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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잡스·게이츠를 키운 부모의 특별한 교육법

김희섭 지음 | 북오션
저커버그·잡스·게이츠를 키운 부모의 특별한 교육법

김희섭 지음

북오션 / 2012년 7월 / 240쪽 / 12,000원



Chapter 01 마크 저커버그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20대 청년 갑부: 갈색 곱슬머리에 매부리코, 헐렁한 후드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젊은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이 청년은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페이스북 최대 주주로 그의 재산은 약 30조 원에 달한다.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부자 랭킹 33위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라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산보다 3배가량이나 많은 금액이다. 그의 나이가 아직 20대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더욱 놀란다. 페이스북은 2012년 5월 뉴욕 나스닥 증권시장에 정식으로 상장되었고 시가총액은 122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단지 돈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저커버그 부모의 자녀 교육법: 저커버그는 원래부터 천재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성공을 이룬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아서 대박을 친 것일까? 물론 재능과 운도 따랐겠지만 자녀의 적성을 조기에 파악하고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준 저커버그 부모의 교육열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페이스북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커버그의 성공 배경에는 부모의 세심한 관찰과 맞춤형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IT(정보기술)에 대한 뛰어난 관심과 집중력을 보이는 것을 보고 아들이 컴퓨터 천재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채근한 것이 아니다. 자녀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지, 지적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해서 적절한 교육과정을 제시하며 이끌었다. 학교 수업과 별도로 개인 과외교사를 붙여주기도 했고, 아직 중학생인 저커버그를 대학원 수업에 데려가 청강을 시키기도 했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창의성을 길러주고 도전정신을 키워준 것이다. 저커버그도 "내가 IT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제일 컸다"고 말한다. 하버드를 다니던 아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한다고 했을 때도 말리기는커녕 "그거 정말 재미있겠다. 네 생각대로 멋지게 한번 해 보렴"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저커버그의 성장 배경: 저커버그는 1984년 5월 14일 미국 뉴욕 주 화이트 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치과 의사, 어머니 카렌은 정신과 의사로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이었다. 저커버그는 4남매 중 유일한 사내아이로 2살 터울의 누나 랜디와 아래로 여동생 도나, 애리엘이 있다. 이들 남매는 우애가 깊었고 서로 어울려 장난치며 노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지금도 뉴욕 주에서 45분 정도 떨어진 돕스페리에서 개인 치과병원을 운영한다. 어머니 카렌은 남편의 병원 운영을 돕고 있다. 아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부부는 예전과 다름없이 직접 환자를 진료한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매사에 낙천적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그는 병원 입구에 '고통 없는 의사 Z(Painless Dr.Z)'라는 간판을 걸어놓았다. 치과 치료를 무서워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친근한 문구를 표시한 것이다. 병원 웹 사이트에도 '겁쟁이 전문(We cater to cowards)'이란 문구가 있다. 에드워드는 페이스북에 병원 홍보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아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치과의 페이스북 친구는 1,000명이 넘는다. 어릴 때 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던 아버지가 이제는 아들이 개발한 페이스북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에드워드의 치과병원과 집은 바로 붙어있다. 1층이 병원이고 2층이 가족들과 같이 사는 집이다. 그 덕에 저커버그의 부모는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일과시간에도 틈틈이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곁에서 항상 지켜보았다. 저커버그 남매들도 자주 병원을 들락거렸다. 병원의 간호사, 직원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냈다. 에드워드는 병원 일이 끝나면 늘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아빠로서 엄격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아이들과 격의 없이 장난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가정 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 정신과 의사인 어머니 카렌도 아들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방향성이 약간 달랐다. 아버지 에드워드가 아들의 컴퓨터 실력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면 카렌은 저커버그의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는 일에 힘썼다. 아들이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컴퓨터에만 빠져 '컴퓨터만 잘하는 괴짜'가 되는 게 아니라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시각을 갖기를 바랐다. 어머니 카렌은 미래에는 기술과 인문학에 두루 통달한 융합형 인재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 카렌은 아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카렌은 자녀들에게 역사, 문학, 예술, 논리학 등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도록 지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로마사,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과 음악, 동서고금의 시와 소설 등을 틈나는 대로 읽게 했다. 저커버그가 지금도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의 장편서사시 『일리아드』를 줄줄 외우는 것은 이 당시 어머니의 조기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

전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주 근처에 사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카렌은 아이들과 함께 뉴욕 시내의 박물관과 미술관, 콘서트홀을 찾아다녔다. 저커버그는 피카소, 고흐 등 대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컴퓨터 화면에서는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저커버그는 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었다. 어머니 카렌은 미술관에서 아들이 그림의 색깔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색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렌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나름대로 아들의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애썼다. 붉은 색이나 초록색이 많은 풍경화보다는 아들이 가장 잘 구별할 수 있는 푸른색과 흰색이 많은 현대미술 위주로 그림들을 보여줬다. 현재 페이스북의 로고가 청색과 백색으로 돼 있는 것도 저커버그가 파란색을 가장 잘 인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이다.

좋은 학교를 갔기에 좋은 기회를 얻었다: 저커버그에게는 누나 랜디 말고도 조력자들이 많았다. 그는 하버드대 졸업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하버드대를 다닌 턱을 톡톡히 봤다. 막강한 하버드대 인맥은 그의 든든한 사업 자산이었다. 기숙사 친구들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에두아르도 세버린, 크리스 휴즈 등은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 동료들이다.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동문도 큰 도움이 됐다. 집안이 부유한 고교 동창들은 그의 사업 아이디어를 신뢰하고 페이스북에 거금을 선뜻 투자했다. 초기 회사 운영자금 가운데 상당수는 저커버그의 고교 동창생들에게서 나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커버그는 자신의 실력과 더불어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런 배경은 아버지 에드워드와 어머니 카렌이 만들어준 것이다. 저커버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저커버그는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돈을 멋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2010년 9월에 저커버그는 미국의 학교 교육환경 개선에 써달라며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당시 그는 <오프라윈프리쇼>에 나와 '스타트업 에듀케이션 재단'을 만들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이는 좋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저는 살면서 많은 기회가 있었어요. 그중 많은 부분이 정말 좋은 학교에 갔기 때문에 얻은 기회입니다. 다른 어린이들도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한 돕고 싶어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의 역할: 아들이 엄청난 부자가 됐지만 저커버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며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 저커버그의 부모는 여전히 치과병원을 운영 중이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매일 2층 집에서 1층에 있는 병원으로 출근해 환자를 진료한다. 정신과 의사 출신인 어머니 카렌은 남편을 도와 치과를 관리한다. 평범한 미국 중산층 모습 그대로다. 저커버그 역시 여전히 수수한 후드티를 즐겨 입고 월세를 내는 주택에 살아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로 불리기도 했다.

저커버그 부모는 2012년에 집과 병원이 붙어있는 새 건물을 구해 이사했다. 이사를 하면서도 오래전부터 써온 가구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작은 부엌이 있고, 바닥에는 푸른색 카펫이 깔렸다. 집을 옮길 때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저커버그는 아버지 에드워드에게 "페이스북을 만들 수 있게 잘 키워줘서 고맙다"며 페이스북 주식 200만 주를 줬다. 600만 달러(70억 원)나 되는 거금이다. 부모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아들은 회사 이사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아버지 에드워드에게 주식을 발행해 제공했다. 부모는 아들의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주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어떤 특별한 기술을 갖고 아이들을 기른 게 아니에요. 내가 해준 것은 오직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잘하도록 격려해준 것뿐이죠. 아들이 성공했다고 보상을 바라지 않아요. 평소처럼 나는 내 일을 하면 돼요." 에드워드는 자녀를 키우는 비법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열정을 지지해주세요. 그 어떤 것보다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한다. 저커버그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페이스북 직원들이 자녀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도록 지원하고 있다.

에드워드는 자녀 교육에 대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쉽게 하기 힘든 진리를 일찌감치 깨닫고 실천했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자녀를 이끌 수도 있지만 그건 자녀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부모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도록 도와주세요. 다만 아이를 키우는 데 어떤 형태로라도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아요. 해야 할 일과 놀이의 균형을 잡아줄 필요가 있어요."

Chapter 02 스티브 잡스



세계를 뒤흔들고 사라진 거물: 2011년 10월 5일, 전 세계는 한 인물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한 애플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티브 잡스(1955.2.24~2011.10.5). 강력한 카리스마, 편집광적인 열정, 완벽주의, 화려한 쇼맨십, 마법 같은 프레젠테이션, 창조경영의 아이콘 등이 잡스를 상징하는 단어다. 잡스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고, 결국 세상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꿔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1970년대 말, 기업용 대형 컴퓨터만이 판을 치고 시장을 주도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그 덕에 잡스는 20대 초반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2001년 이후에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삼총사를 내세워 모바일 시대를 선도했다. 다양한 IT 기기와 아이튠즈 등의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기반에는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던 잡스의 열정이 깔려 있었다. 잡스는 완벽하고 훌륭한 인물은 아니었다. 성격이나 도덕적인 면을 보면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기적인 행동과 지나친 독설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 잡스의 일생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잡스가 굴곡 많은 삶을 살면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면서 세상을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나를 키워주신 양부모님: 스티브 잡스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랐다면 오늘날의 애플은 탄생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입양됐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한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20대에 애플을 창업해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독선적인 성격 탓에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도 겪었다. 절치부심한 끝에 애플에 복귀해서 최고의 결정에 이르는 순간, 췌장암이라는 병마가 엄습했다. 지긋지긋한 불운의 연속이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다. 스티브 잡스는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잡스가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빛나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에 있었다.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아내, 자녀 등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어린 시절 헤어진 여동생을 찾아서 못다 한 우애를 나누기도 했다. 젊은 시절 일에 매달리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원로 기자에게 부탁해 자신의 전기 『스티브 잡스』를 남겼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어린 잡스에게 나사의 컴퓨터를 보여주다: 양아버지 폴은 잡스가 당시 막 싹트기 시작한 전자공학에 재능을 보이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 연구소에 잡스를 데려가 대형 컴퓨터를 보여줬다. 당시 나사의 컴퓨터는 우주선의 궤도 계산 등 사람이 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복잡한 계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동차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한 컴퓨터가 조명이 번쩍거리는 가운데 '윙~윙' 소리를 내면서 작업을 처리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어린 잡스는 컴퓨터를 보고는 곧바로 매료되어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컴퓨터가 이렇게 멋진 거구나. 나중에 꼭 내 손으로 컴퓨터를 만들어 보겠어." 잡스는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 면에서는 잡스가 아버지를 능가했다. 아버지 폴은 자동차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였지만 전자공학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다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잡스의 부모는 이웃에 사는 전자회사 엔지니어에게 도움을 청했다. 초등학생 잡스를 이 집에 보내 마이크와 스피커의 작동 원리 등 전자공학의 기초를 배우게 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최초의 벤처회사인 HP(휴렛팩커드)에 다니던 그 엔지니어는 영민한 잡스에게 마이크, 배터리, 저항, 콘덴서 등의 작동 원리를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잡스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빠른 속도로 지식을 깨우쳤다. 잡스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부품을 이것저것 끼워 맞춰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을 만드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나중에 잡스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해 간단한 도청장치도 만들었다. 이걸 부모님의 침실에 설치해 놓고는 무슨 소리가 나는지 다른 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몰래 엿들었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폴은 잡스를 혼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칭찬을 했다. "이 녀석, 고약한 물건을 만들었구나. 네 실력이 훌륭한 건 잘 알겠으니 이제 우리 방에서 저걸 치워라."

부모님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그분들을 닮고자 노력하다: 잡스는 인생의 절정기였던 2004년에 췌장에서 암이 발견돼 오랜 투병생활을 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창조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꾼 잡스는 결국 2011년 숨을 거둔다. 그가 말년까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가족 덕분이었다. 부모인 폴과 클라라는 1980년대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잡스는 아내와 여동생, 자녀들의 보살핌 속에 남은 인생을 정리했다. 잡스는 그동안 사업을 핑계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특히 아쉬워했다. 자신이 부모에게 받았던 것처럼 자신의 자녀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틈틈이 자녀와 국내외 여행을 다니며 마지막 생을 보냈다.

잡스는 분명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썽쟁이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그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애틋한 정과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부모님은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그분들이 훌륭한 분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잡스는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을 키우느라 헌신한 양부모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는 "폴과 클라라는 1,000퍼센트 내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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