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
오풍연 지음 | 북오션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
오풍연 지음
북오션 / 2013년 3월 / 224쪽 / 12,000원
1장_ 미워하지 않고 사는 법
소녀 같은 원로
사람에게도 냄새가 난다.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근처에 가기 싫은 사람이 있다. 물론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다. 꽃이 정말 예뻐도 악취가 난다면 어떨까. 가까이 갔다가도 몸을 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겉보기에는 점잖고 예의가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기피대상이 될 터.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야 향기가 나는 법이다.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인사를 만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다 여대 총장을 15년이나 지낸 분이다. 먼발치에선 몇 번 뵌 적이 있지만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분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접견실로 안내받아 먼저 들어갔다. 잠시 후 밝게 웃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처음 뵙는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분도 ‘그렇다’고 했다.정확히 오후 4시 57분에 들어갔다가 5시 53분에 나왔다.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셈이다.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른다. 비서실장이 다음 일정이 있다고 알려준 다음에야 자리를 떴다. 그분에게서는 마치 소녀와 같은 냄새가 났다. 전혀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듯했다. 문밖까지 배웅도 해주었다. 이처럼 향기 나는 분이 있기에 살맛 난다.
아름다운 노총각
서울 태평로 회사 근처에 유명한 이태리 식당이 있다. 장안에서 맛으로 소문난 집이다. 2대째 이어져오고 있다. 70년대 중반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40년 가까이 된 셈이다. 정·재계 인사 가운데 단골이 많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예전에 비해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전통의 맛과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나도 25년째 드나들고 있다. 직원들은 언제 봐도 친절하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갔는데 팔순을 넘긴 사장님이 안 보였다. 편찮으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고생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홀에서 직접 일하는 아들이 얼마 후 방에 들어왔다. 그는 마흔 살을 넘겼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아버님은 그 아들을 늘 걱정했다. 사우나에서 가끔 뵈면 “○○이 짝 좀 찾아줘”라고 부탁하곤 했다. 짝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그 친구는 분가해 살고 있었다. 아버님과 어머님 얘기를 할 때 눈가가 붉어지기도 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몇 달 됩니다. 두 분을 보살펴 드리려고요.”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잘했습니다.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해야 합니다. 돌아가시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 착한 청년은 분명 좋은 짝을 찾을 게다.
한 인간의 죽음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당당할 수 없다. 죽음에 초연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 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빨리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사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몸에 조금 이상 있다 싶으면 먼저 병원으로 달려간다. 노안인데도 보이지 않는다고 난리다. 그것이 인간의 심리다.사람은 죽은 다음에 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위대한 인물은 생존에도 그 업적을 기린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상가도 사후에 더 조명을 받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이 슬퍼했다. 그가 남긴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 어떤 발명가보다도 큰일을 했다.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 없을 정도다.무엇보다 잡스는 죽음 앞에 의연했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은 정말로 잃을 게 없다.” 맞는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못할 바가 없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잡스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류 문명을 이끌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그가 남긴 명언이다. 그는 신화를 남기고 하나의 발명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명복을 빈다.
SNS 유감
점점 정이 메말라 간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첨단을 걷고 있지만, 대면소통은 줄어들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한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다. 한국은 친구, 가족 등과의 직접적인 대면접촉을 뜻하는 ‘사회연결망’ 부문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걱정스럽다. 휴대전화의 전화나 메시지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접 통화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업무상 전화를 건다. 그런데 직접 통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회의 중이니 나중에 (전화)연락드리겠습니다.” “회의 중이니 문자 주세요.” 이 같은 메시지를 여러 통 받게 된다. 문자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화하는 것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긴 하다.그래도 사람은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스킨십을 해야 더 가까워진다. 너무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말자. 원시적인 만남이 좋을 때도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소통도 가능하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적인 매력은 없다. 그저 인간의 한 단면만 보여줄 뿐이다. 자주 만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지 못하면 전화라도 걸어 목소리를 듣자.
민애소다(民愛笑多)
노 교수는 50대 초반의 제자를 한없이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청출어람이라고 할까. 그 제자는 전도양양한 공무원. 학창시절 지도교수로 모셨다고 했다. 스승과 제자는 어느 심사위원회에서 만났다. 교수님은 심사위원장, 공무원은 심사위원으로 각각 참여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는 끈끈했다. 심사가 끝나고 이어진 만찬에서도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은 첫인상부터 푸근했다. 2010년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요즘도 제자들과 자주 어울린다고 했다. 즐겨 찾는 곳은 대폿집. 족발에 순댓국이면 최고라고 했다. 서울대 근처 신림동의 족발집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제자 200여 쌍의 주례도 섰다. 앞으로도 주례 봉사는 계속할 참이라고 했다.제자가 교수님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교수님 방에 들어가면 ‘民愛笑多(백성을 사랑하면 웃음이 많아진다)’ 액자가 눈에 들어왔단다. 그 액자는 교수님이 직접 쓴 친필 휘호. 교수님은 젊은 시절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미네소타’를 ‘민애소다’로 표기한 것. 미네소타 대학의 학장이 한국에 오면 친필 휘호를 건네기도 했다는 것. 교수님의 전공은 농촌지도학. 백성을, 농민을 사랑하는 교수님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관리합니까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끝까지 가려고 힘쓴다. 그래서 오래 만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만 1700개가 넘는다. 나에게 모두 소중한 분들이다. 물론 자주 연락하고, 통화하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도 모처럼 연락이 닿으면 반갑기 그지없다. 살면서 서로 연락하고 소통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 마음만 갖고 있을 뿐이다.책을 몇 권 내고,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쌓은 분들이 있다. 직접 전화를 주시거나 메일,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이다. 모든 분들에게 답장을 드리고 있다. ‘귀찮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기 때문이다.최근 부천의 초등학교 여교사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쪽지에 답장을 드렸더니 연락을 해온 것. 직접 전화를 드렸다. 아주 쾌활한 분이었다. “일일이 답장을 해주시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관리합니까?” 그분이 물었다. “실제론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감사함을 전할 뿐이지요.” 독자와 소통할 땐 언제나 즐겁다.
2장_ 가족 자격 시험
구순 아버지의 딸 사랑
아버지는 예순이 내일모레인 딸을 애정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나이의 간극이 없다. 딸도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버지는 딸이 어리광을 부려도 받아줄 눈치였다.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을 봤다. 그 딸은 현재 항암치료 중이다.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 웃는 모습이 마치 소녀와 같다.나에게 세 번째 에세이집 『여자의 속마음』을 안겨준 독자와 만났다. 인천의 한 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리를 함께했다. 그분의 부모님도 뵈었다. 일전에 한 번 뵙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아버님은 올해 91세.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시다. 젊어 보이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으로 보이셨다. 20년 세월을 거꾸로 사시는 것 같았다. 그 비결을 물어봤다. “좋은 생각을 하고, 긍정적으로 살지요. 또 마음을 비워야 해요.” 지극히 단순한 논리를 폈다.어머니는 82세. 어머니 역시 정정해 보이셨다. 여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헌신적으로 살아오신 것 같았다. 지금도 운전을 하신다고 했다. 딸은 구순의 아버지와 팔순의 어머니를 의지 삼아 암을 물리치고 있었다. 이처럼 기적도 일어난다.
아주 특별한 결혼식
“딸내미에게 오 선생님 댁 주소를 알려줬더니 청첩장을 보내드렸다고 해요. 참석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만 혹시 오실 수 없으셔도 알려 드리는 게 예의니까요. 참 영락교회는 화환을 놓지 못하게 하여 화환은 못 들어간다고 합니다. 참고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을 주시는 오 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보름 전쯤 의미 있는 메일을 받았다. 결혼식에 아주 정중히 나를 초대했다. 암 투병 중인 지인이 둘째 딸을 여의기로 한 것. 딸내미가 시집간다는 것은 두 달 전쯤 알고 있었다. 그때 얘기를 듣고 미리 날짜를 표시해 뒀었다. 꼭 참석해야 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 보통 결혼식이 아니기 때문이다.엄마는 남편과 사별한 뒤 두 딸과 함께 살았다. 두 딸 모두 효녀였다. 결혼 적령기에 든 딸들은 고민에 빠졌다.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과 결혼. 마침내 둘째 딸이 먼저 시집을 가기로 한 것. 엄마와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의 마음씨가 정말 곱다. “큰 애도 성격이 참 좋아요. 어디 좋은 배필 있는지 찾아보세요.” 엄마의 큰딸 걱정이다. 그렇다. 우리네 부모는 항상 자식 걱정을 먼저 한다. 신부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엄마도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한없는 모녀간의 사랑이 느껴졌다.
스킨십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아마도 부모님 품일 게다. 아무리 좁은 엄마 아빠의 가슴도 바다보다 넓고 따뜻하다. 우리네 모두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컸다. 부모님을 평생 잊지 않고 받들어 모셔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바로 효의 기본이랄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스킨십을 가장 많이 한다. 태어날 때는 부모가, 죽을 때는 자식이 몸을 받는다.가족 간의 스킨십이 많을수록 좋다. 당연히 대화도 많아지고 화목해진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목욕도 그중의 하나다. 자식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지켜본다.스물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 군에도 갔다 왔다. 녀석을 지금도 매일 끌어안아 준다. 한없이 사랑스럽다. 녀석도 아빠 품이 좋다고 자주 안긴다. 파파보이 아니냐고 놀려댈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비록 성인이 됐지만 자식은 자식이다. 부모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받은 자식은 바르게 큰다. 녀석 역시 몸가짐은 별로 흠잡을 데가 없다. 스킨십에서 왔다고 본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몸가짐에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못된 자식, 착한 부모
세상엔 착한 자식보다 착한 부모가 많은가 보다. 아내에게 들은 얘기가 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60대 노부부의 얘기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 엄마는 빌딩 청소부로 가계를 도왔다. 맞벌이를 했던 것이다. 슬하에 자녀는 2남 1녀. 모두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셋 다 결혼도 했다. 이제는 두 부부만 산다. 남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이들 부부의 얘기를 듣노라면 분노마저 생긴다. 세 명의 자식 모두 집과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결혼한 뒤 한두 번 찾아오다가 아예 들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추석 날. 부부는 조상 차례를 지낸 뒤 안양천변 정자를 찾았다. 점심 때 송편과 전을 싸 가지고 와서 먹었다. 몇 해 전부터 그렇게 한단다. 부부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아내의 지인을 불러 나눠먹었다.지인은 ‘자식들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단다. “애들이 잘살면 됐지요. 바빠서 못 오겠지요. 우리는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부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식들 원망을 할 만한데도 감싼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 지인은 부모가 없다. 효도를 하려고 해도 안 계시면 못 한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어야 한다. 못된 자식들이 밉다.
널 닮은 딸을 낳으면 안 돼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한다. 자기 자식 못됐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남은 어떨지 몰라도 자기 눈에는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들딸 자랑할 때는 남의 눈치도 잘 보지 않는다. 열을 올려 얘기한다. 어른끼리 모이면 주요 관심사가 비슷하다. 최근 한 모임에서도 자식들 이모저모가 화제에 올랐다. 한 엄마가 머쓱했던지 ‘돈을 내고 얘기해야 한다’며 아들딸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 엄마는 자랑이 아니라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는데 살갑지 않다는 것. 아들 녀석은 그렇다 치고, 딸이 너무 무뚝뚝하다고 했다. 다른 딸들은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데 그 딸은 별로 말이 없다는 것. 엄마가 아파도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 한 통 없다고 서운해했다. 한번은 딸에게 이처럼 말했단다. “널 닮은 딸을 낳으면 안 돼.” 그 말을 듣고 딸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란다. 성격이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면서…….이처럼 부모도 자식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 특히 집에 있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건다. 그것의 10분의 1이라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집 아들 녀석이 딸 몫까지 한다. 애교 만점인 녀석이 사랑스럽다.
3장_ 내 인생은 내가 가꾸는 밭
영원히 잘나갈 순 없다
인생에는 부침이 있다. 순탄한 사람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많지 않을 터.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게 된다. 흔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살 만한지도 모른다. 영원은 희망사항이다. 평생 부자, 평생 거지는 없다. 부자가 하루아침에 망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이 갑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사연은 있기 마련이다.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잘나간다’는 말을 많이 쓴다. 성공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돈이 많다든지, 지위가 높을 때를 빗대서 말한다. 그러나 잘나가는 것도 순간이다. 정작 당사자는 모른다. 영원히 잘나갈 줄 알고 착각한다. 돈을 펑펑 쓰고, 호기를 부린다. 그러는 사이 기초가 흔들린다. 모래성이 무너지듯 차츰 가라앉는다.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다. 그것이 이치인데도 뒤늦게 깨닫는다.정말 잘나갔던 지인이 있다. 부와 명예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가 고생하리라고는 꿈엔들 생각지 못했다. 제3자의 생각도 그런데 본인은 오죽했겠는가. 크게 바뀐 그의 모습을 봤다. 점심 식사 후 인스턴트커피를 권했다. “요즘은 기름 값은 물론 커피 값도 아낍니다.” 진작부터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영원히 잘나갈 순 없는 법. 잘나갈 때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새벽을 즐기는 법
불면증 환자에게 밤은 지옥이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고 해도 눈이 맑아진다. 엎치락뒤치락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다.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라고 했거늘……. 잠을 잘 자는 것도 큰 복이다. 단지 그 고마움을 모를 뿐이다. 인생 3분의 1은 잠으로 보낸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나의 요즘 기상 시간은 2시 30분 전후다. 이전보다 1시간 정도 빨라졌다. 그전에는 3시 30분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의 1시간은 길다. 모두 잠든 시각. 창문 밖으로 저 멀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이제 고요함은 내 친구가 됐다. 전혀 낯설지도 않다.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식구들에겐 미안하다. 혼자 거실로 나와 달그락거리니 잠을 설치게 한다. 아무리 살짝 움직인다고 해도 소음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