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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게 태어난 우리

데스몬드 M. 투투, 음포 A. 투투 지음 | 나무생각
선하게 태어난 우리

데스몬드 M. 투투, 음포 A. 투투 지음

나무생각 / 2012년 8월 / 263쪽 / 12,000원



선함이 일으키는 변화: 우리는 근본적으로 선하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악에 분노하겠는가?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돈이 내 계좌로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과 부러움이 있을망정, 존경심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 다르다. 그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바로 선함이다.

테레사 수녀는 세상을 떠난 지금도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과 칭송을 받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선을 실천한 덕분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넬슨 만델라도 있다. 여러분과 나도 기본적으로 선하다. 선함은 모든 것을 바꾼다. 만약 우리가 철저히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냉정한 존재라면, 매번 그런 성향에 맞서야 하고 우리의 추악한 자아가 나오지 않도록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래 선하다면, 그 본성을 재발견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래 선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 인간이 선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성서를 읽는 방식까지 달라졌다. 하느님은 참 지혜로운 분이다. 선 그 자체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선하게 만드셨다. 우리는 누구나 선하게 살기를 바라며 지혜로운 충고로 자신을 인도해줄 교사나 조언자를 찾는다. 누가 그런 교사와 조언자가 될 수 있을까? 도움을 요청할 곳은 많지만, 결국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상은 하느님이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인간의 생존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는 인간이 스트레스에 '투쟁 혹은 도피'로 반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투쟁이나 도피 대신 '보살핌과 어울림'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아이를 보살피고 서로를 보호하고 지원함으로써 종족의 생존을 유지해왔는데, 이러한 관계 패턴은 물리적 생존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연약한 상대를 보살피는 일은 관심을 베푸는 사람이나 관심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정신적으로 유익하다. 그래서 노인의 경우 반려동물을 돌볼 때 육체적, 심리적으로 얻는 유익이 크다고 한다.

배려하는 마음, 선함에 대한 본능이야말로 인간을 연결하는 실과 같다. 물론 인간의 선함이라는 천이 빛을 잃고 너덜너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우리 존재의 근간이 되는 경건함을 완전히 찢어버리거나 파괴할 수 없다. 우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읽는 성서 말씀, 우리가 속한 장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과학적 증거, 인생 경험 모두 선이 우리의 본질적 자질임을 확증한다.

선하려는 노력을 멈춰라: "아들, 아들이 생겼다!" 탐산카가 태어났다. 쌕쌕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사랑에 빠졌다. 아들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하느님의 생명을 경험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아이가 내 사랑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첫 숨을 쉬는 순간부터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아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영원 전부터 하느님은 사랑과 기쁨으로 모든 탄생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점지해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기 전에 이미 하느님은 우리를 알고 사랑하셨다. 우리 개개인은 하느님께 귀한 존재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이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이미 그 사랑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느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받아주신다. 아니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선물이다. 우리가 수고해서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성취의 문화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조건 없는 수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력이라도 하면 가상히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떻게든 하느님을 감동시키려고 애쓴다.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다가 힘만 소진한다.

선한 일에 매진하면서 결코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영혼을 소생시키고 생명을 주며 공의를 세우는 일에 의지와 활력과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 반면에 동일한 의지와 활력과 열정을 가졌으나 그 수고 때문에 파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일이나 헌신, 열정이 파괴적이지는 않다. 그들도 분명한 목적과 공의를 향한 열망으로 모든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뒤에 마귀의 조종이 있다. 목적 뒤에 숨어 있는 마귀의 정체는 '충분하지 않다는 두려움'이다. 여기에는 충분히 일하고 있지 않다는 두려움도 포함된다.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는 두려움은 일에서 기쁨을 빼앗고 에너지도 빼앗아 간다.

마귀는 어떻게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갈까? 마귀는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함께 사랑을 얻으려면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놓는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완벽함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래서 우리는 본래 선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더 선한 사람', '더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실 나쁜 일이나 잘못된 일을 하려는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을 성취하며 우리의 본질인 선함을 마음껏 누리면 된다. 선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본래 갖고 있는 선함으로 살면 된다.

선함은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아니다. 우리의 선함은 이미 우리가 받은 선물과 사랑이며 우리가 인정하고 감사할 대상이다. 원래 선한 삶을 부여받았는데도 그 사실을 잊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삶'에 집중하다 보면,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느님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고, 선한 행동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게 한다는 그릇된 확신이 생기게 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완수해야 할 임무는 없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며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시는 법이 없다.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루가의 복음서> 15장에는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알려주는 비유들이 나온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의 이야기에도 온전한 사랑이 담겨 있다.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정신없이 날뛰는 골칫거리로 보기는커녕, 승리의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에 들쳐 메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도 온전한 사랑을 보여준다.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더니 땅을 판 돈을 가지고 먼 지역에 가서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해버린다. 빈털터리가 되자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고 홀로 남겨진 채 한없이 비참해진 그는 결국 자기 행동을 후회하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아들로 받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품꾼으로 써주면 감지덕지한 마음이었다. 저 멀리 오고 있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아들을 맞이한다. 용서를 구하는 아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을 꼭 껴안으며,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인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집을 떠난 아들 때문에 고통을 받았음에도 아버지의 사랑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온전한 사랑의 특징은 무엇일까? 온전한 사랑은 대응이 아닌 호응적인 사랑이다. 순간에 생기는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감정과 상관없이 선한 일을 택한다.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인내한다. 고통과 스트레스, 슬픔, 피로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온전히 쏟아붓는다. 온전한 사랑은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서도 볼 수 있다. 부모들은 화와 짜증이 나지만, 참고 기다리며 아이를 안아서 달래고 악몽을 꾼 아이에게 졸린 눈을 비비며 달려간다.

내 딸 음포는 기나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머리에 열이 나서 짜증을 내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 옆에 있어준다. 밤이 지나면 또다시 길고 긴 하루가 시작된다. 아픈 아이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잔다는 음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40년 전에 열이 나는 음포를 재우려고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느님이 주신 선한 본성은 이렇게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선하게 사는 삶은 자신이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은 존재임을 안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들, 흠 없이 완전무결한 삶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많다. 하느님은 죄책감, 수치심, 불안감에서 빠져나오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전혀 다른 삶으로 초청받았다. 그것은 내가 외할머니 집에서 처음 발견했던 삶이기도 하다.

온전함으로의 초대: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 가족은 스터톤빌 외가로 갔다. 문시에빌의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여름이면 복스버그의 주류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외할머니는 백인 가정에서 빨래를 했다. 사촌들과 내가 바닥에 앉아 종일 할머니를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보통 네다섯 시 정도에 집에 돌아왔는데, 할머니 손에는 빵과 잼이라는 엄청난 선물이 들려 있었다. 일하는 집에서 받은 아침식사를 아껴두었다가 우리를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당시의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장난감이 없어서 철사로 공을 만들고, 구두약 통으로 자동차를 만들곤 했지만. 그리고 스터톤빌의 외가가 비좁았다는 기억도 없다. 방이 네 개였는데 크리스마스 때면 외할머니, 부모님, 사촌 둘,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나까지 여덟 명이 한 집에 있었다. 외벽은 철판, 바닥은 흙벽돌이었다. 용변은 서너 집이 공동으로 양동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공동수도에서 길게 줄을 서서 양동이에 받아온 물로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세수도 하고 집안일도 했다. 환한 조명과 아름답게 장식된 방과 욕실이 있는 집에서 편히 지내고 있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어린 나에게 스터톤빌의 외가는 완벽 그 자체였다. 모두가 편안하고 사랑이 넘쳤다.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스터톤빌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완벽과 거리가 멀 수 있지만, 열악한 상황이 만들어낸 부족함의 간극을 사랑과 관심이 채웠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느 곳보다 최상이었다. 스터톤빌의 외할머니 집이 지닌 완벽함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초대, 그리스도인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에 담긴 완벽함과 비슷하다.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완전함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들으면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워 보이는 명령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흠 없이 완벽해지라는 명령으로만 들린다. 그러나 하느님은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을 만들려고 당신을 초대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완전함은 온전함이다. 삶의 여러 어려운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온전함을 배워보자.

음포는 성필립보 성당 어머니회 여성들에게서 온전함을 배웠다고 한다. 음포가 남아프리카 그레이엄즈타운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참여한 이 모임은 다양한 인생 경험과 경제 상황을 겪은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을 하고 있거나 은퇴한 전문직 여성들이 많았는데, 특히 교사와 간호사가 많았다. 회원들은 목요일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서 공부를 하며 삶을 나누었다. 힘든 사람에게는 위로와 도움을 주고, 시련을 겪는 사람에게는 함께 기도하며 조언해주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서로 힘을 북돋웠다. 특별한 축복을 경험한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했다. 인생의 실수와 실패와 한계를 모두 신앙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한 삶과 선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온전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배운 것이다.

세상의 특권, 지위, 성공의 기준에 있어서 나의 친구 고(故) 베이어스 노데는 '온전한' 삶을 보여준다. 아프리카너(남아공의 네덜란드계 백인) 성직자인 그의 집은 골수 백인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비밀결사 조직인 아프리카너 형제연맹의 창립 멤버였는데, 이 단체는 백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베이어스는 25세에 형제연맹 최연소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지도자이자 네덜란드 개혁교회 종교회의 의장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그의 삶의 기초는 견고하지 않았다.

베이어스는 자신이 세운 다인종 기관 남아프리카 크리스천연구소와 그동안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이끌던 네덜란드 개혁교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양심에 순응하기로 했다. 1963년 9월, 그는 자신의 결심을 공언했다. "우리는 사람보다는 하느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가운을 단상에 벗어놓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종교회의 의장직도 내려놓았으며 지역 의장도 그만두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직자로서의 지위를 잃었고 백인들은 그와 그의 가족을 외면했다. 그의 삶은 파멸된 듯했다. 그러나 베이어스는 겉으로만 흠 없이 완벽한 삶 대신에 진정 완벽하고 온전한 삶,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삶을 택했다. 다른 아프리카너들은 그를 배척했지만 남아프리카의 흑인 사회는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 후 오랜 세월 베이어스는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7년 동안 가택연금과 유사한 '금지 명령'에 처해졌다. 가족모임이나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런 험난한 시간이 30년 넘게 이어졌고, 넬슨 만델라가 민주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베이어스는 혐의를 벗었다. 그는 자기 민족이 자행하던 불의에 맞서 고독하게 정의를 부르짖었고, 거짓된 완벽함 대신 거룩한 온전함을 택했다. 거룩한 완벽함, 즉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함이란 아름다움으로의 초청이다. 하느님은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예술가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온전한 삶이란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삶에 불가피한 실수와 실패가 들어갈 공간을 남기면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은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주어진 선물과 도전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자유가 있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이 자유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선택의 자유: 1992년 당시 남아프리카 흑인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한다면, 넬슨 만델라에 이어 2위로 선정될 만큼 크리스 하니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는 남아공 보안경찰의 수배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여 도주했고, 민족의 창에 가입하여 계급이 급상승했다. 짐바브웨의 인민혁명군(ZIPRA)과 연합하여,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려던 로디지아와 남아공 출신 군인들에 맞서 싸웠다. MK 사령관이던 그는 암살 위협도 수없이 넘겼다. 여러 사건들을 통해 크리스 하니는 그의 동지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지도력을 신뢰했으며 그의 명령에 따라 때를 기다렸다.

1993년 4월 10일 부활절 전날 요하네스버그로 최근 편입된 돈파크는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내 림포는 레소토에 사는 가족을 방문하러 갔고, 하니는 경호원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남은 상태였다. 하니는 빵과 조간신문을 사기 위해 근처 쇼핑센터로 차를 몰고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뒤에서 따라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하니가 집에 주차하자 뒤따라오던 야누쉬 발루스도 차를 세웠다. 구입한 물건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하니에게 발루스가 말을 걸었다. "하니 씨?" 곧바로 총성이 울렸다. 땅에 쓰러진 하니의 입과 코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는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했다. 총성이 울릴 때 차를 빼고 있던 이웃의 백인 여성 레타 함즈는 암살자의 차량 번호를 재빨리 적은 뒤에 집으로 들어가서 경찰에 신고했다. 10분 뒤 경찰은 해당 차량을 발견하고 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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