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꽃피다
요시타케 데루코 지음 | 큰나무
아내 꽃피다
요시타케 데루코 지음
큰나무 / 2012년 7월 / 227쪽 / 12,000원
선택 1 변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_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선택하기 위해
평균 기대수명 80세 시대 라이프 스타일 선택에 당황하는 여자들
전화나 편지, 때로는 직접 찾아오는 식으로 많은 여성으로부터 상담을 의뢰받는다. 상담자의 외양은 해마다 젊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몸매나 말투, 복장 등으로 그 사람의 개인적 배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때로 그러한 눈에 보이는 배경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받는 취급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겉모습만 봐서는 그 사람에 대해 무엇도 제대로 추측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누구든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겉모습을 바꿀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단지 외모의 변화만 시도할 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일은 뒷전으로 내버려둔 여자들이 많이 있다. 상담자의 나이는 20대부터 80대까지 그야말로 다양한데 그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대개 ‘인생을 되찾고 싶다’에 가깝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회사 다니다가 직장 동료랑 결혼했어요. 그때부터 죽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결혼 1년 뒤에 첫애를 낳고, 2년 뒤에 둘째가 태어났어요. 아이 키우다 보니 지금껏 정신없이 살았네요. 어느덧 큰애는 중학생이 되었고 작은애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에요. 아이가 다 크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꾸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평균 수명 80세 시대, 인생 중반의 시기에 접어들면 아이가 어렸을 때처럼 그
저 자녀에게 맞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셨어요, 제 위로 오빠가 한 명 있고. 그동안 엄마는 저랑 오빠만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지금은 오빠 내외랑 같이 살고 계시는데 엄마한테 사흘이 멀다고 전화가 와요. 내용은 뭐 거의 올케 험담이에요. 원래 엄마는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참 따뜻하고 정 많던 분인데 어떨 때는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로 올케 험담을 하세요. 근데 들어보면 올케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 빼앗긴 엄마의 원망처럼 들려요. 저도 아이 키우느라 바쁘고 그럴 때는 엄마가 올케 험담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요새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쩐지 나도 나이 들면 엄마처럼 변하는 게 아닐까 싶어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나도 아이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엄마처럼 되는 게 아닐까. 그러기는 싫다……. 생각할수록 제 삶이 절망적으로 느껴져요.”
산다는 건 매우 구체적인 행위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이대로 무책임하게 살다가는 어머니의 전철을 밟게 될 테니, 어떻게 해서든 이 상태를 깨야 한다’고 생각해도 바로 이 ‘어떻게 해서든’을 ‘어떻게 하겠다’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않고선 어물거리는 현재의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
자극이 부족한 가정이란 이름의 안전지대
가정에 안주해 남편이나 아이를 통한 평가에 저항 없이 살아온 여자와 스스로의 선택과 자력으로 인생을 만들어가며 사는 독립적 감각을 가진 여자의 차이는 나이 듦에 따라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데 있으며 이것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전철을 밝고 싶지 않다던 그녀의 경우, 남편과 이이를 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남편과 아이를 빼고 나면 전 정말 아무것도 못해요. ‘엄만 이런 것도 몰라?’ 애들한테도 이런 취급을 당할 정도니.” 긴 한숨과 함께 토해낸 그녀의 말은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주부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에 들어앉으면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자신을 자극하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게 된다. 가족이 마음 편히 쉬고 안정을 취하는 곳, 이것이 본래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정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장을 강요당하고, 자신에 대한 절제를 요구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장소인 가정에서는 다 늘어진 고무줄처럼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아무런 풍파 없이 한가롭게 지내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런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인 만큼 그녀의 마음속에 큰 파문이 일고 있을지라도 가족에게는 태양 같은 존재로 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스포크 박사는 여자에게 있어 출산은 인간으로서의 퇴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신을 아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아이와 어울리며 편안함 속으로 빠져들면, 아이가 성장해도 어머니는 아이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던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즐겨 했는지는 모르지만, 평가에 대해 예민했던 그녀는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 좋은 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할에 대한 평가일 뿐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선택 2 인생 도약의 시기를 힘껏 뛰어넘다_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여성이여, 야망을 가져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왕 태어난 바에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인정받고, 살아 있는 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소박하고 근원적인 욕구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남자는 직업을 통해, 여자는 아이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채운다고 여겨 왔다. 예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교했을 때, 어머니 쪽이 아버지보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시선이 올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생활 방식, 사고 여하에 따라 다르지만 자칫 6세쯤 시선이 멈춰 버리는 수도 있다. 어머니의 시선이 멈춘다는 말은, 자녀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시선에 맞춰 아이를 유아기의 상태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 자녀수가 5~6명이던 시절에는 어머니의 시선이 6세에서 멈춰도 결코 한 아이에게 고정되는 일은 없었다. 먼저 태어난 아이는 차례대로 그 시선을 통과해 무리 없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아갈 수 있었다. 다만 막내는 기회를 놓치고 아이 같은 어른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평균 자녀 수가 격감한 현재는 대부분의 아이가 일찍이 기회를 놓친 막내와 같은 입장에 놓인 탓인지 어른이 되다 만 어른, 아이 같은 어른이 대량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 어머니의 시선이 6세에 멈추는 것일까?
의사에 말에 의하면, 인간은 미성숙의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개나 고양이 또는 코끼리나 사자 같은 포유류는 태어나는 고통에서 회복되면 곧바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혼자 힘으로 어미의 젖을 먹기 위해 맹렬히 달라붙는다. 또한 무서운 대상을 만나면 흠칫거리며 내뺄 태세를 취한다. 인간이 그 정도로 성숙해서 태어나려면 지금보다 3배의 시간은 더 어머니 배 속에 있어야 한다. 이렇듯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완전한 미성숙의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이 되기까지는 6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공이 들어간다. 따라서 갓 태어난 상태로 인간 사회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은 그로 인해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으레 그 역할은 어머니가 맡게 된다.
아버지의 경우는 아이 외에도 직업이라는 근원적 욕구를 채워줄 수단이 있으므로 어머니보다는 시선이 올라가기 쉬운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일밖에 모르는 경우, 아이로부터 시선이 벗어나 있는 아버지가 많다. 그만큼 또 어머니의 시선이 고정되기 때문에 점점 더 시선이 내려가는 것이 현 실정이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자녀를 자립심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자립심은 지극히 추상적인 것으로 이것을 기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위나 행동을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립심의 첫걸음은 어머니에게 완전히 기대고 있는 아이의 육체를 혼자 설 수 있게 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생활하는 자기 주변의 잡다한 일을 알아서 할 수 있게 되면 아이는 어머니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남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적어지면 그만큼 여유가 생겨, 유치원 친구를 돕거나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친구가 많아지고 자연히 어머니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끌어안고 정면으로 마주 보던 아이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자신의 근원적 욕구를 채워주던 아이가 떨어져 나간다는 상실감으로 허전함이 깊어질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모자 관계 속에서 근원적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되도록 아이의 자립을 늦추고, 일부러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자녀 양육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 애들을 통해 평가받으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마냥 아이로 묶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건 어머니 자신만을 위한 일이다. 아이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독립적 감각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 인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인생과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
나의 인생을 바꿀 사람은 오직 나
‘자아 찾기’를 위해 나를 찾는 상담자에게도 ‘인생 역사 연표 만들기’ 숙제를 내주곤 한다. 숙제를 해오는 사람들은 자아 찾기에 진지하게 몰두한다. 글 쓰는 일을 했던 한 상담자는 ‘인생 역사 연표’를 쓰고 나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숙제 덕분에 네 가지 사실을 발견했어요. 첫째는, 처녀 시절과 결혼 후 쓸거리가 다르다는 거예요. 둘째는, 알고 보니 제 자신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셋째는, 과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 사실을 알기 위한 자료라는 것. 잘못된 길을 되돌리는 일이 과연 지금의 내게 있어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까지의 날보다 앞으로 더 많은 날이 내게 남아 있음을 알아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수학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학원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니 따라가지 못할 수밖에 없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늘 뒤처져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기까지는 반드시 어디선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즉,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채 그저 앞으로 나가다 보니 어느새 수업에서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 것이다. 친구는 중학생 아이들에게 우선 초등학교 4학년 수학 교과서 문제를 풀게 한다. 개중에는 그 문제도 풀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그럼 그 아이들에게는 더 쉬운 문제가 주어진다. 이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그 아이가 잘못 들어선 지점을 찾게 되면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해 차분히 가르쳐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새롭게 시작해보면 그 아이는 자기 학년에 맞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인생 문제도 수학 문제와 다르지 않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검증해보면 자신이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알 수 있다. 잘못된 곳을 알면 그때로 돌아가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면 된다.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다시 출발하기가 힘들다? 현시대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자신에게 남은 세월을,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라. 아직 충분한 기력도, 체력도 분명 남아 있다.
“넷째는, 과거의 추억이라는 것이 꽤 미화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 상황이 불만이니 나도 모르게 ‘예전 그 시절은 참 좋았는데.’ 하면서 남편에게 원망 비슷한 마음을 품었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을 만나서 나와 관련한 갖가지 과거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아, 그때 그 시절에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도 분명 있었어.’ 하고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내게 맞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마다해서는 안 되겠죠. 노력이나 고생은 늘 따라붙기 마련이고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싫은 일이 있었기에 뒤따라온 좋은 일이 더욱 돋보인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아요.”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싫은 일이 있음으로 해서 좋은 일이 더 돋보인다’는 말은 확실히 명언이다. 이 명언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의 마음을 앞세울 수 있다.
선택 3 도전함으로써 인생은 단련된다_ 자신을 키우고 연마하기 위해
자기에게 투자해야 미래의 인생이 열린다
12년간 근무한 회사를 나왔다. 내 의사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나는 노동 조합의 초대 여성 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노동 쟁의가 일었고 나의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대량 인원 감축을 철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어느새 제2조합이 결성되며, 일시에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다. 젊은 혈기 하나로 완강히 버티며 제2조합 가입을 거부했지만 그로 인해 사표를 내야 했다. 30대는 젊은 혈기로 멋지게 밀어붙일 수 있는 원기가 왕성한 시기다. 정의감도 있고 순수함도 있다. 정색을 하고 대들기도 한다. 30대에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이미 정신이 노화된 것이리라.
회사를 나옴으로써 혈혈단신이 된 나는 우선 돈 벌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여성 주간지에 머리기사를 대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제2의 일이 되었다. 물불 안 가리고 써대는 나날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 자극제는, 제2조합으로 몰려간 사람들에게 “그것 봐, 회사 관두고 뭘 하겠어,”라는 말 따위는 절대 듣지 않겠다는 패기였다. 하지만 원고료는 새발의 피. 그래서 당시의 문화센터라고 볼 수 있는 ‘주부 교양 교실’을 열었다. 머리기사를 써내던 때 여러 주부들을 만났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새로운 인생에 대응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의 새 출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시작한 것이 바로 주부 교양 교실이다.
남편은 병원을 들락거리는 환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나를 크게 변화시키려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지금은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때라…….” 이런 말을 하며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발을 빼려고 하는 여성을 보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힘든 때라는 건 다시 말해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때일 수 있죠. 그러니 자기를 더 쉽게 바꿀 수 있어요. 그만큼 간절하니까요. 게다가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니 오히려 잘된 게 아니겠어요.” 그녀들의 등을 떠미는 데 그만 필사적이 되어버리는 건, 나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크게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힘들었기에 그야말로 변혁이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처음으로 강단에 선 날, 300여 명의 참석자 앞에 선 순간 나는 완전히 주눅 들고 말았다. 머릿속은 새하얀 공백, 그토록 치밀하게 준비한 강연 내용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필사적으로 연단을 잡고 무너질 듯한 몸을 지탱하며 뭔가 말 같은 것을 입으로 토해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던 걸 보면 아마 참석자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내놓을 말이 없어 서툰 강연을 거듭 사죄하고 비척비척 무대 뒤로 물러나왔다. 강연을 시작한 지 불과 40분 만에. 주최 측에서 내민 사례금을 받지 않고 돌려주었지만, 다시 들이미는 바람에 거듭 사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 비참함을 뭐라 형언할 수 있을까.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억눌렀던 눈물이 쏟아져 목청껏 한참을 울었다. 창피하고 분했다. 그리고 비참했다.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울고 또 울며 두 번 다시 강연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건만 2개월 뒤 나는 또다시 강연을 하러 나갔다. 말로 표현하는 일을 선택한 이상, 주눅 드는 버릇도 말솜씨가 없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00회 이상 강연을 해왔다. 그야말로 창피를 무릅쓰고 단련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