로 증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 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구토 - 존재의 부조리에 직면할 때
노벨상 수상 거부,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마르크스주의와의 동반 및 결별, 행동하는 지식인, 1980년 사망 시 전 세계의 추모 등으로 친숙한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외쳐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20세기 최후의 지식인이다. 그는 3살 때 오른쪽 눈을 거의 실명하였다.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교사자격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전후 세계 여성의 지성의 상징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차석으로 합격하여 이들의 운명적 만남이 여기서 시작된다. 세간에 화제를 뿌린 이들의 계약결혼은 애초 2년이었으나 2년 후 재계약 시에 사르트르가 장기계약을 요청해 결국 이들의 동반자적 관계는 사르트르가 별세할 때까지 50년간 지속된다. 이들은 일생을 통해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 문학적, 정서적 반려자였다.
28살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간 사르트르는 1938년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장편소설 『구토』를 발표했는데, 철학이 뒷받침된 대담한 주제로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철학서 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사르트르는 중학교 교사에서 일약 가장 혁명적인 철학자로 발돋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집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메를로 퐁티 등과 레지스탕스 조직을 만들어 독일의 나치즘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후 1956년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 비판과 헝가리 의거, 알제리 독립전쟁 등이 일어날 때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는데 그때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4년에는 자전적 소설 『말』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노벨상이 서구 작가들에 치우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말년에는 왼쪽 눈의 시력까지 약해져 독서는 물론 집필도 할 수 없었지만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웃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으며 자기의 신념에 따라 싸울 때는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1980년 4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그의 죽음은 한 철학자의 죽음도, 한 소설가의 죽음도, 한 극작가의 죽음도 아닌, 한 시대를 마감한 최후의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줄거리
30대의 역사학자 앙투안 로캉탱은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부빌이라는 도시의 도서관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들의 전기를 정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가에서 수제비뜨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흉내를 내려고 돌을 집는 순간, 갑자기 구역질 같은 것을 느끼고 손을 떼고 만다. 이 ‘손 안의 구역질’은 그 뒤에도 그를 자주 엄습한다. 그때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일상은 무미건조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가 살아온 것은 경험이 아니라 말의 잔해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은 과거의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고작 한 사람의 전기도 쓸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이때 옛날에 헤어졌던 여인으로부터 파리에서 만나자는 편지가 온다. 그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구토감은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의 나무뿌리를 보며 명상에 잠기다가 마침내 구토의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 그가 마로니에라는 나무뿌리를 생각했을 때 마로니에 나무뿌리는 그 마로니에 나무뿌리라는 말의 형체를 벗고, 모든 부위를 통해 그의 몸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구토란 인간이나 사물의 언어에 의해 성립되는 의미나 본질을 박탈당하고, 괴물처럼 흐물흐물한 무질서의 덩어리거나 무섭고 음탕한 벌거숭이 덩어리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체계였고 세계를 체험한 본질의 것이었다. 그가 생각해 낸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존재의 이유와 존재의 의지조차 없이 그저 우연히 거기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