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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홍명보호 스토리

도영인 지음 | 북오션
팀 홍명보호 스토리

도영인 지음

북오션 / 2013년 1월 / 304쪽 / 13,000원





PART 0. 운명의 한일전



운명의 한일전, 긴박했던 72시간: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날 밤 선수단 미팅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홍 감독이 말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본의 강점이 그라운드에서 발휘되지 못하도록 만들자는 전략이었다. 그동안 일본은 잔 패스를 통한 중원 싸움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홍명보호의 장점도 조직력을 통한 중원 싸움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일본전에서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잠시 접어두고, 이기기 위한 맞춤형 전술로 상대를 압박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수비 시스템을 버리고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의 간격을 최대한 넓혀 일본의 정확도 높은 패스워크를 통한 수비 뒷공간 침투를 사전에 막겠다는 계산이었다. 공격에서도 그동안 보여줬던 중원을 거쳐 가는 패스 플레이를 지양하고, 대신 롱 패스로 일본의 수비진을 한 번에 무너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두 번째 필승 전략은 '기 싸움'이었다. 선수단과 같이 일본과 멕시코의 준결승전 비디오 분석을 하던 홍 감독은 갑자기 "스톱"이라고 외쳤다. 경기 흐름상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선수들이 공중 볼 다툼을 위해 헤딩 경합을 벌이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라고 지시한 것이다. 선수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홍 감독을 바라봤다. 홍 감독은 선수들의 눈을 바라보며 강하게 주문했다. "저런 상황이 오면 바셔버려(부숴버려)!"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미팅 중 격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이 한마디에 선수들은 이번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깨달았다. 상대를 거칠게 다루라는 의미였다.

또 홍 감독은 경기 직전 선수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강조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많아. 그중에서 난 유도 김재범이 금메달을 딴 직후 한 소감이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 김재범 선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지난 올림픽에서는 죽기 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죽기 살기에서 살기를 뺐다'고 하더라. 장수가 전쟁에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겠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죽는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싸우면 살아 돌아올 수 있어. 명심하길 바란다."

2012년 8월 10일 오후 7시 45분.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선수들은 홍 감독이 지시한 대로 거친 플레이로 일본 선수들에 맞섰다. 일본이 단 1초도 볼을 여유 있게 가지고 있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압박했다. 전반 38분. 팽팽하던 균형이 박주영의 발을 타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수비진영 왼쪽에서 일본의 공격을 막아낸 오재석은 최전방에서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박주영에게 롱 패스를 연결했다. 박주영은 볼을 잡고 상대수비수들의 위치를 살핀 뒤 곧바로 골문을 향해 드리블을 시작했다. 페널티 박스 인근까지 박주영이 볼을 몰고 갈 때까지만 해도 일본 수비수들은 수적 우세를 감안해 볼을 뺏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박주영은 방향 전환을 통해 4명의 수비수들을 농락하듯 제치고 오른발 슛을 쐈다. 그 볼은 골키퍼 곤다가 힘껏 뻗은 손을 지나치면서 골네트를 때렸다.

홍명보호는 박주영의 선제골 이후에도 계획했던 전략대로 경기를 운영했다. 공수간을 넓힌 한국의 경기운영으로 일본의 장점인 중원 플레이는 무용지물이 됐다. 또한 한국 선수들의 투지 있는 플레이에 위축된 일본 선수들은 시간이 갈수록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후반 11분. 골키퍼 정성룡의 긴 골킥은 일본 진영 정중앙에 서 있는 박주영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구자철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골문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박주영이 백헤딩한 볼은 구자철의 발로 물 흐르듯이 이어졌고, 골문을 슬쩍 바라본 구자철은 오른발 슛으로 골문 구석을 겨냥했다. 구자철을 마크하던 수비수 발 사이로 슛이 통과하며 볼은 골문 왼쪽 구석에 꽂혔다. 2-0으로 앞선 후반 종료 직전. 홍명보호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했다. 본선 6경기 동안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던 김기희를 교체 출전시켰다. 그리고 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홍명보호'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홍명보 감독은 경기 직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대장정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 팀이야말로 진정한 드림팀이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서 드림팀이 아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자산으로 많은 활약을 해주길 감독으로서 부탁하고 싶다." 감독 홍명보와 홍명보의 아이들이 펼친 1271일간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 이제 그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PART 1. NEVER STOP - 2009년 청소년월드컵



히말라야에서의 다짐, 감독 홍명보의 탄생: 대한축구협회는 2009년 2월 19일 파주NFC(한국 축구 각급 국가대표팀의 전용 훈련 시설)에서 열린 기술위원회를 통해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수석코치를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확정했다. 홍명보호 이전만 해도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은 연속성을 띠는 반면, 팀의 운영은 단절돼 있었다. 그동안 두 대표팀은 각기 다른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지휘를 받아오면서 통일성을 찾지 못했다. 지금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3년 후 열리는 올림픽에도 주축 멤버로 활동할 수 있는 연령대가 된다. 그러니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두 대표팀을 별개로 운영하는 것보다, 하나의 대표팀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했다. 홍 감독의 선임은 쉽게 말해 한국 축구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하나로 묶는' 첫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첫 대면, 실력보다 인성과 예의가 먼저다: 2009년 3월 2일 파주NFC, 홍명보호의 첫 공식 훈련이 시작됐다. 홍명보 감독은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고 온종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고 난 뒤, 홍 감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코치들에게 "선수들 모두 지금 강당으로 집합시켜!"라고 예정에 없던 긴급 미팅을 지시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수들은 팀 전술 미팅으로 생각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강당에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몇몇 선수들은 강당 입구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미팅 장소로 향했다.

선수들이 자리에 앉자 홍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오늘 너희들을 지켜보니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좀 할까 하고 불렀다. 너희들, 대표팀에 뽑혔다고 뭐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커피는 쉴 때 방에서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팀원들과 코칭스태프가 모인 미팅시간에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지 않나. 다음부터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지킬 것은 지켰으면 한다." 홍 감독은 제자들의 인성과 예의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썼다. 이 선수들이 미래의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재목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축구 이외의 면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홍 감독은 첫 미팅이었지만 선수들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날렸다. "너희들, 저녁 식사 후에 어떻게 식당을 빠져나갔지? 오늘 하루 동안만 봐도 알겠지만 이곳에는 너희들을 위해 애써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근데 너희들은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밥 먹고 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더라. 내가 볼 때 너희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잘 먹여주고, 불편함 없이 지내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항상 이분들에게 감사함을 가져야 돼. 이분들에게 너희는 뭔가 요구할 자격도 없는 선수야. 앞으로 이곳에 있는 동안 그 어떤 요구도 하지 마라." 따끔한 일침을 놓은 후 홍 감독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나가면서 음식을 준비해 준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 속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선수들과 지원스태프 간의 인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삼촌과 조카, 어머니와 아들 같은 사이로 변해갔다. 선수들의 진심은 통하기 시작했고, 스태프들도 자신의 가족처럼 선수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홍 감독의 예의를 강조한 방침은 실제 대회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세계와 싸울 무기, 한국형 콤팩트 축구: 홍명보 감독은 청소년대표팀 취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어떤 축구를 펼칠 생각이십니까?"라는 질문에 "이탈리아식 콤팩트 축구(공격수와 수비수의 간격을 좁히는 전술)를 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홍 감독의 이미지와 이탈리아 축구는 상당한 교집합을 이룬다. 하지만 천하의 홍명보라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 것은 아니다. 홍 감독이 지향한 것은 이탈리아식의 '콤팩트 축구'였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과 유럽 선수들의 체격 수준과 개인 능력 등의 조건들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은 현실주의자다. 특히 축구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이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서 막연히 이탈리아식 전술을 지향하기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한 '한국형 콤팩트 축구'의 완성을 갈구했다.

홍 감독은 기본 포메이션을 '4-2-3-2'로 정했다. 공격에서는 원톱 공격수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2선에 위치한 3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수비에서는 더블 볼란치(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포백라인의 유기적인 호흡을 바탕으로 철벽 방어를 기대했다. 포백 시스템은 최종 수비라인을 4명으로 구성하는 형태를 말한다. 중앙 수비수 2명은 수비에 치중하는 대신, 측면 수비수 2명은 수비는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오버래핑(수비수가 공격을 위해 미드필더나 공격수 앞에 위치하는 것)을 통한 공격을 펼치기도 한다. 홍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지션은 더블 볼란치였다. 공격의 시작점이자 수비의 최일선 방어선 역할을 해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홍명보호는 기존의 대표팀 운영 패러다임에도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체력 키우기 위주의 메이저대회 준비과정에 칼을 댔다. 맹목적인 체력 증강에서 과감히 탈피해 과학적인 접근을 통한 선수 개인별 최적의 체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홍 감독은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한국형 콤팩트 축구의 기초를 닦기 위해 일본에서 이케다 세이고 코치를 피지컬 트레이너로 영입했다.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파트타임으로 홍명보호에 합류한 이케다 코치는 이전까지 한국 대표팀이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체력 훈련과는 다른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무작정 체력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본선에 맞춰 선수들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체계적인 훈련량 조절이 이어졌다.

감독 홍명보의 눈높이, 내가 보는 에이스는 다르다: 홍명보호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U-20)월드컵에 부푼 꿈을 안고 참가했지만, 조별 리그 1차전 카메룬과의 대결에서 0-2로 완패하며 쓴맛을 봤다. 큰 대회 경험이 많지 않았던 선수들은 90분 내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낯선 경기장 분위기와 푹신한 '양탄자 잔디'라는 변수 탓에 뜻대로 경기를 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경기 직후 의외의 평가를 내렸다. "선수들이 잘 해줬다.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감독까지 혹평을 쏟아낸다면 어린 선수들에게는 더 큰 심적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떨군 선수들에게 칭찬을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묻어났다.

1차전 패배로 홍명보호의 16강 진출에 먹구름이 꼈다. 홍명보 감독이 2차전에서 꺼낸 카드는 파격이었다. 1차전에 내세웠던 공격진을 전원 교체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카메룬과의 1차전에서 공격을 이끌었던 김동섭, 이승렬, 조영철을 벤치에 앉혔다. 대신 박희성, 서정진, 김민우를 공격진에 포진하며 완전히 새판을 짰다. 또한 카메룬전에 실수를 범한 GK 이범영 대신 김승규를 투입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홍 감독의 과감한 선택은 성공을 거뒀다. 한국은 독일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다 후반 김민우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꺼져가던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리는 득점이었다. 한국은 1-1로 무승부를 거두며 귀중한 승점 1점을 챙겼다.

홍 감독은 독일전을 마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밖에서 보는 에이스와 내가 보는 에이스는 다르다." 독일전은 홍명보호가 지향해 나갈 팀 컬러를 분명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이름값의 거품을 걷어낸 스쿼드 구성(출전선수 구성)을 알린 신호탄이었고,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경기 출전의 우선권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경기였다. 이후에도 홍명보 감독은 현재 선수의 컨디션과 팀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 축구 지능 등을 고려해 선수들의 경기 출장 여부를 결정했다.

무관심이 불러온 승부욕, 우리는 해낼 것이다: 홍명보호는 16강전에서 파라과이를 3-0으로 대파하며 기적의 8강행을 일궈냈다. 하지만 8강전에서 가나에 2-3으로 패하며 4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홍명보호의 8강 진출은 한국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큰 업적이었다. 특히 전혀 기대치 않았던 청소년대표팀의 선전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기적'처럼 느껴졌다. 무명의 태극전사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한 무관심이 부른 승부욕이었다.



PART 2. ALL FOR ONE, ONE FOR ALL -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눈앞이 아닌 미래를 보다, 아시안게임을 위한 홍명보호의 시동: 청소년월드컵 8강 신화를 이뤄낸 홍명보호는 일본과의 평가전을 통해 자연스레 올림픽대표팀 체제로 개편이 이뤄졌으나,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기는 2012년, 3년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09년 12월, 홍명보 감독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대표팀을 이끌 사령탑으로 선임되면서 '홍명보와 아이들'이 다시 한 번 뭉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홍명보 감독이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홍 감독은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직후 "아시안게임은 23세 이하 연령대 중 최고의 선수들로 나가겠다"라고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2010년 5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친선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홍 감독은 아시안게임 선수 구성에 대한 전면 재개편을 선택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런던올림픽 출전 가능 연령대인 21세 이하 선수들로 치르겠다는 복안이었다. 눈앞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겠다는 홍 감독의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본선을 2개월 앞두고 홍 감독은 최종엔트리 2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청소년월드컵 멤버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엔트리의 절반이 넘는 13명이 구자철, 김보경 등 8강 신화에 힘을 쏟았던 선수들이었다. 취약 포지션에는 와일드카드를 활용했다. 박주영을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하기 위해 발탁했고, 중원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김정우를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수비라인의 보강을 위해 당시 22~23세였던 신광훈과 김주영이 엔트리에 가세했다.

질책하지 않는 홍 감독, 스스로 반성하는 선수들: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을 마치고 중국 광저우에 도착한 홍명보호는 조별 리그 1차전 북한과의 대결을 준비했다. 2010년 11월 8일 중국 광저우 웨슈산 스타디움. 남북대결에 온 국민의 눈길이 쏠렸다. 예상대로 우리 대표팀이 경기 전체를 지배했다. 하프게임에 가까운 일방적인 경기 운영이었다. 한국은 전후반 21개의 슛을 쏟아냈다. 하지만 단 한 개의 슛도 골네트를 가르지 못했다. 반면 북한은 찬스에 강했다. 전반 36분, 공격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은 북한은 리광천의 다이빙 헤딩슛으로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결과는 0-1 패.

홍 감독은 경기 직후 라커룸에서 "16강 이후 단판 승부에서 이런 경기를 펼친다면 바로 탈락이다. 오늘 경기는 분명 우리 팀에 교훈이 될 것이다"라며 호통보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패배를 보약으로 삼자'는 홍 감독의 메시지는 선수들의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틀 뒤 열린 조별 리그 2차전에서 홍명보호는 요르단을 상대로 4-0의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1차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홍명보호는 이후 4강전까지 승승장구했다. 특히 개최국 중국과의 16강전에서는 텃세로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0 완승을 거두며 홍명보호의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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