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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희망의 귀환

차동엽 지음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 316쪽 / 14,800원





part 1 포옹하라



네게 희망이 오고 있다

꿈을 접은 그대, 그만 일어나라: [이제는 기지개를 켤 때] 지난해 말쯤 인편을 통하여 『여섯 번째 행복편지』가 내게 전달되었다. 스폰 형식으로 친지들에게만 전달되는 자비출간 책자다. 일정이 빼곡한 연말이라 짬을 내기가 어려워 나중에 읽을 요량으로 일단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는데 올 연초 문득 눈에 들어왔다. 불량한 자세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가 화들짝 자세를 고쳐 잡고 읽은 대목! 영문 대조 번역 경구였다. 내 마음을 잡아챈 것은 대문자로 쓰인 영어 동사들이었다.

‘바라만 보지 마세요, 관찰하세요. (Don’t just look, OBSERVE.) / 삼키지만 마세요, 맛보세요. (Don’t just swallow, TASTE.) / 잠들지만 마세요, 꿈꾸세요. (Don’t just sleep, DREAM.) / 생각만 하지 마세요, 느껴 보세요. (Don’t just think, FEEL.) / 존재하지만 마세요, 살아가세요. (Don’t just exist, LIVE.)’

하나씩 음미해 보면 ‘생판 낯선 세상’을 열어 주는 키워드들이다. 우선 나를 위한 유쾌한 꼬집음이었다. 나는 지금 이 비밀스런 각성의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제 슬슬 다시 기지개를 켤 때가 되었다. 각자 자신의 때가 있다만, ‘우리들’의 때는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아니 진즉 코앞에 와 있다. 이거 무슨 억지냐고? 천만에! 강요가 아니다. 바야흐로 기상의 몸 풀기는 오히려 자연의 이치다. 왜냐? 혹독한 겨울 속 우리들의 동면이 지리한 시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본능은 거역할 수 없다] 자연계에만 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체시계에도 4계절이 있다. 마음속 4개월! 사람마다 생체시계의 주기는 다르지만 그 순서만은 어김없이 똑같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고, 다시 여름과 가을을 거쳐 어느새 또 겨울이 와 있고…. 그 누가 이 순리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돌고 도는 순환적 흐름의 중심에 우리들 희망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희망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단서는 뇌 연구의 성과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의욕, 야심, 자기통제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면적이 동물들에 비해 월등하게 넓다는 것! 개의 전두엽은 대뇌피질 전체의 7%, 원숭이는 17%인 데 비해, 사람은 29%인 약 760㎠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전두엽을 문명의 뇌, 판단의 뇌, 예측의 뇌, 선견지명의 뇌라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전두엽에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이 전두엽의 작용으로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모색하고, 도모한다. 그러니 이 전두엽에 인간의 내재적 모멘텀, 곧 희망본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의 들판 위에: [대륙형 희망] 희망은 보는 사람이 임자다. 바로 코앞에 있는 희망도 보지 못하고, 희망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희망의 존재 여부’를 놓고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이 충돌할 때, 결국 관건이 되는 것은 보는 능력이다. 최근 중국에서 온 유학생과 점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중국인들은 대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하여 물었다. 필담으로 받은 답변은 중국 속담이었다. “희망재전야상(希望在田野上)!” “무슨 뜻이죠?” “희망은 밭과 들판 위에 있다!” 야, 멋있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금세 뜻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밭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라. / 밭이 없다면 저 주인 없는 들녘에 희망이 있다. / 황무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으라. / 희망이 쑥쑥 자라리라.’

오늘로 치면 ‘밭’은 우리의 직장, 또는 활동무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들판’은 세상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터이고, 이는 대우그룹의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이 남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한때 유명했던 책 제목을 연상시킨다. 그는 결국 ‘세상’이 희망이라고 말한 셈이다. “온 세상이 너희 희망 밭이며 들판이다!” 중국인들의 스케일만큼이나 널찍한 대륙형 희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나의 밭, 나의 들판을 개간하라] 희망은 우리들의 ‘밭’과 ‘들판’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뻔히 눈앞에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헛군데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이나 트렌드를 좇아 직업을 구하거나 창업하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여태까지 관찰해 온 바로는, 매스컴에서 “요즘 이런 것이 트렌드다”라고 요란을 떨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다. 선두주자들은 그 트렌드를 개척하여 얻을 것 다 얻고서 진즉 빠져나간 상태! 그러므로 트렌드를 마냥 뒤쫓을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그 무엇으로 트렌드를 만들어 내려는 창의성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로 이름을 날리는 싸이. 그는 불과 2년 전 한 강연에서 그의 ‘오늘’을 예감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 “트렌드라는 말은 참 매력적이지만 야속한 단어다. 트렌드는 간사하며 자주 바뀌고, 심지어 지구의 자전축처럼 자꾸 바뀌지만 브랜드는 바뀌지 않는다.” 이 말에 담긴 통찰력이 범상치 않다. 개성적인 외모와 음악으로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브랜드화하여 그것으로 세계를 뒤흔든 트렌드가 되게 했으니, 그는 진실을 말한 셈이다. 공연히 남의 밭, 남의 들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라. 그리하여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라. 자신에게 특이한 것, 지금 눈앞에 주어진 것,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무엇이건 훌륭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괜찮다 괜찮다 _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괴롭힌다. 극복할 길은?: 나는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의 위트 있는 언급에서 두려움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를 찾고 싶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와, 집채만 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거 뭐야? 돌이 굴러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당할 뻔했네.”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결국 아무도 두려움을 피해가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나’ 두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서 위로의 단초가 확인된 셈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WHO』의 작가 밥 보딘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배운 탈출법은 우리가 꼭 익혀 둘 만합니다. 헤드헌터 기업 대표인 밥 보딘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 잘 풀리지 않던 자신의 사업 고충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의 불평을 끝까지 다 듣고 난 아버지는 책상 서랍 속 조그만 카드 위에 그의 고민에 대한 답변이 적혀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밥 보딘이 그 카드를 꺼내 보았을 때, 그 위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그의 물음에 아버지는 답했습니다. “나 역시 여러 골치 아픈 걱정들과 싸워야 할 때가 있었단다. 그럴 때 항상 이 카드를 꺼내 보곤 했지.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어리석고 부정적인 생각들 대부분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아.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 그런 생각들이 너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둔다면, 네 마음에 뿌리를 내려 크게 자라게 될 거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거니?” 이 말은 밥 보딘에게 해방감을 동반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권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바로 이겁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이제 희망을 이야기하자

청춘특권: [되레 희망을 묻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이 희망이다. 무엇이라도 삼킬 듯한 용광로 같은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중국인 유학생이 두 번째로 적어 준 문구는 이것이었다. “청년은 미래의 희망(靑年是未來之希望)!” 생판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접하는 순간 나는 절로 무릎을 쳤다. 그간 젊은이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들었던 물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미래가 막막한데, 그래도 꿈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는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합니까?” 성의껏 대답은 해 주면서도, 늘 시원스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내 답변이 보강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우리 먼저 가는 세대는 청년 자네들이 희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 자네들은 되레 우리에게 희망이 어디 있느냐고 묻네 그려. / 청년의 펄펄 끓는 심장이 희망이 아니라면, / 도대체 그놈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꼬! / 허허, 청춘이 우리에게 희망을 물으면, / 우리는 이제 희망을 어디쯤에서 찾아야 할꼬!’ 그렇다. 청춘의 심장이 뛰는 한, 그가 희망이다. 누구라도 아직 열정이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이 희망이다.



part 2 춤추라



희망은 불끈한다.

오기(傲氣)!: [주먹을 불끈 쥐게(結) 하는 기운] 문제가 산더미처럼 커 보이면 어느새 불안감이나 절망이 엄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은 결연하게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그때 희망은 자신을 호위할 마음의 용사들을 모집한다. 어떤 면면들일까? 나는 여럿 가운데, 오기(傲氣), 호기(浩氣), 강기(剛氣). 이 3가지를 꼽고 싶다. 나는 이 3가지를 묶어 결기(結氣)라 이름 붙이고 싶다. 이들이 결국 주먹을 불끈 쥐게(結)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오기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오기의 힘] 오기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기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잠재 가능성을 끄집어낸다. 수없이 계속되는 좌절과 거절 앞에서도 오기만큼은 제자리를 지킨다. 때를 기다려 기회를 붙잡고 만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의 대시인 존 밀턴은 10대 후반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30~40대에 그는 영국의 여러 정치적 문제를 비판하는 산문들을 집중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투신하는 나날을 보냈다. 허나 결국 그가 바라던 공화제가 좌절되고 왕정이 복고됨에 따라 그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신변은 위험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실명이라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를 두고 사람들이 “밀턴의 인생도 이제는 막을 내렸다”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세기의 명고전 『실낙원』을 탄생시켰다. 다음은 그가 오기로 남긴 말이다. “실명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실명을 이겨 낼 수 없는 나약함이 비참한 것이다.”

호기(浩氣)!: [세르반테스의 허풍] 신라의 화랑들은 전국을 주유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다. 줄여 말하여 호기(浩氣)다. 희망은 청춘의 특권인 이 호기를 자극한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가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청춘이라면 모름지기 호기 한번 부려 볼 일이다. <맨 오브 라만차> 400여 년 전 스페인 감옥에서 무명작가 세르반테스에 의해 탄생한 가공인물 돈키호테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제목이다. 직접 관람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돈키호테는 언제나 희망을 채근하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빌려 노래한 호기 어린 희망가를 좋아한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이 얼마나 과장된 허풍인가. 뻥 중에도 ‘왕대포’감이다. 메시지는 강렬하고 간결하다. “미친 척하고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라!” 세르반테스가 미치광이 돈키호테를 통해 이 희망가를 부른 곳은 감옥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50줄을 넘겼을 때였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가난, 결투와 도피생활, 전쟁 중에 입은 상처로 불구가 된 한쪽 팔, 5년에 걸친 노예생활, 4번에 걸친 탈출 실패! 말년에는 비리혐의로 인해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야말로 희망이 동난 막장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향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 찬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잘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다.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이 희망은 수세기를 관통하며 『돈키호테』가 불후의 명작이 되어 금의환향함으로써 마침내 성취된 셈이다. <맨 오브 라만차>가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요즘 시대가 희망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호언장담을 권하는 까닭] 꿈은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높여서 잡는 것이 좋다. 스스로 파악한 자신의 능력이란 것이 사실은 과소평가 내지 안전평가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망을 품고 꿈을 정할 때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는 호기를 부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공자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알면서도 한다(知其不可爲而爲之)”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기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기로운 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강기(剛氣)!: [『대지』의 작가 펄 벅이 한국인에게서 보았던 것]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이 그의 소설 『살아 있는 갈대』 첫머리에 한국을 표현한 말이다.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해방되던 해까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인의 역경에 굴하지 않는 ‘굳셈’을 주제로 하였다. 펄 벅이 한국인 안에서 꿰뚫어 보았던 것은 강인함, 곧 강기(剛氣)였다. 한국인이 이토록 강기를 지녔던 것은 한국인에게 유독 하늘을 우러르는 성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하늘을 향하여 견뎌 낼 힘을 청하면서 기어이 극복해 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희망의 민족이다. 한국인의 기상을 대표하는 백두산과 동해는 하나같이 ‘희망’의 상징이 아닌가!

숱한 외침으로 국난을 맞았을 때 우리 민족은 상상을 초월하는 저항력으로 놀라운 저력을 보여 주곤 했다. 6ㆍ25의 폐허 위에서 50년 만에 세계경제 10위권 안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굳건한 정신력의 발로이다. 이 굳셈을 강기라 부르는 것이다. 결연한 사람을 일컬어 “그 사람 참 강기 있다!”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엔 이를 대신하는 말로 독기(毒氣)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지만, 독(毒)은 아무래도 해로운 것이니 나는 구태여 ‘강기’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싶다.

괜찮다 괜찮다 _ ‘이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벗어날 길은?: 나의 답변은 ‘허허실실’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곧 헐렁함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내어 그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는 1937년부터 66년간 하버드 졸업생 268명의 인생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주제는 ‘삶에 어려움이 닥쳐올 때 그 역경을 무엇으로 극복하는가’였습니다. 그 결과 위기관리에 유머가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유머는 성격이 쾌활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역경을 극복하는 완벽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머는 제아무리 인생 최악의 위기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위기를 벗어나게 해 주지요. 한마디로 유머는 강박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필수영양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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