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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박은미 지음 | 소울메이트
진짜 나로 살 때 행복하다

박은미 지음

소울메이트 / 2013년 3월 / 344쪽 / 15,000원





PART 1 : 너 자신을 알아라(Know yourself) -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깨달음

도대체 나만 왜 이런 거야?

누구에게나 인생은 억울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억울하다. 이랬으면 좋겠는데 저렇고, 저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학점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승진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힘들다. 어느 정도는 되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기대치에 못 미친다. 그 ‘어느 정도’가 사실 그렇게 욕심 부리는 수준도 아닌 것 같은데, 내 인생은 그 정도도 되어 주지 않는다.

오늘 겪게 될 일 중 내가 원하는 것은?: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만큼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게 얻어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어낼 만큼 노력하지 않고 결과는 좋기를 바라는 것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려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억울해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쉽게 원하는 대로 인생이 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몰라서 그렇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내는 모습을 살펴보면, 인생 자체는 그리 굴곡지지 않았어도 본인 마음을 볶아대서 그런 굴곡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인생이 정말 굴곡져서 누가 봐도 입 벌어지게 힘든 상황인데도 당사자는 잘 견뎌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주관적으로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수위는 그리 다르지 않다. 모두에게 인생이 힘겹다는 것, 그것만큼은 정말 공평한 것 같다. 남의 인생, 모른다고 그 인생이 가벼울 것이라 함부로 생각해버리면 곤란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잘 겪어내고 있는 사람이 있고 힘들게 겪어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아예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나도 나를 배우고 알아야 한다

내가 나에 대해 가장 잘 모를 수 있다: 누구나 얼마쯤은 부당하고 얼마쯤은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부당함은 잘 보면서도 자신의 부당함은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역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측면을 돌아볼 줄 아는 반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폭탄은 타인의 비합리적인 측면이나 부당한 측면은 아주 잘 찾아내고 혐오하면서도, 자신의 비합리적인 측면이나 부당한 측면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균형은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철학적 성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철학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 타인의 장점과 단점을 균형적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객관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남의 얼굴만 쳐다볼 수 있는 우리는 남의 문제를 찾아내는 데는 정말 유능하지만,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남의 문제처럼 보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둑을 둘 때 훈수를 두는 사람이 3배를 본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문제일 때는 객관적 인식의 1/3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사람인지, 누군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를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마음에 끌려가면서 마음에 따라 반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본다는 것 / 자신의 경향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이러저러한 소망으로 덧칠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발현을 통제하려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나는 잘난 인간이어야 하는데’와 같은 전제에 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자꾸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전제하고 있는 것들을 잘 검토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마음의 결을 느끼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적 공상에서 깨어나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기를 원한다. 하루 학교를 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모두 전화를 해대며 나를 걱정해주기를 바란다. 하루 회사를 가지 않으면, 그다음 날 출근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학교를 가지 않았을 때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라도 전화를 해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세상의 일부다. 그런데 세상의 일부인 나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한다. 이는 내 생각의 폭을 넘어서는 세상이 내 생각의 폭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고 반성하자: 잘못을 했을 때 피해야 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하나는 그 잘못으로 인해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너무 느슨하게 ‘그럴 수도 있지 뭐.’로 용인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상당히 경직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면서 용인해버리면, 반성이 되지 않아 다시 동일한 잘못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양극단의 태도 사이에서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화내지 않으면서 잘못의 내용만을 깊이 의식해야 한다. 자책이나 후회를 하지 말고 반성을 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볼 용기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어느 측면에서는 못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잘난 면을 잘 발전시켰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못난 면이 전혀 없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도 못난 면이 있을 수 있고, 타인에게도 못난 면이 있을 수 있다. 존경하고 싶은 사람의 결여에 너무 마음 다칠 필요도 없고, 나 자신의 못난 면에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다 어느 만큼은 못났고 어느 만큼은 잘난 것일 뿐이니 말이다.

자기를 자기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자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나의 직업? 나의 학력? 나의 나이? 나의 성별? 이 중에서 무엇이 나를 말해주는가? 일단 ‘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의 ‘자기개념’이다. 나는 나다울 때 행복을 느끼는데, 도대체 어떤 때 내가 나다운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나다울 때 나라는 존재도 잊고 시간도 잊는다. 그러나 거꾸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시간을 잊었다고 해서, 내가 나다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임이나 도박 등을 할 때 나라는 존재를 잊고 시간을 잊지만, 그때 ‘나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마음속에서는 어떤 불편의 신호가 울려 퍼진다. 무언가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된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떨 때 나다워서 충족감을 느끼는지는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어느 때 내가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끼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험 속에서 이것을 평생 계속한다고 해도 할 수 있겠는지를 물었을 때 “Yes”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은 사회적 보상이 적게 주어져도(즉 보수가 적게 주어져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한다. 돈 때문에만 하는 일은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아니다. 돈만 아니면 그 일을 하지 않고 싶다면 그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나답게 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일을 평생 해도 후회가 없겠느냐(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와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라고 정리할 수 있다.



PART 2 : 너 자신을 가누어라(Train yourself) - 자신의 한계를 감당하는 책임감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의 습관을 버려라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 그 스트레스를 조절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조절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한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른다.

내 탓만 해도 안 되고 남 탓만 해도 안 된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타인의 잘못은 무시하고 자신의 잘못에만 골몰하면 열등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건강한 인식은 내 탓과 남 탓을 현실에 맞게 하는 것이다. 내 잘못이 어느 정도이고 남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남 탓을 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이고, 내 탓을 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면 되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바랄 수 없는 것과 바랄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해야: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려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원인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해오던 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습관대로 행동하면 그동안 겪어왔던 결과만 다시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면, 바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모없는 바람을 가지는 것을 중단하게 된다.

부정적인 말들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을 멈춰라

말의 힘은 세다: 키스 해럴의 『태도의 경쟁력』이라는 책에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들리는 모든 말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 말은 원자의 떨림을 신나게 만들기도 하고 침울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말이 나온다. 어느 실험에서 밥을 두 개의 그릇에 담아두고, ‘고마워요’ 표지를 한 그릇에는 ‘고맙다, 사랑한다, 예쁘다’ 등 긍정적인 말을 하고, ‘짜증 나’ 표지를 한 그릇에는 ‘싫어, 짜증 나, 화나’ 등 부정적인 말을 했다. 한 달 후 ‘고마워요’ 표지를 한 그릇의 밥에는 곰팡이가 적게 폈는데, 곰팡이의 색깔도 예뻤다. 그런데 ‘짜증 나’ 표지를 한 그릇의 밥에는 검은 곰팡이가 많이 피어 있었다. 이렇게 말의 힘은 세다. 그런데 말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하는 말에는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 많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 부정적인 경우에는, 말을 듣는 아이보다 말을 하는 부모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거나, 부모 자신이 열등감이 있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가 많은 경우에 부모들은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문제가 있다고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는 자신이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당연히 실패를 많이 한다. 부모는 그 많은 실패 속에서 가장 괜찮은 경우를 찾아내 인정해주고, 그 행위를 더 나은 방법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조금씩 조금씩 해나갈 수 있게 된다.

부정적인 영향의 여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나의 자유에 속한 것이라는 점이다. 상대방이 그렇게 나를 평가했다고 해서 내가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나를 열등하다고 규정한다고 해서 내가 열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말을 내가 받아들이고 ‘나는 정말 열등해.’ 하면서 괴로워하고 그로 인해 나를 발전시키지 않게 되면, 그때 정말로 나는 열등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뱉은 말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말한 사람은 자기가 말하고도 잊어버린 말에, 혼자 아직도 가슴이 베이고 있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에 부정적인 언어들을 불러일으킨다면, 즉시 그 영향을 차단해야 한다.

결과만을 향해 너무 스스로를 몰아치지 마라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과정이 만족스러웠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와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결과가 좋은 경우 중 사회는 후자를 좋은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결과지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과에 집중하다 보면 과정의 중요성은 도외시된다. 그러나 우리가 긴 시간을 할애하는 ‘과정’을 부정해버리면,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부정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물론 결과는 목적과 연관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인생에서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하는 지향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향하는 방향이 결정된 다음에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인생의 행복을 누리기가 어렵다.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아라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다: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이 있기는 한가? 저마다 각기 다른 일들로 상처를 입는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뼈가 잘못 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은 선천성 질환으로 걷지를 못해서, 어떤 사람은 늘 화를 내는 아버지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 때문에…. 저마다의 상처가 다를 뿐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다. 상처가 상처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 같으면 넘길 수 있는 일도, 나는 그것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처로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상처가 상처를 낳지 않도록 하려면: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그래, 나에게는 이러한 상처가 있어.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어. 우리 모두는 몇 가지 상처를 안고 살아가. 나에게는 이러한 상처가 있을 뿐이지. 이 상처가 아니고 다른 상처였다면 쉬웠을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누구에게나 자기의 상처가 가장 무겁고 힘든 법이다. 나는 이 상처로 특징지어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거야.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야.’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로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면서 많은 성폭행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데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상처에 매여서 원망만 하는 사람은 옆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껴안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PART 3 :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 - 자기 존재에의 용기



나를 들고 다니지 말고 나를 놓아주라

황지우 시인의 시 구절 중 ‘나는 나를 들고 다녔구나.’라는 구절이 나의 가슴을 친 적이 있다. 살다 보면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법이다. 내가 나를 들고 다니게 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경향성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자기 자신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이러해야 하는 존재인데, 그렇지 못한다는 실패감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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